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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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을 한국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작품 <내 이름은 빨강>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파묵의 첫 번째 미스터리 작품인 것 같습니다. 배경은 1591년 겨울 이스탄불입니다. 당시 터키회화의 주류를 이끌던 세밀화를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파묵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는 이난아 교수님은 최근에 발표한 <오르한 파묵-변방에서 중심으로; http://blog.joinsmsn.com/yang412/13126504>에서 “페르시아의 회화 전통과는 달리 터키의 세밀화는 일상생활을 사실적으로 경쾌하고 묘사하고 있다.(이난아 지음, 오르한 파묵-변방에서 중심으로, 121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파묵이 <내 이름은 빨강>에서 선보이는 독특한 소설적 구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즉,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 버렸다.(13쪽)” 시작하는 첫 번째 문단의 제목은 ‘1. 나는 죽은 몸’입니다. 즉 죽은 자의 말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등장인물은 물론 죽은 자, 개, 나무, 금화, 혹은 죽음과 같이 살아있는 인간 이외의 무생물에서 무형물까지도 스토리를 이어가는데 필요한 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동서양 문명이 충돌하고 있는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파묵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내 이름은 빨강>의 여주인공 세큐레의 아버지 에니시테는 베네치아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중세유럽의 회화의 화풍을 터키의 전통 회화기법에 녹여보려는 새로운 시도로 술탄을 설득하여 헤지라 천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화집을 비밀리에 제작하게 되었는데, 이 작업은 참여하게 된 세밀화가들이나 참여하지 못하게 된 세밀화가들 사이에서 갈등을 불러일으켜 결국은 살인이 거듭 일어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여주인공 세큐레를 둘러싸고, 어릴 적부터 세큐레를 사랑해온 이종사촌 카라와 전쟁터에 나간 세큐레의 남편의 소식이 4년째 끊기면서 형수에게 연정이 노골화되어가는 시동생 하산, 그리고 아내의 하산의 구애에 놀란 세큐레가 두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오자 딸에 대한 사랑이 점차 커져서 곁에 두려는 에니시테의 심리가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사랑이야기도 중요한 축입니다. 세큐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카라와 재혼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중세 터키사회의 결혼풍습과 남녀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죽은 채 등장하는 엘레강스와 세큐레와 카라의 혼인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는 에니시테가 죽음을 맞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터키인들의 생사관도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죽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무척 슬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슴이 훼하니 뚫리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생을 떠나오는 순간, 뭔가가 팽창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이쪽으로 넘어오는 과정은 꿈속에서 잠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 나는 잠들 듯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짜릿한 느낌을 맛보면서 이쪽으로 옮겨왔다.(17쪽)” 그리고 엘레강스를 죽였던 살인자에 의하여 죽음을 맞게 되는 에니시테의 증언도 중요합니다. 에니시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동화에서 찾아온 죽음을 맞은 노인이 당호하게 “아니야. 너는 다 끝나지 않은 내 꿈이야”라고 말하면서 죽음이 손에 들고 있던 촛불을 단숨에 불어 껐는데, 그리고 노인은 20년을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두 건의 살인이 진행되는 동안 살인자가 누구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즉 살인한 자는 있지만 누구인지 밝히는 과정으로 후반부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제목이 나오게 된 배경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에니시테가 살인자가 내리치는 물감병에 맞고 쓰러졌을 때 암시되었다가,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31.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분명하게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전설적인 거인을 멋진 검으로 두 동강 냈을 때는 거인의 낭자한 피 속에, 뤼스템이 머물던 궁전에서 아름다운 공주와 사랑을 나누며 밤을 보낼 때는 그들이 덮었던 이불의 구김살 사이에 있었다.(331쪽)” 그렇습니다. 빨강의 본명은 피였습니다.

 

어떻든 살인자는 분명 엘레강스, 에니시테와 같이 세밀화작업을 하던 동료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가 왜 살인을 저질러야 했는지는 후반부에서 드러나게 될 것 같습니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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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 - 개정증보판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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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길어 읽노라면 숨이 찰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내 사랑, 당신 사랑>으로 줄여 부를까 합니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른 다음에 적어두었던 글이나 사진을 다시 꺼내 들여다 보면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출판사 이벤트에 “오래 전 써 두었던 여행기록을 끄집어 내 읽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를 찾아가는 마음의 여행을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를 찾는 여행에 동반자로 삼아보고 싶어지는 책입니다.”라고 적어서 당첨이 된 책입니다.

 

<내 사랑, 당신 사랑>은 2007년 봄, 첫 번째 여행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최갑수님의 여섯 번째(?) 여행에세이가 되는 모양입니다. <당분간>에서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정거장을 거쳐 어느 이름모를 역으로 이어지는 여행느낌을 정리했던 저자는 <내 사랑, 당신 사랑>에서는 첫 번째 계절, 두 번째 계절, 그리고 세 번째 계절을 거쳐 남아있는 나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글보다 사진에 눈길이 더 머물렀다고 하면 작가에게 미안한 노릇입니다만, 그만큼 사진에서 무언가 사연이 읽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작정을 하고 여행을 떠나 써내려간 글이라기보다는 앞서 제가 적은 오래 전 써두었던 여행일기에서 낚아 올린 생각들을 정리할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다보니 에필로그에 그런 심사가 읽힙니다. “다시 들춰보았다. 마루에 걸터앉아 봄이 가버렸다고 생각하는 그런 날이었다. (…) 다시 보아도 문장은 어색하고 사진은 유치했다. (…)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단 하루의 봄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께서 우려하는 것처럼 문장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사진은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고 있습니다. 작가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깨달은 것, “인생은 지나가며 사물은 사라지고 풍경은 퇴색한다는 사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 부디, 슬퍼하지 말자. 우리가 길을 추억하듯, 길은 때로 우리를 추억할 것이니.(17쪽)” 정말 길이 우리를 추억해줄까요?

 

저의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 군산 철길마을을 다녀오셨군요. 그런데 군산에는 경안동이라는 동네는 없답니다. 아마도 경암동이겠지요. 그리고 2003년 여수가는 기차에서 만난 한 여자와 울진 용추곶에서 따로 만난 한 남자는 서로 아는 사이 맞아요? 아무리 세상이 좁다고 해도 이런 인연이 있을 수 있을까요?

 

세상 여행자가 100명이라면 100명 모두가 여행하는 이유가 제각각일 거라면서 ‘당신은 왜 여행을 떠나나요?’라고 묻는 작가는 퇴근길에 그저 여관이 그리워 허름한 여관에 들어 양말을 빨고 맥주를 시켜 마시면서 여관방을 구경하다가 집에 갔다는 고백(?)을 듣고는 타고난 여행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팔자에 역마살이 든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한순간이 때론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나,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사실’은 살아오면서 어떻게 알아지게 되었습니다만, 마지막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길이 우리를 잃어버린다는 사실.(193쪽)’은 작가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니 적지 않은 여행을 해보았지만 무작정 떠난 여행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작가님은 붙임성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스스럼없이 말을 섞을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오지랖이 넓어서인가요? 아니면 외로워서? “당신이 외롭다면 당신의 외로운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은 여행자다. 여행자는 당신의 외로움을 가지고 먼 길을 걸어가 바다에 던져버리거나 깊은 숲 속에 묻어버릴테니까(138쪽)”라는 인도 순례자의 말에 대한 믿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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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과 윤리 - 출간 30주년 기념판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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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윤리학 분야의 거장이자 동물해방론자인 프린스턴대학의 피터 싱어교수가 쓴 <사회생물학과 윤리; 원제 The Expanding Circle: Ethics, Evolution and Moral Progress>는 1981년에 출간되어 우리나라에는 1999년 김성한님의 번역으로 처음 소개되었고, 2011년에 30주년 기념판으로 나온 것을 역시 김성한님이 번역하여 2012년 소개되었습니다.

 

어디에서 이 책을 발견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만, 아마도 매주 연재하는 북리뷰에서 다루어볼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는 것을 읽어가면서 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윤리의 본질을 천착해온 저자는 종교가 더 이상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고 과학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우리에게 <통섭>으로 친숙한 에드워드 윌슨교수가 1975년에 내놓은 〈사회생물학:새로운 합성 Sociobiology:The New Synthesis〉였다고 합니다. 윌슨은 이 책의 마지막장에서 ‘윤리를 철학자들의 손에서 과학자의 손으로 넘겨주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밝히고 있어 철학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것인데, 싱어교수는 윌슨교수의 윤리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접근방식이 부정할 수 없는 미숙한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접근 방식은 윤리에 대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알려주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아직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준비가 되어있지 못한 점입니다. 즉 윌슨교수의 <사회생물학>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싱어교수의 비판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책은 1995년 민음사에서 핵심을 요약하여 <사회생물학 1,2>로 소개하였는데 지금은 절판이 되어 구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싱어교수는 <사회생물학과 윤리>에서 윤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서 이타성의 기원을 추적하는데서 사회생물학적 접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윤리의 생물학적 토대를 인간의 윤리에서의 혈연에 기반한 이타성에서 호혜적 관계를 기대한 이타성, 나아가 집단의 이타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타성을 논하려면 인간의 이기성을 논할 필요가 있는데, 호혜적 이타성에 대한 해석은 1976년 나온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83563>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 종족유지본능에 따른 이타성으로 해석이 가능한 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타성에 대한 다른 시각을 매트 리들리교수의 <이타적 유전자; http://blog.joinsmsn.com/yang412/13147182>에서는 호혜주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헌신성이 이타적 행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리들리교수의 주장이 도킨스교수의 주장을 번복한다기 보다는 보완하는 설명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싱어교수는 자기 보존에 관한 다윈의 진화이론과 윤리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살피고 있습니다. 사실 진화는 생존을 위한 유전자의 본능적 투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윤리의 핵심요소라고 할 이타성과 연관을 지을 수 있는 길은 인간의 이성에서 찾고 있습니다. 즉, 혈연과 공동체의 성원들을 보호하려는 유전적 토대를 가진 이타성에서 윤리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지만, 이러한 이타성이 곧 윤리는 아니며, 이성 능력이 역할을 함으로써 오늘날의 윤리로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정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문화가 유전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인간의 지식이 확장됨에 따라 유전자의 구속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책의 특징은 옮긴이가 잘 정리하고 있는 풍부한 각주와 각 장의 논지를 요약하여 먼저 읽을 수 있더록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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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박병철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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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일주일 뒤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스티븐 헤렉감독이 2002년작 영화 <어느 날 그녀에게 생긴 일; http://blog.joinsmsn.com/yang412/4076152>에서 다룬 주제입니다. 이 영화의 리뷰를 정리하면서 리더스 다이제스트 2002년 10월호에 다룬 할리우드의 유명한 남자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췌장암으로 진단받고 6주 만에 죽은 동생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내용을 인용하여, 사랑하는 가족이 미처 작별할 틈도 없이 이별을 한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낸 적이 있습니다.

 

죽음이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안다는 것은 궁금하기도 하고 피하고 싶기도 한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미리 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 임피교수의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는 바로 우리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예측한 책입니다. 일반화가 가능한 인간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지금은 지구를 지배하고 있지만 인류가 멸종할 수도 있다는 가정도 검토하고,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더 나아가 태양계와 우주가 소멸하는, 진정 세상이 끝나는 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흔히는 어떤 일이 시작하는 것을 먼저 설명하고 끝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이 순서 같습니다만, 저자는 거꾸로 세상이 끝나는 상황을 먼저 설명한 다음에 세상의 시작을 설명하는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43832>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저자는 덴마크의 유명한 만화가 스톰 피가 “무언가를 예측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에 속한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과학의 주된 관심사가 끝이 아니라 ‘진행되는 과정’이지만, 모든 만물의 ‘끝’을 조명하는 것”이 책을 쓴 목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이야기를 듣다가도 끝이 용두사미가 되어버리면 흥미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시시한 이야깃거리도 흥미로운 결말로 이끌어 듣는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야 진짜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2부를 통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현대의학을 필두로 하여 다양한 영역의 발전으로 기대여명을 3배 이상으로 늘려왔지만 결국은 늙어감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을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지구의 생태계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사건에 불과하다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연이 지독하게 인색한 재활용의 선수라는 점을 다음처럼 일깨우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자들은 새것이 아니라 유구한 세월동안 대물림하여 재활용되어왔다.(74쪽)” 결국 생명체의 실체는 구성원자들의 재활용에 불과하다고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생명의 삶을 통해서 얻어진 그 무엇은 유전자라는 기록을 통하여 다음 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개념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해해온 것처럼 환생이라고 하는 구체적 상황을 이름이 아니라, 유전자를 통하여 미시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3장부터 6장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지구 생태계의 종말을 논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류의 종말에 대해서는 진화과정을 포함하여 태양계 생태계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난 40억년 동안 지구에는 거의 5억종의 생명체가 존재했지만, 그 가운데 2%만이 현재 생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생명체는 물리적인 변화나 환경의 변화로 인해 멸종할 수도 있지만, 개체 수나 생식 능력, 유전자 특성, 지리적 분포, 다른 종과의 관계 등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비교적 화석이 풍부한 지난 5억년 동안을 살펴보면 생물종의 수와 다양성을 추정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하는데, 4억 3500만년전, 3억 7500만년전, 2억 5000만년전, 2억 500만년전 그리고 6500만년전 등 모두 다섯 차례의 대량멸종이 자연재해와 관련하여 일어났다고 합니다. 특히 육지와 바다에 살던 생명체의 95%가 사라진 고생대 말기인 2억 5000만년전의 대멸종은 화산폭발에 의한 기후변화가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고, 6500만년전의 대멸종은 운석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멸종이 일어났던 2억 5000만년전에 있던 페름기의 대폭발을 계기로 지구상의 생명체가 엄청나게 다양해지고, 멸종하는 속도보다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지금 인류에 의한 여섯 번째 대량멸종이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핵전쟁 등이 대량멸종의 원인이 될 가능성을 논하면서 과거 지구생명체에게 재난을 안겼던 자연재해의 가능성도 짚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운석이나 소행성의 충돌, 그리고 외계로부터 유입되는 미생물에 의한 신종전염병의 가능성도 포함됩니다. 미미 레더감독의 1998년작 영화 <딮임팩트>가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 영화는 미확인 혜성과 충돌을 앞둔 지구적 대응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국적 우주선을 발사해서 혜성을 파괴하거나 그 궤도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한편, 미국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할 지하요새를 건설하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의 샘플과 20만 명의 각계 전문가들, 컴퓨터가 추첨한 50세 미만의 미국 시민 80만 명을 2년간 수용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지구의 에너지원이 되고 있는 태양의 종말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말년의 태양의 활동을 이렇게 예측합니다. “말년의 태양은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행동한다. 외피는 차가워지면서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는 반면, 중심부는 안으로 수축하면서 온도가 1억℃까지 상승한다. (…) 새로운 핵반응은 잠시 동안 엄청난 불꽃을 낳고, 평소의 1000억 배에 달하는 가공할 에너지를 방출한다.(246쪽)” 영드(영국드라마) 마니아들은 빨간 영국식 공중전화부스를 기억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시간여행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닥터 후>에서 나온 태양이 붉게 타오르면서 장엄하게 죽어가는 장면이 이럴까 싶습니다.

 

태양이 죽어간다면 당연히 지구적으로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겠지요. 그래서 천문학을 하시는 분들이 태양계 밖에서 생물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역시 ‘지구에서 도망가기’라는 제목으로 인류가 살아남을 방법을 어떻게 모색하고 있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신천지를 찾기 위하여 떠나는 미래인류의 모습은 쉽게 연상되지 않습니다. 신대륙을 찾아 돛을 올리고 항구를 떠나던 콜럼버스의 모습이 그랬을까요? 드라마 스타트랙에서 나왔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만, 저자는 무거운 짐이나 사람을 우주선으로 실어 나르지 않고 공간 이동시키는 방법은 지난 50년 동안 SF소설의 단골메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니 초등학생 때 읽었던 공상과학 동화에서도 ‘조운트’라고 하는 공간이동방법을 미래인류가 사용하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태양이 늙어가서 백색왜성이 되는 시나리오 말고도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가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하는 상황도 예견된다고 합니다.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 은하계로부터 220만 광년 떨어져 있는데 초속 130km의 속도로 다가오고 있어 앞으로 30억년이 지나면 우리 은하계와 합쳐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5억년에 걸쳐 유령처럼 상대 은하를 통과하게 될 두 은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교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사는 태양계가 은하의 꼬리를 타고 우주공간으로 탈출하게 될 확률이 12%, 안드로메다은하로 편입할 가능성이 3%라고 합니다. 하지만 새로 생긴 은하의 중심부로 내던져 은하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사라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 은하계가 안드로메다은하와 합쳐 밀코메다라는 새로운 이름의 은하로 탄생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핵융합의 한계온도를 간신히 넘긴 상태에서 희미하게 목숨을 보존하는 소수의 백색왜성만이 남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세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에 나오는 대사처럼 ‘이도 없고, 눈도 없고, 맛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존재로 남았다가 결국은 우주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주의 마지막 순간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궁금하게 됩니다. 어느 코미디언은 궁금하면 500원만 내면 알려준다고 합니다만, 우주의 마지막 순간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가설은 대체적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커지고, 차가워지고 희박해지는 우주의 빅뱅과정이 특정 시점에서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차가운 종말이 첫 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결말입니다. 이와는 달리, 물질이 서로를 잡아당기는 효과가 누적되어 어느 임계치에 이르면 팽창하던 우주가 최댓값에 도달하여 한숨을 내쉬고 빅뱅의 과정을 역으로 되밟으면서 수축하기 시작한다는 뜨거운 종말이 두 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결말입니다. 우주의 종말이 차가울지 뜨거울지에 대하여 학자들의 논쟁이 분분하지만 최근에 암흑에너지라는 개념이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읽은 <우리 안의 우주; http://blog.joinsmsn.com/yang412/13146507>를 통하여 개념을 잘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쓴 닐 투록은 폴 스타인하르트와 함께 ‘주기적 우주이론’을 제안해 우주물리학은 새로운 숙제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주기적 우주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수조 년을 주기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 주기는 중단없이 영원히 반복된다.(364쪽)”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우주>에서 이 부분을 읽고 정리한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빅뱅 이후에 우주는 팽창했다가 수축하고, 또 순환할 때마다 우주의 크기는 커지고 점점 더 많은 물질과 복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오실로스코프에 나타나는 파장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모습을 연상하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輪廻)와 겁(怯)의 개념, 그리고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이르는 알쏭달쏭한 말들이 바로 우주물리학이 밝혀낸 것들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연일까 싶습니다.” 임피교수는 “앞으로 지어질 중력파 감지 시설과 우주에서 중력파를 찾고 있는 플랑크 위성이 좀 더 세밀한 데이터를 보내온다면 우주가 일회용인지, 아니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지 판정이 내려질 것이다.(365쪽)”라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임피교수는 “과학은 우주의 종말을 예견할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이 분야에서 과학자들은 최고로 난해한 질문을 제기하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최상의 이론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우주의 종말은 모든 과학을 통틀어서 가장 불확실한 분야이기도 하다.(372쪽)”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가 “우주론 학자들은 실수를 자주 범하지만 결코 의심하지는 않는다.”고 다소 비꼬는 듯 말했다고는 합니다만, 우주의 신비를 밝히려는 그들의 노력은 결코 폄하할 수 없다 하겠습니다.

 

‘마술 같은 사건으로 가득 찬 이 우주에서 마지막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라는 임피교수의 마무리 글이 인류의 부단한 노력을 다그치는 일갈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주에서 빛이 사라지면 끈기 있고 독창적인 생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 어쨌거나 우리는 생각이 없는 물질보다는 우월한 존재임이 분명하다.’라고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읽고서, ‘크리스 임피교수가 안내하는 우주의 시원으로 가는 여행은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덕분에 유익하고 재미있었다.’고 정리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의 전작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를 읽은 느낌으로 대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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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1
주현성 지음 / 더좋은책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인문학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도 모르던 제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보면, 인문학이 대세라는 말이 맞기는 한 것 같습니다. 인문학공부에 왕도는 없다고들 해서, 인문학이라고 하면 닥치고 읽고는 있습니다만, 여전히 코끼리 다리 만지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입문서로 좋다고 하면 우선 눈길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역시 그런 생각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읽고 얻은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이라는 부제가 달린 것처럼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개론서 형식으로 인문학을 이루는 가장 기본 개념이라고 할 심리학, 회화, 신화, 역사, 철학, 글로벌이슈에 이르는 여섯 개의 핵심분야를 한권의 분량으로 압축하려는 의욕이 오히려 수박 겉핥기가 되고 만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요약하고 있는 먼저 책내용을 소개드립니다. “심리학편에서는 문학과 문명을 해석하는 데 가장 많은 심리적 기초를 제공했던 프로이트부터 현대 심리학의 대세라 할 수 있는 인지심리학까지 순서적으로 다루었으며, 다양한 심리학의 관찰 실험법과 베스트셀러 심리학 책들의 내용까지 살펴보았다. 회화에서는 회화 지식의 흥미를 각인시키기 위해, 회화 운동이 본격화되는 근대의 인상파부터 다루기 시작했으며 최대한 각 유파 간의 인과관계를 추적하여 현대 회화까지 소개했다. 신화편에서는 유럽 문화가 주도적인 현대사회에서 첫 번째 교양이 되어버린 그리스신화를 다루었다. 기존 신화를 다룬 책들은 많은 내용들을 보여주느라 정리가 잘 되지 않는 점을 염려해, 신화의 주요 주인공인 올림포스12신과 테세우스 등 전쟁 영웅들만을 골자로 다룸으로써 그들의 계보를 쉽게 정리할 수 있게 했다. 역사편은 서양 유럽사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단순히 교과서식 서술을 피하고 역사적 인과관계가 있는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원인과 결과의 세계사로 구성해보았다.인문의 중심이며 그 해석의 기초를 제공하는 철학. 그러나 철학은 그 쟁점들을 단순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주요 쟁점들을 담아내다 보니, 많은 분량을 할애하게 되어 현대 이전의 철학과 현대의 철학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철학 편에서는 기존의 쉬운 철학 안내서들이 중요하지만 난해했던 쟁점들을 철학자의 사변 이야기로 돌아간 것을 지양하고, 최대한 쉽게 쟁점들과 맞서려고 했다. 특히 현대 철학 부분에서는 기존의 철학서들이 유럽파와 영미파 전공자로 나뉘어 반쪽만을 소개한 데 반해, 처음으로 두 파를 모두 소개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이슈는 현대사회의 쟁점인 세계화, 자유무역, 환경, 종교 및 지역 분쟁들을 소개해 현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해보았다.(6-7쪽)”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여섯 개의 주제가 책 한권의 분량으로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독자도 많을 것 같은데, 몇 쪽으로 요약하기 위하여 작가적 역량을 총동원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한편, 저자가 사용한 원전을 밝히지 않고 있어 보다 깊이 파고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독자로서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다만 철학부문에서는 그리스철학으로부터 현대철학까지 철학이 발전해온 과정을 잘 요약하고 있고 특히 복잡하게 나뉘고 있는 현대철학의 계보를 가늠할 수 있었던 점은 참고할만 했습니다.

 

한 가지 더 아쉽다 싶은 대목은 이 책에서 굳이 다루어야 했을까 싶은 글로벌이슈를 논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지켜야 할 중립적 시각이 특정한 철학으로 기울어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개론서가 개론서로서 역할을 하려면 관련 분야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두루 인용하여 소개하되 저자의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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