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실을 탐구하고 논하고 분석할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 정신에, 우리 기억에 나타나는 대로 분석한다. 우리는 현실을 과거 시제로만 안다. 우리는 현실을 현재 순간,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 그것이 있는 순간 그대로 알지 못한다. 한데 현재 순간은 그 추억과 같지 않다. 추억은 망각의 부정이 아니다. 추억은 망각의 한 형태다.

우리는 꼬박꼬박 신문을 읽고 모든 사건들을 기록할 수 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기록들을 다시 읽다 보면 우리는 그것들이 단 하나의 구체적인 이미지도 떠올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더욱 고약한 것은 상상력이 우리 기억을 도와 그 잊힌 것을 재구성해 낼 수 없다는 점이다. 현대라는 것, 검토할 현상으로서, 구조로서의 현재의 구체 내용은 우리에게 미지의 혹성과 같다. 결국 우리는 그것을 우리 기억에 붙잡아 둘 줄도, 상상력으로 그것을 재구성할 줄도 모르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것이 뭔지도 모르는 채 죽는 것이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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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나는 "역사의 종말" 이란 말에 불안이나 불쾌감을느낀 적이 없다. "그것을 잊는다는 것, 그 무용한 일들을 하게하려고 짧은 우리 삶의 수액을 다 소진한 그것, 역사를 잊는다는 건 얼마나 근사할 것인가!" (<삶은 다른 곳에>) 역사가 끝날거라면 (철학자들이 즐겨 말하는 그 종말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어렵지만) 어서 끝장나기를! 하지만 "역사의 종말"이라는 이 똑같은 문구를 예술에 적용한다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그 종말, 나는 그것을 너무도 잘 상상할 수 있다. 오늘날의 소설 생산 대부분이 소설사의 장 바깥에 있는 소설들로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소설화된 고백, 소설화된 탐방기, 소설화된 보복,
소설화된 자서전, 소설화된 폭로, 소설화된 규탄, 소설화된 정치 강론, 소설화된 남편의 고뇌, 소설화된 아버지의 고뇌, 소설화된 어머니의 고뇌, 소설화된 능욕, 소설화된 출산 등 시대의 종말까지 끝없이 이어질 소설들,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말하지 않고, 어떤 미학적 야망도 없는, 인간에 대한 우리의이해나 소설의 형태에 어떤 변화도 가져다주지 않는, 서로 비슷한, 아침에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고 저녁예 완벽하게 던져버릴 수 있는 소설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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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판단을 중지한다는 것, 그것은 소설의 부도덕이 아니라 바로 소설의 도덕이다. 즉각적으로, 끊임없이 판단을 하려 드는, 이해하기에 앞서 대뜸 판단해 버리려고 하는 뿌리 뽑을 수 없는 인간 행위에 대립하는 도덕 말이다. 이 맹렬한 판단 성향은 소설의 지혜라는 관점에서 보면 더없이 고약한 어리석음이요 다른 무엇보다 해로운 악이다. 소설가가 도덕적 판단의 정당성을 절대적으로 반대해서가 아니다. 다만 소설가는 그것을 소설 저 너머로 보내 버린다. 거기에서 여러분이 파뉘르주를 비겁하다고 비난하든, 에마 보바리를 비난하든,
라스티냐크를 비난하는 그건 여러분의 일이다. 그것까지야소설가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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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리스 델 동고, 아글라야, 나스타샤, 미슈킨, 주위에서 그들을 얼마나 많이 보게 되는지! 그들은 모두 미지로의 여행의 출발점에 있다. 물론 그들은 방황한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방황이다. 그들은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채 방황하는 것이다. 이중적인 의미에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을 모르고 또, 자기 자신을 모른다. 어른이 되어서 거리를 두고 볼 때에야 방황이 방황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이렇게 거리를 둘 때에만 방황의 개념 자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미래의 어느 날 지나간 젊음을 향해 어떤 시선을 던지게 될지 현재로서는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확신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이미 경험한 어른들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옹호한다. - P204

젊은 시절에 대한 시오랑의 격노는 분명한 무언가를 보여준다. 즉 출생에서 죽음 사이를 잇는 선 위에 관측소를 세운다면 각각의 관측소에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자리에 멈춰 있는 사람의 태도도 변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람의 나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정말이지 이것은 분명하다. 아,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오직 이데올로기적인 거짓 증거들만 눈에 보인다. 실존적 증거들은 명백한 것일수록 덜 드러나 보인다. 삶의 나이는 커튼 뒤에 숨어 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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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라도 만일 내가 다른 곳에서, 다른 나라에서 다른 때에 태어났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법이다. 이 질문은 가장 널리 퍼진 인간의 환상 가운데 하나 즉 우리 삶의 상황을 단순한 배경이나, 아니면 항상 독립적이고 지속적인 우리의 ‘자아‘가 단순히 지나치는 우연적이며 바뀔 수 있는 상황으로 인식하게 하는 환상을 내포한다. 자신의 다른 삶, 여남은 개 되는 가능한 다른 삶을 상상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러나 몽상은 이제 그만! 우리 모두는 출생의 날짜와 장소에 구체적이고 유일한 상황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만 그리고 그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낯선 두 사람이 조셉 K가 기소당했음을 알리기 위해 아침에 그를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딴판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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