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의 불꽃 - 샤를 드 푸코의 영적 수기
샤를르 드 푸코 지음, 조안나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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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위에는 퇴폐와 무지, 오만이 판을 치고 있었으며, 그 자신과 그가 신앙으로이끈 신자들을 위해 늘 무언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으나그 어떤 경우에도 평화를 잃어서는 안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샤를 형제의 평화와 힘과 지고의 선은 그가 다른 모든 것을버린 결과였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그는 자기 은둔소에 들어가 팔 일이나 십일 동안 하느님 앞에 머물곤 했다.
그가 하느님과 단둘이 머무는 것을 얼마나 즐겼던가!

"신앙의 삶에 매달려야 한다."
"이것(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신앙인들에게 가는 것은 많은 영혼들을 매혹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겪을 위험이 큰 만큼그들에게 영광이 되므로…."
"건강이나 생명에 대해서는, 나무가 떨어지는 나뭇잎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듯 염려하지 말 것."
"내 온 힘을 하느님을 위해 간직할 것."
"인간적 수단의 약함은 또 하나의 힘의 원천이다."
"예수님은 불가능의 스승이시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 대한 우리의 절대적인의무다."

자네의 생일인 오늘은 다른 어느 날들보다도 더 힘차게 하늘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네. 두려울 정도로 냉담하고 미지근해져 분심에 휩싸이는 때에,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고 싶어 하는 주님이 더없이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이며, 언젠가는 우리도그분을 사랑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인지 모르겠네. 날들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네! 우리의 여생이 얼마나 될지 누가 알겠나? 우리의 여생이 짧든 길든 주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우리 여생이 그분께 속하고, 그분을 위한 것이 되어 그분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를!
1896년 8월 15일...
"사람은 사랑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늘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아니면 적어도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고 싶어 하거나 기도란 바로 지극히 사랑하는 주님과의 친밀한 대화라네. 우리는 그분을바라보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며, 그분의 발치에 머무는 것을기뻐하며, 거기서 살고 거기서 죽고 싶다고 그분께 말씀드리는것이지・・・.
1986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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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 단 하나의 나로 살게 하는 인생의 문장들
최진석 지음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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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 자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서항상 자신의 우물이 어디 있는지 찾던 사람, 스스로 별이 되고자 하던 사람. 우리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 감탄하고 박수를 치면서, 정작 우리 안에 어떤 별이 있는지, 자신이 어떤 별인지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아요. 어린 왕자는 스스로 별이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어린왕자』에 나오듯이 어른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혹은 봐야 하는 대로 세계를 봅니다. ‘정해진‘ 대로 보는 것이지요. 반면에 어린이는 상자 속 양을 발견할 수도 있고, 보아뱀의배 안에 코끼리를 넣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볼수 있기 때문이지요. 정해진 마음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은 세계의 진실과 접촉할 수 없습니다.

니체입니다. 그는 인간 정신발달의 단계를 낙타, 사자, 어린이에비유했습니다. 낙타는 온갖 짐을 지고 정해진 궤도를 따라 꾸역꾸역 갑니다. 사자는 낙타에 비해 나름의 주도권과 의지를 갖고나아가지요. 어린이는 자기가 삶의 동력 그 자체입니다. 무한긍정의 상태지요. 정해진 궤도를 따라서도 넘어서도 갈 수 있는존재. 어린이는 매사에 호기심이 넘칩니다. 낙타나 사자에게 없는 것이지요. 작중에서도 어린 왕자를 묘사할 때 가장 많이 반복되는 문장이 "한번 묻기 시작하면 끝까지 묻는다"입니다. 이렇듯 어린이는 모든 일의 출발과 다름없는 무궁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지닌 존재지요.

어린이날을 만드신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누르지 말자. 삼사십 년 뒤진 옛사람이 삼사십 년 앞사람을 잡아 끌지 말자. 낡은 사람은 새 사람을 위하고 떠받쳐서만 그들의 뒤를 따라서 밝은 데로 나아갈 수있고 새로워질 수가 있고 무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에어린이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죽음을 향해 가고, 사회가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 그 사회가 무덤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어린왕자』를 보세요. 어른을 인간으로 만드는 역할을 어린이가하고 있습니다.

"내 별을 봐,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어." 저는 이렇게 패러디하고 싶습니다. "내 우물을 봐, 바로 내 안에 있어." 그리고 다음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하지만 어쩌면 저렇게 멀까?"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듯" 시간을 들여 마침내 그것을 찾아 중요하고 유일한 것으로 만들어낸다. 그것을 이루는 순간 스스로 별이된다. 어린 왕자도 "백열한 명의 왕, 7000명의 지리학자, 90만 명의 사업가, 750만 명의 주정뱅이, 3억 1100만 명의 허영심 많은사람 등 약 20억쯤 되는 어른이 살고 있는" 지구에서 잠시 "샘을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마음을 놓쳤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없는 꽃을 가진 부자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가진 꽃은 겨우 평범한 장미꽃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일했던 장미꽃을 여러 장미꽃 가운데 하나로 전락시켰다. "그래서 그는 풀밭에 엎드려 울었다." 고유한 존재감으로 충만하던 사람이 자신의 유일함과 고유함이 일반성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하면어떤 누구도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는 자기일 수 없다. 여럿 가운데 하나는특별할 수 없다. 고유하고 유일할 때만 자기일 수 있다. 하지만이런 절망을 느끼는 사람은 축복의 마지막 줄에 서 있는 셈이다.
보통은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만 존재하면서도 그런 자신이 고유하다 착각하며 존재적 희열을 포기하고 심리적 위안으로 만족해버리기 때문이다. B-612호를 떠나는 정도의 모험심을 가진 사람이라야 자기에 대한 존재적 각성이 가능하다.

지구는 20억쯤 되는 다양한 사람이 사는 곳이다. 이곳은 사랑이 충만한 곳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이 돼야 하는 곳이다. 수없이많은 별 속에서 길들여지며 나만의 별을 찾고, 그 별을 특별히 대하고 책임을 지면서, 나도 별이 되는 일이 일어나야 할 곳이다.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지독한 어떤 것과 싸우는 중이다.
COVID-19다. 오래전 유럽에는 페스트가 돌았다.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페스트와 싸웠던 사람들 속에 우리가 있다. 카뮈의 말을 직접듣는다. "나는 페스트를 통해 우리 모두가 고통스럽게 겪은 그 숨 막힐 듯한 상황과 우리가 살아낸 위협받고 유배당하던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한다. 동시에 나는 이 해석을 존재 전반에 대한 개념으로까지 확장하고자 한다." 그 누구도 감염시키지 않을 선량한 사람이란방심하지 않는 사람이다. 방심하지 않으려면 의지가 있어야 하고,긴장해야 한다. 제대로 존재하려면 긴장할 필요가 있다.

니다. 그럼 논픽션만 진실이 되고 픽션은 허구, 즉 거짓 이야기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논픽션이나 픽션이나 모두 진실을 견인하는 장르인데 말이에요.
두 장르 모두 진실을 드러내려는 의도는 같습니다.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논픽션은 사실을 정면으로 표현하고, 픽션은 진실을 다르게 빗대어 표현합니다. 우리는 왜 픽션을 사용할까요?

사실을 일대일 정면으로 표현할 때 드러낼 수 있는 진실은 매우협소합니다. 하지만 픽션은 은유를 통해 진실을 전혀 다른 대상에 빗대며 허구로 포장함으로써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요. 숨어있는 진실이 몰래 드러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픽션이 고도화되면 이것을 추상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피카소의 그림이 추상적 요소가 강한데, 사람들 눈에 이 추상이 거짓처럼 보일 수있습니다. 물론, 사실을 평면적으로 드러내는 쪽이 이해하기 편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접촉하는 진실은 매우 좁아요. 반면에 은유와 추상처럼 픽션의 기법으로 접촉하는 진실은 훨씬넓고 깊으며 생동감 있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요.

페스트는 병입니다. 전염병. 하지만 우리는 제사를 통해 카뮈가 페스트로 쥐벼룩이 옮기는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문제에관해 말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뮈가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겪은 고통과 고뇌가 없었다면 페스트』가 나오지 않았을겁니다. 페스트로 비유된 이 전쟁은 결별, 감옥, 엉뚱한 부조리에 갇힌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 예상하지 못한일,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망,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곤혹, 이런 것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태요. 이것들이 바로 페스트입니다. 소설 속에 "인생 자체가 페스트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우리 인생에 빗대면 페스트는 특정 관념에 지배당하는 것, 정해진 마음에 갇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게 다른 세계와 만나지 못하는 결별이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학대지요. 제게 "페스트가 무엇이냐?" 물어보신다면 카뮈가 말했듯이 "인생자체다", 더 구체적으로는 "너의 정해진마음이요, 묶인 발이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정해진 마음, 미래에 대한 곤혹, 고통,번민, 나를 잡아먹고 세계와 결별시키는 부조리에서 벗어나 어떻게 더 나은 단계로 건너갈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주제입니다.

모든 사람은 페스트에 걸릴 수 있습니다. 나를 감옥에 가두는병균에 감염되는 것입니다. 저는 정해진 마음에 기대어서 습관처럼 사는 것이 페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젊은 시절확고한 이념을 가졌던 사람이 평생 그 이념에 기대 살아간다면그는 이념의 감옥에 갇혀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감옥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치 소설 속 미셀 같은인물이 페스트의 등장을 부정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걸린 페스트도, 자신이 갇힌 감옥도 모르는 체하지요. 평생을 부정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살게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페스트가 있을 때 우린 뭘 해야 할까요? 긴장하고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내 안에 페스트가 발견되어도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겁한 사람입니다. 자기를가두는 정해진 마음으로 세계를 보는 사람은 페스트에 진 게으른 사람입니다. 이 소설은 계속 의지를 가지고 긴장을 유지하며페스트를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내 안의 페스트를 어떻게 극복해 자유를 얻고 해방될 것인가?‘라는 주제의 질문에 오랑 시의 페스트 발견부터 해방까지의 이야기에 빗대어 문학작품으로 대답한 것이지요.

정해진 마음에 갇혀 있는 사람은 소유적 태도로 이 세상을 자기뜻대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반면 이와는 다른 존재적 태도‘가있습니다. 정해진 마음 없이 세계를 자세히 보는 태도를 말합니다. 미셸은 이미 페스트에 감염되었지만 자기가 감염되었다는것도 모릅니다. 세계를 유심히 살피지 않고 그저 습관에 따라의식하지 않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카뮈는 미셸을 제일 먼저죽입니다. 미셀에게는 인생에서 승리하려는 의지와 투지는커녕 자기반성조차 없었으니까요. 반면에 리유는 어떤가요? 내레이터의 역할까지 하면서 죽지 않고 소설을 끌고 나갑니다. 삶의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페스트나 전쟁은 제일 먼저 단절을 불러옵니다. 소설에서 페스트가 극복되고 오랑 시가 해방될 때 사람들이 포옹하잖아요.
연결되는 모습이지요. 감옥에 갇힌 것은 벽에 의해 타자와 단절됨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벽을 허무는 가장 큰 힘이 바로 ‘공감‘이지요. 공감하지 못한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성실성을 갖고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성실성을 실현해나가면서타인과 공감하게 되고, 타자를 내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여 경계 자체를 허물어버릴수도 있지요

많은 사람이 관념에 갇혀 사는 것 같습니다.
의지와 긴장이 없기 때문에 그 감옥을 부수지 않고 스스로 갇힌 것입니다. 페스트에 감염된 것이지요.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랑은 무엇이다‘ 하는 보편적 정의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정해진 사랑, 감옥에 갇힌 사랑을 교도관처럼 집행하려고 하지요. 그러면 사랑의 모양이 다 비슷해집니다. 하지만 사랑이 관념이 아니라 삶 자체가 된다면 이 세상에단 하나밖에 없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의지도 없고 긴장하지 않으면 정해진 사랑의 관념을 집행하는 사람으로 남기 쉬워요. 하지만 의지를 갖고 긴장을 유지하면 이 우주에서 하나뿐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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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가기를 시행하는 자가 건너가는 자신을 자각하고 경험할때 매우 신비한 요동 속에 빠지는데, 그것이 바로 황홀경이다. 황홀경ccstasy 은 정체된sMast 현재의 상태에서 다른 곳으로 건너가는자에게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건너가는 자는 아직 명료하게 해석되지 않은 것이 주는 공포와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수없다. 존재론적 의미에서 모험은 인간이 쌓는 위대한 탑의 첫번째 벽돌이다. 돈키호테는 그렇게 첫 벽돌을 움켜쥐고 일반화stasis 자신을 넘어서서 고유하고도 특별한 각성 속으로 스스로걸어 들어가 높은 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미쳤다고 했다.

돈키호테는 우선 주위의 많은 사람과 어울려 쾌락을 나누던 취미인 사냥을 끊었다. 친구들과 공유하던 취미를 혼자만 끊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힘들다. 친구들로부터 미친놈 소리까지 들을각오를 해야만 겨우 가능하다.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 미치기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생각과 취미를 공유하던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는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만의 세계로 진입해 고유한 영토를 갖게 된다. 핵심은 주위 시선이나 박수와 평가 등을 과감히 무시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일이다. 우리에서자신을 탈출시켜 완전한 고립을 이룬다. 유폐된 자가 자신만의세계에서 자신의 눈으로 자신만을 바라보게 되면 황홀경에 빠져미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풍차라고 하지만 그에게는 거인이다. 모두가 양 떼라고 하지만 그에게는 군대다. 모두가 순례자라고 하는데도 그에게는 악당이다. 돈키호테의 종자인 산초 판사도 그것들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미친 돈키호테는 승패를 미리 가늠하려고 애쓸 정도로자잘하지 않다. 이길 수 없거나 닿을 수 없다고 미리 판단해 물러서는 좀팽이는 아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도 그냥 하고, 닿을수 없는 별이라도 그냥 따러 나설 뿐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서 빠져나와 책에 미쳐 전답을 처분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할 수 없다.

평범한 이들은 미쳐 황홀경에 빠진 단독자를 이길 수 없다. 그들은겁먹은 표정을 감추며 안전과 먹이를 찾아 다시 자신을 가두는 ‘우리‘로 기꺼이 돌아갈 뿐이다. 쭈그러진 심장을 지닌 채 스스로 갇힌다. 돈키호테는 집단적인 정상의 편안을 포기하고 고독한 비정상의 황홀경을 선택했다. 그는 우리와 결별해 자신을 섬기는 자다.

돈키호테』에는 덕을 묘사하는 글이 적지 않다. 돈키호테의 말이다. "자네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자네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걸세. 자네가 덕으로 일한다면, 군주나 영주를 조상으로 둔 가문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네." "가난한 자들도 덕스럽고 사려가 깊으면 그를 따르고 받들고 보호해주는 사람이 생기지." 모든 승리의 원천을 덕으로 보는 것이 바로 돈키호테다. 덕은 자신을 자신답게 하는 힘이다. 내게만 있으면서 나를어디론가 건너가게 만드는 힘이 덕이라고 할 때 자신과 덕은 일치한다. 당연히 모험도 덕의 활동이다. 그렇게 보면 모험심이 없는 자는 덕의 힘이 약하다. 돈키호테는 나를 찾는 일이 사람에게주어진 가장 수준 높은 과제라고 생각한다. "너 자신을 알고자 노력하면서 네가 누구인지에 대해 눈을 떠야만 한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힘든 인식이지." 이 힘든 인식을획득한 자는 덕을 회복하고 다음으로 건너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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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깊은 만남 덕분이었습니다. 한 인물을 만나서 오래 대화하고 기사를 준비하다 보면 그분들은 저절로 저의 거울이 됐습니다. ‘진즉에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 자신을 돌아볼 때가여러 번이었습니다.

"네가 너인 것에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필요 없어. 괜찮아."
JTBC 인기 드라마였던 <이태원 클라쓰>의 12회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 한 토막이다. ‘단밤‘(식당 이름) 대표 박새로이 (박서준)가 ‘최강포차‘라는 요리 경연 방송의 결승전 촬영장을 뛰쳐나간 단밤 주방장트랜스젠더 마현이 (이주영)한테 한 말이다.
결승전을 앞두고 라이벌 진영 쪽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마현이를 꺾기 위해 그의 성정체성을 폭로하는 더티플레이를 한다. 마현이는 방송사 관계자들이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놀라 촬영장을 뛰쳐나간다. 구석진 자리에서 마현이를 찾아낸 박새로이는 "저따위 시선까지 감당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야"라며 대회에 안 나가도 된다면서 이렇게 ‘대회보다 너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다독인다.

저는 70년대에 산업화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이렇게 됐다고 봅니다. 파이가 골고루 분배되도록 그때서부터 복지정책을 폈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잖아요.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이제 권력이 자본가에게 가버린 뒤여서 커진 파이를 지금 나누려니까 마치 재산을 뺏는것처럼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이제는 피를 흘리지 않고는 파이를 나누는방법이 없는 단계까지 와버렸잖아요. 우리가 촛불로 평화적인 시위를 해서 정권과 대통령 하나를 바꾼 것일 뿐 구조를 바꾸진 못했죠.

잘못 끼운 첫 단추가 무엇인가요?
예를 들면 국민연금도 일용직이라든지 봉제 노동자는 처음에 다 제외됐어요. 그래서 저 같은 봉제 노동자는 노후에도 여전히 먹고살 걱정을해야 합니다. 지금 각종 연금을 받는 분들은 젊었을 때는 안정적으로 직장 다니고, 노후에는 연금 타서 안정적으로 살잖아요. 이렇게 비교해도되는지 모르겠는데, 전쟁 때 나라를 구했다고 해서 참전 군인들은 계속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잖아요

"여러분은 죽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근로 개선을 해야 한다. 하루에 잠바를 열 장 만들려고 기를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부해서 이다음에 내 자녀를 어떻게 똑똑하게 잘 기를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소리가절규처럼 들렸어요. 노동교실에서 전태일을 알고 나니까 그것도 모르고지낸 스스로에 대해 자괴감과 자책감이 들었어요. 우리가 진즉에 함께했더라면 전태일 동지가 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서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죠. 청계노조 선배들이나 저를 포함한 모두가 그런 마음이었기에 열심히 싸울 수 있었던 거죠. 두 번 다시 우리 동지가 죽게 하면 안 된다는 마음들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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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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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멀지만, 마음에서는 가장 가까운 그곳어느날 우리는 한 시인의 집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

그의 시 「한잔 재스민차에의 초대」는 다음과 같다.
들어오셔요, 벗어놓으셔요 당신의슬픔을. 여기서는침묵하셔도
좋습니다
시의 전문이다. 짧은 이 시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던가. 구동독 시절에 이 따뜻한 시는, 체제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집 문에 붙여놓는 눈에 띄지 않는 저항의 표지로 쓰였다고 한다. 강성의 이념어가 난무하던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런낮은 목소리가 가졌던 힘을 생각한다.

. "내가 이 책을 선물하는 이유는, 첫째는 그레텔이훌륭한 소녀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레텔이 이 책을 아무데나 놓고 가면 책이 나한테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야"라고. 카프카 특유의 꼼꼼한 글씨로 쓰인 그 진품의 헌사. 맺힌 잉크 자국에서 어린조카에 대한 사랑과 유머 섞인 위트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무해無害해. 유용성이 강조되는 곳에서는 늘 땅을 한 치라도 더 이용해보겠다고 함부로 나무를 뽑지. 그 가운데 이 시는 한 그루 나무를 뽑아내는 작은 일을 경계하며, 그것이 나무만 죽이고 수맥만 마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황폐화시킬 것임을낮고, 낮은 목소리로 간곡하게 일깨우고 있지 (그런 점에서 예컨대 브레히트의 목소리와는 아주 많이 달라). 나무를 함부로 뽑아내는 곳이구동독뿐이겠어. 우리가 함부로 뽑아내는 것이 어디 나무뿐이겠어.
획일성과 유용성의 지나친 강조가 인간의 심성을 어떻게 황폐화시키는지는 다시 나무의 비유로 등장해. 나무도 사람도 다 똑같이쓸모 있게 키워내려는 국가에 맞서, 그럴 수 없다고 작지만 단호한목소리로 말하는 것.

인생은 본질적으로 아주 긴 여정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긴 여정은 오로지 고달픔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자꾸 가노라면 사는 것이 살 만하게 값지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옵니다. 이지점들 사이의 구간이 길면 길수록 더 힘들게 느껴지지만, 삶이 살만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그만큼 소중하고 값지게 다가옵니다. 정말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백분의 일 초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특히 남녀가 함께 산다는 것은 그 백분의 일 초에 다가가고자 함께 노력하고, 그 백분의 일 초를 향해 살아가고, 그 백분의 일 초를 위해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해당되지 않는 순간이 있기는 합니다. 몹시 나이가 들었거나 불치의 병이 들었을 때 말이지요. 그 외에는 그런 순간은 언제나 계속 있습니다. 그 순간을 위해서일하고 살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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