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앞부분을 이루고 있는 인터뷰에서 그는 "어찌 보면 세상모든 일이 번역일지도 모르죠"라며, 세상의 일들과 번역이 같은이치에 닿아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피력하는데, 나는 슬그머니 ‘세상 모든 일‘이라는 말을 서점 일‘로 바꿔놓는다. 서점 일전체를 번역에 빗대는건 순진한 생각일지라도, 적어도 ‘책을 분류하는 일만은 번역과 유사한 프로세스를 갖지 않나. 저자의 작품이 독자의 시선에 닿을 수 있도록 텍스트를 해석하고 분류하는작업과, 출발어(외국어 화자의 작품) 도착어(독자의 언어로 바꾸는 번역의 작업이 닮았다고 보는 건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파스칼 키냐르가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을 때 아침이란 이런 의미였을까. 막다른 밤을 보내고 나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뜻에서, 매일 어떤 한계 앞에 멈춰 서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 완전함에 도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지니라는 의미에서.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는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를 사람,
장소, 환대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정의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람으로 인정받는 일‘(사람)과 자신만의 ‘사회적 영토를 얻는 일‘(장소), 그리고 ‘환대‘. 앞의 두 조각은 환대라는 세 번째 조각을 통해 연결된다. 수년 전 처음 읽었을 땐 흥미로운 책이라는정도로 생각하며 빠르게 훑고 말았는데, 무례함과 친절함 사이에서 허우적대던 와중에 다시 읽은 책은 자기계발서가 좀처럼다루지 않는 인간관계에 대한 심층으로 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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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서점에 홀로 남은 날이면, 우주선 안에서 심혈을 기울여감자를 키우던 마크의 외로움이 내게도 밀려오는 듯했다. 나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딴곳에 고립된 것은 아니었다. 마음만먹으면 불을 다 끄거나 문을 잠글 수 있고, 내겐 돌아갈 아늑한집도 있다. 이런 시대에 종이책을 판매하며 가게를 꾸려가는 일을 화성에서의 생존에까지 견주며 비장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싶지도 않다. 그저 우주선이 밭이 되듯, 서점도 나만의 작업실로 변신하는 것이다. 감자를 키우기 위해 허리가 휘도록 흙을나르고, 위험을 무릅쓴 채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물을 만드는 마크처럼, 나 역시 어떤 절실함에 떠밀려 늦은 밤까지 여기에 남아있는 것이다.

조던 스콧이 쓰고 시드니 스미스가 그린 그림책 <나는강물처럼 말해요》는 말더듬는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는 다른친구들처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 학교에서 발표를 망치고 귀가한 어느 날, 아버지는 아이를강가에 데려가 강물을 보여주며 말한다.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강물의 움직임을 느끼며 아이는 깨닫는다. 그저 한 방향으로 흐르는 줄만 알았던 강물도 소용돌이 치고, 굽이치고, 때로는 더듬거리며 흘러간다는 사실을 아이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그대로 수긍하고,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로 한다.

눈 내린 날의 정경을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라고 노래한시인은 올라브 하우게가 유일했고, 앞으로도 유일할 것이다. 단순하고 명료한 말인데도 인간의 마음으로는 쉬 닿을 수 없는 섬세함의 극치가 느껴진다. 그는 눈 내린 정원을 바라보다 어떻게할지 고민한다. 내리는 눈에 대고 화를 낼지, 아니면 어린 나무를 감싸 안고 대신 눈을 맞아줄지. 그러다 막대 하나를 들고 다니기로 한다. 정원을 돌아다니며 어린 나뭇가지에 덮인 눈을 살며시 두드려 털어준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딛고 서 있는지엔 별로 관심이 없다. 어딘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다 보면 적어도 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수평선이 얼마나 광활한지, 언덕이 얼마나 푸른지는 알아차린다. 하지만 발밑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의 아름다움을칭송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한다.

글도 그림도 본질적으로 부재하는 무언가와 더 잘 연결되고 싶고 더 잘 소통하고싶은 ‘그리움‘을 동기로 한다."(p293)나는 ‘그리움‘ 앞의 ‘더 잘 소통하고 싶은‘이라는 말에 밑줄을긋는다. 그게 우리가 손글씨를 쓰는 까닭이지 않을까해서다. 하얀 종이 위에 한 글자 한글자새겨 넣은 그 말들은 언젠가 이곳에 다녀갈 누군가에게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던 말이었다. 늘정답고 예쁜 말인 것만은 아니었다. 구입하지 않은 책을 함부로 손상시키지 말아달라고 간청할 때도, 우리 서점만의 방식으로 책을 분류하고 있으니 찾는 책이 있을 땐 직원에게 문의해달라고당부할 때도 내 마음속 말들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서, 나라는사람의 모습을 그 글자 안에 새겨 넣고 싶었다. 그러니까 손글씨는 당신에게 더 제대로 말을 건네고 싶어 감히 여기에 내 흔적을남겨놓겠다는 수줍은 선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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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곡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기억된 것을 반복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스타일이 나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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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 아팠으니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 대해 신사임당이 내린답은 ‘그래도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자녀 교육과 돈벌이, 집안 살림에 치여 꿈을 위해 쓸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도,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천재 화가로 칭송받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을 남겼을 뿐아니라, 대학자율곡 이이까지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라는 수식어도 얻었죠.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도무지 시간이 없어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그래서‘를 핑계 삼아 안주하고 포기하려는 우리에게 신사임당은 ‘그래도 계속하면 얻을 수 있음을, 결국 이룰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래서‘와 ‘그래도 글자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세상을 바라보는관점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사실 성취와 성공에 이르는 길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용기, 사소한 변화가 모이고 모여 커다란 의미를 만들어낸다는것을 신사임당은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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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모어와 모국어의 구별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원래 양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예로 들어보자. 일제 식민지 시기에, 조선의 어느 소학교에서 한 조선인 학생이 넘어졌을 때 엉겁결에 "아야!"라고 외쳤다가,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심한 체벌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아야!"는 일본말로 "이타이(아퍼)!"다. 여기서 학생에게 "아야!"는 모어이며 "이타이!"는 강요된 모국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상의 땅인 한국을 방문한 재일조선인 3세가, 모여든 친척에게 "곤니치와" 하고 인사를 했다가, "한국 사람이라면 ‘안녕하십니까’ 정도는 말할 줄 알아야지"라며 꾸지람을 들었다. 여기서 이 재일조선인에게 "곤니치와"는 모어이며 "안녕하십니까"는 모국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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