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들 브루노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인종 차별의 실질적 효력에 대해 아버지는 착각하고 있었다. 경찰서에서는 여권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미 작동된 덫으로 인해 어떤 도피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제 남은 유일한 길은 분명히 아무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희망 없는 미래로 데려갈 그런 길이기 때문에, 차라리 불쌍하게 자기를 낮춰서 이 여행의 동반자들이 그러하듯, 외로이 몽상에 잠기거나 절망에 빠져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자위하는 죄수처럼 슬프고도 비참한 망상에 사로잡히는 편이 더 나았다. 브루노는 여전히 발끝으로 걸으며 창문으로 다가갔다. 두 개의 차광 덮개 중 하나를 살짝 열고 뿌연 유리와 덧창 문의 창살 사이로 내다보았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몇 시간 후에는 높이 쌓일 것이며, 온 도시 위로, 감옥과 게토 위로 답답한 정적을 드리울 것이다. - P198
"감옥은 진정한 학교예요." […] "그렇지만 너무 오래 지속되지 않고, 체력이 약해지거나 소모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말이에요. 나는 나에게 시련을 아끼지 않은 운명에 감사해요. 외로움과 집중, 자기 자신 말고는 달리 친구가 없다는 점은 은혜로운 일이지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자신의 성향에 맞서 싸우는 것, 그리고 때로는 거기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은 감방의 네 벽 사이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지요. 1930년 감옥에서 나올 때, 나는 내 36호 실을(우연의 일치지요? 내 동생의 집 번지와 똑같아요) 정말 우울한 마음으로 떠났어요. 마치 나 자신의 일부를 거기에 버려둔 것처럼 말이에요. 그 벽마다, 구석마다, 사소한 물건들마다 고통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요. 사실 눈물을 흘린 곳, 고통을 겪었던 곳, 희망하고 저항하느라 자기 안에서 많은 능력을 발견하게 된 곳이 바로 가장 애정을 느끼는 곳이에요. 예를 들어, 당신 자신을 봐요. 당신은 같은 종교인 사람들과 함께 떠날 수 있었고, 당신이 겪어야 했던 일을 고려하면 그럴 권리가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다른 선택을 했어요. 여기에 남아 싸우고 견디기를 원했어요. 그리고 이제 당신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어른이 된 이 땅, 이 오래된 도시는 이중적으로 당신의 것이 되었어요. 당신은 이제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 P212
젊은 연인은 오십여 미터 앞에서 가고 있었다. 남자는 자전거에 올라탔고 균형을 잡기 위해 이따금 오른손으로 여자친구의 어깨를 짚었다. 브루노는 줄곧 그들을 바라보았다. "누구 일까? 이름이 뭘까?" 입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롭고 닿을 수 없는 존재 같았다. 저기 저들이 바로 인류의 표본이고 원형이다! 그는 절망적인 사랑과 증오로 눈을 반쯤 감으면서 속으로 말했다. 그들의 피는 그보다 좋은 피였고, 그들의 영혼은 그보다 좋은 영혼이었다. 틀리지 않다면 아가씨의 머리칼은 뒤로 붉은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남아 있는 약간의 햇살은 온통 그 리본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있고, 바로 그들이 된다면! - P217
"당신 말을 듣기 잘했군요. 성벽 위에서는 정말 놀라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어요." 클렐리아 트로티가 평온하게 말했다. 브루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다시 한번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그녀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혼자 말하듯이. 마치 자신의 꿈을 뒤쫓는 것처럼.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의 고독에, 격리된 자의 영원한 망상에 빠져 있었다. 그는 전율했다. 아마도 언젠가 그녀는 브루노 라테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깨달을 것이다. 그는 다시 앞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은, 혹시 올 수 있다고 해도, 분명 아직 멀리 있었다. - P218
이방인이 지나가고, 카페에 앉은 사람들은 빙긋이 입귀를 올려 가만히 바라본다. 하지만 하루 중 어떤 시간이 되면 그들의 시선은 기묘하게 한곳에 붙잡히고 심지어 숨죽이기까지 한다. 지방 도시의 나른함과 게으름이 상상의 대학살에 무슨 책임이 있겠는가? 순진한 이방인의 발길이 무심결에 뇌관을 건드려, 갑작스러운 지뢰 폭발로 보도의 포장석이 정말 깨지기라도 할 것처럼 상상한다 한들 말이다. 아니면 1943년 12월 어느 날 밤, 바로 그곳 델라보르사 카페의 주랑 아래에서 저 보도 위로 시민 열한 명을 쓰러뜨린 파시스트의 신속한 기관총 일제사격이 부주의한 행인에게도 똑같이 그 짧고 끔찍한 춤을, 역사가 몇 년에 걸쳐 기리고 기린 이탈리아 내전의 첫 희생자들에게 시체 위로 쓰러지기 직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틀림없이 추게 했을 그 경련과 발작의 춤을 추게 할 것처럼 상상한다 한들 말이다. - P222
방심한 이방인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곧 대화는 약해진다. 눈을 고정하고 숨을 죽인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총살이 있던 그 보도를 이용할 사람은 자신이 삼가면 좋을 행동을 하게 되리라는 걸 깨달게 될까? 그는 마침내 여행안내서에서 머리를 들 것인가, 들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무엇보다 이 순간 보이지 않는 피노 바릴라리의 얇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픈 역설적인 목소리가 위에서 내려올 것인가, 내려오지 않을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사건을 기다리는 것은 때론 지랄 맞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특히 불확실한 운동경기의 결과를 기다리게 되는 것과 똑같다. - P223
이야기는 매번 피노를 향했다. 하지만 달리 보면, 그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면서 기대한 게 바로 그런 것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제 노상 약국 위층 아파트 창문가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앉아 있었고, 감히 데스테 성 해자의 보도를 따라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 누구에게나 오만하고 동시에 뻔뻔 한 눈빛으로—사람들은 그렇게 확언했다—뚫어지게 노려볼 태세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행복한 눈빛으로! 그들은 이렇게 덧붙였다. 마치 그의 핏속에서 몇 년 동안 음흉하게 잠복해 있다가 마침내 불시에 나타나 다리를 빼앗고, 창백한 삶을 무언가 분명한 것, 자기이해가 가능한 것, 존재 충만한 것으로 전환 시킨 그것이 매독이었던 것 같았다고. 보아서 알겠지만, 그는 강해지고 심지어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결혼 후 해질녘에 두어 번 아내와 팔짱끼고 조베카 대로를 지나는 모습을 보였을 뿐인, 구명대에 매달린 조난자 같던 때와는 어쨌든 사뭇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자, 봐요, 젊은 시절 작은 실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셨나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자, 여기, 보여요?‘ 그리고 촉촉하게 반짝이던 그의 눈동자에는 이제 그늘조차 없었다. 일말의 어둠도. - P228
상황이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건, 로마 대로 한복판이나 델라보르사 카페 주랑 아래에서 마주 치는 극소수의 생존 유대인들이나(반대로 유대인들은 다시 다 게토에 틀어박혀 어울리지 않는 의례적인 경건함에 만족 해했지만!), 아니면 가장 열성적인 일부 반파시스트 시민들의 얼굴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공적인 비극이 발생 했을 때만 델라보르사 카페에 들렀는데, 실제로 이제는 마치 흉조를 알리는 새들처럼 늘 그곳에 죽치고 앉아 있어서 거의 매일 보게 되었다. 습관적인 무관심의 가면 아래 그들이 모든 구멍으로 내뿜는 사악한 만족감은 장님이 아닌 이상 모두가 볼 수 있었다! - P230
물론 사람들은 그 외까지, 그 외의 모든 것까지 상상했다. 데스테 성 해자의 난간 옆에 세 무리로 나뉘어 쓰러진 열한 명의 사람들을 보았고, 델라보르사 카페 주랑과 맞은편 보도 사이의 공간에서 오가는 검푸른 셔츠의 부대원들, 일제사격 직전에 약간 한쪽에 떨어져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던 시아구라를 향해 "살인자!"라고 외친 파노 변호사의 절망적인 찡그림, 그 대단한 달빛, 자정부터 갑자기 불어온 바람과 함께 도시의 모든 돌멩이를 유리나 석탄 조각처럼 빛나게 만들었던 그 믿을 수 없이 밝은 달빛,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노 바릴라리, 파노 변호사의 비명 소리를 듣고 나서야 마지막 순간 어린애 같은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고, 이제 그 위에서, 그 장면 바로 위 창문 뒤에서 목발에 의지해 떨고 있던 피노는······ 오랜 기간, 1943년 12월부터 1945년 5월까지 이탈리아 반도를 천천히 거슬러올라가기 위해 치렀던 전쟁 기간 내내 그랬을 것이다. 집단의 상상력은, 언제나 매번 그곳 그 끔찍한 밤으로 돌아가야 했고, 오직 피노 바릴라리만이 가장 높은 지점에서 볼 수 있었던 총살당한 열한 명의 얼굴을 눈앞에 하나씩 떠올려야 했을 것이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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