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울긴 글렀다 - 넘치지 않게, 부족하지 않게 우는 법
김가혜 지음 / 와이즈맵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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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같이 연구하던 교수님이 쓴 눈물에 관한 책을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번역 원고를 출판사에 출판의뢰를 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번역 원고에 들어있던 내용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재연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원서의 내용이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번역한 뒤로 눈물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눈물에 관한 책은 물론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출간된 <예쁘게 울긴 글렀다>도 당연히 제 관심의 대상이 된 책입니다.

책 표지를 보면, ‘눈물 수집가가 들려주는 달콤 쌉싸름한 35가지 눈물 이야기’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눈물이 많은 작가가 자신은 물론 주변에 있는 분들까지 포함하여 살아오면서 눈물을 흘렸던 수많은 사연 가운데 고르고 고른 35가지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작가님은 눈물을 흘린 사연을 수집하고 계시고, 저는 그런 자료들을 수집하는 셈입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옛날 로마와 이집트에서는 눈물을 모으는 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만, 저는 그 눈물단지를 요르단 암만에 있는 국립고고학 박물관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이 책의 작가는 눈물단지가 로마나 이집트에서 사용되었다고 적었습니다만, 눈물단지를 사용한 사람들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로 거슬러 올라가고 성서에도 기록이 나온다고 합니다. 고대 유대사람들은 재난을 당했거나 마음이 상했을 때 흐르는 눈물을 우리나 질그릇으로 만든 그릇에 모아두었다가 죽으면 무덤에 같이 묻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랬던 눈물단지가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유대사람들이 로마로 가져가면서 로마제국에서도 유행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눈물과 관련한 서른다섯 건의 상황을 1장 천 마디 말이 모여 한 방울 눈물이 된다, 2장 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 3장 예쁘게 웅ㄹ긴 글렀다, 4장 눈물에 눈물만 한 위로가 없다 등 4개의 제목 아래 나누어놓았습니다. 그런데 큰 제목에 들어간 글 내용이 크게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경우도 없지 않은 듯합니다. 특히 글 가운데는 눈물을 흘리거나 우는 것과는 무관한 사건도 없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 역시 젊어서까지는 감정이 풍부한(?) 편이었습니다. 영화를 볼 때나 소설을 읽을 때, 슬프거나 감동을 받았을 때 눈물이 북받쳐 어쩔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나이가 든 지금은 그동안 쏟아낸 눈물로 눈물샘이 말라버렸는지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드물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편입니다. 감정이 메말라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이 책을 쓴 작가님은 적어도 눈물에 관한한 대책이 없는 분 같습니다. 심지어는 결혼까지도 남자친구가 우는 것을 보면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하니, 타인의 눈물에 까지도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되시는 분은 절대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신다고 합니다. 그럼 작가분이 보신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을까요?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소위 영아에게 일어나는 특별한 울음으로 퍼플 크라잉(PURPLE crying)이라는 현상입니다. 제 큰아이가 어렸을 적에 한밤중에 깨어 두어 시간을 대차게 울어대는 바람에 곤혹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것이 아기가 뭔가 불행한 일을 미리 알리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퍼플 크라잉은 생애 만 2개월 전후는 신생아가 가장 많이 우는 시기(Peak of Crying)로, 그 울음이 예측하기 어렵고 이유를 알 수 없으며(Unexpected), 아무리 해도 달래지지 않는데(Resists Soothing), 이때 아기는 통증이 있는 듯 고통스러운 표정으로(Pain-like Face), 최대 5`6시간 계속해서 울고(Long Lasting), 특히 저녁시간에 더 자주 그런다(Evening)는 뜻이라고 합니다. 제 아이는 저녁이 아니라 새벽녘에 깨어 울어대는 바람에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야 답을 찾았으니 눈물을 찾아가는 책읽기에서 덤을 챙긴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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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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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만난 메디치미디어 대표님으로부터 한번 읽어보기를 권유받은 책입니다. 책을 보내주신 것도 아니지만 왠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아서 바로 구매를 하고 읽어보기까지 나흘이 걸렸습니다. 출간된지  6일된 따끈한 책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를 제가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가장 빠른 속도로 읽어낸 셈입니다.

대표님의 말씀에 따르면 글을 쓰신 김인선님은 게으를 자유, 가난할 자유를 추구하며, 책의 제목처럼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대표님과 책을 만들기로 약속한 김인선님은 6개월, 1년, 2년이 지나도록 원고를 건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느 날 ‘내 필히 부채와 신세 갚아요’하는 소식을 전하고는 그만 세상을 하직하셨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는 김인선님의 유고를 모아 묶은 책입니다. 그러니까 김인선님은 김현종대표님과의 약속을 지킨 셈입니다. 김인선님이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실 적에 쓴 ‘자유롭게 자라는 샛별초등학교 아이들’이라는 기사는 당시 ‘교과서에 실리면 좋을 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에 담은 83꼭지의 수필은 대부분 김인선님이 삶의 마지막을 보내신 경기도 장흥에서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 이웃, 지인, 심지어는 오가다 만난 사람들도 그의 이야기에 주연급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만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수선화, 진달래, 벚꽃 등 모두 적기에도 벅찰 정도인 꽃들, 호랑지빠귀, 올빼미, 까마귀 등의 새들 - 특히 까마귀의 경우는 김인선님이 그들의 언어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 그리고 강아지와 고라니까지 다양한 생명체가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장흥이라는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하는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객체들이 서로 유기적인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장흥이라는 고장을 그려낸 커다란 그림의 조각조각을 맞추어지는 느낌이 들어 책읽기가 조바심이 날 지경입니다. 그림맞추기가 장소에 대한 2차원적인 놀이라고 한다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장흥이라는 장소에 대한 그림맞추기도 시계열로 확장되는 3차원적 놀이가 되는 셈입니다.

저자는 ‘나는 인생에 뚜렷한 목적이 없고, 희망이나 기대도 별로 없는 편이다’라고 대놓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무언가 세상에 특별하게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호가 된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달팽이도, 이고 다닐 집조차 없는 민달팽이를 닮은 삶을 뒤쫓은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가 남긴 글들을 이렇게 묶어서라도 세상에 남기려는 지인들의 안타까움이 오히려 글쓴이의 생각에 어긋나는 점은 없는지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글을 읽다보면 글쓴이가 이미 도를 통한 도인의 경지를 넘어 신선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눈으로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중얼거리며 읽게 되고, 그 문장이 혀에 착 감기는 느낌이 생깁니다. 건조하다 못해 바삭거리는 글만 써내는 저와는 달리 촉촉하면서도 달착지근하기까지 한 이런 글을 쓰려면 어떤 훈련을 거쳐야 하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도무지 고민한 흔적을 볼 수가 없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 책을 읽는 이는 알 도리가 없겠지만, 사연의 주인공은 자기 이야기임을 금세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긴 이미 고인이 되신 분께 쫓아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혼자서만 끙끙 앓으면 되겠습니다. 이웃과의 불편한 관계도 적나라하게 밝혀냈을 뿐 아니라 19금 사건도 꺼리지 않은 것을 보면 글쓴이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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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멘토링 - 아슬아슬했던 김 과장을 살린
김준성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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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처음 일하기 시작할 무렵, 업무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사항들을 도와줄 젊은 직원을 멘토로 연결해준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과는 다른 방식의 일을 시작하는 셈이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데 있어 나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공자께서도 三人行必有我師焉(삼인행필유아사언),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논어 술이편)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같이 가는 사람이 누군가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같이 일하는 젊은이의 멘토가 되기로 했습니다. 제가 뭔가를 도와줄 수 있다면 기쁨이 될 것 같아 기꺼이 멘토가 되어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멘토가 될 준비가 별로 되어있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기적의 멘토링>은 조직 안에서 멘토 역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배우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해운회사에서 근무한 지 10년차가 되는 중간관리자라고 합니다. 저 역시 우리 회사에서 일을 사직한 것이 11년째가 되고 있으니 경력은 얼추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나이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만, 뭔가를 배우는데 나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자는 회사에서 도입한 멘토링 제도의 일환으로 갓 입사하여 일을 시작한 후배사원들에게 회사가 어떤 곳인지를 안내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저자 자신이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던 참이었으니 멘토를 하면서 오히려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찾아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경험을 누군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나누기 위하여 <기적의 멘토링>을 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책의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김 과장, 멘토가 되다’에서는 자기계발서가 별 도움이 안되더라는 진리를 깨달은 중간관리자에게 회사에서 신입직원에게 멘토링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셈이니 일단 정신을 차려야했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무슨 일이든 자기가 좋아서 해야지 상사나 회사에서 지시하는 일은 공연히 부담이 된 경험은 저도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직장선배 김 과장의 알짜배기 꿀팁’입니다. 일단 새로운 조직에서 일을 시작하다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사회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단은 다양한 인간들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모인 것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들과 연결고리를 잘 엮어가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즉 일단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셈입니다.

세 번째 부분은 ‘인생 선배 김 과장의 따뜻한 조언’입니다. 두 번째 부분과 구별이 되지 않는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꿀팁이 결국은 회사생활을 잘 하기 위한 결정적 조언이라면 따듯한 조언은 소소한 듯 하지만 들어두면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부분은 ‘우울한 김 과장도 희망을 꿈꾼다’입니다. 중간관리자 역시 신입사원과는 다소 차원이 다를 수 있지만 회사생활이 녹녹한 것은 아니라서 나름의 애로사항이 있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김 과장님의 조언 가운데는 저도 이미 잘 하고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는 점도 있어서 많이 참고가 되었습니다. 특히 뒷담화는 절대 하지 말라는 부분에 대하여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결국은 그 화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뒷담화라는 점은 누구나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뒷담화를 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할 수도 없지 않다는 점이 또 마음에 걸리는 것 같습니다.

부닥친 상황이 어이없고 견디기 힘들어 퇴사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정말 퇴사를 결정할 때는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일하는 곳이 여섯 번째 직장이라서 이직을 밥먹듯 한 셈인데, 이번에는 10년을 넘겨 버티고 있는 이유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은 견디는 내공이 생겨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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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김진영의 벤야민 강의실
김진영 지음 / 포스트카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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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진영의 벤야민 강의실’이라는 부제가 달린 것처럼 1918년 8월에 작고하신 김진영 선생께서 2015년에 일반을 대상으로 ‘발터 벤야밈과 근대성’이라는 제목으로 했던 10차례의 대중강연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사실 오래전에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를 읽고 발터 벤야민에 대한 관심이 일었지만, 그가 쓴 책들을 더 읽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있던 참입니다. 김진영선생은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벤야민의 사유에 대하여 주관성과 객관성이라는 두 성찰의 극이 균형을 맞춘 가운데 비판적으로 읽어내기를 희망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벤야민의 사유에 바로 뛰어들기 보다는 벤야민이라는 개인의 삶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모두 10개로 이루어진 강의 가운데 1강은 유년기에서 장년기에 이르는 발터 벤야민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의 삶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의 의미를 짚었습니다. 2강은 벤야민의 지적인 삶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을 하나의 텍스트로 보고 읽으면서 검토해갑니다. 3강부터 10강까지는 근대성에 대한 벤야민의 사유를 검토하고 있는데, 3강에서는 근대란 비상사태라는 전제로부터 시작합니다.

벤야민에게 근대란 ‘방금 지나간 과거’였던 것입니다. 그의 저서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바로 ‘현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방금 지나간 시간’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벤야민이 살던 시기에도 과거에 비하여 속도면에서 엄청난 발전이 있었습니다. 선생은 하이네가 기차를 처음 탔을 때 세상이 사라져 버렸다고 외친 사실을 인용하였습니다. “기차를 탈 때 마차와는 확연히 다른 속도감 때문에 마차 위에서 보던 익히 알고 있던 풍경이 우리 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함축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강의에서는 근대성과 신화성, 종교, 정치, 육체, 예술, 대도시, 역사 등의 순서로 벤야민이 바라본 근대성에 대한 사유를 분석하고 설명해나갑니다. 강의를 들을 때나 책을 읽을 때 흔히 느끼는 점입니다만, 강의 혹은 책에서 인용하는 내용이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는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것이라면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소설의 경우도 소설의 무대가 익숙한 경우에는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는 과정이 머릿속에 훤히 전개되기 때문에 맥락이 끊기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자가 벤야민의 사유를 설명하면서 인용하는 것들은 상당수가 우리가 잘 알고 있어서 이해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오이디푸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테베에서 추방당한 오이디푸스가 갈 데가 없어 도달한 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인 하데스였다고 합니다. 누구도 추방당한 자를 도와주거나 받아주면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이디푸스가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4자녀를 낳는 패륜을 저질렀지만, 이는 오직 신탁에 예정된 일이었기 때문에 그의 잘못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선왕 라이오스가 저지른 죄가 아들에까지 미친 것이라면 신탁이 잘못된 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에 테베를 떠나 작은 딸 안티고네에 의지하여 세상을 떠돌다 죽었다는 것이 신화의 내용입니다. 즉 테베에서 추방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떠나간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잘 못으로 테베의 백성들이 역병으로 고난을 받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자는 벤야민의 사유에서 읽히는 ‘당대의 시간이, 나아가 인류사의 모든 시간이 무상하고도 잔인한 헛되며, 오로지 승리한 자들만을 위한 것으로, 비역사이며 비상사태의 시간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짚어서, 이를 바로 잡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려면 미래에 대한 설계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상황을 엄정하게 기록하고 개선할 바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의 제목을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로 정한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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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1
스티븐 프라이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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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는 서구의 문화에 많은 영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로마 신화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 신화를 새롭게 해석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프라이는 케임브릿지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희극인이자 배우, 극작가, 소설가, 영화감독에 퀴즈쇼 진행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여, 사람들이 ‘영국의 국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란 상상속의 인물이 아니라 신화가 만들어지던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살던 또 다른 사람으로 일정부분 격이 다른 존재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 사람들을 지배하던 이민족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작가 역시 ‘그리스 신화는 인간 생활과 문명에 대한 신들의 학대와 간섭, 폭정에서 벗어나려는 인류의 투쟁과 같은 궤도를 그린다. 그리스인들은 신들 앞에 비굴하지 않았다. 탄원과 공정을 바라는 신들의 허영심을 알았지만, 인간이 신들과 동등하다고 믿었다.(13쪽)’라고 적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나 사람들의 본성을 보면,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며, 이성에 대한 관념 자체가 비윤리적인 사례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실 힘을 가진 지배집단이 피지배집단을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 인간적으로 대한 적은 고금을 막론하고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도 중동지역에서 발흥했던 IS집단의 행태를 보아도 신화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서 저자가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 시각에서 다시 해석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를 들면, 아테나와 베 짜기 대결을 벌었다는 아라크네의 경우도, 지금까지는 아라크네가 자신의 베 짜는 기술이 아테나보다 나을 것이라고 떠들다가 아테나의 저주를 받아 거미로 변신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아라크네가 자신의 베 짜는 기술에 대하여 자신은 있었지만 아테나를 자극하는 발언을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테나와 아라크네가 베 짜기 대결을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설명합니다. 아테나가 신에게 도전했다가 실패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짜낸 반면, 아라크네는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 인간들을 농락했던 이야기를 짜냈던 것입니다. 즉 베 짜는 실력으로는 아테네도 인정할 정도였는데, 문제는 신들의 과오를 지적한 신성모독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베를 짤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베 짜기를 마치고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게 된 아라크네가 스스로 목을 맨 것이었고, 이를 본 아테나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어리석고, 또 어리석구나’하면서 탄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라크네의 베 짜는 실력을 안타깝게 생각한 아테나는 “그대의 재능은 결코 죽어서는 안된다. 그대는 평생토록 실을 뽑아 엮고, 실을 뽑아 엮고, 실을 뽑아 엮고...”라면서 아라크네의 몸이 거미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역시 <오이디푸스왕>과 <안티고네>에 등장하는 크레온 왕에 대하여 저자는 ‘크레온은 실리를 중시하는 훌륭한 통치자였다’는 저자의 생각에 저도 공감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혹여 저자가 열여섯살에 크레온왕의 역할을 연기했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크레온을 연기하면서 나름대로는 배역에 대한 깊은 성찰 끝에 나온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안티고네>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크레온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나름대로는 생각을 해본 바에 따른 생각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의 목표를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해석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이해하기로는 충분히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즈음의 감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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