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커버링을 한다는 것. 커버링은 주류에 맞게 타인이 좋아하지 않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류에 속하고 싶은 열망 때문에 유행하는 스타일로 옷을 챙겨 입고, 요즘 대세로 불리는 라이프스타일로 삶의 습관을 바꾸는 수고를 마다지 않는다. 심지어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무고한 사람을 왕따로 만든다.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해 오랫동안 이성애자의 커버링을 계속해왔던 저자는 바로 그 주류에 편입되기 위한 커버링이야말로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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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으로 건강해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그림자를 의식화 해서, 나에게 이런 스트레스가 있었구나. 나에게 이런 슬픔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과정, 나아가 그 슬픔과 스트레스와 화해하기 위해 자신을 너무 다그치지 않고, 좀 더 편안하게해주는 과정을 일컫는다. 그림자를 길들인다는 것, 그것은 그림자와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한 아름다운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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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림자라고 해서 모두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1886)의 경우처럼악의 원천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예술가들의 ‘창조의 원천‘에는 대부분 그림자 문제가 연루되어 있다. 그림자를 창조적인 예술의 영감으로 승화시킨 예술가들이 바로 베토벤, 고흐, 카프카Franz Kafka 같은 사람들이다.
가끔 내 안의 낯선 그림자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때다. 어디서 그런 분노가 숨어 있었는지 깜짝 놀라 내 기억을 샅샅이 뒤지기도 한다. 융 심리학에서는 이런 순간을 그림자와의 대면이라고 한다. 자신이 인정하기 싫은 어둡고 열등한 측면 즉 그림자와 만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희열도 깃든다. ‘내가 이것 때문에 그토록 힘들었구나‘ 하는 깨달음도 공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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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은 《원형과 무의식》(솔, 2002)에서 ‘당신이 인정하고 싶지않은 당신의 모습‘이 바로 그림자라고 말한다. 그림자는 우리가
아무리 거부해도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가로막는 자기 안의
장애물이다. ‘너는 성격이 너무 불같아‘라는 말에 더욱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처럼, 그림자는 타인의 시선에서는 정확히 보이지만 자기 자신이 바라볼 때는 은밀한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어머, 아버지를 꼭 닮았구나‘라는 말에 버럭 화를 내는 사람은 아버지와 자신의 닮은 모습 자체,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바로 그림자인 셈이다. 인정하기를 거부할수록, 즉 의식의 차원에서 그림자를밀어내려 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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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일상 속의 길은 뭘까. 나는 그것이 타 인의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내면의 희열, 즉 블리스Blis를가꾸는 일상 속의 작은 실천이라고 믿는다. 블리스는 시간의흐름을 잊게 만드는 모든 기쁨이다. 시간뿐 아니라 슬픔과 번민, 세상조차 잊게 만드는 내적 희열이 바로 블리스다. 꽃을 가꿀 때 모든 슬픔을 잊는다면 그것이 블리스고, 음악을 들을 때모든 번민을 잊는다면 그것이 블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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