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빈센트 반 고흐 지음, 박은영 옮김 / 예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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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이 편지2>는 <반 고흐, 영혼이 편지>에 이은 기획으로 동생 테오의 소개로 브뤼셀에서 처음 만나 뜻이 통한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거리가 있었지만 이내 서로에게서 동일한 취향과 사고방식을 발견하고는 견고하 우정을 쌓게 되었다고 합니다. 라파르트는 귀족 출신의 네덜란드 화가로 암스테르담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다가 파리와 브뤼셀에 체류하였지만 결국은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작품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화풍에 대하여 HJ 하베르만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고 합니다. “그는 애써 환심을 사려 하지도 이기적이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꾸민 태도로 치장하지도 않았다. 그의 작품들이 증언하듯이, 그는 보여주어야만 할 모든 진실을 사실주의에 함몰하지 않고 진솔한 작품들을 통해 정직하게 표현하려 했다. 그는 순수한 의도로 인물화 작업만을 과감히 고집한 최초의 네덜란드 화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8-9쪽)”


옮긴이는 1881년부터 19885년까지 고흐가 라파르트에게 보낸 53통의 편지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편지들 사이에는 라파르트와 주고받은 편지에 관한 내용을 담아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꽤 오래 이어져 5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1885년에 빈센트가 라파르트에게 절교를 선언하면서 끝이 났다고 합니다. 라파르트가 암스테르담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것이 바탕에 깔려있었다고 합니다. 라파르트가 고흐의 작품에 대하여 솔직한 의견을 피력했던 것에 대하여 평소에 아카데미를 경멸하던 고흐가 라파르트의 지적이 아카데미적인 시각에 매몰되어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파르트는 고흐의 작품들을 높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라파르트는 하베르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록 빈센트의 난폭함이 결별의 원인이었지만 (…) 삶에 대한 그의 가치관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숭고하고 순수했네. 그 점에 있어서 그는 진실로 굳건했으며 아름다웠네. 그는 미치광이가 되었네 (…) 그의 광적이고 폭발적인 기질에 대해 우정보다는 존경심을, 동지애보다는 숭매감을 느꼈네(12-13쪽)’라고 적었습니다.


고흐가 라파르트와 결별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라파르트, 내 생각에 자네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점점 더 진정한 사실주의자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듯하네. 비록 아카데미에서 작업하면서 현실에 만족할 때라도 말일세. 하지만 불행한 것은 아카데미란 하나의 정부(情婦)에 불과하다는 점이네. 그것은 자네 속에서 깨어나는 진지하고 따듯하며 발전적인 사랑을 가로막지(53쪽)” 교육기관에서의 교육이라는 것이 일정한 틀 안으로 고착화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흐는 라파르트에게 아카데미의 틀을 뛰어넘으라고 조언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들이 곁들여 있을 뿐 아니라, 그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그림을 그리는 기법 등에 관해서도 서로 조언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입니다.그런가 하면 고흐가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도 다양한 책을 읽었을 뿐 아니라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 관해서는 ‘훌륭한 데생 주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다’거나,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묘사한 것들을 통하여 할아버지나 아버지 시대에 대하여 상상을 펼치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반 고흐, 영혼이 편지>에서 언급되었던 졸라의 작품에 대하여도 ‘그 책은 나로 하여금 졸라를 알게 했고 졸라의 취약한 면을 가르쳐주었다’고 한 것을 보면 딱히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만은 아니지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라가 회화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한다고 평가한 것은 약간은 뒤끝이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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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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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찾아갔던 아를의 곳곳에서 고흐가 그렸던 작품들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인연과 함께 작품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찾아 읽게 된 <반 고흐, 영혼의 편지>입니다. 책을 옮긴 신성림박사님은 처음에는 ‘화가의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생과 생각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한 듯하다’라는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하여 해석되고 윤색된 글을 읽는 것은 오히려 편견을 가지게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인데, 그의 편지들을 읽은 다음에는 너무도 진솔하고 절절한 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진짜 고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도 생각해보니 고흐의 일생을 그린 영화도 보고, 그의 작품에 대하여 설명한 책들도 읽어보았지만, <반 고흐, 영혼의 편지>만큼 실감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주로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들을 중점적으로 골랐고, 일부는 친구와 가족, 예를 들면, 안톤 반 라파르트, 레벤스, 여동생 윌 등에게 쓴 편지도 있고, 말미에 가면 테오가 빈센트에게 쓴 편지도 들어있습니다.

편지들을 쓰인 시기에 따라서 ;화가 입문 이전부터 보리나주까지의 시기인 1872년 8월에서 1881년 4월까지의 3통의 편지를 ‘새장에 갇힌 새’라는 제목으로 묶었고, 1881년 4월에서 1881년 12월까지 에텐에서 보낸 시기에 쓴 4통의 편지를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제목으로, 1881년 12월에서 1883년 9월까지 헤이그에서의 시기에 쓴 22통의 편지들을 ‘조용한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1883년에서 1885년 11월까지 드렌테와 누에넨에서의 시기에 쓴 11통의 편지를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1885년 11월에서 1888년 2월까지 앤트워프와 파리에서 보낸 시기에 쓴 7통의 편지를 ‘생명이 깃든 색채’라는 제목으로, 1888년 2월에서 1889년 5월까지 아를에서 보낸 시기에 쓴 46통의 편지를 ‘내 영혼을 주겠다’는 제목으로, 1889년 5월에서 1890년 5월까지 생레미에서 보낸 시기에 쓴 27통의 편지를 ‘고통은 광기보다 강하다’라는 제목으로, 마지막으로 1890년 5월에서 7월까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보낸 시기에 쓴 7통의 편지를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묶었습니다. 테오가 보낸 편지들은 ‘고통은 광기보다 강하다’라는 제목에 주로 배치되었는데, 그림그리기에 빠져들면서 자아에 혼란이 생긴 시기에 형 고흐에게 힘을 실어줄 그런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편지에 곁들인 스케치라던가 편지에서 언급된 그림을 곁들여 편집되어 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때 화가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화가가 스케치, 수채화, 유화 등으로 옮겨가게 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혹시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 노심초사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통해서 화가가 마음에 품고 있는 무엇을 내보이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합니다. 그림이 팔리지 않아서 테오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마음을 쓰고 있었으며, 혼신을 불어넣어 그린 그림을 테오에게 보내기 위하여 작업에 매달리는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68쪽)”라고 적은 편지도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것을 빚과 의무를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다. 이런저런 유파에 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99쪽)’라고 적었습니다. 정말 세상에 태어났으면 뭔가 뚜렷한 흔적을 남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만, 고흐처럼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런가하면 여동생 윌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무 기를 쓰고 공부하지는 말아라. 공부는 독창성을 죽일 뿐이다. 네 자신을 즐겨라! 부족하게 즐기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즐기는 쪽이 낫다.(156쪽)’라고 적은 부분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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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칸트 - 생애와 철학 체계
F. 카울바흐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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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책읽기를 엮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의 사보에 1년 넘게 연재했던 에세이인데, 원고를 써보냈더니 연재를 중단한다는 통보를 받아 황당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의 기획을 이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매체에 선보일 첫 번째 여행지는 발트해안에 있는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입니다. 프로이센 왕국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러시아 영토가 되고 말았습니다.

칼리닌그라드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독일철학자 칸트의 묘소를 비롯하여 그가 근무했던 대학 등입니다. 철학책으로 연재를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인문학적 책읽기에 관한 연재를 오랫동안 이었던 인연이 있어서 특별하게 시작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칼리닌그라드와 함께 칸트철학의 3대비평서가운데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 http://blog.yes24.com/document/11860935>을 소개할까 합니다. 사실은 ‘인류 정신사를 완전히 뒤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는 부제를 단 서울대학교 철학과의 김상환교수님의 <왜 칸트인가; http://blog.yes24.com/document/11703742>를 읽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서 읽어보았습니다만 이해가 어려운 대목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칸트철학의 대강을 짐작할 다른 책을 읽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칸트철학에 관한 다수의 연구서를 저술한 프리드리히 카울바흐의 <임마누엘 칸트>가 제격이라는 생각입니다. ‘생애와 철학체계’라는 부제가 암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책을 번역한 백종현교수님이 “칸트사상이 그 단초에서부터 어떻게 싹이 트고, 어떤 배경에서 성장해나갔으며, 어떤 결실을 맺었고, 남겨놓은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칸트철학 안내서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저자인 카울바흐는 칸트철학의 대명사가 된 초월철학의 ‘초월적’의 의미 맥락을 잘 밝혀주고 있다.”라고 적은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백종현 교수님은 1992년에 이 책의 제1판을 번역하여 우리나라에 소개한 바 있어, 이 책의 제2판을 번역하는 작업은 첫 번째 번역작업에서 미진했던 점을 보완하는 의미도 있겠습니다.

이 책의 구성은 먼저 칸트의 생애와 인품에 대하여 소개하였는데, 특히 칸트가 학생들에게 강조했다는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함을 배우라’는 경구를 새겨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철학공부를 해보겠다면서 철학분야의 책읽기의 방향이 옳았는지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본론에 들어가서는 먼저 ‘ 순수이성 비판으로의 길’에서는 칸트의 비판철학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신과 자연과 이성을 대상으로 한 칸트의 철학적 사유체계를 분석했다고 읽었습니다. 칸트가 초기에 다루었던 철학적 주제들은 자연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칸트의 접근 방식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었다고 보입니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기보다는 인식론적 접근방식을 취한 것과는 비교된다고 하겠습니다. 유일 가능한 신의 실존을 증명하는데 있어 자연신학적 증명이 존재론적 증명과 비교하여 장점이 있다는 입장을 취했던 칸트는 신의 지성에 근거하던 사유의 방향을 인간의 이성에서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이론이성과 실천이성 영역에서의 비판적 초월철학의 정초’에서는 초월철학의 이념을 정초하기 위한 밑 작업으로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비판하였는데, 비판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는 ‘초월적 체계사유의 확장 및 자유와 현상의 매개’에서는 칸트의 미학적 성찰을 다룬 것으로 보았습니다. 앞서 이성비판을 통하여 초월적 방법론을 성찰하고 이성이 외부의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론을 검토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형이상학의 기획과 방법, 그리고 [유작]에서의 발전적 전개’에서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과제를 발전시킨 새로운 형이상학의 방법론을 다루었는데, 이 부분은 완성되지 않은 칸트의 유고에 기반한 것 같습니다.

역시 철학의 대계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는 칸트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철학하는 방법을 배우라는 칸트의 가르침을 배우는 기회가 되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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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로 보는 과학사 400년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고야마 게타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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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건 발전해온 과정을 정리한 자료를 읽어보기를 좋아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해서 기억을 하면 관련 분야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류문명의 오늘이 있게 한 것은 과학 분야의 엄청난 발전이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분야가 발전해온 과정을 정리한 <연표로 보는 과학사 400년>을 읽어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과학도 세부 분야가 많기 때문에 모든 분야의 내용을 세세하게 정리하려들면 도서관 하나를 채우는 분량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처럼 과학의 변병에 있는 사람은 개략적으로 요약한 내용을 읽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연표로 보는 과학사 400년>가 아주 ‘딱!’입니다. ‘연표’하면 연도별로 사건의 제목만을 나열하는 형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연도별 사건의 제목 아래에 짧은 해설을 붙였습니다. 해설에는 연관된 역사적 사건이나 당시의 사회의 분위기, 에세이를 포함하기도 합니다.

인류의 탄생 자체가 과학의 산물일 터이니 엄청난 세월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나, 제목에서처럼 400년으로 제한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17세기 이전의 사실을 간략하게 축약하기로 한 것은 ‘16세기 이전에는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면 자연과학이라는 학문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지동설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어, 1687년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로 마무리된 과학혁명을 기준으로 이전 시기는 과학철학의 시기로, 그 이후의 시기를 자연과학의 시기로 본다는 것입니다.

저자도 인정했습니다만, 두 번째의 제한점은 물리학과 천문학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와세다대학교 이공학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원 물리학과에서 물성이론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의 전공 때문일 것입니다. 물리학은 자연 현상에 대한 보편 법칙을 찾고자 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물질을 연구 대상으로 합니다. 크게는 연구대상과 연구이론체계에 따라 분류하고 있습니다. 대상에 따라서는 입자물리학, 핵물리학, 원자분자물리학, 응집 물질 물리학, 플라스마물리학, 광학(비선형광학과 양자광학), 천체물리학과 우주론, 지구물리학(해양물리학, 대기역학), 화학물리학, 생물물리학 등으로 세분됩니다.

책의 얼개를 보면, 17세기 이전에 자연과학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프롤로그에서 요약하고서, 1장은 17세기, 2장은 18세기, 3장은 19세기 전반, 4장은 19세기 후반, 5장은 20세기 전번, 6장은 20세기 후반의 과학사의 흐름을 정리했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21세기의 이룩한 성과를 정리했습니다. 해당 연도에 있었던 괄목할만한 과학적 성과를 선별하기도 했지만, 1696②에서는 뉴턴이 케임브리지에서 런던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1727년에는 뉴턴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1840②에서는 사이언티스트(scientist, 과학자) 라는 용어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1992②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일본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과학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을 지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에 관한 내용이 많아지는 것은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우리네 속담이 생각나게 합니다. 다만 곡학아세(曲學阿世)에 이르지 않은 듯해서 용서를 해줄까 합니다.

덧붙이면 카슨의 <침묵의 봄>, SF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상영, 오키나와 뜸부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 등은 굳이 다루지 않았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리학을 배운지가 오래된 탓인지 고전물리학에 관한 사건이나 이론에 대한 설명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천체물리학이나 양자물리학, 핵물리학의 경우는 개념조차 정리되지 않아서 따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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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그림 속 풍경 기행 - 그림 속 풍경 기행 2 그림 속 풍경 기행 2
사사키 미쓰오.사사키 아야코 지음, 야마구치 다카시 사진, 정선이 옮김 / 예담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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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쿠키뉴스에 연재하고 발트여행기가 마무리되면 지난해 봄에 다녀온 프랑스 여행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발트여행이 역사기행이었다고 하면, 프랑스 여행은 미학기행이 될 것 같습니다. 해서 프랑스 미술에 관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미쓰오와 아야코 등 사사키씨 부부가 쓴 <모네의 그림 속 풍경 기행>도 프랑스 미술에 관한 공부 가운데 하나입니다.

프랑스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미쓰오씨와 인상파 화가를 연구하는 아야코씨가 만나 결혼을 하고서 프랑스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인상파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 장소와 그들이 살았던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을 책으로 엮어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도 그런 과정의 결실입니다.

‘센 강과 더불어 흐르는 모네의 생애’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보면, “모네가 여러 차례 방문한 노르망디 해변에 서서 그곳의 풍경을 바라본다. 끊임없이 변하는 태양 빛을 캔버스에 옮기기 위해 바다와 하늘을 보면서 재빨리 붓을 놀리는 모네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그림이 살아 움직여 마음에 새겨진다.(7쪽)”라고 적었습니다. 저 역시 19세기말 태동한 빛을 중시하는 화가집단에게 ‘인상파’라는 이름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던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1873년)>의 무대였던 르아브르 항구를 찾았을 때, 그림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서 해 뜨는 시간에 맞추어 항구로 나가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림이 그려졌던 계절과 제가 갔던 계절이 달라서 그림 그대로의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지만, 비슷한 풍경은 볼 수 있었습니다.

<모네의 그림 속 풍경 기행>을 함께 한 분들은 사사키씨 부부와 규류도(求龍堂)의 편집자인 가네다 에리코씨 그리고 사진작가 야마구치 다카시씨였다고 합니다. 아주 책을 제대로 만들어보려고 의기투합한 모양새입니다. 이 분들은 루앙, 노르망디 해안, 르아브르, 옹플뢰르, 벨엘섬, 파리, 센 강변의 아틀리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베르니까지 두루 돌아보며 모네가 그린 그림의 장면과 맞아떨어지는 구도로 사진을 찍어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보니 이분들이 모네의 작품 속 풍경을 뒤쫓은 계절이 바로 제가 여행을 다녀왔던 5월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감상하는 그림과 사진이 꽤나 익숙한 느낌이 남습니다. 물론 이분들이 돌아본 장소를 모두 가본 것은 아니고, 노르망다 해안, 으라브로, 옹플뢰르, 파리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림 뿐 아니라 코끼리 바위가 있는 에트르타가 모파상과 연관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여행기를 쓸때는 챙겨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렇듯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여행의 경우에는 현지에서 의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나 봅니다. 작가들의 경우는 미리 취재신청을 하고 방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우연히 가본 장소에서도 ‘일본에서 온 저널리스트’라면서 취재를 요청하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현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체적으로는 무언가 자랑할 것이 있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홍보에 나서는 것 같습니다.

<모네의 그림 속 풍경 기행>에서는 모네에 관하여 미처 모르던 것들을 많이 깨우치는 책읽기였습니다. 지르베니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생트 라드공드 교회에 있는 모네 부부의 묘소가 교회의 어디에 있는지 헤매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모네가 말년에 머물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정원과 연못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지르베니를 무대로 그린 많은 작품들에 관하여 조금 자세한 설명이 있었더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전문 사진작가의 눈에서 바라본 모네의 흔적들을 감상하면서 현장에서 느끼지 못한 감동을 다시 느끼게 되는 책읽기였습니다.,

사실 현장을 가본 경우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해보면 책을 읽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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