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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거나, 피곤하거나, 또는 누군가에게 괜히 심한 짜증을 내고 난 후, 보통 잠을 자는 편이다. 그게 내 스트레스 해소법인 셈이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이런 내 성정에 참 잘 맞는 책이다. 먼저, 마법사라는 주인공이 그렇고, 길을 걸어가다 바람결에 흩날리듯 섞이는 맛있는 빵냄새도 그렇다. 배가 고플 때 빵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아닌데, 가끔 무슨 심각한 일로 기분이 어두워질 때면 으레 불빛이 반짝이는 빵집이 눈 앞에 선히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동 성폭력, 아동 성기호자를 소재로 취하고 있는 짐짓 어려운 책이다. 그리고 재혼을 한 후, 새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배다른 동생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조금 칙칙한 감도 있지만, 그런 모든 어두움을 달래줄 수 있는 건 바로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공간이다.
공간은 책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도시 소설에서 보여지는 각막함, 농촌 소설에서 보여지는 흐뭇함이나 애잔함, 이것은 그 공간을 택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옵션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아,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그럼 책에 둘러싸여 있으니, 주인공이 혼자일 가능성이 많겠군, 그리고 책장으로 빛이 가려지기도 하니, 무슨 음산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아니 책이 주는 지적 이미지도 있잖아,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위저드 베이커리는 주인공에게 탈출, 도피의 공간가 되기도 하는 그래서 그 속에서 성장을 하는 성장소설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또 중요한 건 그 빵집에 있는 파랑새 아가씨이다. 모든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파랑의 희망이 주인공을 상처에서 헤어나오게 만드니 말이다. 빵집의 주인인 마법사도 꽤 매력적인 인물이다. 언뜻, 서슬 퍼런 차가움이나 북극의 얼음을 떠올릴 정도로 섬뜩함을 처음 받게 되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그 마법사에게서 아빠, 새엄마,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엄마에게서 느끼지 못한 가족애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우울할 때면, 나도 위저드 베이커리로 떠났으면 할 때가 많다. 누군가에게 복수를 해 주고 싶은 빵이 필요하다기보다는 그냥 훨 - 훨 - 날아가고 싶을 때, 누군가 나를 괜찮으니까, 이곳에서 쉬어, 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간절히 그리울 때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