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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평점 :
여름이라면 단연, 미스테리.
이맘때쯤이면 찾아오는 무더운 날씨를 이기기 위해 소설 <류>를 꺼내들었습니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미스테리소설을 기대하고 말이죠. 그런데 책을 몇 장씩 넘기다 보니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책, 미스테리 소설이 맞는 건가?
겉표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찬사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가 적힌 띠지만을 보고 쉽게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마지막 장까지 다 덮고 나니 처음 예상했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전개와 반전을 읽고 나니, 이 이야기는 단순한 미스터리소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해당한 56명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 앞. 원한이 서린 공간에서 누군가 나에게 예준린의 아들인지 묻는 순간, 시간은 과거로 돌아갑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대만. 등장인물들의 이름만큼이나 낯선 이곳은 작가인 히가시야마 아키라가 태어난 나라이기도 합니다. 대만 태생으로 아홉 살 때 일본으로 건너온 작가의 이력 덕분인지 세계대전 후 일본과 중국, 대만 세 나라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소설 류의 흥미로운 점이기도 합니다.
전쟁 후 포목점을 하며 자식들을 키운 할아버지는 좋은 말로 하자면 사내대장부였습니다. 가계의 어려움보다는 의형제들과의 의리를 지키며 사는 탓에 할머니와 자식들을 고생시켰지만, 손자인 예치우성에게는 넉넉했던 할아버지. 예치우성에게는 늘 불사신 같은 존재였던 할아버지는 포목점에 드는 도둑을 잡는다는 핑계로 가게에 나섰다 살해된 채로 발견됩니다.
누가 할아버지를 죽였을까.
원한 서린 비문이 세워질 정도로 전쟁에서 학살을 일삼았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죽임을 당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단순한 강도인지 아니면 원한인지 사건은 좀처럼 밝혀지지 않습니다. 진상조사가 미적거리는 동안 포목점은 어떻게 되는지, 앞으로 이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구심점을 잃은 것처럼 혼란스러운 상황. 안 좋은 일은 같이 온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집 안의 또 다른 학사가 되리라고 예상했던 손자 예치우성마저 어이없는 잘못으로 명문고 진학에 실패합니다.
그가 입은 교복만 보고도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할만한 고등학교에 들어간 예치우성.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리며 칼부림이기 나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갑니다.
시간은 흘러간다.
소설의 제목인 흐를 류 처럼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할아버지라는 기둥이 뿌리째 뽑혀버렸지만, 발버둥 쳐봤자 나만 힘들다는 어머니의 말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삶은 계속 이어지니까요.
전쟁 속에서 사람들을 학살하던 예준린이 손자에게는 항상 다정했던 할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험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예치우성이 자신의 기억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할아버지 마주하기도 할 때, 이 이야기는 성장소설이 되기도 하고 미스테리가 되기도 하며 역사소설이 되기도 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