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웃고 떠들어도 다음을 기약할 순 없는 관광객이란 걸. 인생은 무궁무진하고 갈 곳은 많으니, 나는 애초에 이 나라에 내 다음을 둔 적이 없다는 걸. 쿠바의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관광객을 스쳐 보내는 사람들이니 적당히 알아들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때론 그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는 걸. 어쨌든 나는 거짓말쟁이란 걸. - P169

쿠바에서 만나 술잔을 부딪친 사람들에게 언제나 그랬듯이, 다음에 보자고. 그는 답했다.
No promise, 다음을 약속하지 말자고. 그는 이어 말했다.
No podemos entender, podemos entender. 우리는(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어.
Recuerda este momento para siempre. 지금 이순간을 영원히 기억하자.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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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란 단지 옆자리를 채우는 사람이 아니다. 거친 태풍 속에서 손을 맞잡는 사람들이다. 태풍에 그대로 맥없이 휩쓸려 날아간다는 건 변함없을지언정, 동료들과 함께라면 어딘가에 불시착하게 되더라도 혼자는 아닐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사정만큼은 한결 나아진다. 그것만으로도 황무지에서 다음 태풍을 맞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력이 다시 생긴다.
이런 직장 동료들은 좋은 술친구이기도 하다.
고통은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동료라면 술잔을 맞부딪치는 것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기 때문이다. 회사 일이라는 게 괜히 술 당기는 게 아니며, 괜히 회식 자리가 빈번하게 생기는게 아니다. 인생의 매운맛을 보여주겠다고 작정한것 같은 일을 함께 겪고 나면 속이 바짝바짝 마르기 마련이니까. 물론 윗사람의 의전까지 고려해야 하거나 강압적인 회식 자리보다는, 자연스럽게 한잔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된 술자리여야 더 좋겠지만(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술자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해입니다. 그런데 저는 좋아하긴 합니다. 많이많이 찾아주세요). - P130

심지어 적당량의 알코올은 창의성에 몹시 도움된답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제니퍼 와일리 교수는 창의적인 문제를 푸는 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 0.075%를 제시하기도 했죠. - P131

종이컵이 알코올에 젖어 너덜거릴 때쯤엔, 오늘의 일은 내일로 미루자는 시덥잖은 낄낄거림이 이어진다. 어차피 일이란 건 생각보다 늦어지면 늦어지는 대로, 빨리 끝나면 빨리 끝나는 대로 문제다. 일본에선 일을 빨리 끝내는 것보다는 적당히 농땡이치며 정해진 기간 안에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천국에서는 1주일의 기간을 준 일을 하루 만에 끝내면 남은 6일 동안 쉰다지만, 일본에선 그 일을 하루 만에 끝내면 그 수준에 맞춰 일을 더 준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다를 바 없다.
일하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해 일하자, 살아남으면 지독하단 얘길 듣고 나가떨어지면 나약하단 얘길 듣겠지만, 우리 어떤 모습이든 간에 같이 살아 있자. 그러니까 너무 이 악물고 일하지 말자. 이상하면 임플란트 천만 원.…. 직장 동료들과 나는 술잔을 부딪친다. 마실수록 내일의 숙취가 분명해진다.
그래도 괜찮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발판 삼아 다 함께 한 잔 한 잔 나아가는 것이 회식의 진정한 묘미니까요. 어디엔가 휩쓸리더라도 함께 떨어질 동료들이니까요.
물론 술자리도, 기다리던 일들도 다 깨끗이 마무리한 채 집으로 돌아간다. 회사 8년, 허투루 다닌것은 아니기에.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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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은 잊고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잊기 위해서 마실 때도 있고 잊어야 할 만큼 마실 때도 있다. 잊다가 잃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알코올이 다량으로 함유된 보통의 술자리는 어쩔 수없이 휘발성이다. 기실 술자리에 대한 기억은 ‘우리 어제 좋았지‘ 정도의 대략적인 느낌만으로도 충분할때가 많다. 취기가 무르익을수록 술자리는 지나친 동어 반복, 통제를 벗어난 감정 표출, 행위예술 수준의 보디랭귀지 등으로 범벅되니까. 그런 자리를 거듭해본 분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망각은 괜히 선물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모두의 품위 유지를 위해 적당히 흘려보내는 미덕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술자리, 그런 의식 있는 자리들의 집합소가 술집이다. - P108

언제 어디서나 술을 마신다는 점에서 술집이나 다름없는 <시시알콜>의 안주는 시다. 술과 안주의 마리아주로 맛을 극대화하듯, 술과 시의 페어링을 통해 감정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한 장씩 한 잔씩 나아간다. 시 앞에서의 술은 그저 사람을 취하게 하는 화학품이 아니다. 술을 마시면 생각이 깊어지는 건 아니어도 마음만큼은 넓어지고, 그러면 세상 모든 화자의 감정을 대충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되니까. 이해와 공감이란 때론 머리보단 마음의 영역이라는 걸 알려준 게 시와 술이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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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도 썼지만 엄마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식객』으로 유명한 허영만 작가가 맛집을 찾아다니는 방송 프로그램인 <식객 허영만의백반기행>에 출연하기도 했다. 망원동에서 동거를 하며 결혼을 준비하던 때였는데, 방송에서 먼저 결혼 소식을 전국에 알리며 허영만 작가, 신현준 배우와 축배를 나눴다. 승용은 녹화할 때 "너랑나랑호프가 좋아서 신혼집을 근처로 구했다"고 밝히며 사장님을 일컬어 "저희 어머니" 라고 폭탄 발언을 던지기도 했다. 물론, 진짜 엄마가 아니라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덧붙였지만. 진짜 가짜, 그걸 누가 정하는겁니까. 분명 망원동이 제 마음의 고향이고, 권복자 씨가 제 내장지방의 어머니입니다. - P102

손님이 있든 없든 위군의 무조림은 언제나 쉴 새 없이 끓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무를 조리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이름 모를 독자를 상상하며 묵묵히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졸인다’와 ‘조린다‘는 비슷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고, 그 기다림 속에서 일어나는 노력은 양념이 되어 결국에는 제맛을 낼테니까.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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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당신이 말하는 영혼이란 게 뭐지? 사람의 몸속 어디에 있는지 내게 한번 보여줘봐. 그럼 어쩌면 믿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솔직히 말하는데, 아무리 실컷 해부를 해봐도 찾지 못할걸.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한 어떤 것을 당신이 만들 수는 없어. 그러니 당신 말 속에 그 ‘영혼‘이란 말은 지워버려. 둘째, 우리나라 속담 중에 ‘내일은 없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에 대한 직역-옮긴이)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당신이 뜻하는 내일이 약속에 불과할 뿐 이룬 건 없는 이유야. 우리는 항상 지금 여기에서 현재를 살아가 당신이 희망을 미래로 고정하는 것도 이런 희망을 가설로 만드는 건데, 가설이란 다시 말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니까. 셋째, ‘완전‘이란 말을 볼때 그건 어찌 인식할 거지? 불완전한 현재로 완전한 미래를 규정할 뿐,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현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는 항상 불완전해 보이니까. 이 현재라는 시간은 여기 있는 내 수양딸을 자기의 장난감 수집품 목록에 추가하려던 대공같은 자에게는 꽤 완벽해 보이겠지. 대공의 사치품 비용을 대느라 소작료를 내는 불쌍한 농부들에게는, 현재란 즐거운 지옥이지만." - P464

그는 앞으로 자신의 모습이 될 자기 모습을 되찾았지만 그런 ‘자신’은 결코 과거와 같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두려움의 의미를, 그 의미가 가장 격렬한 형태라고 규정될 때 그 두려움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다(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의 『옛 이야기의 매력』에 따르면 동화에서 주인공 남자가 두려움과 떨림을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아동에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옮긴이). 그것은 둘 중 하나가 죽거나 둘 다 죽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불안의 시작이었다. 그 불안은 양심의 시작이고, 양심은 영혼의 아버지이지만 순진함과 공존할 수는 없다. - P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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