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야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그 곳 광주의 슬픈 눈물을
감쪽같이 그렇게 모르고 있었다

벌써 8년이 지난 지금에야
우리는 너의 다섯살 때 사진을 신문에서 봤다.
아버지의 영정을 보고 앉은 너의 착한 눈을

미국 서부의 인디언 아버지들처럼
남아메리카의 잉카와 마야의 아저씨들처럼
찢기고 찔리며 죽어간 아버지들처럼
그 때 인디오의 꼬마들도 슬프게 울면서
몸부림 쳤겠지

저 뜨거운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하루 아침 습격해 온 백인들의 쇠사슬에
짐승처럼 끌려갔던 흑인 어머니 아버지들
그 날의 아프리카 정글에서
도천호 같은 아이들이
발을 굴리며 목이 쉬도록 울었겠지

천호야
정말 우리는 몰랐다고 말해도 될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른채
우리는 텔레비젼의 쇼를 구경하고
싱거운 코메디를 구경하며 못나게 웃고
있었다.
그 긴 세월 8년 동안을

그러나 천호야
지금 이렇게 늦었지만
넌달래꽃 한 다발 꺾어
너의 가슴에 안겨 주면서 약속할께
우리 함께 따뜻하게 참을 나누며
우리들의 슬픈 어머니를 위로하며
저 백두산 꼭대기까지
남북의 아이들 모두가 하나 되어
이 땅의 거짓을 쓸어내고
다시는 피흘리는 일 없이 살아갈 것을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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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다 기억나요. 푸가 기억을 잘 못해서 그렇죠. 푸는 그 얘기를 또 듣고 싶대요. 그럼 그냥 기억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가 되는 거잖아요." - P35

크리스토퍼 로빈은 트레스패 서스 더블유 같은 이름이 어디 있냐며 믿지 않았고, 피글렛은 이름이 맞다고 대답했어. 그런 이름이 있다고. 왜냐하면 할아버지 이름이 그거니까. 그리고 트레스패서스 더블유는 Trespassers Will‘을 줄여서 부른 거고, 그것도 원래 이름은 Trespasers william 이었대. 할아버지 이름이 두 개인 이유는 하나를 잃어버린가봐 그랬다는데, 트레스패서스라는 이름은 할아버지 삼춘 이름에서 딴 거고, 트레스패서스 뒤에 윌리엄을 붙인 거라나.
그 말을 듣던 크리스토퍼 로빈이 무심결에 말했어.
"나도 이름이 두 갠데"
피글렛이 말했지.
"그거 봐. 그런 거라니까. 내 말이 맞잖아."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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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로빈!"
"응?"
"너희 집에 우산 있어?"
"있을 걸."
"그럼 우산을 가져와 봐. 그리고 네가 우산을 들고 왔다 잤다 하다가 가끔씩 나를 올려다보면서 ‘쯧, 비가 오겠네‘ 라고 말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벌들도 우리 작전에 속아 넘 어가지 않을까?"
너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몰래 웃었어. ‘바보 곰돌이 같으니라고! 하지만 너는 푸를 무척 아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어. 그냥 집으로 우산을 가지러 갔지.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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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늘 초대 없이 무례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세상은 불행을겪는 이들에게 그것이 그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말하는 더 큰 무례를 범한다. 불행의 원인이 개인의 무능이라 말하거나 심지어 각자가 믿는 종교의 교리를 빌려와 그것이 업보 또는 신의 형벌이라 단정하기도 한다. 불행해 마땅한 존재로 개인을 몰아세우는 것이다. 살고자 불행과 맞서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은 이렇게나 잔인하고 예의가 없다.
정말 속상한 것은, 불행에 지칠 대로 지친 이가 이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저항할 힘이 없어 스스로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마라. 스스로 무례해지지 마라‘ - P274

하지만 나는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지현’, ‘은영’, ‘지은’을 상상한다. 어떤 형태로든 삶을 계속하고 있는 그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뭉클하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한다. 나 역시 그저 계속하겠다고.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바란 것 이상을 나 스스로에게 바라지 않겠다고.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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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라고 다 땅파기를 잘하는 건 아니야.
난 맨날 길도 잃고 흙도 먹고 무서운 생각도 난다고.
다들 놀러 가는데 나만 땅파기 연습이라니….
오늘은 안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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