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좀비 같아요.> 딱히 반박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여자가 자기 손톱을 뜯어보며 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말할 때는 더더욱 그랬지요. 맞는 말입니다. 행복한 고자들과 좀비들로 가득한 행성에서 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니까요.

제가 <눈만 내리면 바랄 게 없겠다고요?>하고 묻자 아저씨는 <네, 사장님>하고 대답했어요. 그러더니 술이나 마약에 취한 듯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눈에 파묻혀 죽어 버렸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저 나귀랑 나는 비슷한 처지인 것 같아〉 하고 카리다드가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태어난 곳에서도 외국인이니까.〉 저는 카리다드에게 그건 틀린 말이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셋 중에 법적으로 외국인인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지요. 저는 카리다드의 허리에 살며시 팔을 두르고 기다렸어요. 〈카리다드는 하느님의 눈에도 경찰의 눈에도 외국인이야. 자기 눈에도 그럴 테지만 나한테는 아니야〉 하고 생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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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가끔은 정반대로 모두들 갑자기 꿈을 꾸고있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꿈의 비정상적인 법칙에 따라 전개되었다. 꿈에서는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고, 꿈꾸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다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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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우리의 "내적 경험" - 우리에게 겉보기에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직접적인 것-조차 같은 곡해를 받는다. 즉, "‘내적 경험‘은 이 경험이 개인이 이해하는 언어를 발견한 후에만 우리의 의식 안으로 들어온다. ...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새로운 어떤 것을 낡고 친숙한 어떤 것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클로소프스키의 용어로 말하면, 언어의 기능과 지성은 (무의식적) 강도를 (의식적) 의도로 전환하는 데 있다. - P795

환영은 본성상 전달 불가능하므로, 환영의 저항 불가능한 제약을 따르는 주체는 결코 환영을 기술하기를 끝낼수 없다. 따라서 클로소프스키의 서사 작품은 하나의 단일한 반복에 의해 횡단되고, 하나의 같은 운동에 의해 수행된다. 사실상 반복되는 것은 언제나 같은 장면이다. - P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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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에르난데스는 뛰어난 시인이지만 이상하게도 형편없는 시인들이 그를 숭배한다(확실한 답은 아닐 것 같아서 저어되지만 내가 생각해 낸 설명은 이렇다. 에르난데스는 고통의 편에 서서 고통에 대해 노래한다. 그런데 형편없는 시인들은 대개 실험용 쥐처럼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특히, 남들보다 오랫동안 지지부진하게 사춘기를 겪으면서 말이다).

한번은 내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린 청년이 그저 시간을 죽이려고 무심코 던진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내 질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한참 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마침내 대답을 찾았는지 입을 열었다. <나는 조용한 여자가 좋아.> 그러더니 곧장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죽은 사람만 조용하지.> 아저씨는 동안을 두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죽은 사람도 조용하지 않군.〉

"그러면 이제 이 나라가 악마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아직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악몽을 꾸기 위해 살아남은 거야. 그저 누군가는 남아서 꿈을 견뎌야 하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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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뤼미나시옹 - 페르낭 레제 에디션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지음, 페르낭 레제 그림, 신옥근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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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가 마지막으로 남긴 빼어난 걸작

말라르메, 발레리의 시와 함께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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