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는 곧 훨씬 더 많은 식량과 조밀한 인구를 의미했다. 그 결과 잉여 식량이 생겼고 또한 일부 지역에 서는 동물을 이용하여 그와 같은 잉여 식량을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났다. 그 두 가지는 정치적으로 중앙집권화되고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경제적으로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정주형 사회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가축화•작물화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유라시아에서 제국, 문자, 쇠 무기 등이 제일 먼저 발달했고 다른 대륙에서는 그보다 늦어지거나 끝까지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궁극적 원인이 된다. 말과 낙타의 군사적 쓰임새와 동물에게서 얻은 병원균의 살상력을 마지막으로, 우리가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게 될 식량 생산과 정복 사이의 여러 연관성들이 모두 드러났다. - P127

이러한 전환의 과정이 그렇게 천천히 진행되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식량 생산 체계 자체가 시간과 노력을 할당하는 데 대한 수많은 결정들이 하나씩 누적되면서 발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먹이를 찾는 동물이 그렇듯이 인간이 먹을거리를 찾는 데도 시간과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고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초기 농경민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오늘은 채소밭을 일굴까(몇 개월 후에는 많은 채소를 수확할 수 있을 텐데), 조개를 캘까(오늘 당장 약간의 조갯살을 먹을 수 있을 텐데), 아니면 사슴을 사냥할까(잘하면 오늘 당장 많은 양의 고기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한 마리도 못 잡을 가능성이 더 많은데)? - P173

이상의 네 가지 요인을 종합해보면 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식량 생산이 B.C. 18500년이나 B.C. 28500년이 아니라 B.C. 8500년경에 시작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앞의 두 시기에는 아직 수렵 채집 쪽이 초기 단계의 식량 생산보다 훨씬 더 보상이 컸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는 야생 포유류는 풍부했던 것에 비해 야생 곡류는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곡류를 채집, 가공, 저장하는데 필요한 발명품들 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단위면적당 더 많은 열량을 수확하는 일에 중점을 둘 만큼 인구밀도가 높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 P180

식물이 동물을 유인하는 한 예로서 야생 딸기의 경우를 보자. 딸기씨가 여물지 않아서 아직 땅에 심길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는 종자를 둘러 싸고 있는 과육 또한 파랗고 시고 단단하다. 그러다가 씨가 다 익으면 과 육도 빨갛고 달고 연해진다. 이렇게 딸기의 색깔이 변하는 것은 결국 개똥지빠귀 같은 새들이 그 딸기를 따 먹고 날아가서 종자를 뱉어내거나 배설하도록 유인하는 신호인 것이다. - P186

최근에 와서 기름을 얻기 위해 목화를 개량했지만 물론 그전에는 직물을 짜기 위한 섬유를 기준으로 목화를 선택했다. 그 섬유(생솜)는 원래 목화씨에 붙은 털이었다. 남북아메리카와 구대륙의 초기 농경민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다른 종의 목화에서 긴 생솜을 선택했다. 아마와 대마도 직물을 짜기 위해서 재배했는데, 섬유가 줄기에서 나왔으므로 이 경우에는 길고 곧은 줄기를 가진 개체가 선택되었다. 대부분의 농작물은 식량을 얻기 위해 재배되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아마는 가장 오래된 농작물 중의 하나다(B.C. 7000년경 이전에 작물화되었음). 산업혁명 이후 목화와 합성섬유로 대체될 때까지 아마는 리넨을 짜는 유럽의 주된 섬유식물이었다. - P191

가축화된 동물이란 인간이 번식과 먹이 공급을 통제하는 동물, 즉 감금 상태에서 인간의 용도에 맞도록 선택적으로 번식시켜 야생 조상으로부터 변화시킨 동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 P248

가축화된 동물이 그 야생 조상으로부터 분기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크기가 달라진 종들이 많다. 소, 돼지, 양 등은 가축화 과정에서 더 작아졌으며 기니피그는 더 커졌다. 양이나 알파카의 경우에는 속털wool 은 보존하되 뻣뻣한 겉털hair은 줄이거나 없애는 방향으로 선택되었고 소는 젖의 양을 늘리는 방향으로 선택되었다. 가축화된 동물들은 더러 두뇌가 작아지고 감각기관이 덜 발달되기도 했다. 야생 포식자들로부터 도망쳐야 했던 조상들과는 달리 큰 두뇌나 발달된 감각기관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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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가장 가까운 살아 있는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동물들은 아직 멸종되지 않은 3종의 대형 유인원–고릴라, 침팬지, 피그미침팬지 (보노 보)–이다. 이 유인원의 분포가 모두 아프리카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은 풍부한 화석 증거와 더불어 인류 진화의 초기 단계가 바로 아프리카에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동물의 역사와 구별되는 인류의 역사는 그곳에서 약 700만 년 전(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략 500만~900만 년)에 시작되었 다. 그 시기에 아프리카 유인원의 한 부류가 몇 갈래로 나누어졌다. 그 중의 첫 번째는 현대의 고릴라로 진화했고 두 번째는 현대의 침팬지, 그리고 세 번째가 인간이 되었다. 고릴라의 계통은 침팬지와 인간의 계통이 분기된 시기보다 조금 먼저 분기되었다. - P46

남북아메리카를 점유하는 것과 동시에 각 대륙에서 주거가 가능한 지역과 대륙에 딸린 섬,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뉴기니 동쪽에 이르는 대 부분의 대양섬에는 사람이 살게 되었다. 세계 각지의 나머지 섬들에도 사람이 이주하게 된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였다. 지중해의 크레타, 키프로스, 코르시카, 사르데냐 등의 섬들은 B.C. 8500~4000년이었고, 카리브 해의 섬들은 B.C. 4000년경부터, 폴리네시아와 미크로네시아의 섬 들은 B.C. 1200~1000년, 마다가스카르 섬은 A.D. 300~800년의 어느 시기,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A.D. 9세기였다. - P67

고고학자는 남북아메리카를 바라보면서, 아프리카는 엄청나게 출발이 빠르긴 했지만 길어도 1000년 이내에 최초의 아메리카인 들에게 추월당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에는 남북아메리카의 면적이 (아프리카보다 50%나) 더 넓고 환경도 훨씬 다양하므로 아메리카 원주민이 아프리카인보다 유리했을 것이다. - P69

조세를 통하여 비축한 잉여 식량이 있으면 왕이나 관료 이외의 전업식 전문가들도 부양할 수 있다. 그중에서 정복 전쟁과 가장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전문적인 병사들을 먹여 살리는 데 쓰인다는 점이다. 영국이 잘 무장된 뉴질랜드의 토착민 마오리족을 패배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그것이었다. 마오리족도 일시적으로는 몇 번의 놀라운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전쟁터에 지속적으로 군대를 주둔시킬 수가 없었다. 결국 마오리족은 1만 8천 명의 전업식 영국군에 의하여 서서히 파멸하고 말았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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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혼란 속에서 누가 우리를 이해할까? 혹시 방금 가까스로 벗어난 질병에 대해 향수를 느낄 수 있을까? 혹시 나는 병에 걸렸을 때 낫기를 원했는데, 이제 다 나은 마당에 기껏해야 병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지금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무엇인가가 끝났고, 이제 다른 것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 P384

"그래요, 마르게리타. 나는 근무를 할 때마다, 또 치명적인 커브 지점에 도착할 때마다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에게 인사 하는 것을 보며 생각하지. ‘다음번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뛰어내릴 거야.‘ 권태가 나를 짓누르고 있어, 마르게리타. 그리고 더욱더 내 일을 힘들고 어렵고 불쾌하게 만들지. 나는 절망적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싶고, 바로 몇 년 전부터 창가에 있는 아가씨의 미소 속에서 내가 읽어 내는 초대에 응하고 싶어. 그런데 매번 뒤로 미루지. 바로 특급열차 136호 기관사의 이야기를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열차를 세우지도 않고 뛰어내리지도 않는 거야. 내가 그 기관사처럼 끝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지.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야." -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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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친구 조반니와 알베르티노가 나타났다. 조반니는 차에 오르면서 물었다.
"지겨웠어?"
파시오나리아가 대답했다.
"나는 안 지겨웠어요."
"너는 조용히 해!"
마르게리타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그렇지 않아요! 만약 내가 엄마를 구해 주지 않았다면, 담배를 피웠다고 신부가 벌금을 물렸을 거예요!" - P330

"너희들은 아무것도 몰라!"
마르게리타가 외쳤다.
"너희들은 다른 세대에 속해! 너희들에게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 페니실린, 통증 없는 치과, 전화, 엘리베이터, 자동차, 라디오. 진공청소기, 전기냉장고…"
파시오나리아가 말을 가로막았다.
"냉장고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너희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잖아! 하지만 우리는 다른 세대에 속해. 모든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대의 사람이란 말이야. 그래서 주저주저하며 엘리베이터를 타지. 우리에게 엘리베이터는 아직도 새롭고 괴상한 것이니까. 마찬가지로 치과를 무서워해.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치과를 고문실 같은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지금 엄마는 젊지 않고 나이가 들었어요. 그리고 이빨이 아픈 것은 지금이에요" - P337

식사를 하는 도중에 야채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 큰소리로 "햄릿!"을 외쳤다. 그러자 식당 주인이 아닌 강아지가 나타나 계단 위에서 나를 바라보며 낑낑거렸다. 강아지는 내가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한 번 햄릿을 불렀다. 그러자 그 강아지가 또다시 나타나 나를 바라보면서 낑낑거렸다. 그 뒤 식당 주인 햄릿도 나타났다. 나는 야채를 주문한 다음 그에게 말했다.
"저 강아지 이름이 뭔지 나는 알아요."
그리고 유리창을 향해 다시 한 번 "햄릿!"을 외쳤다. 강아지는 어김없이 문 앞에 나타났고, 나를 보며 짖어 보려고 했다. - P343

내가 다시 햄릿을 바닥에 내려놓자 햄릿은 위안이 된 듯했다. 하지만 작업실을 나가 기 전에 바닥에서 끈 조각을 발견했고, 그것을 갖고 놀려고 이빨로 물었다. 불행히도 그것은 책상의 전등과 연결된 전선이 었다. 햄릿은 꼬인 두 가닥 전선 중의 하나에 이빨로 구멍을 뚫다가 강한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약간 울었다.
"햄릿, 내가 말했잖아. 기계의 발전을 믿지 말고 자연에 매달려 있으라고!"
나는 경고했다. - P352

"당신이 느끼는 것이 무엇이오?"
마르게리타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조반니노! 어느 순간 여기 무엇인가를 느끼는 데..."
"여기? 어디 말이오?"
마르게리타는 우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누구도 괴로움의 위치에 대한 지도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영혼 속에 침투하는 괴로움의 위치를 알 수 있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잘 생각해 보라고 달랬다.
"마르게리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기왓장을 맞는 것 같은 심리적 동요를 겪을 필요는 없어요. 그 괴로움을 분석해 봅시다. 만약에 갑자기 어떤 괴로운 느낌이 영혼에 침투한다면, 어느 지점에서 침투가 시작되오?"
"영혼이란 확정된 것이 아니에요. 형태도 없고, 둘레도 없고, 중심이나 표면도 없고, 측면이나 변, 각도도 없어요. 그러니 ‘지점‘도 없지요. 아니면 당신은 내가 영혼 대신 어떤 평행 육면체나 십이면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 P369

이번 여름 나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옛날의 눈, 전쟁 이전의 눈이었다. 나는 8월 휴가철의 황량한 도시를 돌아다녔다. 도시에는 무더위와 정적, 일상의 권태만 남아 있었다.
‘죽어야 할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무엇인가를 믿었던 사람들도, 다른 것을 믿었던 사람들도 죽었다.‘
‘아무것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사건 속에 휘말렸던 사람들도 죽었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은 부드럽게 그들을 잊기 시작할 것이다…‘
어디에선가 읽은 이 글귀들이 지금 내 귓전에 맴돌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이런 글을 쓰지 않았다면 분명히 지금 내가 썼을 것이다. 대략 그런 정도의 말을.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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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서류 가방을 찾아요. 어디 있어요?"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서류 가방을 찾은 게 아니야! 네 책가방을 원하는 거야."
파시오나리아는 아주 놀란 것처럼 중얼거렸다.
"내 가방이요? 무엇에 쓰게요?
"네가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고 싶어."
파시오나리아는 천천히 잡지들이 쌓여 있는 구석으로 가면서 투덜거렸다.
"사람들이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면 훨씬 좋을 텐데!" - P264

"조반니노, 벌써 1년 전부터 나는 자네의 상을 생각하고 있었네. 분명히 무언가 특별한 게 나올 거야.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얼굴이지. 이제 의자에 앉아서 창문 손잡이를 바라보게.
나는 의자에 앉아 창문 손잡이를 바라보았다.
조각가는 몸을 돌리더니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나는 첫 인상의 강렬함을 흩뜨리지 않기 위해 호흡을 멈추었다. 곧 프로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작업을 할 게 전혀 없네. 자네가 아니야." 그 목소리에 서려 있는 실망감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나는 더듬거렸다.
"미, 미안하네. 아마 빛 때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전혀 달라. 5년 전 밀라노에서 자네를 보았을 땐 그렇지 않았어. 무언가를 말해 주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 이마 위로 헝클어진 머리카락, 불그스레한 눈자위, 입가에 단단하게 팬 주름…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뀌었어. 지금은 평온한 사람의 얼굴이야. 편안하게 살고, 아무 생각없이 마음껏 먹고 마시는 사람의 얼굴이지. 그러니까···." 내가 말했다.
"간단히 말해 얼간이 얼굴이지."
"아니. 단지 관심을 끌지 않는 얼굴이야." - P275

"그럼 당신이 생각하기에 나는 누군데?"
"내 생각에 당신은 가족의 ‘망신‘ 이에요. 그리고 저 사람들 이 생각하기에 당신은 벌써 몇 해 전부터 매주 그들을 모욕하고, 또 콧구멍이 세 개 있는 모습으로 그리는 등 그들을 조롱하는 사람이지요."
"그게 무슨 상관이오? 지금 나는 언론상의 논쟁을 하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맥주 한 잔 마시러 가려는 건데."
"과거는 맥주 한 잔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모욕을 주는 사람은 그 모욕을 모래 위에 쓰지만, 모욕을 받은 사람은 청동에 새겨 두는 법이에요." - P319

나는 회랑의 아치 아래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우리 쪽을 힐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반니노, 저 사람들이 당신을 알아보았어요!" 마르게리타는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오."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예요! 조반니노, 저 사람들이 어떤 얼굴인지 보이지 않아요?"
사실 그들의 얼굴이 그다지 친절해 보이지는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당히 어두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진지한 얼굴이었다.
"마르게리타, 생각하는 것은 자유요. 말하고 표현하는 것도 자유지. 각자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자 자기가 원하는 얼굴 표정을 지을 수 있어." - P321

마르게리타는 여전히 아득한 목소리로 나에게 담배를 달라 했다. 나는 담배를 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마르게리타는 담배 연기를 몇 번 크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곧바로 커다란 두려움에 사로잡힌 듯 나에게 매달렸다. 오른쪽을 바라보니, 검은색 옷을 입은 커다란 신부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차창 앞에 서 있었다. 신부는 몸을 숙였다.
"정숙한 부인들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그는 묵직하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절대 정숙한 여자가 아니에요."
파시오나리아가 태연하게 말했다.
신부는 어디서 그 목소리가 나왔는지 확인하더니 못마땅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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