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
크리스틴 페레플뢰리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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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습관은 이제 20년을 넘어 사반세기를 향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종이책을 읽고 있는 분을 만나게 되면 반갑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런 인연으로 이 책을 골랐는지도 모릅니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의 화자인 쥘리에트 파리 지하철 6호선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직장여성입니다. 책을 들고 지하철에 타지만 책을 읽는 것보다는 책 읽는 승객들에게 더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쥘리에트가 매일 이용하는 파리 지하철 6호선은 파리에 있는 14개의 지하철 노선 가운데 매우 오래된 노선으로 지상구간도 있다고 합니다. 몽파르나스 타워, 개선문, 에펠탑, 샹제리제 거리, 샹 드 마르스 공원, 샤이요 궁전 등 고색창연하고 역사적인 건물을 지나는 매력적인 노선이라고 합니다. 작가가 지하철 6호선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를 알듯도 합니다.


지하철 객차 안에는 노부인, 수학과 여대생, 아마추어 조류학자, 정원사, 사랑에 빠진 여자가 있었다.(18)”라고 시작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분들이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분들인 듯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쥘리에트는 책을 들고 타지만 책읽기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읽는 책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그리고 보니 지하철 독서가들이 읽고 있는 책에 대한 느낌을 담은 <지하철 독서여행자>라는 제목으로 낸 박시하 시인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하철 독서가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 알아보려 노력해본 적도 있습니다만, 그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에서는 지하철에서 독서하기보다는 새로운 관점을 들였습니다. ‘북크로싱 운동입니다. 위키백과를 보면 책을 읽은 후, 책과 함께 전언문을 적어 공공장소에 놔두면 다음에 습득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다음 사람에게 책을 넘기는 것을 말한다. ‘책 돌려 읽기 운동이라고도 한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2001년에 미국의 론 혼베이커라는 사람이 읽기(Read), 쓰기(Register), 양도(Release) 3R을 주창하며 만든 사이트(www.bookcrossing.com) 시작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한 번 보고 꽂혀있기만 한 책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양도해 돌려 읽으면 자신의 서평을 쓰는 과정 등을 통해 독서를 활성화시키자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저도 독후감을 중심으로 누리사랑방을 열심히 운영할 때는 제가 읽은 책들을 나누어주는 행사를 자주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 전까지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책 돌려 읽기 운동이 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책 돌려 읽기는 기욤 뮈소의 소설 <종이여자>에서도 읽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에서의 책 돌려 읽기는 조금은 조작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앞서 들었던 지하철에서 책을 읽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책전달자였다는 것입니다. 쥘리에트는 부동산 소개업을 하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단순한 일상이었던 것이지요. 책읽기는 그 단순한 일상에 조금은 변화를 주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책 속에 펼쳐지는 세상은 다양하기 때문이죠. 쥘리에트도 결국은 단순한 일상에서 벗어나 복잡함을 찾아 나서기로 했답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 늘 내리던 역이 아니라 두 정거장 앞에서 내린 것입니다. 낯선 길을 어슬렁거리다가 무한 도서 협회라는 간판을 단 건물에 들어서게 되는데, ‘책 돌려 읽기 운동의 본부였던 것입니다. 솔리망이라는 남자가 자이드라는 딸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들어간 무한 도서 협회에서 책전달자가 되기로 한 쥘리에트는 솔리망의 부탁으로 무한 도서 협회의 운영을 맡게 되는데, 알고 보니 지하철에서 만났던 책 읽는 사람들이 책전달자였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무한 도서 협회운영을 시작하게 된 뒤에 솔리망이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는 상황이 되고 책전달자인 레오니다스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책 돌려 읽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움직이는 도서관처럼 작은 차에 책을 싣고 책전달자들을 만나러 간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다양한 책들이 소개됩니다. 책 내용은 아니고 제목들만 소개되는데 작가의 책읽기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책들 가운데 관심이 생긴 책들을 읽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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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3 - 마추픽추의 빛
앙투안 B. 다니엘 지음, 진인혜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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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은 피사로의 막내 동생 곤살로를 살해하기 위하여 쿠스코로 들어갑니다. 곤살로와 대결하여 상처를 입히지만 그의 수하들에게 일격을 당하고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이 무렵 망코는 10만의 잉카 병력을 모아 쿠스코를 포위하였습니다. 사크사우아망에 포진하고 스페인 사람들이 머무는 곳에 투석기와 화살을 날려 그들을 평원으로 몰아낸 다음에 대회전을 벌인다는 작전을 세운 것입니다.


피사로의 둘째 동생 후안은 가브리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가브리엘은 사크사우아망의 요새 공격에 나서 관문들을 돌파하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후안은 목숨을 잃었고, 가브리엘은 잉카군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가브리엘은 잉카군의 이점에서는 가브리엘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요새는 결국 함락이 되었고, 잉카군은 물러나게 됩니다. 잉카군에 사로잡힌 가브리엘은 아나마야의 간청으로 죽음을 면하게 됩니다.


쿠스코에서 물러난 망코의 잉카군은 스페인 사람들과의 산발적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알마그로가 망코의 형제인 파울루를 왕으로 지명하여 망코와 싸우도록 합니다. 파울루는 젊은 시절 아나마야에게 청혼하였다가 거절당한 것에 맺혀있습니다, 그녀가 자신이 아닌 망코를 유일한 군주로 지명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잉카는 유일한 군주 우아이나 카팍이 후계를 정하지 못하고 죽은 뒤에 벌어진 아타우알파와 우아스카르의 내전, 아타우알파의 사후에 벌어진 망코와 파울루 그리고 구아이파르 등의 대결 등 끊임없이 이어진 형제들의 분열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끌려간 셈입니다한편 스페인 쪽에서도 총독 피사로가 동생들이나 동료 에르난도 데 소토 등의 탐욕을 제어하지 않고 방치한 결과, 평화로운 방법으로 잉카제국을 접수하려던 계획이 결과적으로는 끊임없는 전투로 이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가브리엘과 바르톨로메 신부 등은 카를로스 1세 황제가 파견한 바카 데 카스트로 재판관을 만나 곤살로 피사로를 비롯한 스페인 사람들의 광폭한 행동을 고발하려 리마에 가지만 재판관은 리마로 오던 중 배가 침몰하는 사고로 당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알마그로 등 강경파들이 반란을 일으켜 피사로 총독을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가브리엘과 아나마야는 우아이나 카팍의 분신 형제를 마추픽추에 봉안하고 그곳에 머물던 잉카 사람들처럼 어디론가 떠나게 되면서 긴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끝맺음 글에서는 마지막까지 살아있던 등장인물의 후일담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아나마야의 혈통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물론 확인된 것은 아닌 듯합니다. 파울루는 작위를 받아 스페인의 귀족이 되었고, 에르난도 피사로는 20년간 스페인의 감옥에 갇혀있었다고 합니다. 곤살로 피사로는 스스로 페루의 총독이 되어 스페인 왕권에 대항하다가 참수를 당했다고 합니다.


망코는 알마그로파에게 암살을 당했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국지전과 평화에 대한 흥정을 번갈아 벌이며 1572년까지 빌카밤바에서 저항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사파 잉카 투박 아마루가 체포되어 쿠스코의 아르메스 광장에서 참수되었다고 합니다.


잉카3의 말미에는 앙투안 B. 다니엘의 이름으로 된 잉카 시대 쿠스코의 일상생활이라는 부록이 붙어있습니다. 쿠스코의 구성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 그리고 태양신의 축제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는 잉카, 그 웅장한 서사와 신비라는 제목으로 된 옮긴이의 말이 이어집니다. 옮긴이가 인용한 일본의 역사소설 작가 사토 겐이치의 조금 억지스러운 비유이지만, 역사학자의 작업이 역사적 사실의 시체를 해부하는 것이라면 역사소설가는 역사적 사실을 살아있는 것으로 붙잡을 수 있지요.”라는 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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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 자신 있게 보기 1 - 알찬 이론에서 행복한 감상까지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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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이론에서 행복한 감상까지라는 부제가 달린 <서양화 자신 있게 보기 1&1>는 역시 아내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미술을 좀 더 가깝고 쉽게 즐기고 이해하려는 욕구에 대한 응답이라는 저술동기를 작가가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저 역시 미술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작가 이주헌은 <어제는 고흐가 당신얘기를 하더라; https://blog.naver.com/neuro412/223676610284>로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남아 있어 <서양화 자신 있기 보기>에 대한 기대고 컸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읽는 재미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그림을 바로 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큰 그림의 경우는 두 쪽에 걸쳐 있어서 겹치는 부분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화가를 비롯하여 본문의 내용을 따로 설명하고 있는데, 비워둔 각 쪽의 바깥쪽 공간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글자의 크기가 작아서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까닭에 본문의 읽는 흐름이 흩어지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또 다른 설명이 본문 중에 섞여 있는 것도 일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공간에도 그림을 배치하고 있는데 본문 중에서 인용한 그림들과는 달리 좁은 공간에 축소해놓은 탓인지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책의 구성도 조금 헷갈리는 점이 있습니다. 1권에서는 미술감상법을 먼저 이야기한 뒤에 서양화의 성격, 그리고 그림의 종류를 설명합니다. 그리고는 원근법, 빛과 색, 상징, 모델 등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2권에서는 고전주의로부터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변해온 서양미술의 사조를 설명하고는 판화, 조각, 미술관, 미술시장에 대하여 설명하는 등 미술에 관한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아내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그동안 읽어온 미술관련 책들에서 익숙해진 그림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처음 마주하는 그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1권의 내용 대부분이 서양미술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2권에서는, 특히, 현대미술 부문에서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의 사조를 조금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양화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서양의 풍경화는 우리로 하여금 그곳에 호화로운 별장을 짓고 살게 만든다. 반면 동양의 산수화는 초야에 묻혀 안빈낙도하기를 권한다.”라고 비유하고 있는 점에 대하여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마치 교과서를 읽는 듯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이 추구하는 목표가 제목 그대로 서양화 자신 있게 보기위한 길라잡이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까닭일까요? ‘미술감상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이 책의 도입부를 마무리하면서 미술사 지식이 별로 없더라도 감상의 주체로서 자신에 차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감상을 통해 얻는 소득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라고 했는데, 막상 각론에 들어가서 보니, 미술사 이론 중심의 설명에 무게가 두어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어제는 고흐가 당신얘기를 하더라>를 읽으면서 느꼈던 편안함과 포만감이 이 책을 읽으면서는 충분히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부담스러운 책읽기가 되었던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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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는 눈 - 손철주의 그림 자랑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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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추천으로 읽은 책입니다. <사람 보는 눈>의 작가는 미술담당으로 오랫동안 국내외 미술 현장을 취재해 오면서 취재본부장을 지낸 손철주 기자입니다. 1998년에 발표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2017년에 개정신판을 낼 정도로 꾸준하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저는 <사람 보는 눈>이 작가의 처음 읽는 책입니다.


작가는 앞서는 글에서 사람 그림들을 죽 펼쳐놓고 보면서 새삼스레 깨단한다. 그림 밖의 사람은 그런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고, 그림 속의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이 많다. 이럴진대 사람 그림을, 그려진 사람으로만 여기겠는가. 보고 또 볼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깨단하다의 뜻이 궁금해졌습니다. 누리망에서 찾아보니 오래 생각나지 않다가 어떠한 실마리로 말미암아 깨닫고 분명히 알다.’라고 합니다. 잘 쓰이지 않는 우리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는 글에서 발견한 깨단하다처럼 책 곳곳에서 처음 듣는 우리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모두 39꼭지의 글을 ‘1부 같아도 삶 달라도 삶’, ‘2부 마음을 빼닮은 얼굴’, ‘3부 든 자리와 난 자리’, ‘4부 있거나 없거나 풍경이라는 4개의 작은 제목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그러니까 1부는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뜻 같습니다. 2부에서는 그림 속 얼굴에 마음까지 담아낸 그림들을 소개하는 것, 3부는 그림에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4부에 사람이 나오지 않는 그림을 소개한 것은 3부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김홍도의 세마도였습니다. 버들가지가 늘어진 것을 보아 봄이라고 했습니다. 봄이 되었으니 말을 못으로 이끌어 씻어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단원은 문밖의 푸른 못물로 봄날에 말을 씻고(門外綠潭春洗馬) / 누대 앞의 붉은 촛불을 밤에 손님을 맞는다(樓前紅燭夜迎人)”이라는 당나라 한굉의 시의 한 구절을 적어놓았습니다. 부귀와 공명을 버린 채 한소하게 사는 자의 여유를 노래한 대목이라고 합니다.


4부에 있는 포도알 탱글탱글하듯에서는 월성 김씨가 아들 인환에게 준 포도라는 그림을 설명하면서 우리문학에 나타난 포도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과 잘 어울린다. 바다 건너 존 스타인벡의 강퍅한 분노의 포도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231)”라고 했습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7월에 익어가는 청포도를 노래하였으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는 포도가 등장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존 스타인벡은 사람들의 눈에 패배의 빛이 떠오르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 분노가 서린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노의 포도가 하나 가득 가지가 휘게 무르익어 간다. 수확의 때를 향하여 알알이 더욱 무르익어 간다.”라고 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에 들어간 포도는 민중의 고통과 분노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결이 다르다고 한 것은 틀림이 없으나 이육사의 청포도와 존 스타인벡의 포도는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역시 4부에 있는 작은 그림에 갸륵한 소망에서는 심사정이 초충도에 그린 양귀비는 꽃의 여왕이라고 한답니다. 모란을 꽃의 왕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양귀비를 꽃의 여왕이라고 하는 이유는 당나라 현종의 사랑을 받은 양귀비에 비유한 것이라고 한답니다.


역시 4부에 있는 손 타지 않아 발랄하다에서는 심사정의 국화와 돌에서는 국화에 관해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월을 국월(菊月)이라 한다는데, 도연명이 99일 중양절에 술이 없어 대신 국화꽃을 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국화는 은거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란 국화는 별이 가득한 하늘’, 자줏빛 국화는 술에 취한 신선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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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기 - 에리히 캐스트너 시집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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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읽어보려 벼르던 에리히 캐스트너의 시집 <마주보기>를 구매해서 읽어보았습니다. 1899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난 그는 교사가 되고자 사범학교에 진학했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징집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신문기자가 되었습니다. 여러 매체에 시를 발표하다가 소설과 아동소설을 발표하여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히틀러 집권 때는 집필금지를 당하고 책들이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마주보기>문학이란 동시대의 아픔을 담을 수 있어야 하며, 가장 쉬운 말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에리히 캐스트너의 소신이 잘 드러난 시집이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해왔는데, 마음의 통증을 치료해주는 시, 일상에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시, 가정상비약과 같은 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합니다. 유머, 분노, 무관심, 아이러니, 명상, 과장 등가 같은 유사 치료제를 이용해 일상의 크고 작은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도와줄 책으로 <마주보기>를 출간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119개의 시의 제목을 늘어놓은 목차 다음에 사용지침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119개의 시를 영역별로 구분하는 대신에 나이 드는 것이 슬퍼질 때’, ‘가난을 접할 때’, 등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민에 따라서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시들을 추천하는 것입니다. 마치 약을 먹을 때 복용법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독자들은 삶에서 생기는 장애를 줄이거나 없애고 싶을 때마다 이 사용지침서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살짝 확인을 해보니 하나의 시가 여러 경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나이 드는 것이 슬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나이가 적지 않은 저로서는 나이 드는 것이 슬퍼질 때라는 상황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 중에 두 번째인 사촌의 구석창문(E.T.A. 호프만에게 바침)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교회 종탑 뒤에서 불타는 / 저녁노을을 사랑한다. / 그는 삶과 죽음을 사랑하고 /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도 사랑한다.’라는 세 번째 연을 읽으면 나이 드는 것을 슬퍼하는 사람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는 독일의 후기낭만주의 작가 호프만의 소설 사촌의 구석창문을 소재로 썼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두발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하는 사촌과 그가 머무는 고층 건물의 구석방에 찾아온 화자가 창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 소개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때 작가인 사촌은 젊은 화자에게 작가의 기본 자질 가운데 하나인 보는 기술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호프만 역시 독일 시인 칼 프리드리히 크레쉬칸의 창가의 폴 스카론(Scarron am Fenster)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마비된 프랑스 작가 폴 스카론이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익살맞게 묘사했다고 합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호프만의 사촌의 구석창문과 일본 작가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지붕 속 산책자를 비교한 논문이 있습니다. 사촌의 구석창문은 정지된 도시산책자로 지붕 속 산책자에서는 도착적 도시산책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금년 초에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을 통해 다녀온 일본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하면서 경험한 순간들에 안성 맞춤한 비유들을 <마주보기>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마주보기>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상황에 잘 맞는 시들이 참 많다는 생각입니다. 시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읽지 않더라도 사용지침서를 참조해가면서 읽어보고 싶은 시를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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