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 하버드 법대, 젊은 법조인이 그린 법정 실화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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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 역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많아지면서, 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청소년 성범죄는 물론 청소년간의 성폭력이 확산되고 있어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근친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성범죄는 감춰지는 경향이 있으며, 상습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문제는 인권보호와 맞물려 실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1990년대 말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벌어진 실제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재구성한 작품으로 특히 근친이나 가까운 이웃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소아 성범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아동성추행의 전과가 있어 보호관찰 중인 젊은이 리키가, 이웃에 사는 여섯 살짜리 사내아이 제레미를 성추행하고 살해한 사건과,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 알렉산드리아가 이를 뒤쫓는 한편 자신이 성장과정에 숨겨져 있던 외조부의 반복된 성추행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이 교대로 전개됩니다. 그러다보니 두 이야기가 서로 어떤 관계가 있고, 어느 순간 접점을 이루는지가 관심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리키는 자신이 어린 남자아이에게 성적 관심이 많아 이웃 남자아이를 성추행한 사실이 밝혀져 수감된 전력이 있으며, 자신의 그런 성향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출감을 거절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감하여 사회로 나왔지만, 리키에 대한 관계기관의 감시가 철저하지 못하였으며 사회 역시 그런 범죄자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던 듯합니다. 리키와 같이 근무하던 펄은 집을 구하기 위하여 리키의 범죄사실을 알면서도 위층에 세를 내주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알렉산드리아의 경우 어린 나이에 외조부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 중도에 자신을 추슬러 학업에 전념하여 하버드법대에 입학하여 변호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충격적이었던 점은 알렉산드리아가 외조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 변호사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실을 숨기기로 결정했다는 점입니다. 가정의 사회적 지위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는 것이겠지요. 과연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알렉산드리아가 외조부에게 옛 잘못을 추궁하자,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쩌라고? 자살이라고 하란 말이냐?라고 뻔뻔스럽게 나오는 외조부도 그렇지만, 나도 똑 같은 일을 당했다는 고백은 미국 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보았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나는 그랬어도 그 짓을 내 핏줄에게 저질 수 있다는 배짱이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리키가 제레미를 살해하는 과정 리키가 체포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2부에서는 리키와 자신의 성장과정을 적고 있는데, 리키나 화자가 가족으로부터 학대를 받으면서 삶이 비뚜러지는 과정이 드러나고, 두 사람 사이의 연관성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2부에 들어서면서 작가가 왜 두 이야기를 병렬로 전개하는지 이해가 되면서 어느 시점에 하나로 합쳐질까 궁금해집니다. 3부에서는 알렉산드리아가 사형이 결정된 리키의 재심 과정에 참여하게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포기한 이유도 드러납니다. 외조부의 성폭력을 받으며 자랐던 알렉산드리아로서는 제레미를 성추행하고 살해한 리키를 변호하여 그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나설 이유가 분명치 않았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레미의 생모가 리키의 재심과정에 증인으로 출두하여 리키의 사형집행에 반대하며 구명을 요청했다는 사실입니다. “제 아이가 질렀을 단말마의 비명이 제 귀에 쟁쟁합니다만, 마찬가지로 저는 리키 랭글 리가 도와달라고 외치는 비명 또한 귀에 들립니다.” 제레미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오랜 기간 마음의 고통을 겪은 끝에 살인을 저지른 리키를 용서할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형제도의 폐지와 아동 성범죄의 문제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는 책읽기였습니다. 분명 저에게도  낙인처럼 남아있는 오랜 기억을 반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코 망각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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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수업 - 고난 당한 이에게 바른 위로가 되는 책
캐시 피더슨 지음, 윤득형 옮김 / 샘솟는기쁨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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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늙어서 품위 있게 죽는 일’은 제가 오랫동안 공부해오고 있는 화두입니다. 이 책 역시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쓴 이나 편집자가 제목짓기에 열중하는 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암으로 투병하다 죽음을 맞은 남편을 간병하고 죽음을 지켜 본 캐시 피더슨이 쓴 책입니다. 미국에서 이 책이 상당히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원래의 제목이 ‘필요하거나 말하지 못한 다른 것들이 있으면 전화해 Call Me If You Need and Other Things NOT to Say)’입니다. 그저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절실하게 느꼈다면 바로 실천에 옮기라는 주문입니다.

저도 최근에 모시던 분께서 대장암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문병을 가서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윤득영박사님은 미국유학 중 교재로 읽었던 책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목회활동에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의 추천사가 많습니다.

사실은 사람마다 세상만사를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사안을 일반화하여 규칙을 정하는 일은 조심스러워야하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남편이 암으로 진단받고 투병하다가 죽음을 맞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주변에서 이렇게 해주었더라면 하는 점들을 기록한 독특한 내용입니다. 같은 과정을 지나면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기록한 책들이 많은 것과는 색다른 기록이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남편의 암진단이 청천벽력과 같았다고만 적었을 뿐, 암의 종류, 병기, 치료과정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은 것으로 보아서는 말기암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암이 조기에 발견되면 완치가 기능합니다. 따라서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암 초기에 보일 수 있는 증상을 잘 알고, 관련 증상이 있을 때 전문가의 확인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래서 암을 불치의 병이라기보다는 만성병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정기검진을 받을 필요는 당연히 있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일은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란 게 어차피 혼자서 해내야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주변에서 도움을 주면 좋을 일이 있을 것이고, 당연히 조심하는 게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일들이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읽어 배운 것이 꼭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생각해가는 방향 즉, 착안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상심하여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하여 주변에서도 많은 배려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개입하여 슬픔을 홀로 삭일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다면 오히려 불행한 일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책은 일종의 종교지도자의 목회와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신도들의 불행을 어떻게 위로하고 상실을 어떻게 치유하는 가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치유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때로 의존도를 높여 치유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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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다시 여름, 한정판 리커버)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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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시인의 산문집을 다시 꾸며 내놓은 것이라 합니다. 책을 고른 이유 두 가지 중 하나는 여행길에 가볍게 읽기 좋은 산문집이라는 점과 ‘운다는 것’었습니다. 책은 아부다비공항에서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두어 시간 남짓 되는 사이에 모두 읽어냈습니다.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시인이 살아낸 나날들이 울음으로 점철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울음을 주제로 쓴 글은 그리 많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낚였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책읽기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책읽기를 마치고 별 의미를 찾지 못했다면 열심히 읽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고 얻은 의미는 시를 쓰거나 산문을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길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일상에서 생각하는 바나 책을 읽다 만나는 귀중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블로그에 보관해두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이 길어야 될 이유는 없겠습니다. 그리고 글머리는 일상에서나 제가 열심히 하고 있는 책읽기에서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그해’라는 제목에 장소만 인천, 경주, 여수, 협재, 화암, 묵호, 혜화동, 행신, 삼척 등의 지명을 붙인 아홉 꼭지의 글은 짧아 두 줄 길어 여섯 줄을 넘지 앓습니다. 글이 짧으며 짧을수록 생각을 압축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시인은 글다듬기를 반복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뜸합니다만 예전에는 저도 가끔 글을 청탁받기도 했습니다. 청탁받은 글을 쓰려면 나름 준비를 꽤나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에 자료조사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저자의 경우는 취재도 열심히 다니는 모양입니다. 사실 글쓰기는 자료와의 절충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조사한 자료를 어느 수준으로 정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을 한다는 것입니다. 학술적인 글 같으면 근거가 있는 글이라면 모두 담아내야 하겠습니다만 일반인이 읽는 책을 그렇게 썼다간 전문가 만들 일 있느냐고 퉁을 먹을 일입니다,

생각해보면 글은 쓰는 사람에 따라서 아주 다양하게 풀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환절기’라는 제목으로 쓴 글은 아마도 독감이 주제가 된 것 같습니다. 흔히 감기는 약을 먹으면 7일 그냥 두면 1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감기를 약을 먹어 고통을 경감하려 했던 스스로가 못마땅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생긴 대로 아프다보면 뭔가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또한 ‘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다’라는 구절은 아부다비의 사막에서 숨 막히도록 예쁜 해넘이를 보고는 새겨볼 요량으로 여행기에도 적어두었습니다. 어떻게 변주를 할 것인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살았던 화전의 폐가에서의 꿈 경험을 읽으면서도 젊었을 적에 사랑이라고 믿었던 사람과의 추억도 글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만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하여는 아직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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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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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여행길에 산토리니섬을 배로 왕복하는 총 14시간을 들여 읽고 또 독후감까지 써 냈습니다. 조지 오웰하면 <동물농장> 그리고 <1984>의 두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카탈로니아 찬가>가 처음 읽은 그의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 뒤로도 <더 저널리스트 조지오웰>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나 사상 등에 대하여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그런 생각이 더 들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는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처럼 그가 쓴 수백 편의 에세이들 가운데 골라 뽑은 29편을 묶어낸 것입니다. 유년기로부터 청년기, 장년기에 이르기까지 생의 다양한 시기의 삶에 대하여 진솔하게 고백한 내용들입니다. 유년기에 야뇨증으로 사립학교에서 고통 받던 이야기는 물론 식민지 버마에서 경찰로 근무하면서 피부로 느낀 제국주의의 민낯, 젊은 시절 추종하던 좌파이념에 따라 스페인내전에 공화파군으로 지원하여 참전했던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쓴 에세이들이 뒷날 소설 작품의 토대가 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스페인 내전의 참전기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이 풀렸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그가 추구한 좌파적 사상의 근저에는 애국심이 깔린 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까닭에 관련된 두 꼭지의 에세이에서는 얻은 바가 많습니다. 먼저 ‘어느 서평자의 고백’에서는 전문서평가의 말 그대로 형식적인 서평쓰기의 실체를 고백합니다. 서평을 의뢰받은 책을 모두 읽지 않고도 그럴 듯한 서평을 써내는 신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읽지 않고 쓴 독후감은 없지만 독후감이 점점 틀에 박혀가는 느낌이 들고 있어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책이 서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시 할 이유는 없다고 했습니다. 즉 중용하다고 생각되는 소수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나는 왜 쓰는가’에서도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생계 때문에 글을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고 합니다. 1. 순전한 이기심, 2. 미학적 열풍, 3. 여가적 충동, 4. 정치적 목적, 등입니다. 개정판을 하나로 간주한다면 모두 4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저의 경우는 문학분야의 책은 없으니 2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3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2번에 관한 책도 세상에 내놓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조지 오웰의 글에서 보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것들이 이미 일어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일은 진실한 내용만을 글로 써두라는 것입니다.

오웰의 에세이들을 읽고 난 소감은 저도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진실한 내용만을 중심으로 해야겠지요. 에세이를 어떻게 쓰는지 먼저 공부를 충분하게 한 다음에는 한 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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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고전철학 가이드
존 개스킨 지음, 박중서 옮김 / 현암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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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여행을 앞두고 여행길에 읽을 만한 인문서를 고르던 가운데 눈에 띈 책입니다. 책을 쓴 존 개스킨교수가 더블린의 트리니티대학에서 철학을 담당하는 것도 요즘 쓰고 있는 영국ㅡ아일랜드 영문학 여행과도 연이 닿는 듯해서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여행자를 위한’ 이라는 기획의도를 살짝 비친 것은 총론 수준으로 아니 그보다도 더 가벼운 수준으로 그리스철학을 요약해보겠다는 욕심에서 책쓰기를 출발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매년 해오던 고전철학 관련 강연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보자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형식상 여행자를 위한 철학서가 될 참이라는 점이 책구성에 반영된 구조입니다. 3부로 된 책의 1부는 고대 유적을 찾아 그리스를 방문할 여행자가 궁금해 할 만한 다섯 가지 요소들,  그리스의 역사, 그리스인답다는 것, 에로스, 심포시온, 와인 등 그리스 사람들의 일상 그리고 고대 그리스인들과 떼어놓을 수 없는 극장과 신전 등입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그리스비극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그리스 신에 대한 다른 해석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부에서는 그리스철학의 흐름을 맥을 잡아 요약했습니다. 그 출발은 호메로스입니다. 호메로스가 철학자는 아니지만 그리스사람들의 사고의 맥락을 잡는 데 꼭 필요한 역사 등의 구전방법 혹은 구전내용들의 신빙성들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트로이. 트로이를 빼놓고 호메로스를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요. 호메로스가 실존인물이었을까 하는 의문에서부터 트로이전쟁의 등장인물의 성격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이어서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를 배출한 밀레토스에서 그리스철학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주의 존재를 고민했던 흔적을 기록으로 남겨놓았기 때문일 듯합니다. 사실 그리스철학은 소크라테스로부터 논의한다고 하는 것은 플라톤이라는 제자가 기록을 남긴 덕분이기도 합니다만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고 신까지도 공인했다는 게(?) 결정적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시기에 활동한 철학자가 서른 명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소크라테스이전의 시기를 밀레토스 시기에서 나누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눈에 띄는 철학자는 삼각형의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기록한 헤라클레이토스 등이 있습니다. 그리스철학이 중요한 것은 자연의 이치를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렇게 시작한 철학을 뿌리로 하여 유럽의 근대사상은 물론 근대과학이 가지를 쳐나왔다는 점일 듯합니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름이 생소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은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이미 자주 만나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크라테스 이후에는 철학으로 국한되는 경향 때문에 생소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 역사 혹은 신화를 공부하다 보면 그리스강역이 모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의 터키를 이르는 소아시아를 그리스의 강역으로 보아야하는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그리스 이전에 이미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히타이트제국이 존재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도 같은 민족이었더라면 10년이 넘도록 소모적인 전쟁이 아니라 누군가 나서 중재로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3부는 기억할만한 그리스철학자를 배출한 장소에 대하여, 그리고 그 철학자들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하지만 스물아홉 개나 되는 지명 가운데 키케로, 세네카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이 친밀한 로마, 피타고라스로 익숙한 사모스, 히포크라테스로 유명한 코스섬 등이 익숙할 뿐입니다. 나머지는 지역이름이 생소하거나 철학자 이름이 생소합니다. 여행 중에는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조금 가벼운 읽을거리가 편합니다. 그런 점에서 안성 맞춤한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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