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피에르 비달-나케를 비롯한 위대한 역사학자들이 ‘기억의 법(lois mémorielles)‘을 포함한 정치 · 사법상의 끝없는 역사 개입을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역사의 근본 원칙을 상기시켰다. ˝역사학자는 어떠한 독단도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떠한 금지도, 터부도 존중하지 않으며, 통념을 깨뜨릴 수 있다. 역사는 도덕이아니다. 역사학자의 역할은 찬양이나 비난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다. 역사는 현재에 종속되지 않는다. 역사학자는 오늘날의 이념적 도식에 과거를 끼워 맞추지 않으며, 오늘날의 감수성으로 과거의 사건을 판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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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가 유형의 뇌에서는 성호르몬이자 지배 호르몬인 테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좌뇌가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그러나 행복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부족하다. 테스토스테론은 실행가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몰아붙이며 야심을 활성화시킨다. 도파민이 가벼운 기분 전환을 가져온다면 테스토스테론은 그와 반대로 작용한다.
테스토스테론은 실행가의 눈을 가려 오롯이 눈앞의 목표에만 집중하게 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채 불굴의 의지로 달려가게 한다. 이 과정에서 실행가는 좌뇌에 저장되어 있는 규칙을 사용한다.
실행가 유형에게 있어 구매 장소와 상품이란 자신의 영리함을 보여주거나, 높은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기에 몹시 중요하다.
이들은 자신이누구보다 가장 최고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값비싼 와인을 즐기는데, 그 이유는 고유의 맛과 향 때문이 아니라 저녁 모임에서동료나 지인들에게 자신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값비싼 명품시계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실행가는 클래식한 면과 기능성이 강조된 스타일을 추구하는데, 타인과 차이를 두기 위해 고급 레스토랑과 고급 상점을 이용한다. 이런 유형은 누구보다 영리한 소비를 추구하기에 세일 기간이나 할인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마트에 간 실행가의 장바구니를 살펴보면 주로 남에 문에 잘 띄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소금, 밀가루, 우유, 세탁 세제, 정소용 세제 등)이 담겨 있다.

규율숭배자는 쾌락주의자의 정반대편에 위치한다. 쾌락주의자들은시각적인 즐거움과 변화를 추구하지만, 규율숭배자들의 세계는 비관과 불신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쾌락 역시 가치가 없다. 쓸데없는 물건은 절대 사지 않고, 순수하게 기능성을 고려해꼭 필요한 것만을 구매한다. . .
이들에게 세상이란 확실하고 제어 가능한 곳이어야 하고, 예기치 못한 성가신 사건을 증오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품질 및 보증과 관련된 요소를 무척 중요시 여긴다. 규율숭배자는 마치 계산기 같다. 또한 이 유영은 항상 가격을 비교하기 때문에 구매결정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높으소비자들은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 낮은 소비자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실행가, 쾌락주의자, 모험가 유형의 비유이 높아진다. 실행가에게 교육은 지배 시스템(지식=권력)을 충족시켜주는 반면, 쾌락주의자에게는 자극 시스템(지식 새로운 경험)을 만족시켜준다. 모험가들은 그렇게 교육 수준이 높지 않다. 모험가들은 충동적인성향이 강해서 학습에 필요한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성격특성의 50퍼센트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호기심이 강한 사람(자극)과 야심이 큰 사람(지배)은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커리어를 쌓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 밖에도사회학적 연구에 따르면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기업체의 고위임원, 공무원, 자영업자의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노동자의 자녀보다 훨씬 높다. 교육학 연구에 따르면, 이런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에게서 자극(자극)과 격려(균형, 지배)라는 지원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년기에 긍정적으로 접하는 교육적 영향은 뇌의 감정 및 동기시스템을 지배와 자극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놓는다.

브랜드는 상품의 특성과 감정 세계가 서로 결합되어 있는 신경 네트워크다. 강력한 브랜드는 약간의 신호만으로도 뇌 전체의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키고, 그것으로 구매결정에 무의식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정 브랜드가 장악한 감정의 영역이 많을수록 뇌 속에서 해당 브랜드의 가치는 상승한다.

우리의 의식 활동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시킨다. 따라서 우리 뇌는 무의식적인 자동장치를 작동시키는 편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Chapter 4에서 이미 확인했다. 신경브랜드 네트워크는 자동 모드를 갖고 있다. 구매결정을 내릴 때 아무 갈등도 일어나지 않거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도 되거나 아무 위험도 없을때 뇌는 자동으로 좀 더 익숙하고, 평소 호감을 느꼈던 브랜드를 선택한 다. 즉, 강력한 신경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변연계가 직접적으로 신경 네트워크를 장악한다. 변연계는 여러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서 압축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신피질 전방 부위의 짐을 덜어준다.

그렇다면 강력한 신경브랜드 네트워크는 어떻게 구축되는 것일까?
동일한 브랜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생성된다. 브랜드 전문가인 클라우스 브란트마이어 Klaus Brandmeyer가 설명한 것처럼 성공을 거둔 브랜드는 자기유사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뜻하는 것일까? 우리 의식 속에 자리 잡은 브랜드 이미지(모양과 감정영역)가 수십 년이 넘도록 거의 동일하게 남는 것을 말한다.
갈수록 빠르고 복잡해져가는 시대에 동일한 브랜드 이미지란 곧 브랜드 정체와 노화를 의미한다. 때문에 이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도법 있을 것이다. 그들은 브랜드가 급변하는 라이프 스타일과 시대정신에 재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뇌를 간과하고 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신경브랜드 네트워크는 네트워크에 속한신경세포가 반복해서 동시에 활성화될 때 생성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바로 ‘반복‘이다. 일회성의 브랜드 메시지 전달만으로는 효과를 볼 수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매일 약 2,000건에 달하는 다른 브랜드 메시지를 접하기 때문이다. 뇌 속에 새로운 신경브랜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유지하려면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는 진화의 원칙인 에너지 절약에 위배되므로, 뇌는 새로운 신경브랜드 네트워크의 구축을 반기지 않는다.
감정을 통해 뇌에 그 의미를 전달하는 브랜드만이 뇌 속에 신경 네득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 그러나 이것은 겨우 기초공에 불과하다. 최대한 동일한 감정과 형태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반복 전달해야 네트워크 속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좁은 오솔길이 너른 고속도로로 전환 될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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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하는 태도에는 어떤 ‘바름‘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맹목적으로 예찬하는 태도란 무턱대고, 무작정,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태도와 별로 다르지 않다. 좋아하는 행위만 마음의 문제인 것이아니라 싫어하는 행위도 마음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른바 교조적인 기준, 규범적인 기준, 또는 유명세 이상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눈이 필요하다.
물론, 예찬한다고 해서 그 대상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마치 결점이 있는 사람에게 훨씬 더 인간적인 매력이 있듯이, 결점을가진 인간이 어떤 덕목을 보일 때 훨씬 더 감동적이듯이, 도시도 마찬가지다. 비록 우리 도시의 현재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 하더라도그 때문에 좋은 점을 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좋은 방식이라면 예찬하는 이유를 들어보는 것이다. 해보면 알겠지만 예찬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대기는 무척 어려운 반면, 비판하는 이유는 천만 가지라도 댈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싫은 데에는 판단력이 작동하고 좋은 데에는 마음이 작동한다. 하지만 이것을 넘어보자. 좋아하는 이유를 마침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진정한 예찬을 하고 있다는 신호이자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간다는 신호일 것이다.

제일 좋은 도시? 세상에 그런 건 없다. 이 도시는 이래서 좋고저 도시는 저래서 좋다. 이 도시는 이런 점이 모자라고 저 도시는 저런 점이 지나치다. 나 역시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아서, 도시 자체가아무리 근사하더라도 바가지에 당하고 불친절함에 학을 떼거나 거리 범죄에 노출되었던 도시는 이미지가 나빠진다.
도시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얼마나 멋진가보다는 ‘나와 맺는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고, 특별한 만남 이상으로 일상의 접촉이 더욱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도시에서 ˝콘텍스트를 읽으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어느 것도 홀로 서 있지 않다. 다른 무엇과 관계를 맺으면서 성격이 규정된다. 만약 우리가 어떤 도시 공간에서 감이 동하는 것을 느낀다면 그 공간이 주변과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특정한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녹아든 듯한 자연스러움, 언제나 거기에 그렇게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듯한 영원의 느낌, 놀라움, 생소함, 극한의 대비, 의외성, 이야기를 걸어오는 듯한 친밀함등 그것은 풍경과 식생과 다른 건물들과 길과 광장과 조형물들과 조화와 변조를 이어간다.
콘텍스트란 비단 도시 공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맥락을 이해하는 것도 주효하고, 자연의 맥락, 그 사회의 문화, 정치사건, 인물, 예술 등 인간 행위 전반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는 것도들여진다. 그렇게 콘텍스트가 종합적으로 읽힐 때, 왜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있는지 스스로 설득이 된다.

통영은 스토리가 왜 그리 강할까? 왜 통영에 반한 사람들이 그리 많을까? 왜 통영에 그리 많은 사연들이 있을까? 통영 특유의 감성은 왜 그리 섬세하고 다채로울까? 혹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꼽을지도 모르겠다. 한려수도閑麗水道 풍경만으로도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우니 말이다. 하지만 아름다움 그 이상의 것이 통영에 있다.
첫째, 통영에는 사람들이 있다. 통영을 마음에 담은 사람들이자통영 이야기를 표현하고 전해준 사람들이다.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박경리, 시인 백석, 화가 전혁림 그리고 이순신 장군, 노무현 대통령등 태어난 사람, 자란 사람, 잠깐 들렀던 사람, 일하러 갔던 사람, 끌려서 자주 갔던 사람 등 가지각색이다.

윤이상은 어릴 적 바닷소리를 기억한다. 바다마다 파도 소리가다를까? 음악인이기에 각별히 소리에 민감했던 걸까? 그가 기억하는 소리는 흥미롭다. 밤바다 고깃배에서 고기가 철벅이는 소리와 어부들의 노랫소리가 엉키는 소리란다. 아마도 그사이에 파도 소리와 노젓는 소리와 갈매기 소리들이 섞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스름한 시간에 듣던 그 소리는 각별히 귀에 꽂혔을 것이다. 소리로 세상을 파악한다면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구성될지도 모르겠다. 윤이상은 그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 했지만 살아생전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했고, 2017년이 되어서야 그를 기리는 음악당이 있는 통영 바닷가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여기서 독일이 통일 후 지난 20여 년 동안 비무장지대를 탈바꿈한 ‘그뤼네스반트artines Band‘를 떠올릴 만하다. 말뜻 그대로 ‘녹색띠다. 우리의 폭 4킬로미터 비무장지대와 달리 200여 미터의 좁은폭에 길이가 무려 다섯 배가 넘는 1400킬로미터다. 이 공간이 고스란히 자연의 한 부분이 되었다. 공원‘ 대신에 ‘푸른 숲‘이다. ... 그뤼네스반트에서 한결같이 강조하는 바는 사람 때문에 끊어진 자연의 힘을 다시 잇는 것이었다.

독일 그뤼네스반트에는 철책이 있던 자리를 따라 자전거길을 만들어놓았다. 듬성듬성 박힌 벽돌 사이로 풀이 돋아 있는 공간을 걷거나 자전거로 달리면서 동·서독의 분단을 기억해보는 장치다.
우리는 무엇으로, 어떤 행위로 비무장지대를 기억할 것인가?
비무장지대의 3대 전쟁 요소라면 철책, 지뢰 그리고 초소다.
지뢰는 당연히 제거되어야 하고 철책은 마땅히 걷어지겠지만 제거한지뢰와 철책으로 무엇을 하느냐는 온전히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남북한 초소들도 무작정 걷어내지 않으면 좋겠다. 지구의 마지 막 GP guard post(감시 초소) 트레일이 어떤 의미로 세계인들에게 다가갈지 누가 알겠는가? 그뿐인가. 땅굴도 있고 격전지의 흔적도 있고,한국전쟁 이전의 흔적들도 있다.
하나하나 절대로 없어져서는 안될 흔적들이다. 귀하게 여겨야 할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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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란 ‘고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떤 에센스를안고 있는 그 어떤 것을 뜻한다. 그것이 와인이든, 옷이든, 건축물이든 말이다. 이 점에서 최근 빈티지풍 리모델링이 디자인의 최전선에 등장하는 것은 아주 즐거운 현상이다. 그것이 공장이든, 폐교를 이용한 전시관이나 휴양 시설이든, 단독주택의 리모델링 증축이든, 한옥의 화려한 변신이든 기존의 오래된 건축물을 살리면서 새로움과 낯설음을 불어넣고 오래된 시간과 대비되는 공간을 만드는것은 그 자체로 집주인에게 즐거운 체험일 뿐 아니라 현대 건축물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이 된다.
계속 쓰는 것이 공간 최고의기록이 된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말대로 생물체로서의 인간은 기껏 유전자 보유체로서 한정된 역할을 할 뿐일지도 모르지만종으로서의 인간은 기억과 계승을 통해 문화 유전자meme’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 문화 유전자들이 쌓이고 쌓여서 사회의 집합기억 collective memory)‘을 만든다. 어차피 인류는 언젠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아니, 언젠가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태양계가 소멸하는 20억 년뒤라 할지라도 말이다. SF적 상상처럼 지구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더라도 다른 별에 가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저장하는 기억의 한 조각, 우리가 기록하는 흔적 하나가 어떤 임팩트를 가질지는 모를 일이다.
한 인간이 사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이 기억과 기록은
씨앗이 된다. 기록은 기억의 단초가 되고, 기억은 이야기의 원천이된다. 기록이 풍부할수록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라 여럿이 또는 동시대인이 같이 공유하는 집합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시간을 뛰어넘는 집합 기억으로 이어진다. 도시는 온전히 그러한 집합 기억의 풍요로운 저장소다.

우리 도시들은 잡종성‘이 강하다. 혼성性이라고 해도 좋다.유럽처럼 원조를 자처하며 순종을 내세우는 문화, 미국처럼 혁신을앞세워 신종新羅을 지향하는 문화와는 달리 우리는 순종을 품고 신종을 지향하되 그 무엇이든 품에 안는 잡종의 문화다.
왜 잡종성이 강해졌을까? 급격한 사회적 충격과 낯선 문물의 습격을 받아들이고 적응시키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스스로의 힘으로감당하기 힘들었던 근대기의 험난한 역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역사의 단절, 전통의 부정, 폐허로 변한 환경, 부족한 인프라, 급격히등장한 각종 도시 문제, 상업화 물결의 습격 등 다사다난한 과제들을 짊어지고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하기 위한 현대의 시간 속에서 저도 모르게 학습한 힘의 결과다.
우리 도시들에는 이러한 잡종성이 자아내는 독특한 맛이 있다.

주합루宙合樓라는 이름이 인상적이다. 우주와의 합일을 꾀한다니 작은 공간에 큰 뜻을 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의 도서관 격인 규장각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1층 각에는 도서를 두고, 2층 루樓에서는 왕과 대신들이 토론을 했다. 아름다운 연못 주변에서 로맨스가 일어났으리라는 인상과 달리, 이 공간은 철학과 공부와 국정 기획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주합루로 오르는 화계花階에 있는 작은 문의 이름이 어수문魚水門이다. 왕을 물에, 신하를 물고기에 비유했으니(또는 국민을 물에, 왕을 물고기에 비유한 것 아닐까?) 절묘한 이름이다.
주합루 아래 부용지 옆에 숙종이 재건하고 영조가 현판을 쓴 영화당에서 과거 시험을 치르게 한 이가 정조다. 주합루 일대의 공간이 가히 인재를 발굴하고 인재와 함께 국정을 구상하는 공부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을 풍류 공간이라고 인식하는 관광객이 자책할 이유는 없다. 정조는 신하들과 그 가족까지 불러서 주합루 일대에서 마음껏 풍류를 즐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문무와 풍류는통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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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과연 집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지내는 개는 들어오거나 나갈 때, 문을미는 것을 곧 배운다. 그로서는 문을잡아당기는 것은 불가능한 행위다. 따라서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즉, 미는 행위는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언제든 손 떼고포기한 채 가버릴 수 있게 한다. (그 무슨어리석은 고집으로 시시포스는 한사코그의 바위 덩어리를 밀기만 하는 것인지나는 늘 궁금했다.) 반대로 앞에서 당기는것은 노예의 일이다. 나자레 해변의 이포르투갈 사람들에겐 다행스러운 것이한 가지 더 있다. 이 사람들은 오직 배를진수시키기 위해서, 그러니까 잠시 후에는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배를 밀고 있는것이다. 미는 행위에는 자기 앞으로쫓아낸다. 자기 앞 저쪽으로 몰아낸다는의미가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반면에 당기는 사람은 짐을 계속 자기 쪽으로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차원에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e이있다면 공간의 차원에는 아나토피즘이있지 않을까. 아나크로니즘은시간 순서의 위반, 셰익스피어의희극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대포가등장하는 것이 그 예. 아나토피즘은지리(위상)의 위반, 홀랜드나 독일의화가들이 성탄의 말구유를 자기네고향 마을에다가 차려놓는 것이 예..
그 화가들이 그 그림 속의 인물들에게자기 동시대 사람들의 옷을 입혀놓는다면아나크로니즘에 아나토피즘이 겹쳐지는 셈.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사람에 손대지않고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는에두아르 부바 같은 작가에게아나토피즘은 우연이 몸소 그에게부여하는 어떤 기호의 의미, 어떤자발적인 선물의 의미를 지닌다.
이쯤 되면 우연은 신의 섭리를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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