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과 노동자의자식으로 태어난 사람의 출발선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미국의 유명한 미식축구 감독인 배리 스위처 Barry L. Switzer는 1986년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이는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기가 3루타를 쳤다.
고 생각하며 삶을 살아간다Some people are born on third base and go through lifethinking they hit a triple

부로 말하자면, 어떤 시민도 다른 시민을 매수할 수 있을만큼 부유해서는 안 되며 어느 누구도 자신을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테면 강자들은 부와 권세를절제해야 하고, 약자들은 인색함과 탐욕을 절제해야 한다.
이 같은 평등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이론적 공론에 불과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 하지만 오류가 불가피하다고해서 그것을 규제조차 하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바로 사물의 추이가 항상 평등을 무너뜨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입법의 힘은 항상 그것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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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니다. ‘강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전시의 방식이다. 내 삶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여 전시하는 것이 이 시대의 인증이다.
내 일상을 돌이켜보며 렌즈를 들이대고 싶은 구간은 어디인지 고민해보자

나는 소유, 체험, 행위 중 무엇을 인증하는 사람이 되고싶은가? 나는 어떤 것을 인증하며 살아가고 싶은가? 요리하는자아, 옷 잘 입는 자아, 예쁜 가방을 지닌 자아여도 좋고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원서를 읽는 자아, 매일 30분씩 조깅하는 자아, 매일 모닝 페이지를 쓰는 자아여도 좋다. 내가 인증하는 것이 나를 보여주고, 이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인증하는 것이 우리가살아가는 세계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어떤 관계든 오래 지속되는 관계 언어에는 힘이 있다. 긍정적인 의미를 품은 관계 언어가 더 다양하게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랜선 이모처럼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이여도 좋고, 반려기기처럼 내 삶에 꼭 붙어 있는 애착템이어도 좋다. 식집사처럼 반려식물을 키우는 기쁨이 가득 담긴 단어여도 좋다. ‘하모니는 관계이므로 모든 관계는 음악‘이라고 철학자 김진영이 말했다. 우리가 맺는 관계가 음악이라면, 나와 상대를 이어주는관계의 언어가 아름답기를 바랄 뿐이다. 관계의 언어가 아름답게 발전한 세계는 조화로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곳이리라. 각자 다른 음이 조화로 엮여 한 곡으로 완성되듯이, 새로운 관계언어가 연주하는 곡은 전보다 더 감미로울 것이다.

"힘은 무지에서 올 수 있다는 명제는 그다지 명성을 얻지못하고 있다. (…) 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조금 안다"는,
문화 비평가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의 말로 넷플릭스의 폐쇄자막사례를 설명할 수 있다. 비청각장애인은 청각장애인의 세계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비청각장애인의 청력은 힘이고,
그 힘이 우리를 무지하게 만든다.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한, 우리가 지닌 여러 힘이 알게 모르게 우리를 특권의 영역에 서게 하고, 그 위치가 우리의 무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2021년 도쿄 올림픽 폐회식 중계에서 KBS 이재후 아나운서는 이상으로 2021 도쿄 비장애인올림픽 중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라고 맺음말을 했다. 이 말은 곧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었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는 계기를 선사했다. ‘비장애인‘이라는 단어 덕분에 올림픽을 다른 차원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재후 아나운서는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방송에서도 같은 맺음말을 썼는데, 같은 말이어도 그 울림과 반향이 더 커진 것은 우리의 듣는 귀가 더 섬세해졌기 때문이다. 섬세한 단어 선택이 더 크게메아리치는 때를 만난 것이다.

차별의 언어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리베카 솔닛과 피에르 부르디외, 김지혜 저자까지 인용한 이유는(사실 더 많은 인용을 준비했으나 산만해질 듯해 모두 지웠다) 나의 차별 언어 감수성에 대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빈번히 실수를 저지르고 사는 내가 감히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괴하고 자책했다. ‘거지 같다‘는 말이 빈민 혐오임을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벙어리장갑 대신손모아 장갑이나 엄지 장갑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한 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찐따‘라는 단어가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비하하는 혐오 표현임을 모른 채 찌질하다는 말의 동의어쯤으로 여기며 자주 사용하기도 했다.

언어를 공부하는 방법에는 순서가 있다. 학이 먼저고습이 다음이다. 학이 새로이 배우는 것이라면 습은 그것을 반복해서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익히고 수련하는 과정이다.
새로 배운 차별의 언어들을 반복하지 않는 익힘, 그리고평등의 언어들을 반복하여 사용하는 익힘을 위해 나는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꾸준한 반복으로 언젠가 내게 ‘평등한 언어감각‘이라는 근육이 볼록 튀어나오기를 바란다. 그 귀여운 근육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테니, 근손실을 막기 위해서 더 열심히 운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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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 실력도 기술도 사람 됨됨이도, 기본을 지키는 손웅정의 삶의 철학
손웅정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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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잘살게 됐다고 여기면서 인간은 꼭 필요한 것을 넘어서서 불필요한 것을 너무도 많이 쌓아두고 살아온 듯합니다. 바탕만 잘 갖추고 있어도 사람 노릇을 잘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자연의 거대한 질서 앞에서 우리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요. 광대무변한 우주 공간 속의 인간을 그려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한 점 티끌에도 미치지 못할 지극히 보잘것없는 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자신에 취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약하고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감염병의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건강과 신념뿐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듭니다.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것에 소유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내가 무엇을 소유한다’라고.

하지만 그 소유물에 쏟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도리어 뭔가를 자꾸 잃고 있는 것이다.

상대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 그 상황이 아무리

공을 툭 차면 골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찬스라 해도

공을 바깥으로 차내라. 사람부터 챙겨라.

너는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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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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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괴감 속에서 헤엄치다 정신을 차리게 하는 스스로의 한마디. ‘또, 또 건방진 생각한다. 맞다, 건방진 생각. 대체 내가 뭐라고, 이 글이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이걸로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나. 수많은 이들의 계급적 입장과 경험적 차이와 정치적 상황과 개별적욕망이 각각의 언어로 떠도는 거대한 공론장 안에서 한 마감노동자의 담론 기여라는 것은 작고 보잘 것 없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강력한 논의를 발아할 만큼 좋은 글을 쓰지 못한 것도있겠지만, 사실 한 편의 글이 세상의 인식을 흔들고 새로운 논의의 지평을 열 수 있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허구다.
중요한 건, 내가 꾸준히 쓰는 만큼 다른 누군가도 꾸준히문제제기를 할 것이며, 그 수많은 담론적인 기여와 다툼과 소란스러움이 모일 때 언어의 카오스처럼 보이던 공론장 안에서 작게나마 논의를위한 지평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을 뾰족한 마음>으로 지은 건 그래서다. 내가 생각하는 뾰족한 마음이란 세상에 뭔가 삐딱한 시선을 유지하며전투적인 태세를 취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내가 종종 그런 태도로 글을 쓰지만 그것과는 상관없다. 내가 뭘 해도 세상은 그대로라는 회의와 냉소에 빠질 꽤 많은 이유들에 무기력하게 타협하지 않기 위해 뾰족한 마음이 필요하며, 어차피 다들자기 편한 대로 받아들이리라는 핑계로 사유와 언어를 벼리지않고 뭉툭한 정념의 덩어리나 내뱉지 않기 위해서도 뾰족한 마음이 필요하다. 대단한 사람이라 뾰족한 게 아니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순순히 인정하고 그럼에도 그 대단하지 않음이 모여 만들어낼 새로운 전망을 믿기 위해 뾰족해지려는 것이다. 이것이 자의식 과잉에 빠지지 않으면서 세상에 말 걸기위한 내 나름의 방식이다. 아마 나만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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