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대우고전총서 29
루크레티우스 지음, 강대진 옮김 / 아카넷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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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하는데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는 책을 발굴해낸 과정을 뒤쫓은 하버드 대학교 인문대학 존 코건 대학의 스티븐 그린블랫교수가 쓴 <1417년, 근대의 탄생; https://blog.naver.com/neuro412/221410933359>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린블랫교수가 말한 그 책의 이름은 로마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입니다. 그리스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을 계승한 루크레티우스는 세상의 모든 존재나 현상을 원자론에 기반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린블랫교수는 미와 쾌락의 향유에 관한 루크레티우스의 생각이 잘 체현된 문화가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라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1417년, 근대의 탄생>을 읽고 바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을 구입하였지만 막상 완독을 한 것은 1년여가 지난해 말 이집트를 여행하면서였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도 들고 갔지만 읽을 시간을 내지 못했고, 지난해 여름 발트연안국가를 다녀올 때도 들고 갔다가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미쳤을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묘한 인연 같습니다.

그린블랫교수가 <1417년, 근대의 탄생>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요약한 것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린블랫교수가 요약한 것을 확인한데 불과한 책읽기를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에 이미 사물의 본질을 꽤뚫고 있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물의 생성과 소멸에 관하여 그가 세운 일반적인 원칙은, ‘아무 것도 무에서 생겨나지 않았고, 아무 것도 무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물들은 작은 입자, 원자로 되어 있는데, 입자들 사이에 빈공간이 있음을 간파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의 견고함, 영원함, 단순함, 그리고 불변성을 논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는 쉼 없이 운동하며, 여러 밀도를 가진 사물들 속에 결합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근대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물을 이루는 기본 입자가 원자이며, 그 원자는 양자와 중성자가 들어있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전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고, 원자핵과 전자 사이는 빈공간이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미시의 세계 뿐 아니라 거시의 세계라 할 우주과 공간의 무한함을 논파합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이처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을 뿐더러, 천체, 땅, 대기의 현상들이나 지상의 현상들에 대한 논증 역시 과학적으로 충분히 근거가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영혼의 본성과 구조, 영혼의 필명설에 대한 증명,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가 어리석은 것이라는 대목입니다. 정신과 영혼이 서로 연결되어 스스로 하나의 본성을 이뤄내는데 이는 신체의 일부라고 했습니다. 즉 인간의 정신활동의 결과로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영원은 죽지 않는다는 견해에 반대하여 영혼의 필멸성을 증명합니다. 다만 ‘영혼이 잘게 나뉘어 바깥으로 흩어지며, 따라서 소멸한다.’라고 설명한 부분은 다소 의외라 하겠습니다. 어쩌면 사물의 본질이라 할 원자로 구성된 신체가 죽음 뒤에서 해체되어 흩어진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죽음은 그저 감각의 정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생애 동안 저지른 잘못으로 사후에 징벌을 받을 것에 대한 공포도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루크레티우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세상의 영웅호걸은 물론 에피쿠로스 자신도 삶의 빛이 다 저물자 떠나갔다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너는 떠나기를 망설이고 억울해하겠는가?’라고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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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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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여행’하면 일단 기차가 하얀 설국을 달려가는, 낭만적인 풍경이 떠오릅니다. 그런 낭만적인 여행을 떠올리며 고른 책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보잉747을 납치해서 파리에 있는 에펠탑에 충돌시키겠다는 전혀 생뚱맞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비행기를 납치하기 위하여 공항검색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검색대를 지날 때마다 짜증이 난다고 했습니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처럼 저 역시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이 짜증나는 이유는 “내가 검색대를 통과하면 어김없이 그놈의 경보음이 울린다. 그러면 갑자기 거창한 게임이 시작되어 검사요원들의 손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 온몸을 더듬”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옷을 벗으라고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정말로 내가 비행기를 폭파시킬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라고 내뱉은 경우였다고 합니다. 시니컬한 응답이 보완요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탓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는데, 꼭 이런 상황을 맞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골절수술이나 관절치환술 등의 수술을 받아 몸 안에 금속을 집어넣은 분들 말입니다. 사실 검색대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몸을 더듬는 요원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 경우에 특히 짜증이 치밀곤 합니다. 그렇지만 검색대의 경보가 울렸는데도 그냥 통과한 경우가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한 주인공은 자신이 비행기를 납치해서 목표물에 충돌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을 써내려갑니다. 물론 이 글 역시 비행기와 함께 불타버릴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읽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생각대로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읽고 독후감까지 쓴 것을 보면 말입니다.

주인공이 조직 등의 사주를 받지 않은 단독 범행으로는 황당무계하다 싶은 비행기 납치라는 어마 무시한 범행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사랑하게 된 여성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데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심지어는 환각버섯이라는 생소한 것을 먹고 벌인 파티에서도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이런 깜찍한 이야기를 생각해낸 작가가 참 대단하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벨기에 출신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매년 가을 신작을 내놓는데, 그때마다 프랑스 문단의 화제를 모은다고 합니다.

엘로이즈라는 이름의 자폐증을 가진 작가와 그녀를 돌보는 아스트라보라는 여성에 꽂힌 주인공의 이름은 조일입니다. 조일은 엘로이즈라는 이름에서 영화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무엇을 연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일과 그가 사랑하게 된 아스트라보의 이름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작가가 취재를 참 꼼꼼하게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조일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5~4세개 무렵, 호메로스에 대한 혹평으로 유명하던 그리스의 소피스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메로매스택스(호메로스의 재난)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괴테는 자신의 작품을 혹편하는 비평가를 조일로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아들의 아름을 정할 부모는 없은 것 같습니다. 사실 어머니기 조일을 가졌을 때, 부모님들은 딸일 것으로 확신하고 조에라는 이름을 미리 정해놓았다가 그냥 조에의 남성형인 조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조일의 사랑 아스트라보는 11세기 프랑스 중세철학을 대표하는 피에르 아벨라르가 16살 연하인 제자 엘로이즈 사이에 얻은 딸입니다. 조카를 욕보였다고 생각한 중세시절의 엘로이즈의 삼촌은 사람을 시켜 피에르를 거세시켰다고 합니다. 조일의 사랑 아스트라보의 아버지 역시 피에르였고, 어머니 역시 엘로이즈였다고 합니다. 조일의 사랑 아스트라보의 아버지 피에르는 아내가 임신하고서 얼마지 않아 숭배하던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로 떠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스트라보의 어머니는 ‘카스트로주의자’가 ‘거세(castration)'에서 유래한 것이라 믿었다는 것입니다.

책의 제목이 겨울여행인 것은 조일이 두여자와 함께 벌인 환각버섯파티를 여행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가하면 ‘겨울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67쪽)’라고 하면서 ‘겨울과 사랑은 시련을 통해 욕망을 채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68쪽)’고도 합니다.

이 책의 제목 <겨울여행>은 우리에게는 <겨울 나그네>로 더 익숙한 슈베르트의 연가곡집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멜리 노통브는 ‘사랑의 파괴’와 ‘테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즐겨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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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영감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이른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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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떠날 때 책을 여러 권 챙겨가곤 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물론 몰입이 필요한 책까지 골고루 챙기는 편입니다. 수필도 빠트리지 않는데, 특히 철학자가 쓴 수필을 챙겨보려 노력합니다. 지난 연말에 다녀온 이집트여행에서는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비롯하여 프랑스 철학자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을 챙겼습니다. <지중해의 영감>을 챙긴 이유는 ‘시적이고 명상적인 그르니에 특유의 감성과 사유가 탁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는 대목과 함께, ‘그르니에가 젊은 시절 머물거나 여행한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 나라, 도시들과 그 내면화된 인상을 담아내고 있다.’는 출판사의 설명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1898년 2월 파리에서 태어난 장 그르니에는 사상가이며 작가이자 철학자라고 소개됩니다. 청소년기를 대서양 연안의 브르타뉴에 속하는 셍-브리유에서 보냈습니다. 그런가 하면 1922년 철학교원자격시험에 통과한 뒤에는 40여년에 걸쳐 아비뇽, 알제, 나폴리, 몽펠리에, 릴, 알렉산드리아, 카이로, 등지를 거쳐 파리의 소르본대학에서 미학과 예술학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삶 속에는 거친 대서양의 기운과 부드러운 지중해의 기운이 공존한 셈입니다. 특히 알제리에서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알베르 카뮈를 가르치면서  그의 사상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작품은 처음 읽었습니다. 책을 고르면서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등, 글의 주제를 얻은 지역으로 구분해놓은 목차의 작은 제목에 끌렸던 것입니다. 막상 책을 읽어가면서 서두에 있는 ‘침묵과 망설임의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의 옮긴이의 말에서 ‘문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감수성, 그리고 행간을 읽어내는 시적 자질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책을 번역하는 것이 모험이었다라는 김화영교수님의 토로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읽고 이해하는데 옮긴이의 고통의 덕을 많이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글 ‘산타 크루즈’에서는 알제리의 해안도시 오랑 시내를 굽어볼 수 있는 아이두르(Aidour)산에서 바로 본 풍경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오랑 사람들이 산타 크루즈라고 일컫는 산입니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하dis 동전들의 무더기, 저것은 오랑, 자줏빛 잉크의 반점, 저것은 지중해, 은거울 위에 뿌려진 금가루, 저것은 햇빛을 통해 보이는 벌판의 소금.(29)” 산 위로 올라갈수록 풍경은 점점 거대해져갔는데, 그런 변화에서 파성추로 때리듯 쾅쾅 울리는 베토벤의 교향곡의 주제 악장을 떠올렸다는 것입니다. <운명>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은거울 위에 뿌려진 금가루 같았다는 지중해의 모습은 이번 여행에서 알렉산드리아에 갔을 때 해안으로 연신 몰려드는 하얀 파도의 거품을 바라보면서 그르니에의 은유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이집트의 기자에서 만난 피라미드, 아부심벨에 있는 람세스와 네페르타리 신전, 아스완에 있는 필레신전, 콤옴보와 에드푸의 호루스신전,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 그리고 왕가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와 왕비의 묘, 합세슈트 장제전 등, 우리가 본 모든 것은 이집트 고왕국이 남긴 죽은 자들을 위한 건축물이었습니다. 즉 산자들을 위한 건축물은 없었습니다. 그르니에 역시 이런 점이 마음에 걸렸던 가 봅니다. “산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도시 카이로와 바로 이웃한 저 거대한 사자들의 도시에서라면 나는 그다지 마음이 편치 못했으리라, (…) 산 사람들의 도시와 거의 맞먹는 크기의 도시, 유령들이 모시는 유령들의 도시(169쪽)”

그래서인지 그리니에가 로마의 유적, 특히 죽은 자들을 모신 묘지에서 그가 읽어낸 바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 곁으로 무심히 지나가는 그대 길손이여, 미안하지만 그대 또한 그렇게 걸어가 봐야 소용없으리라. 그대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말테니.”(75-76쪽)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만,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베로나에서 만난 묘지에서 느낀 바도 기억해둘 만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척도’에 맞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찾았다면 그 삶을 버려야 한다. 자신에게 꼭 맞는 삶이란 없으니 말이다.(97쪽)” 젊을 때는 열심히 살고 나이 들어 죽을 때가 되면 미련을 두지 말고 모두 내려놓으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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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구글 영어의 힘 - 평범한 미대생을 잘나가는 영어 통역사로 만든 기적의 공부법
윤승원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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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울렁증에서는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알아듣는데 한계가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합니다. 미국에 공부하러 가기 위하여 영어회화 공부를 시작할 때와 비교해보면 장족의 발전을 한 셈입니다. 그때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영어 구문을 무작정 외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황이라는 것이 모범답안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상황에 맞는 영어를 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영어 동시통역을 하시는 윤승원님의 <하루 10분, 구글 영어의 힘>을 그때 읽었더라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에는 외국인과 대화를 할 상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영어회화 공부를 따로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구글을 이용하여 관심사항을 찾아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께서 하시는 말씀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크게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미대를 졸업한 평범한 직장인이 다니던 회사를 접고 동시통역사의 길을 추구해온 과정을 요약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미국을 다녀오신 할머니께서 가져오신 미국 물건들에 매혹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만, 저자의 연배를 고려해보면 그 무렵 미국의 일용품 시장은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물건들로 메워지던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그 무렵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일용품은 물론 옷가지들도 우리나라의 것이 훨씬 우리네 정서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구글 말고도 스팸메일과 트위터 역시 영어로 이야기하는데 도움이 된다는데 공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원어민력’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을뿐더러 저자가 이야기하는 구글에서도 쉽게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저자가 창안해낸 조어(造語)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가 이해한 원어민력이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저자가 구글로 동시통역을 위한 영어공부를 하게 된 이유를 담았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무려 100쪽에 달합니다. 이유를 너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 부분은 실전편입니다. 구글과 스팸메일 그리고 트위터를 영어 공부에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이야기하는 영어는 구글 본사가 있는 미국식 영어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동시통역사가 되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말하고 듣기는 잘하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서로 다른 언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이 책에서는 미국사람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서로의 의사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바로 동시통역사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동시통역이 필요한 분야에 대한 상당한 지식(예를 들면 해당 분야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 등)을 갖추고 있어서 적절하게 의사를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원어민력’과 함께 의문이 들었던 부분입니다. 저자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예뻐져요?’라고 여쭈었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은 길을 걸을 때 앞뒤 옆에 카메라 세 대가 늘 나를 따라다닌다고 생각해. 그러면 표정도 걸음걸이도 달라지거든. 그리고 그렇게 쌓인 순간의 표정, 순간의 걸음걸이가 결국 나라는 여자가 되는거야.(226쪽)“라고 대답하셨다고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답지 않은 질문에 담임 선생님 답지 않은 답변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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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가벼운 여행 쏜살 문고
토베 얀손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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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서 책을 뽑아들고 저자소개를 비롯하여 책 내용을 조금이라도 읽어 보는 것이 책을 고르는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핀란드의 유명한 동화작가라는 설명과 <두 손 가벼운 여행>이라는 제목에 꽂혀 선택한 이 책은 열두 편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이었습니다.

단편들의 제목을 훑어보다가 표제작인 ‘두 손 가벼운 여행’을 먼저 읽었습니다. 출발지는 어디인지 모르나 런던으로 가는 배를 탄 주인공은 혼자 쓰는 객실을 예약했는데 누군가와 나누어 써야 되는 상황입니다. 런던으로 가는 여행은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정리하고 살던 곳에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캐리어도 없이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챙기는데 성공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는 어지러울 정도의 해방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좋으나 당장 불편함이 뒤따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생각하는 여행의 개념은 “떠나온 것에 매이지도 책임지지도 않으며 앞으로 올 일을 준비할 수도 미리 알 수도 없는 여행(80쪽)”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여행에 대하여 크게 평화로움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같은 공간을 모르는 사람과 공유한다는 것은 우선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단 객실에서 벗어나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겠죠? 그렇다고 추워지고 있는 갑판에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결국은 바로 향하게 됩니다. 바의 스탠드에 앉으면 흘러간 시간이 만들어낸 자신의 변화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가던 날이 장난이라는 말대로 주인공은 바에서 방을 함께 써야할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의 신세타령을 들어가며 술을 마시다 취합니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의 여행에 숨겨진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깊은 비밀 극복할 수 없는 일, 실망,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같은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런 비밀은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알려지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아는 이가 없는 어느 곳으로 떠나가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바에서 만난 그 남자 역시 자신의 비밀의 꼬투리를 잡은 것 같다는 이유로 피하는데 그 마무리가 모호합니다.

‘두 손 가벼운 여행’을 읽은 뒤 나머지 단편들을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생략과 은유가 많은 탓이었을까요? 그리고 이야기들의 마무리는 항상 모호해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낚아채는데 항상 실패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머지 작품들 가운데 주목한 작품은 ‘기억을 빌린 여자’였습니다. 화가로 명망을 얻은 스텔라는 15년 전에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던 집을 찾는데,  그곳에 남아있는 반다 언니가 전해주는 옛날이야기는 스텔라의 기억들과 맞아 들어가지 않습니다. 반다가 일부러 사실을 왜곡시킨 건지, 아니면 스텔라의 기억이 왜곡된 것인지 정말 헷갈립니다. 스텔라가 “나는 이미 도둑 맞았어”라고 한 말로 반다가 틀린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토베 얀손의 단편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아무래도 핀란드라는 나라와 그곳 사람들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인 듯합니다. 단편집 앞에 수록한 일본 어린이의 편지를 읽어보면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열세 살 되었다는 일본 어린이는 얀손의 작품세계를 잘 이해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얀손이 보냈을 답장을 같이 곁들였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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