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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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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독신의 오후

우에노 지즈코 지음 │ 오경순 옮김 │ 2014. 06 │ 현실문화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 있을까.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한번도 남자의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굳이 남자가 아니어도 '나이듦'에 대해 생각해본 경우가 없다. 그 이유는 괜시리 우울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날을 살아감에 있어서 나이가 든다는 건 슬프고 서글픈 일이면서도 고단함을 의미한다. 싱그러운 젊음이 그리워지고 몸이 약해지는 것도 안타까운데 거기에 경제적 문제로 중년 이후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TV와 드라마에선 부유하고 화려한 노후생활을 보여주며 환상에 젖게 하지만 실제 삶도 그렇게 될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여성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일본 남성이 나이를 먹으면서 겪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남성 중에서도 '홀로' 살아가는 남성들이 어떻게 인생의 오후를 보내게 되는지를 담기 때문에 갈수록 비중이 높아지는 싱글들에게 진지한 고민을 던져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과 한국이 초고령사회라는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기대수명은 점점 더 높아지고 출산율은 떨어지는건 기본적인 사회 흐름이지만 여기엔 '싱글족'의 강세도 두드러진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30대가 넘어서면서 결혼을 거부하고 혼자사는 비중도 많아질 뿐더러 결혼한 뒤에도 이혼을 하거나 배우자와 사별하는 경우도 높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해서건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건 홀로 사는 문제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고령사회일수록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노인의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고 그 이후의 삶은 깊은 고민과 진심어린 준비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쫓기듯 사는 인생 속에서 홀로 살아감을 생각하는 건 쉬운일이 아니다. 더욱이 '남자'의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면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의무에 매달리기 때문에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시간이 없다. 이혼을 했거나 홀로 사는 남성의 경우에도 준비가 되지 않은채 외로움을 느끼고 결핍을 겪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사회학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다양한 사회 현상을 책 속에서 제시한다. 남성이 혼자가 되는 사례들, 거기서 오는 문제점 및 실질적 어려움들이 여러 갈래로 자세하게 다뤄지기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도 제공한다.


저자는 여성과 다르게 남성이 더 노후에 부담과 어려움을 느끼는 건 '자립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제적으론 돈을 벌기에 자립한다고 볼 수 있지만 가사일을 모두 여성에게 맡기거나 돈으로 해결해온 사람이라면 '자립'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스스로 요리를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며 생활을 지켜낼 줄 알아야 한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적은 생활비로 살아가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생활을 꾸려갈 줄 알아야 한다. 저자는 나이가 들수록 의존성이 높아지는 일본 남성들을 이야기하며 '자립'하지 않으면 남자의 나이듦은 우울함과 슬픔뿐이라 강조한다.


책의 마지막에선 '죽음'을 다룬다. 홀로 사는 남성이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할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흥미로운건 '나 홀로 죽음'과 '고독사'를 구분해놨다는 점이다. 보통 홀로 죽음을 맞는걸 고독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나 홀로 죽음은 그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 나 홀로 죽음은 고독사와 완전 다르다. 고독사는 혼자 고립되어 쓸쓸하게 생을 마치는 죽음인 데 반해 나 홀로 죽음이란 홀로 살아온 인생의 연장선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뿐이다. 싱글의 삶이 결코 고독하지 않은 것처럼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단지 병구완을 할 사람이 없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죽음은 누가 대신해줄 수도 없는 일이며 홀로 완수해야 할 사업, 누군가 입회해주지 않으면 저세상으로 갈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제 혼자 살던 사람이 홀로 죽는 것을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내 집에서 나 홀로 죽음'이라 부르기로 하자. 그런 각오만 있으면 싱글 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 260 261


저자는 책을 통해 '삶'이 결국 나 스스로에 맞춰져야 함을 강조한다. 죽음 역시 그렇다. 누가 대신 준비해주지도, 대신 죽어주지도 않는 죽음이기에 스스로가 나 홀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나 홀로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현재 내 삶을 더욱 자립적으로, 그리고 혼자서도 생활을 지켜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제대로 죽기 위해선 스스로 건강도 챙길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고령의 경제적 문제를 야기하는 사회 구조에 문제를 던지고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하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 한명 한명을 챙길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책 '독신의 오후'는 결국 어떻게 남성이 지금 이 순간 제대로된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지 실마리를 던져준다. 가정을 위해, 혹은 돈을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리고 저당잡혀 사는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통해 진지한 고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by 슈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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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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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히틀러의 철학자들

이본 세라트│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 05 




의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이유


공부하는 삶은 배움의 즐거움을 아는 삶이다. 책이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사고를 넓혀가고 촘촘한 논리를 갖추는 과정이 공부이기에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공부와 함께한다. 너무나 간절히 알고 싶던 몰랐던 사실을 알았을 때 혹은 피상적으로만 접했던 사실을 논리정연한 글로 만났을 때만큼 전율과 감동이 느껴지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공부를 통해 막연하게나마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이 구체화되고 힘을 얻을때 삶은 희망을 얻고 용기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엔 가장 기본적인 공부의 덕목이 있다. 바로 '의심'이다. 공부는 단순히 그대로를 습득하고 앵무새처럼 암기하는데 있지 않다. 진짜 공부는 의심과 비판이 함께한다. 어떠한 것을 볼 때 맹목적으로 혹은 한가지 기준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 거리를 두고 모든것을 의심하는게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분별을 두지 않는다. 한 가지를 다방면으로 보는 안목을 가졌기에 극단에 치우쳐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고 피력하지도 않는다.


서두가 길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어느때보다 공부의 기본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책 '히틀러의 철학자들'은 히틀러가 나치즘을 만들고 유대인 말살정책을 펼치는데 공헌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일단 첫번째 내 편견이 무너졌다. 바로 '철학'이라는 학문 역시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철학이 가진 아우라와 무게감으로 우린 곧잘 모든 사상과 주장을 맹목적으로 떠받들곤 한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철학도 공부도 아니다. 그저 앵무새처럼 복제된 생각을 떠드는 것일테니까. 당시 히틀러의 곁에서 나치즘을 위한 법과 철학을 만들었던 수많은 학자들 역시 그랬다. 그들은 히틀러의 뒤틀린 생각을 뒷받침해줄 탄탄한 논리를 대학이라는 현장에서 떠들어댔고 대중들은 그에 열광했다. 의심과 비판없는 주입된 의식이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을 낳게 도운 셈이다.


두번째로 공부는 합리화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다. 히틀러는 민족주의를 내세워 게르만족의 위대함을 강조했고 이는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극단으로 치닫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가 어떠한 죄책감도 갖지 못한채 무자비한 학살을 할 수 있었던건 바로 '합리화' 과정에 있었다. 과격한 정치행동으로 감옥에 갇혀있을 동안에도 그는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책을 읽어나갔다. 당시 읽었던 칸트, 니체, 다윈의 사상들은 그의 극단적 사상을 뒷받침하는데 사용됐다. 19세기의 근대 독일철학이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독재를 몰아가는데 사용된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주장을 보다 매력적이고 타당하게 보일 수 있는 수단으로서 철학을 이용했다. 자기 주장의 합리화를 위해 사용된 당대의 사상들은 지금 보면 히틀러와는 정반대의 정신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유정신을 가진 초인을 말하는 '니체'를 히틀러가 열렬히 좋아했다는 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그래서 히틀러는 명민하게 철학을 이용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공부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히틀러는 군중 심리를 예리하게 꿰뚫고 있었다. 당대의 학자들에게 입김을 불어넣으면 대중들 역시 비판적 의식 없이 자신의 사상을 받아들일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하이데거와 카를 슈미트와 같은 학자들은 과거 위대한 사상가들의 사상을 적재적소에 이용해 나치즘을 정당화한다. 철학사에서 종종 보았던 낯익은 학자들이 오히려 학문을 독재와 인종차별을 위하여 사용했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히틀러의 뜻에 따라 적당히 버무려진 사상은 당시 사람들에게 철학으로 여겨졌고 그는 철학적 지도자로 여겨지기조차 했다.


철학이 수단이 되버린 사회, 그리고 그것에 별다른 비판과 의심없이 다수의 의견이 모두의 의견이 되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다. 자유와 사랑을 긍정하고 차별에 반대했던 수많은 철학들이 히틀러라는 사람을 거쳐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우린 그 과정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 소개된 탄압받는 유대인 학자들의 이야기는 진정한 지식인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나치를 피해 도망다니면서도 끝까지 반대하고 뜻을 굽히지 않았던 발터 벤야민, 결국 나치에 의해 처형당했던 쿠르트 후버의 이야기는 책의 전반부에 실린 가짜 학자들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짜 공부를 했던,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온몸으로 진짜 공부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책 속에서 만나보자. 그리고 어떤 길을 가야할 지 고민해보자. 그렇게 된다면 진짜 공부의 길에 한걸음 더 가까워져 있을 것 같다. 진짜 공부는 '의심'과 '비판'에서 시작된다.



by 슈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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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고병권 │ 메디치 │ 2014. 05




철학은 '물벼락'이다!


'철학'만큼 우리 삶에서 멀게 느껴지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이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수많은 철학자들, 그리고 그 사상들은 그저 하나의 지식과 교양쯤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시중엔 수많은 철학책들이 판친다. 자기개발서 못지 않게 낯익은 철학자의 이름을 빌려 교양을 파는 책들 말이다. 철학은 결국 '인간'에 대한 학문인데 단순히 하나의 지식으로 전락해버리는 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철학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철학은 무엇일까, 그리고 철학은 인간에게 무엇을 전하는 것일까. 고병권씨는 책 '철학자와 하녀'를 통해 이 물음에 빼곡히 답을 내놓는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대면하고 나를 절망케한 그 무엇을 알아가는 것, 그래서 현재 내 삶이 지옥일지라도 주어진 것들로 부터 스스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 철학이라 말을 한다. 철학은 단순히 위안과 위로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철학의 의미가 '후려치는데' 있다고 말한다. 과거와 미래에 매달려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타인의 힘에 휘둘려 자신의 욕구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철학은 차가운 물 한바가지를 끼얹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책 속엔 그 이야기가 이렇게 담겨 있다.


철학이란게 단지 그런 지식과 자격증에 대한 이름이라면 나는 언제든 그 이름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철학, 내가 고마움을 느끼는 철학은, 누군가의 표현처럼, 언제나 내 정신에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는 그런 것이었다. 그 물 한바가지를 뒤집어쓰고서야 나는 삶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정서들에 머리채가 잡혀 이리저리 휘둘려 살았고, 바깥의 스펙터클한 풍경에 눈이 팔려 삶의 소중한 것들을 소홀히 해왔다. 그나마 내가 이렇게라도 살아가는 것은 때로는 책 속에서 때로는 책 바깥에서 내 정신의 등짝을 후려쳐준 이들 덕분이다. 그 경험이 내게는 철학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도 철학이 그런 친구이기를 바란다. 10 11


우린 어제보다 더 빨라진 오늘을 살고 있다. 내가 뭘하는지도 모른채 어느새 하루가 훌쩍 흘러있다.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이 살아내는 과정 속에선 나를 살펴볼 여유조차 없다. 이렇게 살아내는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뭘 먹고싶고 뭘 하고싶은지도 모른채 나이를 먹는다.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결국 다수가 좋아하는 것, TV 속의 환상, 풍문거리를 위안삼아 하루하루를 보낸다. 저자는 이렇게 '자각'하지 못하는 삶이 철학을 만나면 어떻게 변하는지 에세이 형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그리고 그의 글 속엔 니체, 루쉰, 5.18의 민주주의자들과 같은 소중한 정신을 가진 인간이 보인다. '자유'가 무엇인지 알았던,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들 한명 한명이 담겨있는 것이다. 철학과 자유라는 단어가 막연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그의 글은 분명 잊고 있던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이 책이 무엇보다 와닿았던건 저자의 애정어린 '눈 맞춤'때문이었다. 그는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철학'을 전하는 사람이다. 생존이라는 절벽에 놓인, 그리고 사회의 소외계층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철학을 전할때 그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 어쩌면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두툼한 답변일지 모른다. 교도소 안에서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혹은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이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역시나 해당된다. 왜 굳이 철학을 해야 하냐고 물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그들의 시각에서 고민을 듣고 진심어린 대답을 한다.


철학은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도 달리 보게 만드는 일깨움이라는 것 말이다. 나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불가능과 무능력, 궁핍과 빈곤을 양산하고 규정하는 모든 조건에 맞서 분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철학은 다르게 느끼는 것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다르게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가난한 이들이 껴안을 수 있는 철학이며, 가난한 이들이 철학자에게 선사하는 철학에 대한 좋은 정의라고 생각한다. 9


'돈', '힘', '정상/비정상' 등과 같은 사회의 획일적 기준에서 열외될 때, 그것에 상처받고 자조하는 대신 '저항'하고 분투하는 것, 바로 그것이 철학의 힘이다. 저자는 철학을 통해 인간 개개인이 가진 색깔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보여준다. 우린 사회와 체제가 내세우는 기준에 갇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산걸까. 책을 읽다보면 평소엔 의식하지 못했던 사회의 통념과 내 편견들이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그 편협한 시각을 벗어난 무언가도 있었다. 자유, 공동체, 예술, 저항과 같은 단어가 그것이다. 독서를 끝낸 뒤에도 이 단어들이 마음을 울린다면 분명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신호일 것이다. '나'답게 사는 것, 그리고 '용기'있게 삶을 살아나가는 그 정신을 발견했다는 의미일테니까.


그래서 이 책은 가려지고 덮여졌던 우리 마음 속 뜨거운 무언가를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빠듯한 사람에게도, 그리고 지식욕으로 가득차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책 '철학자와 하녀'는 시원한 물벼락을 끼얹어준다. 그의 책에 나오는 철학은 글 속에만 머물러있는 지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삶을 단숨에 180도 변화시켜주는 마술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겉도는 인생을 살고 있는건 아닌지, 내가 주체가 되어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를 물어오며 차가운 물벼락을 끼얹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책은 '자유'의 무게감으로 사랑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내며 나답게 살아내고 싶다는 다짐도 하게 한다. 책 말미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애정어린 조언을 전한다. 좋은 말은 좋은 말일 뿐임을, 그것이 삶으로 들어오려면 다시 내식대로 재생산되고 재창조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분명 그의 문장들은 두고두고 읽어볼 좋은 말이다. 그 좋은 말들이 내 삶에 녹아들 수 있도록 난 행동하고 살아갈 것이다. 그게 이 책의 힘이다.


by 슈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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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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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평전

박석무 │ 2014.04 │민음사




조선 후기 최대의 실학자, 그리고 개혁가, 온 생에 걸쳐 500여권의 저술을 남긴 지식인, 오랜 귀향살이 와중에도 학문을 갈고 닦은 선비. 이는 모두 정약용을 표현하는 말이다. 대표적인 조선 후기의 학자이기에 정약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박석무 다산 연구가가 빼곡히 담아넨 정약용 평전엔 조금은 특별한 것이 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가 지은 시와 글들을 함께 음미하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다산의 일생을 네 시기로 나누어 설명한다. 수학기, 사환기, 유배기, 정리기로 나눠지는 그의 일생엔 시기마다 그 특징과 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변화의 힘이 등장한다. 평생 공부의 바탕이 된 성균관 생활 6년이 담긴 수학기, 공렴을 중시하는 공직 생활을 했던 사환기, 다양한 개혁을 주장하고 집필에 골몰했던 유배기 그리고 저서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며 문학의 풍부함을 누리던 정리기까지 그의 삶은 그가 추구했던 행동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방대한 저술을 남긴 학자이지만 그는 탁월한 표현력을 가진 문학가이기도 했다. 암행어사를 하던 중 백성들의 고통을 접한 그는 수많은 시를 통해 그들의 설움을 담아낸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유배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강진에서의 유배시절에서도 농민의 고단한 삶을 보며 그들의 삶을 시로 그리고 표현한 것이다. 당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면서 문학적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그의 작품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건 이 책만의 매력일 것이다.


지금 이순간 다시 정약용을 새롭게 만나야만 한다. 혹세무민의 시기였던 조선 후기에 개혁을 부르짖었던, 그리고 백성의 편에서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학문을 끊임없이 연구한 다산의 정신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학자의 삶은 무엇인지 그리고 관록을 입은 관리들은 어떻게 정사를 펼쳐야 하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학문을 갈고 닦아 현실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했던 다산. 그리고 가족과 백성을 아끼고 그 마음을 담아 수많은 시를 남긴 문학가 다산. 책에 담긴 그의 모습은 내가 알았던 것 그 이상이었다. 


by 슈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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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브론토 사우루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 김동광 옮김 │ 2014.04 │ 현암사



자연학, 삶에 녹아들다


'자연학'이라는 말은 낯선 단어다. 사전을 찾아보기 전까진 피상적으로 자연에 대한 학문이라는 생각을 해왔지만 실제로 자연학은 철학 용어였다. '그리스 철학에서, 운동 및 정지의 원리를 그 자체 내에 포함한 자연적 존재를 대상으로 다루는 학문'이라고 정의되는 이 학문을 바탕으로 저자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 월간지를 통해 27년간 매달 광범위한 에세이를 남겼다. 이로써 '과학적 글쓰기'의 대명사가 된 스티븐 제이 굴드는 독자에게 과학이라는 높은 벽을 허무는 경험을 선사한다.


총 10부로 구성된 35편의 에세이들은 모두 진화, 공룡, 적응, 동물, 전기 등 과학의 주요 테마를 다루면서도 예술, 창조, 역사 등 인문적 요소를 결합한 구조를 가진다. 저자는 이러한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서문을 통해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인문주의적 자연학의 계보는 두 가지 흐름을 가진다. 먼저 생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이 프란체스코 계보라면 자연의 지적 수수께끼와 인과적 이해에 집중하는 쪽은 갈릴레이적 글쓰기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 두 가지 전통을 모두 안은채 현재를 설명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에 담긴 35가지 이야기들은 모두 '과학'을 소재로 한 에세이다. 평소 과학이라는 분야가 낯설었던 탓인지 700장을 육박하는 에세이를 읽어내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티븐 제이 굴드의 과학적 글쓰기는 과학이 가진 높은 장벽을 무너뜨린다.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역사와 과학적 테마를 함께 엮어 읽는이로 하여금 그 거리감을 좁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남북전쟁, 창세기, 앙투안 라부아지에 등 방대한 분야 속 이야기들이 그의 자연론과 만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과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저자는 무분별한 공룡 캐릭터의 홍수 속에서 브론토사우루스를 되짚어보는가하면 여성의 오르가즘을 차별하는 프로이트의 관점을 남성의 젖꼭지와 음핵이라는 구조와 진화론에 입각해 살펴본다. 이렇게 생활 속에 담긴 사소하고 예민한 문제들을 과학이라는 틀에서 분석하는 그의 작업은 분명 새롭고 의미있는 시도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규칙을 이루고 세상을 만들어온 자연과 과학을 통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일매일 자기전 한편씩 에세이를 읽어보는건 어떨까? 온 관심이 인문학에 쏠려있는 나와 같은 독자라면 이 책은 그 반대편에 놓인 과학이라는 세상을 비춰줄 것이다. 


by 슈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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