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피스 공화국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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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발트연안국가를 여행하면서 읽은 책입니다. 우주피스공화국은 제가 여행한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1년에 단 하루, 만우절에만 존재하는 마이크로네이션(micronation)입니다. 마이크로네이션은 ‘독립국가라고 주장하지만 국제기구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집단’을 말합니다. 하지만 독립국가를 주장하는 만큼 화폐, 메달이나 우표, 심지어는 국장, 국가, 국기, 여권은 물론 헌법,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등 정부조직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1997년 4월 1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 구시가에 있는 0.6㎢ 면적의 우주피스 지역에 살던 몇몇 예술가들이 공화국의 설립을 선언하면서 시작된 우주피스 공화국은 만우절인 4월 1일 하루 24시간만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거주인구 7,000명의 우주피스 구역에는 1,000명의 예술가가 살고 있다는 우주피스 공화국은 국기, 국가, 헌법, 화폐는 물론 내각을 비롯한 정부조직과 군대까지 두고 있으며 대통령이 국가원수라고 합니다.

리투아니아어로 우주피스()란 ‘강 건너편’을 의미하는데,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경지를 의미하는 피안(彼岸)이라는 우리말과 상통하는 느낌입니다. 1990년에 <경마장 가는 길>로 등단한 이후로 경마장을 주제로 한 소설을 발표해온 하일지 작가의 <우주피스 공화국>은 환상소설의 범주에 해당하는 소설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에 40대의 동양인 남자 할이 고국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가기 위하여 리투아니아에 입국하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고국으로 가는 길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할은 아버지의 유골을 묻기 위하여 고국 우주피스공화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한(Han)이라는 동방국가에 주재하던 우주피스공화국의 대사였던 할의 아버지는 우주피스공화국이 주변국가에 점령되자 한에 망명하여 살다가 죽었는데, 우주피스공화국이 독립되면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던 것입니다.

최근에 고국이 독립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주피스공화국에 가기 위하여 빌뉴스에 도착한 할에게 이상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택시 운전사는 우주피스공화국으로 가자는 할을 우주피스라는 이름의 호텔에 데려다 주는가 하면, 블라디미르라는 사람은 우주피스공화국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농담으로 만든 나라라며 놀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피스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곳곳에서 우주피스공화국의 흔적을 만나면서 할은 눈길을 뚫고 우주피스공화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빌뉴스의 공항에서 스쳐간 요르기타라는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우주피스공화국을 찾다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할과 인연을 맺기도 합니다. 할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꽃 파는 소녀 마리아의 할머니 요르기타가 우주피스 공화국의 국민이라고 해서 그녀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온통 눈으로 덮인 망망한 들판 속에 숨어있는 아듀티스키스라는 마을에서 만난 요르기타 노파는 자신의 남편 역시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다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주피스 공화국을 찾아다니다 지친 할이 결국 머리에 권총을 겨누는 장면에 이르는 것을 보면, 할이 시간을 오가면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엮어가는 과정을 뒤쫓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등장인물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인공마저도 이런 정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우주피스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빌니우스에 갔을 때 인근의 성 안나 교회에는 가보았지만, 우주피스 지역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우주피스는 빌니우스를 관통하는 네리스(Neris)강으로 유입되는 빌니아(Vinia)강이 크게 휘감아도는 구역입니다. 따라서 우주피스가 의미하는 강 건너편은 빌니아 강일 듯합니다. 구시가에서 내려오다 만나는 개울 건너편이 우주피스 지역입니다. 웅크리고 앉은 고양이의 뒷발 근처에는 소설에 나오는 우주피스 호텔도 있습니다. 계절도 겨울이었더라면 그리고 우주피스에 들어가 보았더라면 소설 <우주피스 공화국>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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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자크와 함께 하는 이집트 여행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김병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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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에는 이집트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하는 공부로 고른 책입니다. 제목에도 들어있습니다만, 이 책을 쓴 크리스티앙 자크는 프랑스의 소르본 대학에서 이집트학을 공부한전문가로 우리에게는 이미 <람세스>로 잘 알려진 분이기도 합니다. ‘이집트로 떠난다는 것,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꿈이 아닐까?’라고 서문을 시작하는 저자는 40여년에 걸쳐 찬탄과 열정을 품고서 수시로 드나들면서 공부하고 있는 이집트라는 한 나라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 문명, 그리고 황허문명과 함께 세계 4대 분명의 발상지로 꼽히고 있습니다. 물론 기원전 3200년 무렵 시작하여 기원전 332년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침입으로 무너질 때까지 무려 3000여년에 걸쳐 30개의 왕조가 이어져 내렸던 이집트문명은 나일강을 따라 수많은 유적을 남겼습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에 들어선 프톨레마이오스왕조가 로마제국의 옥타비아누스에 의하여 무너지면서 이집트는 로마제국의 속주로 전락하여 지독하게 착취를 당하였고, 이후에는 다시 아라비아의 이슬람세력에 지배를 받다가 근대에 들어서는 다시 유럽제국의 지배를 받는 등 옛 영광을 되살릴 기회를 전혀 가질 수 없었던 비운의 지역이기도 합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주변국과의 긴장관계가 이어지는 등, 국내외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이 개선되지 않고 있어 고대 이집트 왕국이 남겨놓은 빛나는 유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집트 여행을 결정하기까지 상당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 국내외 사정을 고려하여 충분히 안전한가를 생각해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고대 이집트 문명이 남겨놓은 유적을 직접 눈으로 보아야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크리스티앙 자크와 함께 하는 이집트 여행>에서 저자는 서문에 이어 이집트 문명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점들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집트 문명의 지리적 배경 그리고 나일강의 장엄함을 먼저 소개합니다. 그리고는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타니스에서 출발하여 나일강을 거슬러 마지막 아부심벨에 이르기까지 고대 이집트왕국이 남긴 찬란한 유적들의 모습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상세하게 설명하려 들면 몇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만, 이집트문명의 진면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내용을 잘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제가 고른 이집트 여행상품에서 가게 될 장소들은 이 책에 소개된 장소에서도 다시 골라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일단은 제가 가볼 예정인 곳을 중심으로 하여 전반적인 윤곽을 잡는데 도움이 되는 책읽기였습니다. 나일강을 하늘에서 보면 활짝 핀 한 송이 연꽃과 흡사하다는 표현은 처음 보았던 것 같습니다. 삼각주 지역이 꽃의 상부에 해당하고, 아라비아 사막과 리비아 사막 사이에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나있는 너비 3~15㎞의 나일계곡은 연꽃에 달린 긴 가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집트 문명이 삼각주를 중심으로 펼쳐진 하이집트와 삼각주에서 누비아에 이르는 상이집트로 나뉘어있다가 통일되었던 것인데, 하이집트에도 고대 이집트 왕조가 세운 수많은 유물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외세의 침략이 이어지는 가운데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는 지경이라고 합니다. 상이집트의 경우는 그마나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숨겨지거나 인간의 힘으로는 파괴하기도 힘들 대규모의 유적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 나라의 전체 모습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장소 혹은 유물을 빠트리지 않고 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여행사의 상품으로 가는 여행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서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아쉬운대로 책을 통하여 혹은 인터넷자료를 통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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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미술관 - 잠든 사유를 깨우는 한 폭의 울림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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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감상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느냐고 물어볼라치면, 보다보면 가슴에 뭔가 울림이 있을 것이라는 답을 듣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슴에 뭔가 울림이 오는 그런 그림을 만나보지 못한 것을 보면 저는 여전히 미술작품을 감상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초보 축에도 들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구나 하는 자괴감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방법은 없는지 찾아 헤매고는 있습니다.

<생각의 미술관>은 삶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적 소양을 쌓는 방법으로의 그림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현대미술은 철학에 대한 일정 수준의 배경지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애초에 그림을 통하여 철학을 하고자 했기 때문에 이런 목적의 그림감상에 안성맞춤이라고 합니다. 미학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적지 않은 숫자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억에 남기로는 민음사에서 내놓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 전집을 구성하는 소설마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표지에 담고 있었기 때문에 유심히 보았던 것 같습니다.

어떻든 저자는 그림을 통하여 변화, 무지, 기호, 관계, 모순, 개별성, 욕망, 비정상, 예술, 세계 등 ‘열 가지의 주제를 생각하는 사람’을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큰 제목이 적힌 쪽을 넘기면 그 다음 장에는 해당 주제에 관한 문제제기를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보다 깊이 있는 내용으로 주제를 심화시키거나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하여 다른 화가의 작품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흔히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배경지식의 암기보다는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즉,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어떤 발상이 필요한지, 생각을 어떤 방향으로 향하도록 해야 하는 지 등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저자의 이런 기획의도가 잘 드러나는 글쓰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끔은 충돌하는 개념도 없지 않은 듯하며, 특별히 거론하지 않아도 될 듯한 점을 일부러 짚어낸 듯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무지를 생각하는 사람’편에서 고야의 ‘마녀의 집회’와 ‘산 이시드로 순례행렬’을 인용하여 당시 스페인 사회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지배하고 신분제도가 존재하던 당시에는 무지가 강제되던 시절이라고 설명합니다. 일종의 우민화 정책으로 일반인을 문맹 상태에 머물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문맹이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어 무지에서 벗어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듯이 넘쳐나는 정보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문맹보다 나을게 없는 세상이 아닐까요? 이런 상황을 디지털 문맹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이어서 ‘관계를 생각하는 사람’편에서는 현대사회가 경쟁을 강제하는 사회라는 비판적 시선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경쟁을 회피하는 사회는 결국은 또다른 우민화정책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부터인가 경쟁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경쟁은 나쁜 것이라고 단정지어야 하나요? 긍정적인 면은 없을까요? 따지고 보면 모든 생명체, 동물은 물론 식물까지도,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숙명을 가진 것인데, 경쟁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굳힌 것이 과연 잘 한 것일까요? 요즈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그런 주장이 나온 배경에는 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의혹까지도 생기는 판입니다. 경쟁은 필요하지만, 다만 자족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경쟁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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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들 - 어느 누구도 영원히 읽지 못할 그 작품
조르지오 반 스트라텐 지음, 노상미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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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이자우의 소설 <비밀의 도서관; http://blog.yes24.com/document/7761021>에 나오는 도서관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책으로 출간됐지만 유통이 금지된 금서 정도는 아주 평범한 소장도서에 불과하며, 과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처럼 불에 타서 세상에서 사라진 책은 물론 저자의 생각만으로 기획단계에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까지도 소장되어 있는 환상의 도서관인 것입니다.

조르지오 반 스트라센의 <사라진 책들>을 읽으면서 비밀의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작가이자 번역가이면서 뉴욕 이탈리아 문화원 원장인 저자의 독특한 위치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책들에 관한 소식을 뒤쫓는 것이 용이하게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라진 책들>은 1824년부터 2010년까지 원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한 8개의 책이 정말 사라졌는지, 어떻게 사라졌는지, 왜 사라졌는지 등을 뒤쫓은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그 8종류의 책은 무명의 작가가 쓴 완성도가 떨어지는 원고가 아니라 적어도 문학적으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본 것들로서 헤밍웨이 같이 유명한 작가도 있지만,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도 있는 것 같습니다.

8종류의 책을 쓴 저자의 면면을 보면, 이탈리아 작가 로마노 빌렌치의 <거리>, 조지 고든 바이런 경의 <회고록>, 헤밍웨이의 초기 작품들, 폴란드 작가 브루노 슐츠의 <메시아>,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죽은 혼, 후편>, 미국 작가 맬컴 라우리의 <바닥짐만 싣고 백해로>, 발터 벤야민의 미발표 원고, 영국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이중 노출> 등입니다.

이들 작품 가운데 저자 혹은 누군가의 눈으로 확인이 된 것들도 있지만, 추정되는 원고도 없지 않은 듯합니다. 또한 원고가 사라진 원인도 다양해서 원고를 쓴 이가 직접 불태운 경우도 있고, 원고가 공개되었을 때 일어날 후폭풍을 걱정한 가족이 불태운 경우도 있으며, 누군가에 의하여 도둑을 맞은 것도 있습니다. 문제는 도둑질해 간 사람이 원고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시 돌려주지 않은 탓에 빛을 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즈음에는 컴퓨터로 원고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작업을 하던 글이 날아가기도 합니다. 저 역시 지난 주말에 종일 작업한 원고를 갈무리하면서 오히려 삭제하는 바람에 망연자실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원고를 다시 썼습니다. 다행히 큰 틀에서는 내용의 상당부분을 되살렸지만, 원고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간결하게 써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캐나다 작가 앤 마이클스는 <덧없는 시편들>이라는 소설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합니다. “부재의 기억이 남아 있다면 부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 땅이 더 이상 없어도 땅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지도를 만들 수 있다.(16쪽)”

헤밍웨이 역시 “글쓰기에는 많은 비밀이 있다. 당시에는 아무리 잃어버린 것처럼 보여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사라진 것은 늘 다시 나타나 남아 있는 것의 힘이 되어준다.(70쪽)”라는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책으로 인하여 더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라진 책이 어딘가 숨겨져 있다가 세상에 등장한다거나, 아니면 사라진 책의 내용을 새롭게 써내는 경우도 없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는 사라진 책들을 읽어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사라진 책들과 관련이 있는 작가들이 쓴 다른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찾아서 읽어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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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의학의 역사 한빛비즈 교양툰 4
장 노엘 파비아니 지음, 필리프 베르코비치 그림, 김모 옮김, 조한나 감수 / 한빛비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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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어렸을 적에는 만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옛날에는 흥밋거리고 만화를 읽었다면 요즘의 만화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공부거리도 만화로 그려놓으면 쉽게 이해한다고 합니다. 의학 분야에서도 만화로 된 교재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만화 항생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 소개하는 <만화로 배우는 의학의 역사> 역시 만화라는 매체로 의학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만화 항생제>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 만화는 프랑스의 만화가 필리프 베르코비치가 그림을 그리고 장 노엘 파비아니가 글을 썼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고대 주술에서부터 나노기술까지’라는 홍보문안처럼 원시적인 치료술부터 최근 고도로 발전하고 분화된 다양한 의료기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의학은 아주 전문적인 영역이라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절달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저자들은 주술의 힘을 빌던 원시의학에서 기록으로 남아있는 중요한 고대의학이 성립되어있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히브리(히브리 의학의 정체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느낌입니다), 중국의학 등을 다루었습니다만, 고대인도의학이 빠진 것이 아쉽습니다.

각 지역의 고대의학은 전통의학으로 맥을 이어왔습니다만,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의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집대성되어 로마로 전해졌고, 르네상스를 통하여 과학과 접목하여 현대의학으로 발전해갑니다. 그리스의학에서는 의철학 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보입니다. 그림을 보면 히포크라테스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이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곱씹다가 선서를 만들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만, 한번 확인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로마시대에는 신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이 침체기에 빠져있었는데, 그리스의학을 전해 받은 이슬람의학이 이를 발전시켜 르네상스 시기에 유럽에 되돌려주었습니다. 21개나 되는 주제 가운데 고대와 중세의학에 할애된 부분은 3장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근세 서양의학이 현대의학으로 발전해오는 단계에서부터 분화되고 심화되는 과정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서양의학의 흐름을 보면, 그리스의학이 로마의학으로 이어졌다가, 중세에는 이슬람의학이 그리스의학을 발전시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르네상스시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현대의학이 태동하기 시작하여, 프랑스를 거쳐 독일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현대에 들어서는 아무래도 자본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미국이 중심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작가들이 프랑스 사람들이다보니 근대의학의 발전과정에 기여한 프랑스 의료진이 많이 거론되는 것 같습니다.

이발사가 맡던 외과영역이 의학의 범주로 포함된 사연을 비롯하여 중세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페스트를 비롯한 전염병이 통제되어가는 과정, 의학의 영역에서 사용하게 되는 다양한 기구들이 발명된 사연 등이 재미있게 다루어졌고, 마취법, 항생제 등 혁신적인 의료기술이 개발된 사연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밖에도 실험의학, 소아의학, 안과학, 세포병리학, 유전학, 법의학 등 의학의 세부분과들이 갈라져 나오는 과정을 다루었지만,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부문도 엄청 많습니다.

심지어는 사회보장제도, 대체의학까지도 다루고 있는데, 이를 대체했어야 할 주목할만한 분야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속편이 기대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만화라고 하면 눈으로 쓱 훑어 읽다보면 책장이 훌훌 넘어간다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새겨 읽을거리가 많아서, 그리고 그림도 흥미롭기 때문에 눈길을 붙든 탓인지 완독하는데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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