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 프랑수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르주 상드 지음, 이재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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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1847년 작품입니다. 프루스트 공부하기의 일환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스완씨의 방문으로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겨 슬퍼하는 마르셀을 위로하기 위하여 어머니가 읽어주기 위하여 고른 책입니다. 할머니께서 어린 마르셀의 생일에 주기 위한 선물로 고른 책인데, 처음에는 무세의 시집, 루소의 작품 한 권, 그리고 상드의 소설 <앵디아나>를 골랐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바꾼 소설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민음사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http://blog.joins.com/yang412/12948920>에 옮긴이가 붙인 각주에는 “ 방앗간 여주인 마들렌과 그녀가 입양한 업둥이 프랑수아 사이의 근친상간적인 사랑을 담은 이 이야기가 어머니와의 행복한 결합을 다룬다는 점에서, 어린 마르셀의 팡타즘을 구현한다(76쪽).”고 적었습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유예진교수님의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http://blog.joins.com/yang412/13111784>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방앗간 부부가 프랑수와라는 남자아이를 입양해 기르다가 폭력적이며 괴팍한 남편이 죽은 후 젊은 아내가 입양한 아들과 결혼한다”는 근친상간을 다룬 소설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103쪽) 한걸음 더 나아가 어머니의 사랑을 애처로울 만큼 맹목적으로 요구하는 프랑수와에게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잣대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상드는 독자가 프랑수와의 순수한 열정과 그 표현방식을 안심하고 허용하도록 자연스럽게 이끈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3; http://blog.joins.com/yang412/12974277>에서는 1831년 당시 파리의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떠돌이 생활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테나르디에부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딸은 귀하게 키우면서도 아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을뿐더러 어린 아들을 남에게 주어버리는 짓까지도 하는 모습을 보면 1847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주인공 프랑수와가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아 업둥이로 자라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남편 클레쟁제와의 갈등에서 오는 고통을 전원생활을 통하여 다독이는 가운데 상드는 ‘밤모임’에 가곤했는데, <사생아 프랑수와>를 밤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를 옮겨적는 형식으로 써내려간 것입니다. 상드는 버려진 아이에 대한 당시 사회의 편견에 맞서고 고아에 대한 부유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질타하기 위한 의도를 담아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따라서 “소설적 상황, 즉 비정상적 사랑, 비도덕적인 출생, 부모로부터 버려진, 혹은 부모와 헤어진 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혈연관계로 이어지게 된 사람들 간으ㅟ 신비로운 애정 등에 대한 상드의 관심과도 관련이 있다.(251쪽)” 옮긴이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들렌과 프랑수와의 관계를 입양아와 어머니의 관계라고 하고 있지만, <사생아 프랑수와>에서는 입양에 따른 행정적 절차를 밟았다는 설명은 없습니다. 다만, 마들렌의 시어머니의 사주를 받은 프랑수와의 어머니 자벨이 프랑수와를 멀리 버리려 할 때 마들렌이 10에퀴를 내주면서 프랑수와를 사겠다고 선언하지만, 마들렌은 이를 기억조차 하지 못합니다. 또한 프랑수와를 친자식 자니와 꼭 같이 대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프랑수와가 근본적으로 착하고 심지가 굳은 아이라는 점을 상드는 “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쪽보다 차라리 제가 고통을 당하는 편이 나은걸요.(46쪽)”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들렌의 남편 블랑셰가 마음을 빼앗긴 세베르가 프랑수와를 유혹하였음에도 넘어가지 않자 블랑셰를 꼬드겨 프랑수와를 집에서 내쫓게 합니다. 결국 블랑셰를 속여 방앗간을 포함한 재산을 빼돌리고, 블랑셰는 빚만 남기고 죽었다는 소문을 듣게 된 프랑수와는 다시 마들렌에게 돌아와 사태를 수습하게 됩니다. 프랑수와의 친어머니는 프랑수와를 위하여 4000프랑을 맡겨두었던 것인데, 그는 이 돈을 이용하여 마들렌을 위험에서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베르와 블랑셰의 누이동생 마리에트가 공모하여 마들렌이 프랑수와 정을 통하고 있다고 입방아를 찧는 소리를 듣게 된 프랑수와는 고민에 빠지게 되고, 프랑수와가 일하던 에귀랑드 지방의 물방앗간집 딸 자네트는 전후사정을 듣고서는 마들렌에게 청혼을 하라는 조언을 하게 됩니다.

 

전체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마들렌과 프랑수와의 관계는 일단 공식적으로 입양이 성립된 관계가 아니라 구두로 언약한 정도의 관계이며 모자간에 볼 수 있는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주변에서 이들의 사랑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 발전하도록 촉진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이 19세기 프랑스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겠으나 현대적 시각에서는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 아니 프루스트의 눈으로 보기에 <사생아 프랑수와>는 지극히 교훈적이고 모범답안 같은 삶이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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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역사기행 - 지하철 타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로랑 도이치 지음, 이훈범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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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를 맡아 베르린과 런던 그리고 파리를 방문했던 것이 벌써 6년이 넘었습니다. 과제준비에 정신을 쏟느라고 도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지만 그래도 파리는 마지막 방문지였기 때문에 하루를 더 머물렀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7664069). 루브르박물관을 보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센강을 따라 시테섬에서 에펠탑까지 왕복하면서 구경하는데도 하루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찾아가기 위해서 길눈을 뜨는 정도로 훑어보는데 만족하였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찾아가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앙북스 리뷰어로 선정되어 처음 받은 책이 로랑 도이치의 <파리 역사기행>입니다. 7년 전에 읽었더라면 파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데 도움이 되었을 터인데 아쉽습니다. 이 책은 두 가지의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1세기에서 시작해서 한 세기 단위로 파리에서 눈여겨볼 곳을 고르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하여 정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파리 지하철은 깨끗하고 이용이 편리하게 되어 있어 공항을 왕복할 때를 제외하고는 지하철을 이용하여 볼 일을 보았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7639895). 간단하게 요약하면 지하철을 타고 가는 파리판 문화유산답사기-덧붙이면 사진과 그림으로 설명하는-라고나 할까요?

 

파리의 역사를 안내하는 역사학자 로랑 도이치는 1세기 무렵의 센강의 중지도인 시테섬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최근에 읽은 <지중해신화; http://blog.joins.com/yang412/13181355>에서 고대 골(프랑스의 옛 명칭)에 거주한 갈리아 켈트인의 신화를 읽은 적이 있어 내심 친숙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골루아라고 부르는 프랑스 사람들의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 아스테릭스는 프랑스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고, 우리에게까지 알려지고 있습니다. 마치 박물관의 도록처럼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들, 그리고 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을 안내하는 지도가 있어 지하철을 타고서 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노트르담 성당, 에펠탑과 같이 직접 찾아가본 곳은 반갑고 정말 골목길에 숨어 있는 볼거리는 다음에 꼭 찾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빅토르 위고의 명작 <레 미제라블 4,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 http://blog.joins.com/yang412/12982807>에서 시민군이 근왕군에 맞서 시가전을 벌이는 장소인 생 드니거리가 기원 250년 기독교를 포교하기 위하여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왔다가 순교한 최초의 주교 드니(이탈리아 이름은 디오니시우스였다고 합니다.)의 이름에서 온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파리의 도로가 주먹크기의 네모난 돌로 포장되어 있던 것도 신기했는데, 이런 도로포장기술이 이미 3세기 때 부터 개발되어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역사적 장소들이 시테섬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파리의 중심이 바로 시테섬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파리를 찾았을 때 루브르박물관 근처 좁은 골목에 있는 작은 호텔에 묵을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12세기 프랑스를 다스렸던 필립 오귀스트왕은 파리를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성곽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파리의 중심은 시테섬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쌓은 성곽은 세월이 흐르면서 부서지고 무너져 흔적만 남은 것은데, 이렇게 남은 흔적을 마저 없애고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성벽의 흔적을 건물의 일부로 삼은 프랑스사람들의 발상이 깜찍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파리의 성곽은 서울성곽과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북악과 남산이라고 하는 천연의 방어벽이 있어 일제침략기에 시가지를 넓히느라 의도적으로 부순 곳도 적지 않지만, 이런 고난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옛모습을 전하는 곳이 많이 남아있어 참 다행입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곳을 그대로 보존하는 파리와는 달리 성벽이 없어진 곳에 서있는 건물을 부수고 성벽을 복원하는 것이 우리 방식이라는 점일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눈에 띄는 볼거리도 많지만 쉽게 얻을 수 없는 파리의 속살이라고 할 문화적 유적을 그것도 지하철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어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귀중한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파리판 문화유산답사기’를 글제목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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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 인생의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삶, 그 축복과 고통의 시간들
질 프라이스, 바트 데이비스 지음, 배도희 옮김 / 북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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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억에 대하여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듭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을 기억이라는 저장소에 어떻게 갈무리해 넣고, 또 필요할 때 끄집어내는지 알 듯 모를 듯합니다. 뛰어난 기억력을 자랑하는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현대의 남성이 과거의 남성보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는 점을 적고 있는 피터 매칼리스터의 <남성퇴화보고서; http://blog.joins.com/yang412/12812543>에서 읽은 바 있습니다. 그밖에도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 http://blog.joins.com/yang412/12878043>에 나오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놀라운 기억능력과 한계점을 읽으면서 그야말로 픽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심리학자 루리야가 보고한 기억술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76657>에서는 그토록 놀라운 기억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존한다는 점과 함께 그 역시 입력된 기억들이 서로 충돌해서 엉키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리야의 연구대상이 되었던 남자 S는 기본적으로 뛰어난 공감각력을 바탕으로 하여 주어진 과제를 암기하여 기억에 저장되면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기억능력에도 한계가 있었는데, 이미지가 없는 추상적인 단어를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시(詩)에 담긴 은유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 그래로의 이미지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혼란에 빠지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예스24 검색을 통하여 알게 된 대단한 기억력을 가지는 사람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입니다. 루리야가 쓴 책의 제목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S의 기록과 루리야가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루리야가 쓴 글입니다. 반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주인공 질 프라이스가 구성작가 바트 데이비스의 도움을 받아 기억에 관하여 자신이 겪은 일들을 구술하여 정리한 내용입니다.

 

질은 14세 이후 벌어진 매일의 일상에 대해 완벽에 가까운 자서전적 기억을 가지고 있어, 세계 최초로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tic syndrome)이라는 진단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녀의 기억이 가지는 특징은 하루의 일상이 별도 노력 없이도 저절로 기억이 될 뿐 아니라, 저장된 기억이 샘솟듯 되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원하면 일부러 기억을 끄집어낼 수도 있었지만, 보통은 자동적으로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에 기억을 떠올리려 억지로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억술사라고 부르는 인물들이 나름대로의 기억을 강화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억패턴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억술사들의 일반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늘어놓은 단어나 숫자들을 기억하는 능력이나 학과수업에서 흔히 요구되는 암기에 취약하다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기억을 왜곡해서라도 낙관주의적으로 생각하고 기억하는 긍정적 편향을 가지도록 진화되어 왔다고 합니다. 탈리 샤롯은 <설계된 망각; http://blog.yes24.com/document/7310686>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낙관편향은 미래에 틀림없이 닥쳐올 고통과 고난을 정확하게 지각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인생의 선택권을 제한된 것으로 보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이런 낙관편향을 유지하기 위해 뇌는 무의식적 망각을 설계해두었다. 그 결과, 스트레스와 불안이 줄면서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져 행동하고 생산하려는 동기가 강해진다.(탈리 샤롯 지음, 설계된 망각, 16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 프라이스는 망각이라는 축복을 받지 못한 까닭에 슬픈 기억의 회오리에 휘말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불행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위기에 빠지는 과정, 당뇨를 앓던 남편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 등입니다. 그와 같은 고통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긍정적인 기억을 선별하는 능력은 내 마음의 작용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163쪽)”

 

신경심리학적으로 그녀는 시각적 영역과 언어적 영역의 기억력이 뛰어나고 주의집중능력도 좋으나, 인지능력이 보통사람들의 패턴과는 다르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즉 기억력이 뛰어나지만 학업수행이나 학문적 영역에서는 문제가 많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심리학연구팀과 함께 기억이 저장되고, 저장된 기억을 회상하는 기전의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특별한 능력이 우리의 삶과 밀접한 기억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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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출신 크리스티앙 문쥬 감독의 2007년작 <4개월, 3주...2일>을 DVD로 보게 되었다. 예스24의 블로그친구 파란토끼13호님의 이벤트를 통해서 받게 된 작품인데, 받은 다음 책상 한켠에 오랫동안 묵혀둔 이유는 지금도 분명치 않다. 200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작품은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이 낙태를 금지하던 1987년 임신한 여대생이 룸메이트의 도움을 받아 불법으로 낙태시술을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차우셰스쿠는 강한 나라가 되려면 인구가 많아야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1966년 낙태를 국가안전을 해치는 범죄로 규정하고 시술을 한 의사를 사형에 처하는 등의 강력한 통제정책을 펴 출산율은 두 배로 늘었지만,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예를 들면 불법으로 낙태를 받다 사망한 임신부가 50만명에 달하였다거나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게 되었다거나 하는 실질적인 문제뿐 아니라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교육 및 취업 등 각종 사회안전망이 충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토록 무리한 정책을 강제하던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것이 바로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렇듯 삼엄한 상황에서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었을 것이다. 영화 <4개월, 3주...2일>은 바로 이런 상황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는 임신을 하게 된 여대생 가비타(로라 바실리우 扮)가 불법낙태를 받으려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룸메이트 오틸리아(아나마리아 마린차扮)의 도움을 받아 수술에 필요한 비용 3000레이를 조달하고 시내 호텔을 빌리고, 시술을 해주는 사람과 접촉을 하는데, 막상 확인하는 일은 오틸리아에게 미룬다. 매사가 똑떨어져 보이는 오틸리아와는 달리 가비타는 매사가 흐리멍텅하다. 그렇기에 피임을 제대로 할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영화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친절을 베풀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우여곡절 끝에 호텔을 빌리고 시술을 맡은 베베(블라드 이바노브扮)와 접선하여 호텔까지 데리고 왔는데, 2개월이라고 했던 임신기간이 사실은 영화제목이기도 한 4개월, 3주 하고도 2일이나 된 것이었다. 임신 2월이 지난 낙태시술은 특히 위험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베는 시술의 위험을 고려한 대가를 요구하게 된 것인데, 그 요구가 무엇이었는지 자막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본에도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결국은 스토리의 흐름으로 감을 잡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베베의 요구는 가비타나 오틸리아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도 그 점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공유산이라고도 하는 낙태는 모자보건법시행령 제15조에 따라 임신한 날부터 24주 이내에 한하여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태아가 생존능력을 갖추는 시기를 기준으로 정한 것이다. 역시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인공유산은 부모에 유전적 장애가 있거나, 임신부가 전염성질환을 앓고 있어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준강간 등과 같은 사건과 관련하여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그리고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간의 관계에서 임신이 되었을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낙태시술은 임신기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임신초기에는 소파술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때는 수술과정에서 자궁이 뚫리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임신기간이 오래되면 자궁경부를 인공적으로 열어 정상분만과 같은 출산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가비타가 임신 2개월됐다고 했는데도 베베가 호텔로 준비해온 낙태장비는 정상분만을 일으키는 장비였던 것이다. 시술을 하는 장면도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어설프기 그지없다. 자궁경부는 라미나리아라고 하는 재료를 시간경과에 따라서 여러 차례 추가해야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절차가 생략되고 자궁 안에 주사액을 주입하고 있다. 자궁에 소독되지 않은 이물질을 집어넣어 낙태를 유발시키게 되면 틀림없이 자궁내염증이 생기고 이런 경우 항생제 몇 알로 해결될 수 없어 결국은 생명을 잃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되는 것인데 베베가 하는 짓은 꼭 낙태 후에 염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위태롭기 짝이 없던 것이다. 일부러 불법낙태가 안고 있는 위생학적 문제점을 드러내려는 감독의 생각이었을까?

 

호텔에 체크인을 할 때 분위기로 보아서는 호텔근무자들이 투숙객의 동태를 확인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별다른 상황이 발생하지 않고 낙태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4개월 된 태아는 12cm 정도의 크기되는데, 영화에서는 그보다는 작았던 것 같다. 어땠건 분만된 태아를 처리하는 것도 문제인데 이것도 오틸리아의 몫일 수밖에 없고, 베베가 추천한 방법대로 아파트의 쓰레기처리 공간을 이용하여 처리한다. 영화는 쫓기듯 주위를 살피며 태아를 처리한 오틸리아가 호텔로 돌아와 천연덕스럽게 식당에 앉아 식사를 주문한 가비타와 마주하는 장면에서 종영되는데...

 

시작에서 끝까지 물흐르듯 이어지는 스토리 가운데 낙태비용에 관하여 베베와 협상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갈등구조도 전혀 없고 기대했던 반전도 없이 영화가 끝나고 말아 무언가를 기대했더라면 크게 실망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다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당시의 루마니아 사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정도? 그리고 특히 오틸리아가 사산한 태아를 처리할 장소를 찾아 헤매는 장면을 들고찍는 기법으로 많이 흔들리는 장면을 연출하여 긴박감을 조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인지 맥이 빠지고 말더라는 이야기도 해야 하겠습니다.

 

룸메이트라고는 하지만 오틸리아가 자신을 희생하여 도와주어야 하는 필연성에 대한 설명이나,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종료되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도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마무리한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스토리의 전개를 그려나가는 기법으로 리얼리즘을 추구했다는 점이 돋보였다는 설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의문이라 하겠다.

 

숙련된 산부인과 의사라고 하더라도 임신 첫 2개월에 이루어진 낙태수술로 인한 모성사망률은 10만명도 0.7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임신기간이 2주 경과할 때마다 사망률은 2배씩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무자격자에 의하여 행해지는 낙태시술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달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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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 어느 경제학자의 미 대륙 탐방기
마이클 D. 예이츠 지음, 추선영 옮김 / 이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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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만, 미국식 모텔은 우리나라에서 여관에 해당되는 숙박업소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여행자가 묵는 숙박시설이죠.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모텔하면 여행자들이 신세를 지는 곳이기 때문에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는 당연히 합리적인 가격으로 미국을 여행할 수 있는 안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저의 생각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 여행을 생각하는 분이라면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방랑벽을 꾹꾹 눌러가며 정년이 될 때를 기다렸던 경제학 전공 교수가 55세에 정년을 하자마자 미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살아본 발자취를 정리한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는 옐로우스톤과 같은 국립공원도 있고, 뉴욕과 같은 대도시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진보적 성향을 반영하여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노동문제 그리고 자연환경의 파괴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미국 펜실베니아의 포드시티가 고향입니다. 피츠버그 대학의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던 중 시작된 베트남전의 징집을 회피하기 위하여 석사학위도 없이 대학의 존즈타운 캠퍼스에 강사에 지원하여 임용되어 55세 정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분위기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요즘에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은퇴를 결정할 수 있고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는 55세가 되는 해에 부부가 같이 미국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장소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입니다. 단지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숙박시설에 근무하기로 한 것입니다. 옐로우스톤은 와이오밍주에 있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간헐천이 유명하고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구역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공원 안에 몇 곳의 숙박시설이 있는데, 겨울철에는 폐쇄되며 여름철 성수기에 사용하려면 겨울이 끝날 무렵 미리 예약을 해야만 한답니다. 사실 저도 사전에 충분하게 조사를 하지 못했던 탓에 전체 여행일정만을 고려하다보니 정작 빠트리지 말아야 할 곳을 지나친 곳도 있고, 꼭 보아야 할 간헐천도 그야말로 우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4개월 동안 보낸 옐로우스톤에서 주로 상주근무자들의 애로사항을 중심으로 한 경험담을 풀어놓고 있을 뿐, 정작 옐로우스톤 방문에 관심을 두고 있는 독자는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고 하겠습니다. 옐로우스톤에서 생활을 마치고서는 <먼슬리 리뷰>라는 잡지의 편집자로 일하기 위하여 뉴욕 맨하탄으로 옮기게 되는데, 맨하탄에서 살집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맨하탄에서의 일상을 적고 있지만, 역시 이곳과의 인연도 그리 깊지 못했던 모양으로 마이애미비치에서 짧은 체류를 거쳐서 오리건주의 포틀랜드로 두 아들과 함께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비교적 주변 환경과 볼거리들을 적고 있습니다만, 주요 관심사인 인종적 불평등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포틀랜드에서의 생활도 1년을 조금 넘기는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시 미국의 서부지역을 돌아보는 여행에 나섰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여기에서 이 책의 제목과 연관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는 생활에서 얻은 모텔 찾기와 식사를 해결하는 방법 등입니다. 제 경우는 한국에서 가지고 갔던 가스버너와 전기밥솥을 주로 활용하여 밥을 해먹는 방식으로 여행을 했습니다만, 저자는 휴대용 전기전열기를 사용하여 조리를 했던 모양입니다. 가스버너를 사용할 때는 음식냄새보다 화재의 위험성 때문에 늘 마음을 졸였는데, 저자가 사용한 전열기는 모텔의 전기료에 부담을 준 셈이 될 것 같습니다.


이하에서 다시 찾은 마이애미비치에서의 생활과 텍사스를 거쳐서 중서부지역을 방문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미국여행에 대한 정보를 기대한 독자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하였을 뿐 아니라 노동문제나 불평등문제 혹은 자연보호에 관한 이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고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몇 장의 흑백사진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번역에서도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래도 책읽기를 마치면 무언가 남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 그 무언가를 정리할 기회를 마련해볼 생각이란 말씀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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