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뒤뤼플레는 20세기에 살았던 조금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미술과 음악이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파리에서 성장했고, 입체파, 모더니즘, 무조 음악, 재즈의 발전을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하지만그는 새로운 방향을 따르거나 변화를 수용하지 않았다. 대다수 동시대인들과 달리 그는 청중을 자극하거나 충격을 안기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음악적 영감 대부분을 먼 과거에서 찾았다.
뒤뤼플레는 매우 독특한 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작품은 수정같이 명료했는데, 이런 특징은 아주 적은 수의 작품만을 작곡하고 각각의 작품을몇 년씩 다듬은 덕분일 것이다. 그는 소년 합창단 시절부터 바흐, 하이든,모차르트, 그리고 같은 프랑스의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음악을 즐겨 노래했다. 무엇보다도 9세기에 시작된 서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무반주 노래인 그레고리오 성가의 순수함과 우아함에 탐닉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음악적 팔레트에 그레고리오 성가와 ‘단성 성가‘의 색깔을 섞었고,
이런 모습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작곡한 감명 깊은 레퀴엠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는 이 작품의 선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곡의 선율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장례식 미사에서 나온 주제만을 바탕으로했습니다. 때때로 선율을 뒷받침하거나 덧붙이는 오케스트라를 생략하면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정확히 인용했죠. 다른 부분에서도 오케스트라 반주를 최소화하면서 단순한 자극 이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오늘 듣는 빛나는 라틴어 모테트 ‘자비와 사랑이 있는 곳에‘의 기초도 그레고리오 성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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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로부터 인간을 이해하려 했던 하이데거는 잡담과 호기심, 애매성으로 점철된 현대문명의 비본래적 자아를 걱정했지요. 그는 본래적 자아를 상실한 인간은 깊이와전체성을 결여하고, 이는 다시 공허감과 권태로 연결되어, 계속 자극적인 삶을 추구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그는 생의 중요한 양식으로 실천적 배려‘를 언급합니다. 불안한 ‘세계 내 존재‘ 속에서 인간은 존재 가능성을 끊임없이 염려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염려하고 타인을 배려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려란 자기 외의 존재자를 향한 기본적인 관심이며, 배려라는 양식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자신과 타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울림의 공부’를 강조합니다. 우리는 서로 물드는 존재라는 거지요. 그래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공부하면서 연대해 실천해 나가는 형식, 이것이 지상에 살아남은 자의 꿈이겠지요

우리는 늘 반성합니다. 그러나 반성이 관념이 되면 안됩니다. 아주 사소한 습관 하나라도 바꾸어 내는 실천이 없으면 반성조차도 허영입니다.
기실 우리 삶에는 육체적인 것 말고도 정신적 허영이얼마나 많을까요. 죄책감은 인간 의식의 진화에서 낮은 차원의 단계입니다. 수치와 죄책감, 자격지심과 절망, 질투와 미움, 분노 등의 단계를 벗어나야 감사와 용기, 사랑과 희생이라는 높은 의식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가장 밑바탕인 죄책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목소리를 당당히 내는일부터 시도해야겠지요.
여기에는 의지가 작용해야 합니다. 어쨌거나 이 모든것들이 우리가 침 발라 넘기는 두툼한 숙제장이겠지요. 항어 부담스럽지만 하고 나면 유쾌해지는, 스스로 기특해지는....

난 기독교인이지만 잠들기 전 운동과 명상 삼아 절을합니다. 백팔배를 넘을 때도 있고 모자랄 때도 있지만 잠시자신의 밑바닥을 감지하는 시간으로 충분합니다. 이마가 바닥에 닿고 가장 자세가 낮아지는 순간, 하심下心이 나옵니다.
그 순간 왜 저절로 울컥해지는 것일까요.
절을 할 때마다 나는 ‘지상에 떠도는 모든 억울한 영혼을 위해서‘라는 작은 제목을 꼭 가집니다. 함부로 다친, 함부로 버려진 억울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들의 이름이나 슬픔을 까맣게 잊고, 먹고사는 일에 열중한다는 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아 스스로도 민망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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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성찰하는 힘을 말한다. 이성찰이 실천으로, 이 실천이 공존의 가치로 이어진다. 모든 고뇌와 발견은 공감의 상상력이 된다. 공감하는 감수성만이 사랑을 발견하고 공존이라는 비전을 선택한다. 때문에 모든 공부의 정점은 글쓰기일 수밖에....

그때 김민정 씨를 만났다. 법대 졸업을 앞둔, 유달리영민한 눈빛을 가진 그녀는 고뇌하는 청춘이었다. 법을 공부하면서도 미디어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 까닭은 사람 만나는 일이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내 가슴에 아직도유리구슬처럼 반짝인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세상에 그만한 큰 소명이 있을까. 이후 편지를 나누며 민정 씨의 ‘감동벽이 훨씬 깊고 따뜻한 것임을 이해했다.
민정 씨의 진솔함에 끌려, 창간호부터 우리 둘은 편지를 시작했다. 30년 가까운 세대 차이가 있지만, 동시대를 함께하는 삶과 꿈은 서로 닮았고 서로 절실한 것들이었다. 세대 격차로 분리되는 게 아니라 시대를 함께 공유하고 함께책임지고자 고민했다.
이 책에 담긴 나눔들은 ‘인간이 고뇌하는 별‘임을 충실히 보여 준다. 극단적인 물질시대를 살아가지만 어떻게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믿을 것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지키는건 무엇일까, 그 영성적 가치를 기억하고자 했다.

.... 내게는 사람이 곧 기적이었다. 인문학의 책임은 점점 무거웠지만,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사람에게서 배웠다. 사람들이 길이었다. 좋은 글이나 큰 풍경을 보면 꼭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일던, 민정 씨도 새 울음 가득한 오솔길이다. 살면서 서로 디딤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눈부신 기적인가..
이 책이 다가가는 모든 사람에게 말랑말랑한 식빵 같기를, 아무렇지 않게 낡은 서랍 속에 놓인 은빛 클립 같기를,
별거 아니지만 가까이 둘 수밖에 없는 특별한 선물 같기를,
무심히 마주 보고 서서 자라는 두 그루 나무 같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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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말로 회개는 ‘메타노이아(uerávota)‘다. ‘메타노이아‘의 뜻은 ‘돌아서다‘이다. 이 말은 제 욕망이나 악함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돌아가는 삶의 변화를 가리킨다. 돌아서야 한다는 당위가 가능하려면, 먼저 빗나간 삶을 자각하는 게 필요하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떠나 불충의 시간을 보냈다고 자각하고 반성했다 (2열왕17,7-18). 예언자들은 날카롭고 직선적인 어투로 불충한 이스라엘 백성을 다그쳤고(에제 16장 참조), 하느님께 돌아오라며재촉했다(이사 30,15; 55,7; 예레 18, 11; 에제 18,30-32; 33, 11 참조).

빗나간 삶이 있다는 건, 돌아갈 본디 삶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회개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이 아니라 본디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다. 새로운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묶여,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만을 되새기는 이들에게 회개는 자기계발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신앙인의 본디 모습은 인간의 본래 가치와 다르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수많은 철학자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규정한다. 어디로 튈지 몰라 무섭다는 중2 학생들도 사회생활의 원리로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 참여, 보조, 연대의 가치를 공부하고 실천한다.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한, 서로의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이 인간 됨의기본이다. 인간은 본래 서로 되돌아보고 함께하는 ‘회개의동물‘이다. 잘 살아야 하는 일은, 실은 같이 살아야 하는 일이고, 그것이 곧 인간의 일이다.

회개는 함께하고자 하는 이의 품 안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의탁하는 무모함이지, 자기 계산이나 계획에 따라 스스로의 변화에 감탄하는 업적쌓기가 아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구원은 저 미래에 펼쳐질 무릉도원이 아니라, 태초에 만들어졌으나 역사의 흐름속에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일이다. 그러므로 제 삶을 단련시키고 제 삶의 처지에 민감한 의식을 갖는 건 회개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말하자면 제 삶이 혼자서 이루어질 수없다는 사실을, 나아갈 다른 세상이 있고 다른 존재가 있음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예민한 삶의 자세는 회개의 기본이다(히브 6,4-8; 1코린 2,24-2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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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3부 봉헌송 ‘주 예수 그리스도
주세페 베르디(1813년-1901년)Requiem Mass3: Offertorio: Domine Jesu Christeby Giuseppe Verdi

음악의 힘에 대한 이야기다.
1942년 1월, 주세페 베르디의 레퀴엠 악보 한 권이 오늘날의 체코 공화국에 있는 나치의 강제 수용소 테레시엔슈타트(테레진)에 밀반입되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나치에 대항하는 유대인 수감자들은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라파엘 샤흐터의 주도하에 시대를 초월하는 공연을하기로 결정한다. 훗날 생존자들은 이를 정신적 저항 행위라고 묘사했다.
수용소 안에 150명의 수감자들이 모였고, 너덜너덜한 악보 한 권만을 보면서 이 영원한 걸작을 연주했다. 생존자인 에드거 크라사는 테레시엔슈타트에서 있었던 공연이 수감자들에게 ˝예술과 행복의 세계로 빠져들게 해주었고, 유대인 강제 수용소라는 유형지에서 살며 자유를 상실한 현실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라고 훗날 회고했다.
베르디의 레퀴엠은 수용소에서 열여섯 번 이상 공연되었다. 그러나수감자들이 아우슈비츠와 그곳의 가스실로 이송되기 시작하면서 수용소합창단의 수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베르디의 레퀴엠을 노래할 수감자도 몇 명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샤흐터는 1945년 아우슈비츠에서 세상을 떠나기 직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나치를 향해 노래할 것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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