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손대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방대한 지식의 지형에 자취를 남겼기에 만약 정말로 세상이 그를 잊으려면, 어마어마한 지각변동이 일어나야 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 기이한 지식의 망각은 집단 기억의 깊고 자발적인 퇴색으로 탄생할 피치 못할 암흑기의 귀환을 처음 알리는 사건이 될 것이다. 남편과 살면서 나는 그의 명성이 무로 돌아가려면 문명이 몰락하는 수밖에 없다고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그가 남긴 업적은 실로 대단해서 한 인간의 성취라기보다 신이 일으킨 발작의 흔적, 별 볼 일 없는 신이 세상을 갖고 놀다가 쏟아놓고 간 창조물에 더 가까웠다. - P245

조니에 관해서는 무엇도 장담할 수가 없다. 천상의 존재가 지상에 내려오는 것은 정반대 존재들의 행복한 만남도, 물질과 영혼의 기쁜 합일도 아니다. 그것은 강간이며, 폭력적인 잉태이다. 갑작스러운 침략이자 훗날 희생으로 정화되어야 할 폭력. 조니가 생물학에 손대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가 그걸로 무얼 하게 될지 진지하게 걱정했었다. 수학이나 물리학과 달리 생물학이라는 영역은 여전히 논리의 손길 바깥에서 우리가 길들일 수도, 써먹을 수도 없는 우연과 혼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생물학적 존재들은 정신없이 복잡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히 이해 못할 리듬 안에 갇힌 채, 경이로운 무질서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몸과 마음 역시 그와 같은 조화로 형성되고 움직인다. 고통스럽지만 대다수가 받아들이는 이 단순한 진실이 나의 사랑하는 남편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어떤 대상을 통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면 그는 격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 P247

인간이 날씨를 정확히 예측하리라는 남편의 낙관은 철저히 매니악과 같은 컴퓨터 능력에 기댄 것이었다. "안정적인 과정은 예측하고, 불안정한 과정은 통제해야 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조니의 말을 믿었다. 그는 어떤 것에 관해서든 틀리는 법이 없었으니까. - P255

조니가 인사불성으로 취한 건 처음이었다. 그는 아주 요란한 모임에서도 용하게 제정신을 유지했다. 밤낮으로 술을 마시면서도 정신을 놓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아래에서 잠든 그는, 커다란 머리 때문인지 물뇌증을 앓는 아기처럼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나의 소꿉친구가 이제 죽음을 향해 붕괴하고 있음을, 아니길 바라지만, 아마도 광기에 빠져들 운명임을 생각하니 걷잡을 수 없이 슬펐으나, 한편으로는 약간 마음이 놓였고 그 사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그래, 야노시도 결국 인간이었다. 천재이지만, 우리처럼 취한 바보이기도 했다. - P274

"우리는 둘 다 성질이 더러워. 그래도 덜 싸워보자. 나는 내 끔찍한 성질머리의 한계 안에서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당신 이 행복했으면 해. 최대한 많이, 최대한 자주." 아빠는 클라리와 막 결혼했을 때 이런 편지를 적어 보냈다. "당신은 당신에게 모질었던 삶을 두려워하지······ 당신이 산들바람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건 뒤에 몰려오는 폭풍을 감지하기 때문이고······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줬어. 당신을 괴롭히고 아프게 했지! 그래도 부디, 제발, 조금만 나를 믿어주길······ 그게 아니라면 자애로운 중립이라도." 아빠의 잘못이라고 판명된 일들에 대한 사과와 클라리에게 구하는 용서는 편지의 단골 주제였다. 클라리가 보기에 아빠는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우리는 왜 함께 있으면 싸우는 걸까? 난 당신을 사랑하는데. 내가 그렇게 넌더리 나게 싫은 거야? 그냥 서로를 용서하자!" - P281

아빠는 거의 마지막 순간 까지도 이성과 뛰어난 능력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아빠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다른 모든 생각을 몰아냈다. 아빠는 생각하는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그려보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따라서 마침내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품위를 전혀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아빠는 죽음이란 게 남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인 양, 그래서 자신은 죽음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듯, 그렇게 죽음에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어린애처럼 굴었다. 아빠의 의식은 뛰어넘을 수도, 그 너머를 바라볼 수도 없는 한계에 부딪혀 움츠러들었고, 아빠는 거칠게 반항했다. 여러 이유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숱하게 봐왔지만, 흐려지는 정신으로 고통받는 아빠만큼 힘겨워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아빠의 병세가 빠르게 나빠질 것이며 결국 목숨을 앗아가리란 것을 이미 다들 알고 있던 무렵,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적이 있다. 소련에 핵 공격을 먼저 단행해 수많은 이를 몰살할 방안을 태연히 고안했으면서, 자기 죽음을 대면할 때는 왜 평정심과 품격을 차리지 못하느냐고 말이다. "그건 전혀 다른 문제지." 아빠는 대답했다. - P283

아빠는 자기 연구에 관해 말하는 대신, 기괴하고 충격적인 요구를 하나 했다. 유일무이하진 않더라도 금세기 최고의 수학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그랬다. 아빠는 무작위로 숫자 두 개를 고른 다음 두 숫자의 합을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갑자기 소싯적 유머 감각이 살아나기라도 한 건가? 웃어넘기려 했으나 아빠는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했다. 지난번 방문, 그러니까 한 달 전쯤만 해도 아빠의 정신은 언제나처럼 날카로웠다. 그런데 지금은 기본 산술이나 겨우 할 만큼 천재성이 퇴보하고 만 것이다. 아빠의 광대하던 지적 능력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아빠를 아빠답게 했던 능력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깨달음이 천천히 아빠를 압도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공포의 표정이 아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태어나 본 것 중에 제일로 가슴 저미는 모습이었다. 지켜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던 나는 숫자 몇 개를 겨우 더듬더듬 내뱉었다. 2 더하기 9는, 10 더하기 5는, 1 더하기 1은. 그러다 끝내 울며 병실을 뛰쳐나갔다. - P286

"현존하는 무시무시한 핵전쟁의 가능성이 더 끔찍한 것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네. 문자 그대로나 비유적으로나 우리가 설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어. 마침내 우리는 지구의 유한한 실제 크기가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했네. 기술이 무르익어 찾아온 위기지. 지금부터 다음 세기 초반까지 세계에 불어닥칠 위기는 이전 양상보다 훨씬 더 심각할 거야. 언제, 어떻게 끝날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 언젠가 인류의 관심사가 달라져 지금과 같은 과학적 호기심이 멈추고 전혀 다른 것들이 인간 마음을 차지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약간은 위안이 돼. 결국 기술은 인간의 배설물일 뿐 대단한 ‘무언가‘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거든. 거미줄이 거미의 일부이듯 기술도 우리의 일부일 뿐이니까. 하지만 기술은 갈수록 빠르게 진보하면서 불가피한 특이점으로, 우리가 아는 인류 역사가 더는 지속되지 못할 티핑 포인트로 나아가고 있는 듯해. 이제 진보는 이해를 초월할 만큼 빠르고 복잡해질 걸세. 기술력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진 성과이고, 과학은 지극히 중립적이어서 어떤 목적으로든 쓰일 수 있는 통제 수단을 제공할 뿐 모든 사안에 무관심하지. 어떤 특정한 발명품의 비뚤어진 파괴력이 위험을 초래하는 게 아니야. 위험은 원래부터 내재해 있지. 진보를 치유할 방법은 없어."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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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밀항선을 타려고 먼 길을 걸었던 어머니. 어머니는 어린 여동생을 등에 업고 남동생의 손을 이끌며 경찰의 삼엄한 검문을 빠져나가기 위해 집 근처를 산책하는 척했다. 짐도 음식도 없이 맨손으로 출발해서 애월부터 조천항까지 30킬로미터를 꼬박 걸어 새벽에 밀항선을 탔다. 일본에 도착한 후 항구에서 경찰에 포위되긴 했으나 일본인의 도움을 받아 오사카까지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사진이 다 무어겠는가. - P156

도쿄에 있던 나의 마음속에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서 뻔뻔한 구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미 오륙 년 전부터 제주4.3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증언을 조금씩 촬영하면서 어떻게 영화로 만들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그 일에 대해 말해야만 데뷔작인 〈디어 평양〉을 겨우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도에 뿌리를 둔 부모님이 한국을 부정하고 북한을 지지하며 살아온,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유가 거기 있을지 모른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 P166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비록 당사자는 될 수 없지만,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윤곽 정도는 알고 싶다는 겸손한 노력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과 사실을, 감정과 감상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상상과 망상까지도. - P175

1972년 초 도쿄의 조선대학교 문학부에 다니던 건오 오빠는 ‘김일성 주석님의 환갑에 바치는 청년 축하단‘의 일원으로 선정되어 편도 표를 들고 북조선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본인의 희망 여부에 관계없이 대학(조직)에서 선발되어 북조선 이주를 강요 당하는 터무니없는 프로젝트였다. […] 조직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김일성을 향한 충성심이 흐려진 증거라고 비난받았다. 조총련 오사카 본부의 중진이던 아버지의 입장을 염려한 건오 오빠는 자신이 거부하면 아버지가 곤란해질 것을 우려해서 ‘인간 선물‘의 일원으로 북에 건너갈 결심을 했다. 어머니는 출발 일정에 맞추기 위해 무아지경으로 짐을 쌌다. 후일담이지만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당시 부모님에게 ‘아들을 모두 바쳐 충성심의 모범을 보여라‘고 다그친 조총련 중앙 간부는, 자기 자식은 귀국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 P181

기억을 잃어가던 어머니가 김일성을 기리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잔혹하고 순수하고 활기차고 사랑스럽고 가엾고 성숙한 소녀 같았다. 인간의 불가사의한 면모가 응축된 이 장면은 〈수프와 이데올로기〉 118분 중에도 가장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떠올릴 때마다 숨이 답답해질 정도다.
살아가다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픈 상황들을 조우한다. 그 순간을 카메라가 포착할 때 기적 같은 장면이 탄생하고, 그 작품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 잔인한 이야기다. - P194

어떻게든 초상화를 치우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 넣어야 했다. 나 자신과의 결별로서, 새롭게 걸어나가기 위한 생의 마디로서. 낡 은 시대에 고하는 결별이자 가족과의 결별이기도 했다. ‘그런 시대는 이제 끝냅시다!‘ 하는 결별. 평양에 있는 가족이 걱정되지 않을 리가 있을까.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에 가족이 있어서 아무 말 못 했던 시대를 끝내고 싶었다. 이제 충분하지 않나. - P198

오사카의 영화관에서 〈가족의 나라〉를 본 어머니는 "네 각오는 알겠다. 앞으로 딸이 하는 일에 말 보태지 않을 테니까 건강만 조심하고"라고 했다. 그 후 매달 인삼과 마늘을 듬뿍 넣은 닭 백숙을 만들어 도쿄로 보내주었다.
오사카 집에 더 이상 초상화는 없다. 알츠하이머로 귀국 사업‘이라는 말도 잊어버린 어머니다. 어머니는 나와 남편을 포함한 가족 모두가 함께 있다는, 당신의 삶일 수 없었던 시간을 살고 있었다. 점차 온화해진 어머니는 매일 그림책을 보면서 당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와 남편은 어머니의 어떤 이야기에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P199

"어릴 때 오빠들이랑 헤어져서 너도 외로웠겠다."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여섯 살 소녀한테서 오빠 셋을 빼앗는 건 학대라고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207

TV도 음악도 시끄럽다고 싫어했다. 거실 의자에 조용히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있거나 콧노래를 불렀다. 카오루가 어머니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어머니가 그림책을 보며 그 자리에서 만든 이야기를 카오루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의자에 앉은 채 까무룩 잠이 들면 어머니 곁을 지키며 다다미에 앉아 있던 카오루도 잠을 잤다. 마치 옛날부터 어머니와 카오루와 나, 세 식구가 함께 살아온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 P208

기도는 어머니의 일상이 되었다. 손을 모으고 있을 때 어머니의 표정은 온화하고 상냥했다. 손을 모으는 움직임, 모은 손을 푸는 움직임, 그 모든 행동이 우아했다. 기도란 무엇일까? 교회도 절도 신사도 가지 않고, 계속 자신이 사용하던 거실 의자에 앉아 손을 모으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때까지 내 안에 있던 ‘기도‘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렸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형식에 구애받지도 않는, 근원적인 ‘기도‘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해온 모든 행위가 기도였던 것이 아닐까. 남편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깨우고 꾸짖고 칭찬하는 그 모든 것이 기도였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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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카메라 꺼. 셧다운! 셧다운!" 갑자기 선화가 캠코더를 끄라고 말했다. 비밀스럽고 심각한 상황인 걸까, 심장이 멎을 듯 바짝 긴장했다. 나는 캠코더를 껐다.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낼지 상상도 안 갔다.
"고모는 지금까지 어떤 연극을 봤어?" 선화는 호기심 가득한 생기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아주 일반적인, 사건성이라곤 없는 평범한 질문에 맥이 빠졌다. 이 아이는 이런 질문을 하려면 캠코더를 꺼야겠다고 판단했구나. 고작 연극에 관한 대화일 뿐인데 녹화를 하면 문제의 소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춘기 소녀가 이렇게까지 위축되어 살아가야 하는 감시 체제란 대체 무엇인가. 이토록 민감하게 상황을 의식하는 아이에게 계속 렌즈를 들이댄 나의 무신경함이 부끄러웠다. 선화가 살아가는 불합리한 사회를 떠올리자마자 마음에 그늘이 드리웠다. - P132

아버지의 얼굴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는 어머니, 치아에 묻은 얼룩을 칫솔로 떼어주는 어머니, 욕창이 없는지 살펴보는 어 머니, 잠옷과 시트가 조금이라도 더러워지면 바로바로 갈아주는 어머니, 더러운 기저귀를 갈면서 ‘잘했네!‘ 하고 기뻐하는 어머니······.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도 이렇게 키워주셨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 P137

가족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큰 책임감이 밀려왔다. 언젠가 어머니가 몸져눕는다면, 어머니에게 치매가 온다면 어떨까. 어머니의 생애 마지막 순간들이 어떨지는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었다. 나의 감정, 나의 도량 그리고 나의 경제력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완벽하게 간호하려는 어머니를 보조하면서 내 삶은 이미 파탄 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력이 없었다. 언제쯤이면 혼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가족에게서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또다시 죄책감에 시달렸다. - P139

어머니는 오랫동안 뚜껑을 덮어두었던 기억들을 꺼내,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주4.3사건에 대한 어머니의 회고는 왜 오사카에 제주도 출신자가 많은지, 쓰루하시란 어떤 장소인지 알려주었다. 설마 어머니의 가라오케 친구인 ‘고씨 아줌마‘가 제주4.3사건의 생존자였을 줄이야.
"고씨 아줌마는 나보다 훨씬 더한 경험을 했어. 그러니까 한국을 지지하는 남편과 싸워가면서 조총련 부인부 활동을 그래 열심히 했지. 남편이 반대해도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냈고. 노래는 못해도 신념은 참 곧은 사람이야." 어머니의 말은 놀라웠다. 개인의 선택에는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했다. - P148

서로를 존중하며 배려하는 부모님이 부러운 한편, 자신들의 개인숭배에는 의문을 품지 않으면서 타인이 소속된 종교는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위화감을 느꼈다. 집에서도 정치적 지향성이 뚜렷한 노래를 부르는 부모님 모습은 좋게 말하면 앞뒤가 다르지 않은 순수의 화신으로, 나쁘게 말하면 시야가 좁은 맹신자로 보였다. - P152

인간은 어린 시절 반복해서 들었던 노래를 잊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도 초등학교 때 매일 TV에서 들었던 가요를 지금도 기억 한다. 아이돌 가수의 노래는 안무까지 선명하게 떠올라서 춤도 똑같이 따라 출 수 있을 정도다. 몇 번이고 거듭해서 들은 문장이나 멜로디는 세포에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 옛 CM송이 멋대로 입에서 흘러나올 때도 있다. - P153

아버지가 병실에 누워 있을 때는 한국의 옛 가요에만 미소를 지었다. 북조선 노래와 조총련 노래에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가사는 떠올리지 못해도 무너진 음정으로 〈목포의 눈물〉을 따라 부르려고 소리를 냈다. 어머니와 나도 함께 불렀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고 어머니는 당신 손으로 박자를 맞췄다. 한국의 옛 가요만이 아버지와 공유할 수 있는 노래가 된 것이었다. 5년 하고도 반년의 투병 생활 동안, 셋이서 〈목포의 눈물〉을 몇 번이나 불렀을까. 어느새 이 노래는 내 몸에도 스며들게 되었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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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디작고 보잘것없어 그 기원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통해서 새롭고 찬란한 시야가 열리기도 한다. 존재의 고차원적 질서는 바로 그런 것을 통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있을 법하지 않은 이런 일이 어쩌면 사방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의식의 경계에 잠재해 있거나 우리를 에워싼 정보의 바다 한가운데 떠다니며, 저마다 격렬하게 피어나 반짝일 가능성을 품은 채로 이 세상의 바닥을 뜯어내 그 아래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지도. - P224

다른 누군가의 명성에 가려지진 않을까? 빠르게 다가오는 미래에 내 꿈은 실현될 수밖에 없겠지만, 나의 시대가 가진 기술에 비해서는 너무 앞서나간 것이다. 이 사실을 빤히 알고서 연구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다. 상관없다. 어차피 나는 현재를 살아본 적 없으니. 꼬맹이 시절 어두운 열병이 머릿속을 바꿔놓은 후부터는 돈과 가족이 주는 고통과 기쁨 따위에 흔들리지 않으며, 명예나 성공이나 출세에 관한 사람들 생각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놀림감이 되어 망신당하는 일쯤이야 견딜 만했다. 어릿광대. 천박한 세상의 권력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간 하찮은 것들에게 비웃음이나 당하는 실패작. 하지만 나는 정말로 상관 없다. 나는 그들에게 등을 돌린 채 꼿꼿이 서서 뚫리지 않은 방패를 든 채 칼자루를 단단히 쥐고서 내 가슴팍 깊이 꽂아 넣는다. 나는 분노하고 분노하고 또 분노하며 내 손으로 칼을 꽂는다. 이제 나를 지탱하는 것은 분노이다. 노여움과 냉담함과 이기심. 그 마음은 아무리 억누르려 해도 나를 파먹고 자신을 살 찌운다. 모든 것은 딱 한 번, 정말로 나를 실성하게 할 뻔했던 분노로부터, 날것의 원한과 맹목적인 광란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 좀도둑, 실실대는 악마 존 폰 노이만을 향한 분노와 격분, 증오와 혐오에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됐다. - P232

한마디로 나는 새로운 무언가의 탄생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진정한 경이. 더는 기적을 용인하지 않는, 신을 섬기지 않는 이 시대에 일어난 참된 기적. 그것은 선물인 동시에 저주이기도 해서 사람에게 은밀한 짐을 지운다. 내면에 그런 책임감을 떠안고 살다보면 조금은 말수가 적어지고 겸허해진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남들에게 설명할 수 없다. 말로 전달할 수 없기도 하거니와, 말들이 저절로 숨결을 얻어서 이렇게 속삭일 것이기 때문이다. 심오한 진실이란 반드시 목격해야 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것을 이해하는 동안에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서는 안 된다고. - P235

가장 단순한 프로그램도 감탄이 나올 만큼 복잡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진실이다. 마구잡이로 뻗어나가고 층층이 쌓인 암호의 탑을 세운다 한들, 그 결과는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불모 불변의 땅일 수도 있는 것이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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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조차 창조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발견해내고 있었다. 이전까지 우주 어느 곳에서도 그러한 환경은 존재하지 않았다. 핵분열은 보통 별이나 거대한 천체 엔진 중심 부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지름이 1.5미터밖에 되지 않고 6킬로그램의 조그마한 플루토늄 코어가 들어 있는 작은 금속 구체 내부에다 핵분열을 성공시켰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해냈다는 게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건 단순히 나치를(나중에는 러시아였고 중국이었으며 세상이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적을) 이기려는 광란의 경쟁이 아니었다. 우리가 그 일을 한 건 프로메테우스가 준 선물을 극한으로 작열시킴으로써 인간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고 불가능한 것을 실현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 P179

그는 우리나라가 지적으로 탁월한 과업을 세운 것은 역사나 우연의 산물도, 일종의 정부 기획도 아니며 그보다 더 이상하고 근원적인 무언가 때문이라고 믿었다. 중앙 유럽의 한 나라로서 사회 전체에 가해지는 압박, 그 안에서 개개인들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극도의 불안, 그리고 비범하지 못하면 멸종하고 말리라는 절박함 때문이라는 거였다. 한번은 그의 핵 억지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그가 나에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안에 있는 악과 고통을 전부 세상에 내보내고 나면 상자 안에 뭐가 남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병 바닥—알다시피 그건 사실 상자가 아니라 커다란 항아리나 병에 가깝거든—에서 조용하게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건 엘피스Epis라네. 대개 사람들은 그 존재를 희망의 정령으로 여겨 파멸의 정령인 모로스Moros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존재의 이름과 본성을 좀 더 정확히 풀이하자면, 인간이 가진 기대에 대한 관념 정도가 아닐까 싶어. 악의 뒤에 무엇이 따라오는지 우리는 모르잖나? 때로는 가장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힘이 시간이 지나 우리를 구원할 도구가 되기도 하니까." 나는 그에게 어째서 신들이 아픔과 고통과 병과 죄악을 몽땅 자유롭게 풀어놓고 정작 희망만은 병 안에 가둬놓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눈을 찡긋하며 그야 신들은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 P180

그는 나머지 사람들과 다르게 세상을 보았고, 그게 그의 도덕적 판단을 상당 부분 물들였다. 그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카지노에서 돈을 따려고, 아니면 포커 게임에서 좀 이겨보려고 『게임과 경제 행동 이론』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동기를 완벽히 수학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인류의 영혼 일부분을 수학으로 포착하려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사람들이 경제나 그 밖의 다른 분야에서 선택을 할 때 따르는 일련의 규칙을 이론화하는 데 상당히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니 힐베르트가 연치의 마음속에 불붙인 잉걸불,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붙들겠다는 그의 원대한 희망은, 완전히 꺼진 게 아니었던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나 혼자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도 같다. 사실 그에게는 뭐 그리 고귀한 목표 따위는 없었을 수도 있다. 언제나 그랬듯 그냥 무책임하게 즐겼던 것인지도. - P181

모든 것을 수학화하고 싶어했다.
생물학, 경제학, 신경학, 우주학에서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꿈.
인간 사고의 모든 영역을 변혁하고 무한한 계산의 힘을 세상에 풀어 과학의 목덜미를 움켜쥐겠다는 꿈.

그는 그래서 그 기계를 만들었다.

"이런 종류의 장치는 아주 획기적으로 새로운지라 실제 작동된 후에야 쓸모의 상당 부분이 선명해질 거요." 그가 내게 한 말이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진짜 문제는 기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임을.
그리고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 P191

만약 34번가에 같은 폭탄을 떨어트리면 다운타운 전체가 초토화되어 내 주변의 모두가 죽고 모든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질 테지. 이런 생각을 하며 시내를 돌아다니면 잔해와 돌무더기가 사방에 보이기 시작했다. 공사장 인부들을 보면 그저 웃음이 났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차피 무너질 텐데 뭐하러 다리를 짓고 아파트를 짓는담? 다들 미쳤군! 전혀 이해를 못하는군! 뭐하러 새로운 걸 만들어? 다 쓸모없는데! 폭탄은 하나가 끝이 아니었다. 폭탄을 만들기란 쉬웠고, 머지않아 또 사용될 것이 틀림없었다.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은 늘 그렇게 행동하니까. 국제관계는 전과 달라진 게 하나 없었다. 그러니 새로운 창조는 아무 소용도, 의미도 없다고 나는 확신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나의 믿음은 틀린 것으로 판명이 났고,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음에 나는 진심으로 기쁘다. 그러나 처음에는 우리가 필히 파국으로 치달으리라 생각했다. 특히 그 작자들이 매니악을 이용해 수소폭탄을 만들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 P199

폰 노이만의 발명품이 아니었다면 열핵무기는 사실상 만들어질 수 없었다. 컴퓨터의 운명은 애초부터 열핵무기와 단단히 얽혀 있었다. 폭탄 제조 경쟁은 컴퓨터에 대한 조리의 열망으로 더욱 가속화되었고, 반대로 매니악을 만들려는 노력은 핵무기 경쟁으로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은 이렇게나 소름이 끼친다. 인간 발명품 중 가장 독창적인 물건과 가장 파괴적인 물건이 정확히 동시에 탄생하다니. 우주를 정복하고 생물학과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첨단 기술 세상의 많은 부분이 단 한 사람의 편집증적 집착으로 인해, 또 수소폭탄의 실현 가능성을 계산하느라 개발된 전자 컴퓨터로 인해 추진력을 얻었다. 울람을 생각해도 그렇다.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무덤 속에 한 발을, 아니 두 발을 디뎠던 폴란드인 수학자가 이후 정신 나간 상상력을 발휘한 덕에 우리는 기적 같은 계산법을 얻었다. 그 기법이 마침 딱 알맞은 시기에, 마침 딱 알맞은 기술과 만나 수리물리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리고 세상은 불타기 시작했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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