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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읽는 시간 - 도슨트 정우철과 거니는 한국의 미술관 7선
정우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평점 :
나에게 그림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사람.
바로 도슨트 정우철이다.
그의 세번째 책 #미술관읽는시간 이 출간되었다.
그의 전작 두편과 사인북까지 모두 소장하고 있는 나에게 이번 책은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이전작은 서양화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한국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느날, 한국 화가들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도 많지 않고 도슨트로서 그들을 소개하는 것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국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쓴 책이다.
이번 책 굉장히 특이하다.
표지를 뜯어 버리고 귀한 고서를 실로 꼬맨듯 한 느낌의 책이다.
책을 받아드는 순간 익숙하지 않은 나는 '불량인가?' 싶은 생각이 들지만
이내 정우철님의 내공을 느끼며 '아니 이사람. 진짜 멋진 사람이고만' 하며 다시 한번그에게 빠져든다.
책을 펼쳐보니 쫙쫙 잘도 펼쳐진다.
저 노란 포인트의 실들 어쩌지.. 갈수록 애정이 넘칠 수 밖에 없다. 진짜!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때 애써 책을 펼쳐서 페이지 속에 감춰진 그림까지 모두 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원한 스크린 위에서 작품을 쾌청하게 감상한 기분이 든다.
김창열, 회귀, 1987
바로 이렇게 말이다.
김창열 화가의 작품 소개를 읽기 전, 그저 신기한 그림에 빠져들어 일단 사진을 찍었다.
몽환적이고 독특한 작품은 쉽게 빠져들만한 매력이 있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한자를 배운 덕에 그의 작품엔 한자와 물방울이 함께 등장해 동양적 아름다움과 신비한 느낌을 모두 전해준다.
"금방 사라질 물방울과 사라질 모든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글자의 공존. -72p"
금방 사라지는 존재와 오래도록 보존되는 존재의 융합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더 몽환적이었나보다.
화가들의 생애를 도슨트 정우철을 통해 읽다 보면 느껴지는게 하나 있다.
바로 결코 녹록치 않았던 그들의 인생이다.
집안의 반대, 가난, 외로움, 이별, 전쟁은 클리셰처럼 대가들을 따라다닌다.
그리고 따라오는 건 '그럼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이다.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한길을 걷는 장인처럼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건강이 악화되 그리기 힘든 순간에도,
먹을 것이 없어서 당장 굶어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가족과 헤어져 외로움에 사무쳐 괴로운 순간에도,
전쟁이 나서 당장 안위가 걱정될 때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화가들의 삶이 가장 어두웠던 순간 대작들이 쏟아져 나온다.
많은 자기계발서가 이야기한다.
포기하지 않고 한가지 일에 집중해서 계속하다 보면 그것이 내 길을 인도할 것이라고.
그 말을 삶으로 증명한 사람들이 이 책속에 모두 들어있다.
화가들의 모든 삶이 특별했지만
특히 나혜석 화가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트인 부모밑에서 자란 1896년생 나혜석은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런 그녀는 여권운동의 선구자가 된다.
하지만 불륜으로 이혼을 하게 되고 그 당시의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를 죄인처럼 몰아가고 작품도 철저히 외면당하게 되면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해 갈 수 없게 된다. 결국 1948년 서울 원효로 서울시립 자제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한 행려병자가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게 되는데, 바로 그녀 나혜석이 병마와 굶주림으로 비참하고 초라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1934년 당시로 너무도 충격적인 글 '이혼 고백장'을 그녀는 발표한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당시의 세상이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앞서갔다는 이 생각은,
1930년대 까지 가지 않더라고 20~30년 전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이었을 것이다.
불평등함에 대해 여성해방을 위해 쓴소리를 했던 그녀의 최후가 너무도 비참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지금 그녀의 삶과 예술은 재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지금은 그녀의 작품이 남은게 얼마 없지만 그 흔적이 내 집과 그리 멀지 않은 수원시립미술관에 있다하니 여기만큼은 꼭 가봐야 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도슨트 정우철은 책의 말미에 미술관 관람이 서툰 사람을 위해 소소한 팁들을 알려준다.
아마도 도슨트로서 그가 우리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겠지.
이런 친절함이 좋다.
미술관이 서툰 내가 조금은 익숙한 듯 가볼 수 있는 곳이 되었으니 말이다.
서양 미술화가를 소개한 전 작을 보고 미술관에 가보고 싶었지만
대부분 특별전을 찾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육아 전투기인 나에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언제든 찾아가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도전이 수월해졌다.
멀게만 느껴졌던 미술관, 그들만의 리그 같았던 그 장소가
이제는 친근하고 궁금함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마법을 부리는 도슨트 정우철이 정말 멋지다.
술술 익혀서 어느새 마지막장을 넘기고 있게 될 정우철의 책을 당신도 꼭 봤으면 좋겠다.
* 쌤앤파커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