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찾아?" 그녀의 남편이 물었다. "그 집이 폭파된 곳." "그건 저쪽 길 아니야?" "아냐, 그건··· 아, 여기다." 마지가 차를 세우며 말했다. 폭파사건이 있은 뒤로 새로 지은 집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 마지가 FBI의 기록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이야기를 내게 해 주었다. 폭파사건이 있던 날 밤, 그녀의 아버지와 고모와 몰리가 스미스의 집에서 밤을 보낼 계획이었다는 말을 아버지에게서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우보이의 귀가 심하게 아파와서 그들은 그냥 집에 있었다. "그래서 그 세 사람은 무사할 수 있었어요. 운명이죠." 마지가 말했다. 나는 한순간 멈칫한 뒤에야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 "우리 아버지는 당신 아버지가 당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평생 알고 있었어요." 마지가 말했다. - P360
역사는 무자비한 판관이다. 우리의 비극적인 실수와 멍청한 부주의를 낱낱이 드러내고, 우리의 가장 내밀한 비밀을 폭로하며, 처음부터 미스터리 소설의 결말을 알고 있는 오만한 탐정처럼 아는 척을 한다. 나는 역사기록들을 샅샅이 훑으면서, 몰리가 남편에게서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한 오세이지족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와 결혼한 사람이 돈을 노리고 내 가족을 죽일 거라고 의심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화이트가 로슨의 거짓 자백이나 후버의 못된 저의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 P361
버트는 자신이 오세이지족에게 사기를 치고 있음을 감추기 위해 괴상한 회계방법을 도입했다. 조지 빅하트가 사망한 뒤 유언 검인 청문회에서 한 변호사는 버트의 은행에서 오세이지족에게 대출되었다는 돈이 어째서 버트의 개인 수표로 발행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당황스러운 심정을 표출했다. 버트는 자신이 "굳이 숨겨야 하는 거래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인신공격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버트 씨. 하지만 이것이 조금 이상한 일이기는 합니다." "우리는 항상 그렇게 일합니다." - P368
나는 여러 날 동안 문서보관소를 드나들며 빅하트의 살인사건에 경제적 동기가 얽혀 있는지 조사해봤다. 그의 죽음으로 이득을 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유언 검인 기록도 살펴봤다. 마사는 내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 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말씀처럼 돈을 따라가면 돼요"라고 썼다. 하지만 헤일이든 버트든 아니면 다른 백인 남자든 빅하트의 재산을 물려받았다는 증거가 없었다. 그의 재산은 빅하트의 아내와 어린 딸에게 상속되었다. 그러나 빅하트의 딸에게 후견인이 있었으므로, 그 남자가 돈을 좌우했을 것이다. 나는 자료들을 훑어본 끝에 결국 그 후견인의 이름을 찾아냈다. H.G. 버트. - P370
하지만 버트가 빅하트와 보건의 살인사건에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여전히 정황증거뿐이었다. 보건이 기차에서 내던져질 때 누가 그와 함께 있었는지도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옛날 신문들을 뒤지던 중 <포허스카 데일리 캐피털>에 실린 보건의 장례식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기사 중간쯤에 버트가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보건과 함께 기차에 올랐으며, 보건이 자리에서 사라졌을 때도 기차 안에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신문의 또 다른 기사에 따르면, 보건이 사라졌다고 신고한 사람도 버트였다. 나는 포트워스의 문서보관소를 떠나기 전에, 수사국 정보원과의 면담 내용이 실린 서류철을 우연히 발견했다. 헤일과 가까운 사이였던 이 정보원은 다른 살인사건들에서 헤일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 인물이었다. 그는 보건의 살인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있습니다. 허브 버트가 그 일을 했을 겁니다." - P371
나는 또한 뉴멕시코의 어떤 도서관에서 페어팩 스 연방보안관과의 인터뷰 중 일부를 우연히 찾아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이 인터뷰의 주인공은 오세이지 살인사건들을 직접 수사한 사람이었다. 그는 버트가 보건의 살인사건과 관련되어 있으며, 신흥도시 중 한 곳의 시장(그 일대에서 활동하던 불량배)이 버트를 도와 보건을 기차 밖으로 던졌음을 시사했다. 그는 또한 1925년에 수사국이 오세이지 살인사건들을 수사 중일 때 버트가 겁에 질린 나머지 도주를 생각했다는 말도 했다. 실제로 버트는 그해에 갑자기 캔자스로 이주했다. 마사는 내 설명을 모두 들은 뒤 가만히 있다가 작게 흐느꼈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했다. "아뇨, 마음이 놓여서 그래요. 우리 집안사람들 마음에 아주 오랫 동안 걸려 있던 일이니까요." - P372
톰 화이트가 나타나 수사를 시작한 1925년에 수사국은 화이트혼 사건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버거 요원은 이것이 "별개의 사건"이라면서 조직적인 살인사건들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썼다. 이 사건은 오세이지 살인사건들에 대해 수사국이 세운 극적인 가설, 즉 이 모든 살인사건을 한 사람이 주도했으며, 헤일 일당을 체포하면 오세이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라는 가설에 들어맞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헤일이 화이트혼 사건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바로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가 된다. 레드 콘의 할아버지가 수상쩍은 죽음을 맞이했듯이, 화이트혼의 살인사건과 그의 아내를 죽이려다 실패한 음모는 공포시대의 비밀스러운 이면을 보여준다. 사악한 헤일이 그 시대에 보기 드문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 - P385
루이스의 살인사건을 기록한 이 원고를 다 읽은 뒤 내 머릿속에 자꾸만 떠오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녀가 석유가 매장된 땅에 대한 균등 수익권 때문에 1918년에 살해되었다는 것. 대부분의 역사기록에 따르면, 오세이지족의 공포시대는 헤일이 애나 브라운을 살해한 1921년 봄에 시작해서 헤일이 체포된 1926년 1월에 끝났다. 하지만 루이스의 살인사건은 석유의 수익금을 노린 살인사건이 그보다 적어도 3년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또한 레드 콘의 할아버지가 1931년에 정말로 독살된 것이라면, 헤일이 체포된 뒤에도 살인이 계속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사건들은 석유 수익금을 노리고 오세이지족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 사람이 헤일뿐만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헤일이 가장 오랫동안 가장 잔혹하게 피해자들을 살해한 인물일 수는 있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살인사 건들이 존재했다. 그 사건들은 공식적인 추정치에 포함되지도 않았으며, 몰리 버크하트의 살해된 가족들이나 루이스의 경우처럼 조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중 일부는 아예 살인사건으로 분류되지도 않았다. - P392
나는 포트워스의 문서보관소를 다시 찾아가서 곰팡내가 나는 수 많은 상자와 서류철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 그런데 한 상자에 천으로 된 표지가 너덜너덜한 일지가 들어 있었다. 인디언실이 공포시대 동안 후견인으로 활동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자료였다. […] 나는 이 시기에 오세이지족의 후견인으로 활약한 다른 사람들도 찾아보았다. 한 후견인은 오세이지족 열한 명을 맡았는데, 그중 여 덟 명이 사망했다. 또 다른 후견인은 열세 명을 맡았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맡은 다섯 명의 피후 견인이 모두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기록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너무 엄청난 숫자라서, 자연스러운 사망률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이 죽음들은 대부분 조사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죽음을 맞은 사람이 정확히 몇 명인지 파악하기가 불가능했다.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 P395
또 다른 오세이지족 피후견인인 흘루아토미는 공식적으로는 결핵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서류들 속에 한 정보원이 연방검사에게 보낸 전신이 섞여 있었다. 흘루아토미의 후견인이 고의로 그녀의 치료를 막고, 그녀를 병원에 보내는 것도 거부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후견인은 "그녀가 그곳에 가야만 살 수 있으며, 그레이호스에 남아 있으면 반드시 죽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정보원은 흘루아토미가 죽은 뒤 후견인이 스스로 그녀의 재산관리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 P397
수사국은 오세이지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스물네 명으로 추정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았음이 분명하다. 수사국은 헤일 일당을 잡은 뒤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수사국 내에서도 적어도 일부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살인사건들이 조직적으로 은폐되어 알려 지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 오세이지 카운티의 여러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도 수상쩍은 죽음의 원인이 ‘소모성 질병‘이나 ‘원인불명‘으로 잘못 처리되는 일이 일상이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이 살인사건들을 파헤쳐본 학자들과 수사관들은 오세이지의 사망자 수가 설사 수백 명 단위는 아니더라도 수십 명 단위는 된다고 보고 있다. - P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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