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자의 서
서규석 엮음 / 문학동네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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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심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현생에 대한 아쉬움이 크거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사후세계의 안녕을 내세우는 종교의 영향이 클 것입니다. 사후세계의 안녕을 위하여 현세에서 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누구도 확인해볼 수 없었던 사후세계를 두려워하는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요즈음도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것, 혹은 고인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들을 같이 담아 장례를 치르기도 합니다. 부장품이라고 하는 이런 것들이 옛 무덤에서도 많이 발굴되는 것을 보면 예로부터 유래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신분이 높은 경우 살아있는 사람까지 묻는 순장제도의 경우는 솔직히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부장품이나 무덤의 내부에서 죽은 이가 영생을 얻거나 부활하는 방법을 적은 기도문이 발견되는 문화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자(死者)의 서(書)는 특히 티베트와 이집트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이집트 여행을 앞두고 죽음과 죽은 자에 대한 이집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집트 사자(死者)의 서(書)>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사자(死者)의 서(書)를 기록한 것은 어느 시대에서 반짝 유행하던 것이 아니라 고왕국시절부터 프톨레미 왕조에 이르기까지 삼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전통이라고 합니다. 묘실의 벽에 기록되거나 부장된 파피루스에 상형문자로 기록된 내용으로 로제타석의 발견을 계기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도굴꾼들은 사자(死者)의 서(書)를 ‘죽은 자가 반드시 몸에 지녀야 하는 책’이라는 뜻으로 키탑 알 마이이트(Kitab al Mayyit)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래의 이름은 레우 누 페르 엠 후루(Reu nu pert em hru)라고 하는데, 이는 ‘낮에 출현하는 장(章)’이라는 뜻으로 ‘사자가 오시리스 왕국의 심판을 받은 후 아침에 뜨는 낮의 태양과 함께 현세로 나오는 것 즉 부활,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는 주문집’을 복합적으로 상정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즉 사자의 서는 부활의 서가 되는 셈입니다.

사자(死者)의 서(書)는 구전으로 전해오던 것으로 부활을 위한 주문, 라에 대한 경배, 마법의 말, 주술 공식 등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고왕국시기에 들어 왕들의 피라미드나 분묘, 관 등에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크게 3종류의 사자(死者)의 서(書)가 있는데, 기원전 3,100년경의 고왕국 시기에는 주로 피라미드의 현실에 새겨놓았기 때문에 ‘피라미드 텍스트’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제11왕조가 시작되는 기원전 2,233년경의 중왕국 시기에는 일반 민중에게까지 확산되었는데, 민중들의 미이라를 담은 관에서 발견된 문구들을 모아놓은 것을 ‘코핀 텍스트’라고 한답니다.

제18왕조가 시작된 기원전 1567년의 신왕국시대부터 프톨레미왕조의 사자의 서는 왕조별로 구분하여 부르는데, 왕조가 바뀔 때마다 수도를 옮겼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 구분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헬리오폴리스 텍스트’는 기원전 2,494년에서 2,181년까지 제5왕조와 제6왕조 시대의 것들을 이르는데, 사카라의 피라미드의 벽과 무덤의 현실 내에 상형문자로 기록되었던 것들이라고 합니다. ‘테베 텍스트’는 기원전 1,568년부터 1,085년 사이의 제18왕조에서 제20왕조에 이르는 것으로 관과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던 것들입니다. ‘사이테 텍스트’는 개원전 664년 제26왕조 이후의 것으로 파피루스나 관을 비롯한 상징물에 상형문자, 신성문자, 문중문자로 기록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집트 사자(死者)의 서(書)>는 모두 4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에서는 이집트에 전해지는 천지창조와 부활의 신화를, 2부에서는 영원과 천국의 세계를, 3부에서는 부활의 염원이 깃들인 파피루스를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사자의 서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책을 통해서 이집트에서 죽은 이를 미이라로 만들고 피라미드를 건설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유대교를 비롯하여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교리의 뿌리가 이집트에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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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 인류 최초의 세계도시 알렉산드리아, 그 탄생과 몰락
만프레드 클라우스 지음, 임미오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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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하면 프톨레마이오스가 세운 도서관이 생각납니다. 물론 오랜 과거에 불타 사라지고 흔적이라도 남아있을까 싶습니다만, 그래도 이집트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웬지 알렉산드리아가 빠지만 섭섭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습니다. 흔히 제국이나 왕국, 혹은 국가의 역사를 정리한 역사책은 많지만, 도시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읽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인류 최초의 세계도시 알렉산드리아, 그 탄생과 몰락’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것처럼, 도시의 역사인데, 특히 ‘인류 최초의 세계도시’라는 점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쓴 만프레드 클라우스 교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의 고대 사학과에서 로마황제 시대사와 고대 사회사를 전공한 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알렉산드리아의 역사를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하여 건설된 시점부터 아랍사람들이 점령할 때까지의 역사, 그러니까 로마제국을 거쳐서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까지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하던 기원전 331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프톨레아미오스 왕조가 로마제국에 무너지고 로마제국의 속주로 편입되었던 기원전 30년부터 로마제국이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나뉜 시점에 해당하는 서기 284년까지, 속주의 수도였던 시기, 마지막으로는 서기 284년부터 641년까지인데 이 시기는 동로마제국의 영역에 속하면서 618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잃었던 이집트를 629년에 되찾았다가 642년 아랍의 우마위야 왕조에 빼앗길 때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동로마제국은 정교일치의 시기였기 때문에 대주교에 의한 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춘 것 같습니다.

나일강이 지중해로 열리는 하구에 세워진 도시 알렉산드리아에는 고대 이집트의 원주민보다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입된 이방인이 주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도시를 처음 건설한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왕이었고, 알렉산드로스가 젊은 나이에 죽은 뒤로는 마케도니아의 장수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리아를 거점으로 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개창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뒤로는 로마제국이 지배를 받았으니, 알렉산드리아는 이방인의 도시, 즉 세계인의 도시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일강 중 상류에서 살던 이집트 원주민 역시 알렉산드리아가 번창하면서 이주해 들어왔을 것이므로, 이집트 원주민의 문화, 특히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는 여러 신을 믿었던 로마제국이니 만큼 이집트 고유의 신을 받아들여 통치의 이념으로 삼아야 했을 것 같습니다. 책의 앞부분을 읽다보면 이제는 사라진 프롤레마이오스 왕국 시절 알렉산드리아에서 주목받았을 여러 건축물을 비롯하여 도시 시설들이 마치 지금도 있는 것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막상 알렉산드리아에 가면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가 설명하는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모습은 고고학적 성과로 확인된 유물이나 고대 그리스 혹은 로마 사람들이 남겨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실감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로마제국에서 활약한 많은 사람들, 특히 저의 전공인 의학 부문의 전문가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고 업적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활약한 의사 헤로필로스는 당시에 이미 대규모로 시체를 해부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를 비롯하여 기독교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한 개략적인 정황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 카이사르의 방화로 불타버렸다고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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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
로저 크롤리 지음, 이재황 옮김 / 산처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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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를 다녀온 지 벌써 4년이나 지났습니다. 아나톨리아반도의 서쪽 절반을 도는 일정이었는데, 마지막 이틀은 이스탄불을 구경했습니다. 이스탄불은 비잔틴제국 시절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였습니다. 유일한 천년제국 비잔틴도 결국은 문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라 믿었던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제국군대의 공세를 버텨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거대한 힘을 가진 두 제국이 접경을 하게 되면 충돌은 필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했던가요? 아무리 힘이 빠져가는 비잔틴제국이라고 해도 떠오르는 오스만제국이 쉽게 어떻게 해볼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불과 기천의 군사로 수십만 대군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점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1453년 5월 29일 오스만군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메흐메트2세가 오스만 해군의 함정을 갈라타의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마르마라해에서 금각만으로 진입시킨 기상천외한 작전 덕분이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슬람세력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가지려는 염원은 이슬람교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629년 비잔틴제국의 28대 황제 헤라클레이토스가 예루살렘의 도보순례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페르시아와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고 합니다. 그 무렵 헤라클레이토스는 편지를 한통 받았는데 바로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알라에게 무릎을 꿇기를 청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슬람 교리를 바탕으로 아라비아의 사막에 흩어져 있는 부족들을 통합한 이슬람은 놀라운 속도로 페르시아를 복속시키고 사방으로 영역을 확장시켜나갔습니다. 당연히 비잔틴제국과도 충돌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669년에는 우마이야왕조의 무아위야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대규모 상륙부대를 파병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비잔틴제국과 아랍세력의 충돌은 40여년에 걸쳐 이어졌지만 아랍세력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역사가들은 “하느님이 로마 제국을 보호했다”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우마이야왕조에 이어 셀주크 튀르크 역시 비잔틴제국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80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비잔틴제국이 속으로 곪아 들어간 뒤에서야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슬람의 강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의 저자 로저 크롤리는 작가이자 역사가로 이스탄불에 살았던 적이 있고, 아나톨리아를 여행하는 등 지중해 연안지역에 관심이 크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슬람교가 시작된 7세기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이스탄불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요약해냈는데, 옛일은 큰 묶음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이슬람에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은 시간을 잘게 잘라서 긴박한 순간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비잔틴제국을 영도하던 콘스탄티노스 11세와 패기의 오스만제국을 영도하던 메흐메트2세의 건곤일척의 대회전은 젊음의 패기가 마지막 승자가 되었습니다. 읽어가다 보면 비잔틴제국의 멸망은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이 가톨릭과 정교로 각각 나뉘어 갈등을 빚는 구조 속에서 위기의 상황을 외면했던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쇠약해진 비잔틴제국에게 지원은커녕 가톨릭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밀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종교가 맹목적으로 폭주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때 그랬던 모양입니다. 오스만이 문 앞에 와있는 순간에도 종교갈등을 접어두고 힘을 모을 생각을 왜 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오늘날의 살아가는 우리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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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 실천이성비판 동서문화사 월드북 22
임마누엘 칸트 지음, 정명오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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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비판철학을 공부해보겠다고 나선 것은 전적으로 지난 여름 칸트가 활동했던 쾨니히스부르크-지금은 러시아 땅이 되면서 이름까지도 칼리닌그라드로 바뀌었습니다만-를 찾아갔을 때, 묘와 동상 등 칸트의 흔적을 두루 살펴보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서울대학교 철학과의 김상환교수님께서 쓰신 <왜 칸트인가>를 읽어 요약된 내용을 파악했지만 번역된 내용이라도 원저를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욕심을 냈던 것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동서문화사에서 내놓은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을 하나로 묶은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 한 것은 지나친 욕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전체의 윤곽을 잡은 셈 치고 조만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의 내용이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는지 정리해둔 목차를 먼저 보더라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야 했습니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서론에 이어 선험적 원리론을 먼저 설명했습니다. 여기에는 선험적 감성론과 선험적 논리학을 따로 나누었습니다. 이어지는 제1권 선험적 분석론은 모든 순수지성 개념을 발견하는 실마리와 순수오성 개념의 연역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개념의 분석론’과 순수지성 개념의 도식론과 순수지성의 모든 원칙 체계를 설명하는 ‘원칙의 분석론/선험적 판단력 일반에 대해’로 나누어 설명하였습니다. 제2권 ‘순수이성의 변증적 추리에 대해’에서는 순수이성의 오류 추리, 순수이성의 이율배반, 순수이성의 이상 등을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선험적 방법론은 순수이성의 훈련, 순수이성의 규준, 순수이성의 건축술, 순수이성의 역사 등으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실천이성비판>은 <순수이성비판>에 비하여 구조가 간단합니다. 머리글/들어가는 말에 이어 순수실천이성의 원리론을 먼저 설명합니다. 순수실천이성의 원리론은 순수실천이성의 원칙과 순수실천이성의 대상 개념, 순수실천이성의 동기로 구성된 순수실천이성의 분석론과 순수실천이성 일반의 변증론과 최고선의 개념 규정에 있어서의 순수이성의 변증론으로 구성된 순수실천이성의 변증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순수실천이성의 방법론은 별도의 구분 없이 통으로 설명을 전개합니다. 그리고 맺음말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책의 말미에는 번역하신 정명오교수님이 쓰신 것으로 보이는 칸트의 생애와 사상을 붙였는데, 칸트의 삶을 정리한 ‘철학연구에 바친 생애’와 칸트철학을 정리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대한 내용을 철학서를 읽을 때는 역시 번역하신 분이 요약해놓은 내용을 먼저 읽어 개념을 정리한 뒤에 책읽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책읽기였습니다.

칸트의 비판철학이 학문적 차원에서의 사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읽어가다 보면, 최근의 사태에 비추어 귀감이 되고도 남을 이야기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그가 결코 거짓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오직 그의 의지에만 적용되는 하나의 규칙이다. (…) 그런데 이 규칙이 실천적으로 정당한 것임이 알려지면, 그것은 법칙이다. 왜냐하면, 이 규칙은 하나의 정언명령이기 때문이다(실천이성비판 587쪽)”라는 대목도 있었고,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인 법칙의 수립이라는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실천이성비판 599쪽)”,  그리고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자연법칙처럼 모두에게 통용되는 원칙이 되어도 좋은지 스스로에게 묻고나서 행동하라!(실천이성비판 826쪽)”는 대목도 있습니다. 누가봐도 수긍할 수 있도록 원칙을 지키는 행동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우리네 현실은 무슨 까닭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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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씨앗은 숲을 그린다 -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생각과 생각
김기철 지음 / 두앤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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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책을 읽는 것이 좋아서 책을 읽는 것인지 독후감을 쓰기 위하여 책을 읽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책을 읽고 나서는 꼭 독후감을 적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얻은 느낌을 정리해두는 방식으로 독후감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때로는 주제를 가져온 책을 중심으로 관련된 다른 책의 내용까지도 끌어다 제 생각을 정리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쓴 독후감이 280여편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 일부를 뽑아서 책으로 꾸며내게 될 것 같습니다.

매일경제신문 정치부의 김기철기자가 쓴 <모든 씨앗은 숲을 그린다>는 표지가 눈길을 끌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바람에 날려 숲 위로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에 ‘나는 지금 / 무엇을 위해 / 살고 있는가’라고 적은 문구가 결정적으로 책을 골라든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자의 말’에 보면, 2016년 말 연재를 시작한 ‘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를 통하여 발표한 글을 엮어냈다고 합니다. 연재를 시작한 계기는 박근혜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촛불시위였다고 하는데, 당시의 상황을 마주하면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지도자를 뽑은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를 쓴 얀 마텔이 한국어판 서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학을 읽으십시오.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충고했다는 것을 떠올렸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과 더불어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생각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 ‘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연재하는 것하고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묶은 것은 또 다른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제에 따라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게 되었는데, 저자 역시 같은 맥락으로 접근한 듯합니다. 28 꼭지의 글을 다섯 개의 주제로 나누었습니다. 1. 무엇이 인생의 가치를 좌우하는가, 2.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3. 씨앗의 기다림이 숲을 만든다, 4. 성숙한 공존은 어떻게 가능한가, 5.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원했던 미래일까? 등입니다.

서문에서 인용했던 얀 마텔의 이야기는 ‘1. 무엇이 인생의 가치를 좌우하는가’의 마지막 글입니다. 얀 마텔이라는 저자는 캐나다의 스피븐 하퍼 총리에게도 소설과 희곡 그리고 시 등 문학 부문의 책을 읽으라는 편지를 보낸 바 있다고 합니다. 캐나다 예술위원회 50돌 기념행사에서 딴 짓에  몰두하는 모습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퍼 총리가 얀 마텔의 편지를 읽고 조언을 따랐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런데 얀 마텔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의 내용을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의 한국어판 서문에 소개했다고 합니다. 그 편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대통령은 그 충고에 따르지 않았다고 이 책의 저자는 단정하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책을 읽는 대신 드라마를 보고 피부관리에 집중했다.’라고도 썼습니다. 정말 그랬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제가 책을 고르고, 읽고, 책이 주는 느낌에 대한 글을 쓰는 과정을 돌아보면, 모든 과정에서 저 자신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취향이라는 고상한 단어를 골랐지만, 때로는 편견이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시빗거리가 될 만한 글을 쓸 때는 시빗거리에 관한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여 가치중립적인 글을 쓰려고 합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취향에 따라 제 생각을 풀어놓게 되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책을 쓰신 김기철 기자님께서는 정치분야에서 활동하시기 때문에 가치중립적 기사의 의미를 잘 아실테고, 기사에 담긴 내용이 사실에 기반하여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에 담긴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글을 읽어보면 책을 읽을 때 가져야 할 시선이나 책을 읽고 그 느낌을 글로 옮길 때 고려해야 할 점들을 많이 깨우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3년 전에 시작하셨다는 ‘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면 요즈음 어떤 주제를 다루고 계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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