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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장편소설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5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이 책을 완독했다. 처음 접한 건 몇 년 전 작가를 만난 후였던 것 같다. 파주 출판도시에서 책 관련 큰 행사가 있었고, 하루를 할애했던 그날의 일정 중 은희경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큰 도서관에 모여 있었고, 사람들의 손에는 새의 선물이 들려 있었다. 작가와의 만남 이후 사인을 받을 요량이었나 보다. 젊지 않은 작가의 젊은 면모와 책을 손에 든 젊은 독자층에 놀랐다.
쥐를 바라보는 책의 첫 부분을 작가가 직접 읽어주었다.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 너무 실감났고, 어떻게 이 짧은 순간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며 들었다. 이후 책을 두 번인가 샀다 팔았고, 도서관에서도 빌려 읽다 만 적이 있어 앞부분부터 중반까지 친숙했다. 이번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데려왔다. 다시 만난 진희는 안쓰러움이라는 감정으로 다가왔다. 웃음이 별로 없어 보였던 작가의 표정이 겹치기도 했다.
어머니에 대해 말하기 꺼리는 할머니와 철부지 같은 이모의 틈에서 진희는 삼촌이 두고 간 잡지를 통해 어른들의 세계를 일찍 접한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그녀는 12세에 혼자 사전을 찾아가며 아직 몰라도 되는 세상을 일찍 알아버렸다. 공교롭게도 동네 어른들의 일상은 진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만큼 다채롭다. 가족이 있음에도 다른 여자를 찾는 광진 테라 아저씨, 최 선생님과 장군이 엄마의 밀애, 이모의 남자 친구, 경자 이모의 배신과 죽음….
친구 장군이를 똥통에 빠지게 하고, 우는 아기를 때리기도 하는 진희는 마냥 착하기만 한 건 아니지만 세 들어 사는 남매의 불행을 마음 아파하고, 아픈 이모를 걱정하기도 하는 남을 잘 이해하는 아이다. 남을 이해하는 깊이에 비해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진희는 위로받고 이해받아야 할 나이에 그 부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 아마도 어른이 되어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 마음껏 나눠줄 수 없는 결핍감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부분은 책의 앞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 책이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고, 성장 소설에 가깝긴 하지만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지 않고, 그래도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이 책의 좋은 점이라 생각한다는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어른들의 세계에 일찍 관심을 갖지만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으로 오히려 더 이상 호기심을 가질 수 없게 됨을 고백하는 진희의 독백은 담담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재치 있는 묘사가 마음에 들었다. 작가가 전라도 시골에서 자라며 들은 어른들의 맛깔스러운 표현들이 책 속에 수없이 녹아 있다. 내 책이었다면 밑줄 쳤을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하나씩 읽어보고 싶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생각하니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떠오른다. 자신의 뿌리가 희미한 모모는 사랑을 주는 로자 아줌마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을 통해 성장해 간다. 힘든 상황이 아이를 일찍 어른스럽게 만들지만 천진한 면이 남은 모모는 ‘새의 선물’ 속 진희를 닮았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UagZWngLFy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