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백창우)내겐변변한 노래 하나 없지만민들레 꽃씨처럼 낮은 자리에 내려앉아봄날 환희 피어날 고운 시 하나 없지만아침이면 늘 새롭게 눈뜨는 그리움이 있어아직은 그런대로 살 만합니다추운 세상 곳곳에 어둠 들어차고사람들은 서둘러 불을 끄는데그대, 깨어 있는 이여한밤중에 잠들지 못하고 무엇을 꿈꾸는지요보고 싶습니다향기로운 차 한잔 달여 마시며사람 내음에 흠뻑 취하고 싶습니다
너를 사랑하는 이유(문향란)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없다더듬어 보면 우리가 만난 짧은 시간만큼이별은 급속도로 다가올지도 모른다사랑도 삶도뒤지지 않고 욕심내어 소유하고 싶을 뿐이다서로에게 커져 가는 사랑으로흔들림 없고 흐트러지지 않는 사랑으로너를 사랑할 뿐이다.외로움의 나날이 마음에서 짖궂게 떠나지 않는다 해도내 너를 사랑함에는 변함이 없다그래도 이유를 묻는다면나는 말을 하지 않겠다말로써 다하는 사랑이라면나는 너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나는 환한 마음으로 너에게 다가갈 뿐이다조금은 덜 웃더라도훗날 슬퍼하지 않기 위해선애써 이유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사랑의 노래(신경림)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두 점을 치는 소리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겨울사랑(문정희)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머뭇거리지 말고서성대지 말고숨기지 말고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에도 일지 기록하기애도 작업은 상실이 일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최초의충격과 혼돈부터 기록함으로써 위험한 감정들을 위험하지 않은 형태로표현하기 시작한다. 잘 쓰거나 규칙적으로, 의무적으로 쓸 필요는 없다.종이와 연필을 들고 내면의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써 나가면 된다.생의 속도를 늦추기애도 작업은 한순간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감정적, 정서적 과정이며, 많은 심리적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다. 생의속도를 늦추더라도 우선 애도 작업을 잘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인식한다.중요한 결정은 뒤로 미룬다마비 상태는 잠시 후 해소되지만 이어지는 감정 상태는 평소와 다르다.이 시기에 느닷없이 퇴직, 유학, 여행 등을 결성하는 것은 내면이 갈등을잘못 해소하는 방법이므로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간혹 자녀를 잃은 후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를 보는데 이는 애도 과정에서 맞게 되는 분노와 죄의식을 배우자에게 쏟아부으며 파국으로 치달은 결과다. 애도 기간에 꼭 결정할 사안이 있다면 지혜와 경험을 갖춘 윗사람과 의논한다. - P65
슬픔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슬픔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무감각하고 마비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아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도록 주변에서도 배려해 준다.모든 것은 지나간다상실감이 마음을 덮치면 그 암흑과 같은 절망이 영원할 것 같은 두려움이 인다. 그러나 일찍이 솔로몬 왕이 반지에 새긴 단 하나의 중요한 문장처럼, 모든 것은 지나간다. 상실감이나 슬픔뿐 아니라 애도 작업조차도마비된 듯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겨울을 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이해한다.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수선화처럼, 알뿌리를 단단하게 다지는 중이라고 믿는다. - P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