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께.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4.19혁명에 참여, 희생된 고 진영숙(한성여중 2학년)의 편지. - P150
하나의 사건이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경험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에게 숭고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 다른 이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남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의 정형화된 서사만을 갖지 않는다. 신화와 달리 ‘이야기‘는 복수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잠재성을 내포한다. 무수한 이야기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형성되는 방식이 그 어떤 순간에도 단일할 수 없으며, 의미라는 것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복합적인 형태를 띠며 구성되는지 역시 알려준다. - P198
소년병으로 차출되어 참전했으나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거룩한 목표를 갖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4•19혁명 역시 그에게는 국가나 민족, 혹은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가치들을 통해 구성되는 숭고한 역사가 아니었다. 주인공이 혁명의 거리로 나섰던 것은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 뿐인 형제와 친우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누구든 ‘김주열‘이 될 수 있었던 폭력의 현장으로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분노보다 공포"를 경험했다. 거리의 빗발치는 총성은 그를 전쟁의 한복판으로 되돌려놓았으며, 그곳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예전의 자신처럼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4·19는 주인공에게 ‘혁명‘보다는 ‘전쟁‘에 더 가까운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윤태호의 『사일구』는 주인공 현용을 통해 혁명의 현장에 있었지만 투쟁의 주체가 될 수는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혁명의 의미‘들‘이 얼마나 복잡하게 구성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 P200
작가는 삶을 이해하는 방식과 추구하는 가치의 성격이 경험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김현용이 속한 전쟁 체험 세대에게 ‘살아남는 일‘은 특정 순간에만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삶의 최우선 목표였을 수 있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가 있고, 어느 세대든 그 시간들을 보내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특정 세대만이 유독 행복했다거나 불행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역사적 격변의 순간들을 모두 살아내야만 했던 사람들의 삶이 다른 보편적인 삶들과 어떻게 달랐는지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 특히 전쟁의 경험과 그 상흔은 문자를 통해서는 온전히 알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이 ‘고백‘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며, 주인공의 고백이 ‘부끄러움‘을 동반한다는 사실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그의 이야기는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202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윤석호의 질문에 답하는 김현용의 과업이 두 주체가 모두 노력하지 않고는 성사될 수 없음을 『사일구』가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윤석호의 질문은 작품의 마지막에 이 르러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데, 그의 목소리에 답한 것은 바로 주인공 김현용이다. 김현용은 동생을 들쳐 업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그 혁명의 광장으로 되돌아갔다. 그가 돌아간 그곳은 오래전 그날 동생을 대신해 두고 왔던 친구 석민이 있던 곳이자, 그의 사위인 윤석호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꾸며 서 있는 곳이다. 도망치듯 떠나왔던 그 자리에 그는 오랜 세월을 돌아서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마도 그가 이 광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평생 그의 삶에 드리워져 있던, 그러나 충분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던 어떤 마음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부끄러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부끄러움‘은 불확실한 삶으로 인해 그가 생의 어느 순간에도 마음껏 꿈꿔보지 못했던 삶의 가능성들, 다시 말해 ‘자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일구』는 역사가 충분히 기술하지 못했던 이 이름들의 자리를 그려내고 있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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