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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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는 책입니다. 1993년에 발표되었지만 2023년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노벨상 효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합니다. 작가는 이 책이 나오기 20년 전부터 파리에서 40떨어진 신도시 세르지퐁투아즈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노태우 대통령 시절, 분당, 일산, 평촌, 산본 등지에 신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는 건설현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작가는 신도시에 들어가게 된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고작 몇 년 만에 무()에서 솟아났고, 그 어떤 기억도 갖고 있지 않고, 거대한 영토 여기저기에 건축물들이 흩어져 있으며, 경계선이 불명확한 장소로 들어간 것은 충격적인 경험이었다.(7)” 그런데 그곳에서는 다양한 장소에서 살다 들어온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사는 곳에서 그리고 파리로 가는 길에 이용하는 수도권 고속 전철에서 만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보지 못할 장면, , 이름 모를 사람들의 몸짓, 벽에 그리자마자 곧 지워질 그라피티 들을 그대로 기록하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그것들이 마음속에 어떤 감정, 동요 혹은 반발을 촉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1985년부터 1999년까지 보고 들은 것을 일기의 형식으로 남겼고, <바깥 일기><밖의 삶>으로 묶어냈다고 합니다.


<바깥 일기>를 읽다보면 작가는 보고 들은 것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적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황에 대한 작가 나름의 판단이나 생각을 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기라고 하면 흔히 자신과 관련된 일과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기 마련입니다만,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Journal du dehors)>는 독특한 형식의 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작가 자신이 밋밋한 글쓰기(écriture plate)라고 명명한 건조한 글쓰기가 에르노의 문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글쓰기는 저학력의 부모에게 소식을 전할 때 사용했던 문체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으려 노력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문체가 건조한 편이라서 이 대목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작가와의 만남에서 김용택 시인은 제가 쓴 간단한 글을 읽고서 지나치게 건조한 느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건강이나 여행에 관한 정보를 요약하는 글을 많이 쓰다 보니 그런 경향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옮긴이는 에르노의 문장에서는 정련된 느낌을 넘어서 거의 금욕적인 느낌이 난다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덜어내는 작업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즉 적확한 수식어를 더해가는 것이 아니라 수집한 정보에서 불필요한 요소들을 깎고 또 깎아내는 수정작업을 통해 정련된 글을 완성해냈다는 것입니다. “차를 몰고 생드니 근처를 지나감. 초고층 건물 프레엘. 그 건물에 사람이 사는지, 아니면 사무실만 있는지 알 수 없음. 멀리서, 그 건물은 텅 비고, 시커멓고, 해로워 보인다.(49)” 등의 대목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언젠가 저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글쓰는 작업이 끝나면 <바깥 일기>의 작가처럼 저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글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구체화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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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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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어려운 책들을 주로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파스칼 키냐르의 <눈물들> 역시 그런 책읽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파스칼 키냐르는 <세상의 모든 아침>으로 처음 만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자세가 어때야 하는 지를 배운 책읽기였는데, 독후감을 다시 읽어보니 그 안에서도 눈물들이 비올라 디 감바의 연주곡으로 언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제가 쥐고 있는 눈물이라는 화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눈물을 새롭게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옮긴이의 말은 프랑스어 탄생의 현장 스케치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보니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8세기말에서 9세기 초에 있었던 이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프랑크 왕국의 카롤로스 왕조의 2대 왕이자 서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카롤루스 대제를 전후한 시기입니다. 이야기들은 정사라기보다는 야담집에 담길 그런 이야기입니다. 야담이라고 보는 이유는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이야기들이 적나라하게 혹은 은근한 비유로 기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 책에 언급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앎이 많지 않아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어의 탄생과 관련하여 8422월 퐁트누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서프랑크 왕국의 샤를 2세와 동프랑크 왕국의 루트비히2세가 맺은 스트라스부르 서약은 초기 프랑스어(로만어)와 고고지독일어로 각각 작성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프랑스어로 쓰인 최초의 문서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부분은 이렇습니다. “바로 842214일 금요일, 추위 속에서 그들의 입술 위로 기이한 안개가 피어오른다. 이 안개를 프랑스어라고 부른다. 니타르는 최초로 프랑스어를 문자로 기록한다.(140)”


옮긴이 역시 이 책의 제목이 <눈물들>인 까닭이 궁금하다고 적었습니다만, 알자스에 살던 무녀 사르가 했다는 눈 안쪽에 있는 미세한 분홍빛 살점-고대로부터 어머니들의 살점이라고 알려진-에 관한 나름의 해석을 소개했습니다만, 결국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1462행에 나오는 만물의 눈물(Lacrimae rerum)’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년기의 눈물로 충분하다. / Lacrimae rerum(만물의 눈물). / 하늘에서 떨어지는 원자들은 만물의 눈물들이다라는 시귀를 인용하면서 베르길리우스는 지상에 존재하는 비길 데 없는 형상들과 풍경들은 다시 볼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들이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을 건드리는 한, 결국 고통의 눈물이 되고야 만다라고 썼다(213)”라고 정리합니다.


본문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 차이를 생각해볼만한 대목이 있습니다. “여자의 삶에서 더 끔찍한 것은 남자는 우리를 욕망하는데 우리는 그를 사랑한다는 거예요. 우린 누구나 한 남자에게 송두리째 자신을 바치는데, 남자는 여자를 꿰뚫자마자 이내 여자의 품에 있던 사실마저 까맣게 잊고 말아요. 그리고 모르는 것을 배우겠다고 천지 사방으로 분주히 돌아다니잖아요.(30)”


글쓰기에 대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Vae qui scribunt, scribentes enim sceribunt nequm! (글을 쓰는 자들은 불행할지니, 글을 씀으로써 쓰면 안 될 것을 쓰기 때문이로다!)”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글쓰기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손을 땅으로, 돌로, 납으로, 동물 가죽으로, 지면(紙面)로 내리는 것이며, 불행을 기록하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책에 글을 쓰는 사람은 책 그 자체다. 그런 식으로 시대와 세계에 따라 낯선 의미가 도출된다라는 아인하르트가 아직 프랑크족의 왕이던 샤를마뉴에게 했던 말을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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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새뮤얼 버틀러 지음, 한은경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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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더 할지 모르겠으나,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사례들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분야를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감당하게 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습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에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언제쯤 완전히 사라지게 될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을 완벽하게 외면하게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있었던 러다이트 운동이 새삼 소환되는 것 같습니다. 기계의 발전으로 생계를 위협받게 된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기계를 파괴하는 폭동으로 발전한 사회운동입니다. 정부는 자본가 편을 들어 노동자들을 탄압했지만, 당시의 영국의 식자층은 노동자 편을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면서도 기계 산업의 발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작품을 읽었습니다. 새무얼 버틀러의 <에레혼>입니다. 화자인 젊은이는 영국에서보다 빠르게 돈을 모아보겠다는 생각으로 1868년 새로운 식민지로 이주하여 목장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원주민을 꼬드겨서는 신천지를 찾아나섰고, 우여곡절 끝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NOWHERE) 나라 에레혼(EREHWON)을 발견합니다. EREHWONNOWHERE를 거꾸로 쓴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이상향이어야 할 에레혼은 화자는 물론 저 역시도 이상한 나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질병은 죄악으로 간주되어 병자는 처벌받는 반면, 범죄자는 병원에 입원시키고 공공의 비용으로 치료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병을 숨기려 별짓을 다하게 됩니다.


당시의 에레혼은 12-13세기 무렵의 유럽문명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400년 전만해도 높은 기계문명을 보유했다는 것을 화자는 확인합니다. 문제는 당시 가장 학식이 있는 가설학 교수가 기계는 궁극적으로 인류를 대체하게 되며, 식물에 비해 동물이 우세하듯이 기계는 동물보다 우원하고 동물과는 다른 생명력을 지닌 약동하는 존재가 될 것(104)’을 예견하면서 사용되지 않는 기계는 모두 말소되었고, 기계 계량이나 발명은 최악의 범죄로 규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래된 기계들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고, 실생활에서는 기계를 이용하지 않게 되면서 기계문명이 퇴보를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70세가 되기 전에 건강이 나빠지거나 병에 걸리거나 어떤 면에서든 신체에 이상이 생길 경우, 동족으로 구성된 배심원 앞에서 재판을 받는다. 그리고 유죄 판결이 나면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면서 사건의 경중에 따라 선고(138)’를 받게 됩니다. ‘폐병에 걸린 사람은 동료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감옥에 가둔다고 했습니다. 요즘 화두가 되는 동료시민이라는 개념을 여기에서 보게 되어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에레혼 사람들은 정의, , 희망, 두려움, 사랑 등 인간의 특성을 의인화한 신들을 공개적으로 숭배하며, 삶이란 미래와 과거란 두 개의 축에 펼쳐진 파노라마와 같아서 흐름을 더 빠르게 하지도, 머물게 하지도 못하고, 내용이 좋건 나쁘건 간에 모조리 봐야 하고, 한 번 본 내용은 볼 수 없다고 믿습니다.


화자는 결국 에레혼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열기구를 만들어서 탈출한 다음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가 이상향이라고 믿은 곳은 스스로 혹은 집단의 편견에 의하여 왜곡된 반이상향인 경우가 많습니다.


산업화와 비인간화가 확대일로에 있던 당시 영국사회를 풍자하기 위하여 쓴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대안이라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에레혼 사람들을 포획하여 퀸즐랜드로 이주시켜 노동을 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에레혼 사람들의 삶은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 제일이지 싶습니다. 당시 서구 제국주의의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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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사 - 므네모스의 책장
임다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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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그 기억을 조작할 수도 있다면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허구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아입니다. 임다미 작가의 <기억술사>는 타인의 머리에 손을 얹으면 그 사람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은 타인의 기억을 보존해주는 일에 주력하는 한 편 다른 한 사람은 타인의 기억을 없애거나 왜곡시키는 일을 합니다. 선오가 자신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무릎에 머리를 얹고 쉬는 중에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으면서 깨닫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여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헤어지게 된 것은 자신의 재능을 잘 써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 듯합니다. 그리하여 므네모스 기억력 치료소를 열고 기억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재능을 가진 조성환은 인지 치료의 대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데 사실은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기억을 조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조성환은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두려운 기억, 지우고 싶은 기억만 싹 긁어서 없애면 아주 빠른 치료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선호가 도움을 주고 있는 희주는 괴로운 기억이 무두 없어지면 그 순간엔 좋겠지만, 앞으로 괴로운 일이 생겼을 때 예전에 같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었는지 찾아볼 기억이 없어 당황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억술사>에서도 소개를 한 바 있고, 어느 책에선가도 소개받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도 보았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잊혀 지지 않는 기억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해당 기억을 지워주는 일을 하는 전문가가 등장합니다.


사실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상을 자주하지 않게 되면 조금씩 흐려지다가 시나브로 기억의 심연으로 가라앉으면서 자연스럽게 지워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마음에 강하게 작용한 기억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기도 합니다. 이는 가끔씩 옛 기억을 끄집어내는 회상작업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기억이 다시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왜곡된 기억을 심어넣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기억은 완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억술사>에서는 기억이 사라지는 문제를 안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치매환자를 비롯하여 정신적 압박감으로 기억이 엷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희주와 연아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조성환으로부터 기억을 지우는 시술을 받게 됩니다. 기억이 사라지는 문제는 특별한 계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정신적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기억을 왜곡하거나 기억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신활동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기억과 관련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남들로부터 자신이 인장받기를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정신적 압박을 크게 받다보니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존감이 떨어지게 되면서 기억력 장애가 생기는 것인데 아주 오래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깨닫기가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의 기억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해결방법으로는 스스로가 존중받을 만하다는 것은 자신부터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비교적 잘 읽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희주의 본가에 대한 설명이 분명치 않아서 읽는 흐름이 깨진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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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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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은 최근에 미국의 출판사와 판권계약이 이루어져 영어로 출간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읽게 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한국과학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인간형 기계 콜리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3월에 경마장에 와서 투데이라는 이름의 말과 함께 경마에 나선 기계 기수입니다. 현장에서 일할 때의 이름은 C-27이었는데 사고로 폐기되면서 주인공인 연제가 구득하게 되면서 콜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천 개의 파랑>은 콜리가 투데이의 등에서 낙마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끝이 납니다. 문학작품에서 흔히 사용되는 수미상관(首尾相關)의 기법을 적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도 산업현장에서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들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고 이제는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인간을 도와주는 활동형 자동기계도 등장하고 있으며 인간형 기계도 조만간 등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니까 <천개의 파랑>의 시대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콜리는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 즉 중앙제어장치에 경마용이 아니라 학습용 집적회로가 들어가는 바람에 경마에서 일반적으로 활동하는 기수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데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낙마함으로써 스스로는 폐기될 수준으로 손상을 입게 되는 선택을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형 기계가 기수로 등장하면서 경마용 말이 사람을 기수로 태울 때보다 훨씬 가벼운 기수를 태움으로서 부담이 줄었지만, 대신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부담이 새로 생긴 것입니다. 결국 조기에 부상을 입고 경마에서 물러나 안락사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주인공인 연재의 가족은 삶이 힘들기만 합니다. 어머니 보경은 젊어서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중에 불의의 화재사고로 은퇴를 하게 되었고, 사고과정에서 만난 소방관과 결혼을 하게 되지만 두 딸을 얻은 뒤에 불의의 사고로 순직하고 말았습니다. 어렵게 두 딸을 키워가지만 설상가상으로 큰 딸 은혜가 소아마비를 앓으면서 모녀들의 삶은 꼬여가기만 합니다. 그래도 두 딸들은 나름 바르게 컸습니다.


보경이 경마장 근처에서 식당을 하는 까닭에 은혜는 경마장에서 많은 위안을 받게 되는데, 그런 환경이 연재와 콜리의 만남이 가능해졌고, 이 소설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연재는 망가진 채로 있는 콜리를 처음 만났을 때, 일반적인 기계 기수와는 다른 무엇이 있음을 깨닫고, 수리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 재산을 탈탈 털어서 콜리를 샀지만,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콜리를 수리하고 안락사 당할 운명에 처한 투데이를 두고 최선의 길을 찾으려는 연제와 반친구 지수, 언니 은혜, 엄마 보경, 경마장 수의사 복희, 경마장 관리사 민주, 연제의 사촌 오빠인 방송기자 서진 등이 힘을 합칩니다. 연제와 콜리가 생각해낸 방법은 부상 중인 투데이가 안락사를 당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콜리와 함께 경마에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마에서 콜리가 다시 낙마를 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콜리가 처음 낙마를 한 것도 투데이가 콜리의 무게를 힘겨워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주에 나섰을 때는 딴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문득 하늘이 푸르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설명합니다. 입력된 정보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있는 인간형 기계가 스스로를 버리고 이타적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쟁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과학문학상 심사위원 가운데는 이 작품의 마무리가 아쉬웠다는 분도 계셨는데, 기계 인간이 말이 통하지 않는 투데이가 아니라 사람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구도를 넣었더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예전에 본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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