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작별
이한칸 지음 / 델피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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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어디서부터 꼬여서 이렇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이를테면 가까운 지인과의 관계가 어느 순간 파국을 맞이한다거나,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들이 변질되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때. 우리는 그런 당혹스런 순간이 올 때마다 한 발 늦게 궁금해 한다. “나는 뭐 때문에 이러고 있나?”.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면서 과거를 되짚어본다.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한칸 작가의 <완벽한 작별>은 후회로 점철되어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냉동인간기술과 복제인간기술 따위의 근미래 기술을 도입해, SF를 기반으로 서사를 이끌어나가면서 그 위에 생태조류학자이던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을 버려두고 북한으로 넘어간 가족들의 가운데서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덧씌운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문학소설의 문법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한칸작가는 이를 다시 시간순으로 해체해 풀룻과 시점을 비틂으로서 스릴러소설의 형태로 재배치한다. 내용물은 지극히 순문학적인데 맛은 장르문학적이라는 뜻이다.

소설은 7년간의 장기 수면상태를 예약해둔 주인공이 뜻하지 않게 2년 7개월 만에 깨어나버린 지점과 어느 물류센터에서 의문의 분실사고가 일어난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독자는 어떤 정보도 없이 주인공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영화 <메멘토>를 연상시키는 역순행적방식으로 주인공이 부재했던 지난 2년 7개월간의 틈과, 그들의 가족사를 파헤친다. 종국에는 “나는 왜 되살아났는가”하는 물음에 답을 하게되면서 길고 긴 후회와 갈등, 그리움의 이야기는 끝을 맻는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흥미로운 소재와 풀룻을 차용하고 있지만 그랬기에 더더욱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이야기를 장면화하기보다는 인물들의 대사를 위주로 설명을 퉁치다보니 소설보다는 대본집을 읽는 기분이 들었고, 작가가 제시한 세계관이 완전 새로운 것도 아니여서 기존의 SF작품 들이 제시한 아이템을 그대로 현대 한국사회에 적용했다는 점도 SF소설로 읽히기에 무리가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문학적인 요소를 군데군데 삽입하려 한 시도가 눈에 띄지만 전형적인 모자, 부자, 형제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20%씩 부족한 요소들이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는 가운데, 표지에도 쓰여있는, “나는 왜 다시 살아났습니까?”라는 문장이 모든 요소들을 한데 봉합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작가는 끝내 이 거창한 물음에 대한 답변을 보류한 채 이야기를 끝낸다. 전반부를 장르적인 만족감으로 채워넣었다면, 후반부는 치열한 사유를 통한 통찰로 채워 넣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그 자리는 최종보스인 백사장과 남동생의 이야기로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있다.

그 외엔 기내 여행이나 휴식시간 등, 킬링타임용으로 짧고 쉽게 읽기엔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보인다. 다만 소설이 연출하고 있는 기묘한 분위기와 SF적 상상력이 제 소임을 다 했는지는 의문이든다. 캐릭터들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평면적이고 그런 인물들이 부닥치며 만들어내는 서사들도 납작하게 눌려있다. 초반부에 너무 힘을 많이 줘서 그런가 후반으로 갈수록 실망만 갖게 되었다. 차라리 스케일이 더 큰 사건이나 반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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