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직의 태도는 모른 체하고, 가족과 친척을 지원하는 데 필사적인 부모님에게 오랫동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만은 나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아들과 손주들이 인질처럼 잡혀 있는 부모님이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다고. 아이를 낳아본 적 없는 나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세운 책망의 가시에 자꾸만 스스로 찔렸다.
북송 사업에 대해 후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공개되면 조직 인으로서 아버지가 비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아버지도 이 정도는 말하게 해주고 싶었다.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할 테니까. - P94

하루는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려는 간호사에게 아버지가 폭언을 했다. 아프다고, 그만하라고 소리치는 아버지를 괜찮다며 무시했던 간호사였지만, 나는 바로 그에게 사과하고 도리어 아버지에 게 화를 냈다.
"아버지, 모두 아버지를 위해서 열심히 하는데, 아버지 건강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인데 뭐라는 거예요!" 내가 세게 나가자 아버지는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외쳤다.
"나를 위해서라니! 모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나를 위해서라고 하지 마라!"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병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간호사들은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분노가 에너지로 바뀌었는지 진지한 표정의 아버지는 멀쩡해 보였다.
"아버지가 옳네. 그래, 모두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나는 아버지에게 사과했다.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버지가 말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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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만 해도 차디찼던 피부가 몹시도 뜨거웠다. 한낮의 태양 같은 열기가 온몸에 퍼졌다. 하지만 새벽 다섯시였으니 태양빛일 리는 없었다. 정확히는 다섯시 이십구분 사십오초. 그건 폭탄의 열기였다. 이내 그렇게 갑자기 시작되었던 것이 갑자기 끝났다. 열기가 흩어졌고, 빛도 사라졌다. 환호하고 손뼉 치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많은 이들이 기쁨에 겨워 소리지르며 자축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몇몇은 말이 없었다. 다른 몇몇은 우리 머리 위에 피어오른 불길한 버섯 모양의 구름을 올려다보며 기도했다. 구름 내부에서는 자줏빛 방사선이 생경하게 빛나고 있었다. 구름은 성충권까지 높이, 더 높이 올라갔고, 폭발로 시작된 무시무시한 우렛소리는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산에 부딪혀 왔다갔다하며 계속해서 되울렸다. - P153

돌이켜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칼로 물 베듯 선명히 구분할 수는 없다. 부다페스트를 떠날 때의 아픔과 전쟁으로 상실한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잊히질 않고, 십대 시절 털 코트에 목도리를 두르고 목에 금메달을 건 채 스케이트를 탈 때 내 이름을 연호하던 사람들의 아득한 목소리가, 뚜껑 없는 마차를 타고 성대한 파티에 갈 때 머리칼을 나부끼던 바람이 지금도 생생하다. 파티는 아버지가 우리집에서 연 것이었는데, 진짜 집시 악단이 와서 주말 내내 멈추지 않고 노래를 연주했다. 친척 어른들과 사촌들, 우리 대가족의 친구들이 별안간 시끌벅적하게 등장하면 피아노와 가구를 옮기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추며 놀았다. 이 모든 행복한 기억이 번지면서 악몽과 뒤섞인다. - P155

미국의 지옥경을 누비던 기나긴 오디세이 동안에 나의 일부는 분명 죽음을 맞이했다. 견디기 힘든 열기 속에 땀을 흘리며 광활한 공허함을 응시하던 일, 가도 가도 끝나지 않던 밝은 초록색의 옥수수밭,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생긴 주유소들, 왜인지 조니가 선호했던 추레한 모델들, 활짝 웃지만 머리는 텅 빈 여자들을 만나 같이 웃어 주어야 했던 작은 마을과 소도시, 식당과 가로변 술집과 레스토랑에서 무지함을 뽐내던 멍청한 남자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잠자고 있어야 했던 일까지. 그 나라에는 문화라는 게 아예 없었다. 그저 행복한 아내들이 애국심 넘치고 지극히 미국적인 1950년대 낙관주의에 젖어 자기네들 가전제품을 극찬하고, 미련한 남편들은 술병을 들고서 새로 산 잔디깎이를 미는 그런 나라. - P162

다음날 아침 남편은 멀쩡해 보였다. 그러나 그날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다 른 모든 걸 외면한 채 모든 형태의 기술 발전에 자신을 쏟아부었다. 순수수학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나란 존재도 깡그리 지워졌다. 그는 어떠한 유예도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으며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도 이 세상에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핵 딜레마에 그가 내놓은 대답은 그의 최고와 최악의 모습을 완벽히 반영하고 있었다. 빈틈 없이 논리적이면서 완벽히 반직관적이고, 사이코패스의 경계에 걸쳐 있을 만큼 철저히 이성적인 모습. 많이들 모르는 사실이지만, 남편은 인생을 순전히 게임으로 보았다. 얼마나 치명적이고 심각한지와 무관하게, 인간의 모든 활동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한번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새끼 들짐승의 놀이 방식이 미래에 목숨이 위험해질 상황에 대비한 훈련인 것과 똑같은 이치로, 어쩌면 수학도 그저 기묘하고 놀라운 게임들을 모아놓은 집합체이며, 누구도 상상 못한 미래를 대비해 개인의 차원에서건 집단의 차원에서건 인간 정신을 천천히 변화시키는 것이 그 기획의 진짜 목적,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 너머의 목적이라는 것. 하지만 인간의 고삐 풀린 상상력에서 튀어나온 그 끔찍한 게임들의 문제는, 그것을 현실에서 실행할 때 우리가 어떠한 지식도 대처법도 갖고 있지 않은 위험—그야 현실의 규칙과 진짜 목적은 신만이 알고 있으므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165

나는 조니에게 1928년 그가 발표한 논문 「실내 게임이론」을 읽었노라고 말을 꺼냈다. 혹시 그게 체스 같은 게임에도 적용되는 것인지? 내가 묻자 그는 프로펠러를 힘차게 한 번 돌린 뒤 대답했다. "아뇨, 아니, 아니지! 체스는 게임이 아니니까! 그건 잘 정의된 형식의 계산이지요. 복잡해서 정답을 찾아내는 게 어려울 수는 있어도 이론상 체스에는 반드시 해법이나 최적의 방식이, 체스판의 말들이 어느 자리에서 어떤 형세를 이루고 있건 간에 완벽한 다음 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진짜 게임은 그렇지 않아요. 현실 속 게임은 딴판입니다. 현실에서 이기려면 거짓말과 속임수가 필수니까요. 나는 치밀한 속임수로 구성된 게임에 흥미를 느낍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 마저 속이는 게임 말입니다! 그런 게임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상대의 생각을 읽어내야 합니다. 상대에게 어떻게 대응할지 또 상대가 나의 다음 수를 어떻게 예측할지 생각해야 하지요. 나의 이론은 그런 게임을 다릅니다." - P169

MAD의 원리에 따르면 핵무기를 실어나르는 장거리 폭격기가 일 년 삼백육십 오 일 이십사 시간 내내 착륙하지 않고 지구를 돌아야 하고, 그 비행기들은 핵탄두를 잔뜩 싣고 심해를 순찰하는 거대 잠수함단과 거대 네트워크를 통해 연계되어야 하며, 삼십 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워싱턴에서 모스크바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수천 대가 지하 저장고와 요새화된 벙커에 깊이 묻힌 채 아포칼립스의 나팔소리를 침착하게 기다려야 했다. 이 위태로운 평형상태, 섬뜩한 게임은 냉전이 끝나고도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너무나도 많은 무기가 그대로 남아, 결함 있고 노쇠한 통제 장치의 감시를 받으며, 마치 오래전 죽은 고대 파라오의 시체처럼 강철관에 보존된 채 죽음과 함께 삶이 시작될 날만을 끈기 있게 기다리고 있다. - P174

인생은 게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삶의 풍성함과 복잡함은 아무리 아름답고 완벽하게 균형 잡힌 방정식이라 해도 포착할 수 없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인간이란 존재는 완벽한 포커 플레이어가 아니다. 대단히 비합리적이기도, 의욕만 앞서기도, 감정에 좌우되어 온갖 모순에 종속되기도 한다. 사방에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유발되는 것은 바로 그래서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이성의 광기 어린 꿈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자비이자 이상한 천사이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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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최후의 말을 원하고, 그 말은 너무도 근본적인 것이어서 현실 속의 도달할 수 없는 부분과 뒤엉켜 있다. 나는 논리에서 이탈해 버릴까 봐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내 본능과 솔직함에, 그리고 미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맞이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미래가 되고, 모든 시간은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된다. 그러니 논리에서 벗어난다 한들 무슨 손해가 있을까? - P17

나는 아주 새롭고 참된 단계로 진입하면서 그 단계 자체에 호기심을 느낀다. 그건 그림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고 직접적이다. 마치 당신과 함께했던 순간들처럼. 내가 당신을 사랑했을 때, 나는 그 순간들 속으로 깊이 내려앉았고, 그래서 그것들을 지나쳐 갈 수 없었다. 그것은 주위를 둘러싼 에너지에 닿은 상태이며 나는 몸서리친다. 어딘가 미친, 미쳐버린 조화. 나도 안다, 내 시선은 세상에 완전히 항복한 원시인의 시선과 같을 것이다. 선이 굵은 선과 악만을 허용하고, 머리카락처럼 악에 뒤엉켜 있는 선에 대해서는, 선이기도 한 악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신들처럼 원시적인 시선. - P17

새로운 시대, 나 자신의 시대, 이 시대가 즉시 나의 도착을 알린다. 나는 충분히 용감한가? 지금으로선 그렇다: 왜냐하면 나는 먼 고통에서 왔으니까. 나는 사랑의 지옥에서 왔고 이제 당신에게서 벗어났으니까. 나는 멀리서, 중대한 혈통에서 왔다. 나는 삶의 고통에서 왔다. 그리고 더 이상 그걸 원하지 않는다. 나는 행복의 전율을 원한다. 나는 모차르트의 공정함을 원한다. 하지만 나는 모순을 원하기도 한다. 자유? 그건 내 마지막 피난처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유를 강요했으며, 그것을 재능처럼 지니지 않고 영웅적으로 보유한다: 나는 영웅적으로 자유롭다. 그리고 흐름을 원한다. - P22

이 지금–순간, 나는 경이를 향한 산만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갈망에, 그리고 수도꼭지에서 나와 향기 가득한 정원 잔디밭으로 흘러가는 물에 비친 태양의 무수한 반사광에 에워싸여 있다. 정원과 반사광들은 내가 지금 여기서 지어낸 것이고, 그것들은 내 삶 속 이 순간의 말하기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도구다. 내 상태는 물이 흐르고 있는 정원이다. 나는 그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시간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말들을 섞으려 한다. 내가 당신에게 말하는 건 눈으로 볼 때처럼 빠르게 읽어야 한다. - P23

나 자신을 새로 만들고 당신을 새로 만들기 위해, 나는 정원과 그림자의 상태로 돌아간다. 상쾌한 현실, 나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만약 존재하려면 세심한 주의를 계속 기울여야만 한다. 그림자 주변에는 흥건한 땀의 열기가 있다. 나는 살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 한계에 다다르지 못한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러면 그 한계의 경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아니, 위험한 자유의 모험에는 경계가 없다. 그리고 나는 위험을 감수한다. 나는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산다. 나는 노랗게 흔들리는 아카시아들로 가득하며, 나는 이제 막 여정을 시작한 자이며, 나는 내 인생의 걸음걸음이 어떤 잃어버린 바다로 이어질지 추측해 가며 비극적인 기분으로 여정에 나선다. 나는 내 안의 구석진 곳들을 미친 듯이 통제하고, 그 발광은 너무도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나를 질식시킨다. 나는 이전이고, 거의이고, 전혀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당신에 대한 사랑을 그치면서 얻게 되었다. - P25

그래, 이것은 삶에 의해 보이는 삶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붙잡는 법을 갑자기 잊어버린다. 존재하는 것들을 붙잡는 법을 모르는 나는 무엇이든 상관치 않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산다: 나는 실수들로부터 거의 자유로워졌다. 나는 자유롭게 풀려난 말馬이 맹렬히 달리게 한다. 나는 힘차게 달려가는 자, 오직 현실만이 내 한계를 설정한다. - P26

나는 약한 걸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미친 리듬에 사로 잡힌 약한 여자일까? 만일 내가 강하고 단단했다면 그 리듬이 들리기나 했을까? 나는 어떤 답도 얻지 못한다: 나는 있다. 내가 삶에서 얻는 답은 그것뿐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으로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나로 있다. 가끔 나는 비명을 지른다: 더 이상 내가 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나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고,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삶의 음역대를 형성한다. - P30

따라서 글쓰기는 말을 미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말은 말이 아닌 것을 낚는다. 행간에 있는 말 아닌 것이 미끼를 물면 글이 쓰인 것이다. 행간에 있는 것이 잡히고 나면 안심하고 말을 내버릴 수 있다. 바로 여기가 비유가 끝나는 곳이다: 말이 아닌 것, 미끼를 물기, 말에 통합되기. 그러니 당신을 구원하는 건 넋을 놓은 글쓰기다. - P31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게 될까? 순간들을 말할 것이다. 나는 너무 멀리 가고, 그래야만 존재한다. 나는 열렬히 존재한다. 이 엄청난 열기—언젠가는 삶을 멈출 수 있을까? 이 슬픔이여, 너무도 많이 죽는 나여. 나는 땅을 뚫고 내려가는 뿌리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간다. 나는 열정이라는 재능을 얻은 자, 마른 나무의 모닥불 속에서 뒤틀리며 타오른다. 내 존재를 확장하고픈 나는 내 너머에 존재하는 비의秘儀를 그것에게 가져다 준다. 나는 동시에 존재한다: 나는 내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모은다, 시간, 시계의 똑딱거림 속에서 고동치는 시간.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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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첫 방북이 떠올랐다. 마찬가지로 원산에서 고속도로를 지나 이 자리로 옮겨진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 나 혼자 멍하니 동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내 뒷머리에 손을 얹고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몇 초 후 다시 머리를 들 때까지 그 손은 계속 내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부동자세에서 풀려난 후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머리를 누르다니, 부모도 한 적이 없는 짓이었다.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름 끼치는 굴욕감을 맛보았다. - P65

어린아이를 포함한 모든 북한 사람은 현지 매체의 카메라 앞에서든 해외에서 취재를 온 인터뷰에서든 "장군님 덕택에 행복합 니다. 감사합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라고 말한다.
평양에서 나고 자란 양씨 집안 아이들은 〈디어 평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많이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 한다. 조부모를 향한 소박한 감사 인사처럼 보이는 이 말이 실은 강렬한 아이러니라는 것을 파악한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 P67

아버지는 이미 일흔넷이었으므로 고희연이라고 주장하기는 다소 애매했지만, 부모님에게는 소정의 목적이 있었다. 오빠들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에 사는 먼 친척들까지 평양으로 불러 모아 성대한 잔치를 여는 것이었다. 칠순 잔치는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평양으로 갈 통행 허가증을 얻기 위한 ‘공식‘ 사유였다. 정년퇴직 후 조총련 오사카 본부의 간부가 된 아버지는 칠순 잔치를 당신이 건강할 때 해야 할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했다. 6.25전쟁 전에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갔다가 차별과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북송 사업으로 북에 넘어간 친구들도 초대해야 한다며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옥류관에 불러 모아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에 크게 뽑아서 돌릴 거야. 액자에 딱 넣어서 선물이랑 돈도 좀 넣어주고. 그게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아." 아버지는 늘상 야릇한 표정으로 말했다. - P70

아버지는 북송 사업의 선봉대 역할을 자처했다. 북을 지지하는 조총련과 한국을 지지하는 민단의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동포 사회에서 격렬한 사상투쟁을 벌인 활동가였다. 자신이 가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미화해서 타인에게 이주를 추천하는 무모함을 혁명적 임무라고 믿고 수행했던 것이다. 자기 자식들 손에까지 편도 표를 들려서 북한에 보낸 몇 년 후, 그 나라에 방문해서야 누구보다 북송 사업의 실태를 잘 알게 된 사람이었다. 후회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뿐더러 용서받을 수 없다는 자각도 있었을 터이다. 세 아들과 가족들이 ‘인질‘이 되고야 말았으니 그 체제에 순응하며 살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훈장을 달고 활짝 웃는 부모님의 얼굴이 피에로 같다고 생각하며 나도 웃었다. 북조선을 조국으로 선택해 살아온 두 분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저 믿고 살기로 했을 뿐이었다. 그런 부모님이 웃고 있었다. - P71

뉴욕에 오기 전 함께 일했던, 일본을 대표하는 TV 뉴스 프로그램의 디렉터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베개 밑에 깔린 리모컨 스위치를 누르니 항공기가 충돌해 연기를 내뿜고 있는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을 모든 채널에서 내보내고 있었다." […]
그날부터 조지 부시 대통령은 연설 때마다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나라들을 언급했다. 언론에서 ‘DPRK(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가 오르내릴 때면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국 미국은 이듬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는데, 일본이든 미국이든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를 적대시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연일 무력에 의한 보복을 외쳐대는 것 또한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 P75

"안녕, 영희.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파일이 학생비자 신청을 위해 대사관에 제출할 서류예요. 불안하겠지만 정신 바짝 차려요. 당신은 우리 대학원의 정식 학생이고,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서도 학생의 배울 권리를 지키는 것이 대학의 의무입니다. 만약 미국에 오기 위한 비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우리가 직접 주일 미국대사관에 요청할 거예요. 이 건에 관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우리에게 맡겨요. 가족을 만나러 간다면서요. 여행 잘해요!" - P80

아버지는 저녁에 반주를 들 때마다 뉴욕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한국인 유학생 친구가 많이 생겼다고 하자 무척이나 기뻐했 다. 어머니는 남편과 딸이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안심하면서 평양으로 가져갈 짐을 싸는 데 여념이 없었다. 뉴욕에서 오사카까지도 멀지만, 오사카에서 평양까지 가는 길 또한 쉽지 않은 여정이다. 어이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돌아가면 그만큼 평양의 가족들은 기뻐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던 동생이 부모님과 함께 와주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조카들에게 ‘뉴욕 고모‘는 인기 만점이었다. 부모님에게도 뉴욕에서 일부러 와준 딸은 자랑거리였다. 가장 중요한 점은 30년 만에야 겨우 가족이 모두 모였다는 사실이었다. - P81

나는 옥류관에서 열린 잔치를 카메라로 기록하면서 채플린의 말을 떠올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내 가족을 롱숏으로 바라보기 위해 렌즈의 힘을 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해도 미워해도 답답해도 멀리 떨어져 살아도 가족과 정신적으로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다. 그러한 존재를 부감하여 다각도로 보기 위해서는 밀어낼 필요가 있다. 가족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원거리에서 응시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다. 살아온 날들을 해부하여 내 백그라운드의 정체를 넓고도 깊게 알고 싶었다. 그런 다음 가족과 나를 분리하고 싶었다. - P87

아버지의 연설을 들으며 내 가족을 해부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던 아버지가 실로 많은 말을 삼키면서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 역시 많은 말을 삼켜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 번은 꼭 해야지" 하던 아버지의 말과 연설 사이에 나는 서 있었다. 둘 다 아버지의 말이었다. 둘 다 아버지였다. 잠옷 차림으로 진심을 말하는 아버지도,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아버지도 모두 나의 아버지였다.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어른‘들이 그렇게 본심과 명분 사이를 오가지 않을까. 본심 속에도 명분이 있고 명분도 본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다면체라 여러 측면으로 둘러 싸여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비범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평범해 보여도 인간이란 그러한 생명체인 것이다. 훈장을 단 아버지를 보면 잠옷 차림의 아버지가 떠오르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혁명을 외치는 아버지도 평범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P88

"수용소에 들어가서 몇 년 후에 무죄라고 밝혀지면 보통은 손 해배상감이지."내가 말했다.
"너는 입 다물고 있어." 어머니가 말했다.
불합리한 일은 어느 나라에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의 불합리성에는 특히나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원래 그런 나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예외로 두는 건 불 공정한 것 아닌가. ‘김씨 왕조‘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공정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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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가운데 갇혀 있으니 슬슬 정신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더욱이 초반에는 부지도 완공되기 전이었고 이렇다 할 연구실도 없었기에 나는 내가 정말로 살짝 돌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게 미쳐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프로젝트의 규모며 일이 진행되는 속도며 우리가 만드는 진짜 무기까지, 모두 다. 사람들이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뉴멕시코의 사막은 뜨거웠지만 많이, 아주 많이 아름다웠다. 로스앨러모스는 암적색 토양의 깎아 지른 절벽 위 메사 언덕에 자리했는데, 나무와 관목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숨막힐 듯한 절경이었고, 내가 가본 어느 곳 보다도 아름다웠다. 뉴욕 출신인 나는 서부가 처음이었기에 딴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화성이나 뭐 그런 곳. 그곳은 신성한 터의 오묘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문명 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감시하는 눈도 없고 신조차도 아득해 들여다볼 수 없는 피난처.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벌이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 P137

나는 계속 바둑에 돈을 걸었다. 그만큼 매력적이었으니까. 보기에는 단순해서 오 분이면 규칙을 가르칠 수도 있다. 정사각형 격자판에 검은 돌이나 흰 돌을 두어 상대방 돌을 둘러싸고 최대한으로 영토를 장악하면 된다.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미칠 듯이 어렵고 체스보다 훨씬, 훨씬 더 까다롭다. 우리 중 일부는 바둑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바둑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어느새 마음을 사로잡아 꿈속에서도 바둑을 뒀다. 무엇을 하건 늘 머리 한쪽에서는 바둑을 뒀다. - P144

그때 그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조언을 건넸다. "자네가 사는 세계를 자네가 책임질 필요는 없는 거야." 그런데 언제나 실실 웃으며 즐거워했던 건 폰 노이만뿐만이 아니었다. 로스앨러모스에서 했던 작업을 돌이켜보면, 아내 일로 겪은 개인적인 비극과 상실, 유럽에서 벌어지던 온갖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시절이 내 기억 속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남들 앞에서 대놓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그 시절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면서도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 장난을 멈추지 못했다. 계속해서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 P149

폭발 시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용접용 안경이 전원에게 주어졌다. 자칫 잘못하면 눈이 멀 수도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2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데 어두운 안경까지 쓰면 구경은 개뿔 아무것도 안 보일 테지! 게다가 환한 빛 때문에 눈이 상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자외선이다. 자외선은 유리를 통과 못하니 나는 트럭 앞유리창 뒤에 있기로 했다. 그러면 안전하게 그 빌어먹을 것을 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맙소사, 그건 나의 착오였다! 섬광의 차원이 달랐다. 번쩍이는 순간 나는 눈이 멀었다고 확신했다. 찰나의 순간에 내 눈엔 빛 만이 보였다. 하얀빛이 내 눈을 가득 채우고 머릿속을 지웠다. 끔찍하리만치 불투명한 광채가 온 세계를 삭제했다. 빛의 거대 함은 형용할 수 없었고 너무 순식간이라 반응할 새도 없었다. 고개를 뒤로 획 젖히며 시선을 돌리자 황금색, 보라색, 연보라색, 회색, 파란색으로 불타듯 환해진 산등성이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봉우리와 틈새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났다. 정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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