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입니다.
지역 청년 콘서트 행사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라는 나의 질문에, 한 2000년생 대학생이 아무런 고민 없이 대담하게 위와 같이 대답했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 앞에 마주한 나는 짐짓 당황했지만 그런 대답조차 일종의 시대와 세대의 변화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지역 행사장에서 20대초반2000년대생을 만나면서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일에 대한 생각의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 5일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전통적인 직업은더 이상의 기본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

김아영도 곧 동일한 어려움에 처한다. 바로 <SNL코리아> 시즌 4부터 새롭게 등장한 윤가이 때문이다.이 새로운 신입은 헤드폰 형태의 에어팟 맥스를 항상 목에 걸고 다닌다. 에어팟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선임들에게서 여러 번 지적을 받은 김아영은 역설적으로 에어팟 맥스를 낀 후배의 행동을 지적한다. 하지만 윤가이는 김아영에게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단지 패션능률 때문인데 안 되나요?"라고 되묻는다. 극 중에서 ‘너 같은 후배를 만나보라‘는 말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이 단순하게 반복되며 거울치료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보다는 갈등의 양상과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령, <MZ오피스>에서 주현영은 김아영에게 PPT를 빨리 달라고 재촉하고, 김아영은 다시윤가이에게 PPT를 요청한다. 여기서 윤가이는 "아~ 그거 지금안 돼요. 어제 오후에 시키신 일이라 상식적으로 지금은 완성하기가 힘듭니다. 원하시면 드릴 수는 있는데 완성도가 좀 떨어지고, 제 자료 퀄리티가 없어 보여서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애초에 선배님께서 저한테 마감 기한을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만"이라며 바른말로 되받아친다. 결국 그의 행동에 김아영은
"내일 드리겠습니다"라고 채념한다.

한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민국 3대 헛소리‘라는 게시물이 떠돌았다. 첫 번째는 연인에게 하는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라는 말이다. 두 번째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어"라는 말이다. 마지막은? 출근하는 상사가 건네는 "좋은 아침!"이다. ‘굿모닝‘ 정도로 번역될 의례적인 인사가 어떻게 헛소리 취급을 받게됐을까? 그건 ‘회사로 출근하는 아침은 좋은 아침이 될 수 없기때문‘이다.

과거에는 노비가 될 바에는 대감집 (대기업) 노비가 되겠다거나, 관노비(공무원)가 되겠다는 말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똑같은 노비일 뿐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왜냐하면 좋은 직장도 100세 인생의 관점에서는 잠시 거쳐가는 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규직조차 조금 긴 임시직인 셈이다.
꿈을 실현하는 일터는 더 이상 없다. 강하게 소속감을 느끼는일터도 없다. 앞으로 2000년대생들에게는 그저 거래가 일어나는 곳에 불과할 수 있다. 노동력을 잠시 빌려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평생직장이 아니기에 언제든 거래가 종료되면 다른 거래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저는 사실 월정액 직장인이에요. 사장님은 저를 잠시 구독하고 계신 거죠.

미국의 철학자이자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의 명예 교수인해리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거짓말Lie과 개소리 Bullshit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 핵심적인 차이는 바로 "진실에 대한 관심"이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하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것이 사실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소리는 진실이 무엇인지에대한 일말의 관심조차 없다. 저자는 이러한 점에서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고, 거짓말 보다 더 강력하게 진실된 사회의

‘당기세요’가 써 있더라도, 실제로 문을 밀었을 때 열릴 수 있는 것이다. ‘고정문‘이라고 써 있지만 밀거나 당기면 움직일 수도있는 것이다. 써 있는 그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험이나, 안 되는게 되는 경험을 해보았다면, 무언가를 일단 뜻대로 해보는 게 꼭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높은 효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컴퓨터, 인공지능에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더 걱정하는 것은 컴퓨터처럼생각하는 사람이다.

흔히 곡선은 신의 것이고 직선은 인간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순수한 자연에서는 직선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다. 아날로그는 신호를 연속된 선으로 나타내고, 디지털은 신호를 인위적으로 나누어 나타낸다. 이를 자막에 적용시켜보자면, 우리가 영상을 볼 때 듣는 음성 대사는 아날로그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이 대사를 자막이라는 문자로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디지털 영역에 속한다.

아날로그 신호인 음성에 비하여 디지털 신호인 자막은 상대적으로 정확하다. 아날로그 신호에 존재하는 외부의 노이즈나 대역폭 등의 방해 요소가 없고, 정확하게 규격화된 기호로 전달한다. 하지만 음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분명한 소리들 사이에서 음성 신호를 가려내고 해석해야 하며, 상대방의 목소리 톤과전후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까지 통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하면 될까?
...
하지만 디지털적 사고방식이 익숙한 디지털 AI 인간은 그보다더 나아간다. ‘하면 된다‘가 진취적이고 감정적이라면, 다음의 문장은 방어적이고도 이성적인 사고방식에 가깝다.

되면 한다.

여기서 라면은 한국인 모두가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범용적 음식이다. 여러 종류의 라면이 있다고 해도 레시피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 팀장은 별 생각 없이 습관처럼 물을 넣고 불을 올렸다. 물이 끓고 난 뒤에는 라면 봉지를 열어 면과 스프를 넣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던 한 팀원이 그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팀장님 진라면을 그렇게 끓이시면 어떻게 해요?" 당황한 오팀장은 "아니 왜…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물었고, 팀원은 답답해하며 대답했다. "오뚜기 진라면은 물이 끓기 전에 건더기 스프를
넣어야 한다고요. 제조사가 만든 레시피가 있는데, 왜 마음대로만드세요?"

놀랍게도 이처럼 정해진 것을 따르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중대한 법이나 원칙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이들은 마치 오류가 난 기계처럼 사사건건 ‘당신이 잘못됐다‘는 메시지를 내뱉는다. 이렇게 극단적인 디지털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은 ‘사이보그형 인간‘에 가깝다.
디지털 AI 인간이 원칙과 시스템에 방점이 있다면, 극단적인디지털 사고방식을 지닌 사이보그형 인간에게는 맞음과 틀림만이 중요하다. 거기에 중간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이보그형 인간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심고있다. 모든 일에 메뉴얼이 있지도 않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것을언제나 따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일 중식은 미정이야.
뭐라고? 금요일에 중국집 ‘미정‘에서 먹자고?
...?
...?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 개인과 프로필의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것이다. 개인을 진실하게 그리는 프로필이 요구되는 게 아니라, 프로필에서 보이는 것처럼 존재하고 처신하는 개인이 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프로필성이란 정체성의 진실 여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정체성이 형성되고 표현되는 방식과 효과에 관한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의 프로필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진짜로 구성해서 표현하고 행위하는 ‘프로필 큐레이션‘이 필요하게 된다. 이때 한 인간의 정체성이란 이미 존재하는 본질이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필 큐레이션에 따라 연출되어야 하는 것이된다.

기성세대는 소득과 소비를 일종의 선형적인 패턴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만약 누가 밥을 먹고 있지 않고 굶는다면 ‘가난한 아이‘이고, 호텔 식당에서 코스 요리를 먹고 있는 친구는
‘돈이 많은 아이‘라고 여기는 식이다. 하지만 어쩌면 뜻밖에도 그는 10번의 식사에서 돈을 아끼고, 그 아낀 돈으로 1번의 비싼 식사를 즐기는 아이일 수도 있다.

판교에서 중견 IT기업 대표를 지낸 70년대생 김상규 씨는근 최신 아이폰과 맥북,아이패드를 구매한 젊은 사원을 보고 여유가 있는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가 그리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아마 다수의 기성세대는 이러한 상황을 마주쳤을 때 합리적이지 못한 소비 습관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러한모습은 2000년대생들에게는 특별하게 이상한 선택이 아닐 수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합리적인 소비란 모두가 일정한 선으로연결되는 선형적인 소비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집중적

이제 업계를 막론하고 일종의 공동화현상이 일어나고있다. 흔히 도심 공동화는 ‘도시의 중심부에 상주 인구가 줄어들어 텅 비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이 영화 산업과 같은 콘텐츠 시장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고 그 격차가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적당한 수준의 성과를 내던 다수의 플레이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도심 공동화는 도심의 텅 빈 그래프의 모습이 마치 도넛과 닮았다고 하여 ‘도넛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약 지금의 ‘소비 공동화‘ 현상이 도심 공동화처럼 나름의 좌우 균형을 이루고있었다면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합리적 소비의 결과로 그 균형은 깨졌다. 초합리적 소비가 만들어내는 것은 극소수의 승자와 절대 다수의 패자일 뿐이다. 그 결과 시장의 도넛은무너지고 있다.
공동화는 단순히 무언가가 비어 있다는 의미를 넘어, ‘마땅히있어야 할 것이 사라진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산업을 지탱하고있는 주요 플레이어들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국내 영화 산업에서 대다수의 영화가 손익 분기점을 중간도 넘기지 못하게 되면서 투자도 줄어들고 있다. 많은 영화의 수익이 주저앉았고, 이에 이미 수십억 원의 돈이 들어간 한국 영화 90여 편이 개봉도못하고 잠들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의 모든 비즈니스나 서비스, 심지어 자영업에서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걸 줄이면DT가 아닐까 싶은데 사실은 DX라고 합니다. 영미권에서는Trans를 X로 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과거 학교 앞 추억의 문방구가 지금은 무인문방구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어요. 프랜차이즈 무인문방구 문구야 놀자‘는 단순히 문구를 살 수 있는 가게를 넘어 아이들이 편히 찾을수 있는 감성 문화공간이 되었습니다. 문구야 놀자는 2021년 3월에 처음 가맹점을 모집했는데 2023년 8월 기준으로 225개의 매장과 베트남에 해외매장까지 열었습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세인데요, 이에 대해 문구야 놀자 측에서 스스로 인기의 이유를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아이들끼리 와서 구경하고 무엇을 살지 판단한 다음, 결정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부모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살 건지 물어보는 주인이 없다는점이, 초등학생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실컷 아이쇼핑을 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톡톡히 냈다"고요.

잘파세대는 이런 분위기에서 생긴 한 집안의 아이예요. 이아이는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됩니다. 집 안에 하나밖에 없는아이거든요. 이 아이를 위해 장난감을 사주고 과자를 사주고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스마트폰을 사줄 사람이 집안에 8명은 존재해요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삼촌, 이모죠 그래서 8포켓이라는 말을 씁니다.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돈을쓸 사람이 8명은 있다는 거예요. 외삼촌과 고모까지 생각해서 10포켓이라고도 하고요.

잘파세대의 조부모와 외조부모는 대개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그 전 세대와 달리 어느 정도 은퇴자금을 마련하고, 집 한 채는 마련해서 은퇴한 세대입니다. 굉장히 큰 부자는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자녀들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손자,
손녀에게 용돈을 줄 정도의 경제력은 충분히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잘파세대의 고모, 이모, 삼촌, 외삼촌 중에는 비혼주의를표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수치는 점점 반이 넘어가는데요, 통계청에 따르면 10년 전에는 결혼에 긍정적인 사람의 비율이 56.5%였는데, 2023년에는 36.4%로 20.1%p 감소했다고 합니다. 결혼하지 않고 비혼인 채로 동거하는 데 대한 긍정 인식은 80.9%나됩니다.

잘파세대는 영상통화를 즐깁니다. 전화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잘파세대가 영상통화는 즐긴다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통화의 형태가 좀 다르긴 해요. 영상통화를 하더라도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그냥 영상을 연결해 놓고 있는겁니다. 영상통화를 걸어놓고 아무 말없이 자기 공부를 하거나책상 정리를 하거나 합니다. 이들이 영상통화를 하는 이유는 긴밀하게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그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 의미도 없는 문자나 사진을 친구들에게 뜬금없이보내기도 합니다. 자신과 친구가 연결되어 있다는 확인인 거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큰 틀의 기준을 잡고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온리에서 태어난 자중감 있는 현재적 세계인‘. 이것이 잘파세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수많은 특징이 있겠지만, 크게 보면 디지털 온리, 자중감, 현재적 감각, 세계인, 이렇게 4가지 특징으로 수렴할 수가 있어요. 잘파세대가 Z세대와알파세대를 합한 말인 만큼 이 두 세대의 차이도 있을 수 있는데,
결이나 방향성의 차이가 아니라 이 4가지 특징의 농도차라고 할수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지정학적 경계가 약하기 때문에 국가 구분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덜합니다. 메타버스에서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나고 틱톡이나 릴스로 서구권의 최신 유행을 실시간으로 공유합니다. 반대로 외국 친구들은 K-POP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기도 하고요 그래서 친구나 인간관계, 개념이나 사고가 글로벌합니다. 다양한 가치에도 열려 있는 편이죠. 성정체성이라든가 종교에대한 태도, 이념의 차이 같은 부분에 대해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편입니다.

스마트폰 네이티브로서의 잘파세대잘파Z+alpha 세대는 Z세대와 알파세대를 묶어서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MZ라는 용어가 M세대와 2세대를 묶어서 ‘
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호칭인 거죠. 사실 MZ라는 용어가 젊은 사람들에 대한 대명사로 쓰이고 있는데, 최근 들어 이 중 M세대가결코 젊은 사람들이 아님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코로나로 인한 셧다운은 오프라인 만남의 기회를 빼앗았는데, 이미 사회화 경험이 있는 세대에게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답답함을 그저 참아야 하는 기간이었지만, 성장기에 이시기를 거친 세대에게는 소통과 친화 능력에 대한 경험을 상당 부분 앗아간 사건이었습니다. 원래 외향적인 사람은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겠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사회화를 연습할 기회를 많이잃게 된 셈이에요.

시인 나희덕 씨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어요.
"궁극적 목표는 임시적 목표는 세운 일이 없다. 목표를 세워봤자 그대로 된 적이 없고 늘 다른 돌발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도 몇 등을 하겠다. 이걸 갖고 싶다, 무엇을 이루겠다하는 생각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한순간 한순간을 최선을 다해살아낼 뿐이다. 외부적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내면을 잘 살펴서 삶의 방향이나 태도를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잘파세대는 거창한 미래를 꿈꾸고 그 미래를 향해 매진하자는말보다 이렇게 ‘큰 목표를 세우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
는 말에 더 공감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형태가 짧아지고 있어요. 우선 멀쩡한 말을 자꾸 줄여서 쓰는 경향이 생겼죠. 그래서 예능에서는 ‘신조어 맞추기‘라고 해서 제시하는 줄임말이 원래 무슨 뜻인지 맞추는 퀴즈가 종종 나옵니다. <1박 2일>이나 <삼시세끼>로 유명한 나영석 PD가 론칭한 <뿅뿅 지구오락실>이라는 예능은 4명의 젊은여성 출연자에게 나PD와 제작진이 쩔쩔매는 구도로 진행됩니다.
그런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에피소드가 ‘알잘딱깔센‘ 에피소드예요.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라는 뜻의 줄임말입니다. <뽕뽕 지구오락실>의 제작진이 절대음감이라는게임을 하면서 이 키워드를 제시했는데 ‘알잘깔딱센‘이라고 잘못낸 거예요. 그것을 출연자 중 한 명인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2003년생 안유진이 "알잘딱깔센 아닌가요? 땡!"하고 지적한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차이점이 있는데 텍스트로 볼 때는 조금 더 머리를 쓰고 생각하며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비해, 영상으로 정보를대할 때는 보통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영상을 보면서 음성과 음성 사이에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거든요. 그리고최근의 유튜브 영상은 중간에 늘어지지 않도록 말의 문장과 문장사이를 매우 빠르게 이어지게 하기도 하고요. 미국 신경심리학자매리언 울프는 <책 읽는 뇌》에서 읽는 능력‘이 우리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 말하며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 재편성하는 과정으로, 독서의 핵심은 사색하는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잘파세대의 정보 습득 방법은 ‘읽기‘보다는 ‘보기‘ 입니다. 그리고 그런 정보조차도 길면 안 돼요. 유튜브 영상도 8분짜리를 보는것이 아니라 30초짜리 쇼츠나 릴스로 봅니다. 그러다 보니 정보에 기승전결이 없어요. 논리적 인과를 만들거나 스토리를 만들 시간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냅다 춤을 추는 거죠. 개와 고양이 영상,
아기나 동물의 귀여운 영상이나 사진은 특별한 서사를 만들 필요가 없어요. 언어가 필요 없는 귀여운 장면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적으로 ‘좋아요‘를 받을 수 있어요.

진을 공유했습니다. 그런데 단톡방의 다른 멤버들이 ‘뭐야?‘, ‘왜?‘
같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예요.
알파세대인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아이가 갑자기 맥락 없이 말을 바꾼다며 화내는 부모가 있는데,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나름의연결과정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 과정을 일일이 공유하지 않을 뿐이지요. 그리고 과정을 공유한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연결의 고리가 주제가 아닌 소재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쇼츠나 릴스의 영상이 그렇듯 말이죠.

<사피엔스>로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가 2016년에내한했을 때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있죠.
부모나 선생님이 지금 아이에게 하는 충고는 아이가 성인이 됐을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에요. 2050년대에는선생님이나 연장자로부터 배운 걸로는 인간 생활을 하기가 불가능한 역사상 첫 사례로 기록될 거예요."

에 쓸모 있는 것을 배우거나 한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노인들에게 무엇인가를 배운다거나 큰 충고를 받아들일 준비가 그다지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존경심이 없다고 노인을 멸시한다거나 하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잘파세대를 키우고경제적으로 보살펴 주는 사람은 할아버지, 할머니이기 때문에 잘파세대가 노인들에게 가지는 애정은 누구보다 강할 수 있어요. 잘파세대 배우 한소희 씨는 SNS에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나의전부‘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X세대만 해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명절 때나 만나는 존재이기때문에 노인들과의 교감이 크지 않거든요. 그런데 잘파세대의 부모인 X세대나 M세대는 아예 잘파세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때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같은 아파트에 살며 자녀의 양육을 함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잘파세대의 부모는 이전 세대에 비해 맞벌이하는 비중이 높아서 조부모가 육아를 대신한 사람들이 꽤 많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잘파세대는 노인을 대하는 데 서툰 X세대

비혼주의를 선언한 잘파세대의 이모나 삼촌은, 말하자면 자기아이를 가지기는 부담스럽고 대신 조카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느낍니다. 그러다 보니 조카를 끔찍하게 아끼고요. 육아에 대한책임은 없지만 가끔 육아 체험을 할 수 있는 정도면 환영이죠. (고양이나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도 여건상 기르지 못하니 유튜브를 보며 후원하는 랜선 집사도 있잖아요.) 이 사람들은 돈을 벌지만, 그돈을 쓸 곳이 자기 자신과 조카들 정도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에어팟을 낀다는 건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에어팟을 끼고 있다는 것은 ‘지금-여기‘의 맥락에서 벗어나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버스안에서, 길을 걸으면서, 카페에서, 아니면 혼자 있을 때 에어팟을 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있는 상황에서 에어팟을 끼고 있다는 건, 이 사람들 속에자신이 속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그러니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신입 사원이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에어팟은상징일뿐, 지금 우리가 같은 조직의 성공을위해 개인적인 니즈를 희생하면서 같이 으쌰으쌰 하는 사람인가아닌가의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잘파세대는 조직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아요. 그전까지 젊은 세대들이 칼퇴를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때는 조직과의 투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도 칼퇴를 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건데요, 이런 칼퇴는 사실 조직의 흐름을 인식한다는 면에서 어쨌거나 조직이라는 거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거거든요. 하지만 잘파세대의 칼퇴에는 조직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없습니다. 자신의 스케줄에 6시 퇴근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퇴근하는 거예요.

잘파세대는 환경파괴로 인한 이상기온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세대이기도 해서 누구보다도 환경을 지키기 위한 공익캠페인에 앞장서기도 합니다.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같은 활동에적극적이고 ESG(Environment 환경, Social 사회, Goverance 지배 구조를 뜻하는 약어로, 기업의 사회 및 환경적 활동까지 고려하여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지표)를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북극곰의 어려움에 공감해 후원을 하기도 하고요.

진정한 개인주의는 연대를 통해 그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아이팟을 끼고 일하니 매우 비사교적이고 자기만의 동굴에 침잠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다르게 사교적인 거예요. 잘파세대는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워터밤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즐겁게 축제를 즐기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 MBTI를 이야기하며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경계하며쉽사리 대화하지 못하고 자신의 동료(혹은 패거리)만을 챙기는 것은 X세대 이상의 세대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애국심에 호소하는 한국제품 소비 전략은 잘파세대에게 먹히지 않습니다. 한국 것이니까 한국인인 우리가 의식적으로 써야 한다는 식의 손쉬운 홍보문구는 40~50대 이상에게는 아직은 먹힐지 모르지만,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춘 잘파세대에게는그다지 큰 효과가 없어요. 그런 면에서 잘파세대가 갤럭시를 안쓰고 아이폰을 쓰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에 대해서 삼성전자 내의 위기의식은 무척 나이브합니다. 2023년 8월 갤럭시 언팩 후에 가진 내부 행사에서한 직원이 "아빠가 삼성 다닌다니까 저희 딸은 갤럭시를 쓰는데친구들은 다 아이폰을 쓴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생각하시나요?" 하고 묻자, 스마트폰과 가전을 담당하는 DX 부문최고 경영진을 포함한 임원들 사이에서 나온 대답이 "아이폰 인기는 10대들의 막연한 선망이다. 성인이 되면 갤럭시를 쓰는 만큼아직 희망이 있다"였습니다." 이 대답은 사내 익명 게시판에서

잘파세대의 감성은 개인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연결을 원하고 있어요. 같이 애플을 쓰고, 에어드롭(애플 제품 간에파일을 전송할 수 있는 기능)으로 그 자리에서 콘텐츠를 주고받고아이메시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애플을 쓴다는 동질감에 동참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미국 10대들 사이에는갤럭시 폰을 비롯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를 ‘녹색 말풍선‘
이라고 부르며 "녹색 말풍선을 쓰는 남자와는 데이트하지 마Neverdate a green texter"라는 말까지 유행처럼 돈다고 합니다. 아이폰 이용자끼리는 문자가 파란색 말풍선으로 뜨고, 안드로이드 이용자의 문자는 초록색 말풍선으로 뜨거든요.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어테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10대의 83%가 애플 아이폰을 가지고있다고 답했는데, 갤럭시 이용자의 비율은 10%에 불과했어요."
그래서인지 미국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아이폰 사용을 전제로 숙제를 내거나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IT기업에서조차 이런 촌스런 전략을 많이 가지고 나옵니다. 네이버가 생성형AI를 발표하면서 Chat GPT에 한참 뒤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강조한 부분이 새로운 기능이나 차별화된 성능이 아니었어요. ‘우리 것이라서 우리한테 잘 맞을 테니 이걸 써서 외세의 침입을 막자‘는 호소였죠. 흥선대원군시절이 떠오릅니다. 실패로 끝난 쇄국정책 말입니다. 우리 것이니까 우리가 애용하자는 애국주의 마케팅은 사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불패신화를 자랑하는 아주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었지만, 이제 세계시민인 잘파세대가 점점 사회 전면으로 나오면서 효과가바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 후반기에 ‘나‘를 알고자 하고 나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열망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나‘
로 세상에 나왔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지만, 결국엔 ‘나‘라는 존재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인지 인생 후반기에는 번잡함을 피해 고요한 곳에 홀로 머물고 싶기도 하고, 철학이나 영성에 관한 책들이 눈에자주 들어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유와 성찰로 눈길이 향합니다.

좀 거창한 은유를 들자면 이것은 ‘영웅의 귀환‘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온갖 모험을 겪고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오듯이 우리 모두는 본래의 ‘집‘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 후반기를 지나는 중인 많은 사람들이 자아 찾기,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는 것도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이나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인 것 같지만 깊이들여다보면 ‘나‘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할 수 있습니다.
인생 후반기에 ‘나‘를 찾는 여정은 한마디로 말하면 ‘변화‘를 위한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톨릭 프란치스코회 리처드로어 신부는 인생 후반전의 과제를 배움이 아니라 지움이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에 배운 것들로 만들어진 습관과 패턴들이 현재 우

푸코가 보기에 수도승들의 독서는 자기 배려, 자기 돌봄을 위한테크닉이고 실존의 기술이었습니다. 수도승들은 경청하고, 읽고,
쓰고, 금욕적 수행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깊은 이해와 묵상을 통해 통찰력을 얻었고, 때로는 권위 있는스승에게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갈등, 환상 등을 털어놓음으로써 자기 돌봄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을 돌보고 가꾸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푸코가 지적한 대로 이런전통은 근대 데카르트 이후 중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조너선 갓셜은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이라는책에서 이야기꾼은 ‘구슬림‘이 목적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고 재미와 공감이라는 양념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이 구슬림이 좋은 관계와 치유를 가져오는
‘지혜‘가 될 것인지, 상대방을 내 편으로 끌어들여 제 욕망을 채우려는 ‘사리사욕‘이 될 것인지는 이야기꾼의 인성에 달려 있겠지요.
분명한 것은 지혜로운 이야기꾼 곁에는 늘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아갈 힘과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야기꾼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C. S. 루이스의 말이 적절하게 인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꽃의 향기, 우리가 듣지 못했던어떤 곡조의 울림,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어떤 나라의소식을 감지하는 무언가가 내면에 존재한다."

리처드 로어 신부는 인생 후반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배워 알고 있는 것을 지우는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변화는 배움보다 배운 것을 지움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세계적으로 알려진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얼마 전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왜 역사를 배워야 하나요?"라고 묻는 아나운서에게 그는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과거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에 예속되고 지배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기위해서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과거로부터 답습된 것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고 지배하려 했던가요.

인생 후반전은 배우기보다 지우기라는 말의 뜻은 지나간 과거의 일이 더 이상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기쁨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하면서, 타인들의 시선이나 세상의 기준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직 사제였던 이반 일리치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에서 한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우리 인생의 3분의 1은 무엇을 처방받아야 할지 배우고, 나머지3분의 2는 자신의 습관을 관리하는 저명한 전문가의 고객으로살다 생을 마친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키시 주술상이Power Figure>의 배는 임신한 것처럼 부풀어 있고, 팔과 가슴은 신성한 기름을 발라 매끈하며, 털과 깃털로 된 머리 장식, 방패형의 볼록한 얼굴을 하고 스프링 같은 목 위에 거대한 머리가 균형을 잡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조각상의 탄생에 한몫을 했다.
로들은 조각상을 의뢰했고 마을 사람들은 신중하게 고른 나무를 베어 왔다. 우두머리 조각공은 <은키시 주술상>의 형태를 만들었고 ‘응강가Nganga‘라고 부르는 치유사 역할의 무당은 ‘비심바Bishimba‘라고 불리는 약재와 주술적인 물질을 주입했다. 완성된조각상은 사람의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야자 섬유로 만든 끈을 조각상의 손목에고정해 긴 막대기로 옮겨졌다. 그렇게 은키시는 신성한 거처로행진했고 마을의 남자 중 한 명이 언제나 그 곁을 지켰다. 그 남자는 꿈이나 영매를 통해 지역 사회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와 경고를 받았다.

박력 넘치는 조각상의 주위를 돌며 나는 예술가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 감탄할 뿐이다. 예술의 위대한 기적이 행해졌고 아름다움의 새로운 모습이 세상에 더해졌다. 감탄스러울 뿐만 아니라 감동적이다. 눈을 지그시 감은 <은키시 주술상>은 다가오는 위험한 세력들에 대적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려는 듯이 내면에 몰두하는 강력한 기운을 뿜는다. 이 조각상은 폭력, 불행, 질병 등 끊이지 않는 일상적인 고난으로부터 송예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패배가 정해진 싸움이었겠지만 그 시도만큼은 심금을 울린다. 엄청난 압박의 손아귀를 뿌리치기 위해서는 이렇듯 웅장한 모습이어야 했을 것이다.

내가 갈팡질팡하며 설명하는 동안 남자는 그런 이야기에 굶주린 듯 귀를 기울인다. 보기 드문 사람이다. 아는 척을 하거나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충돌을 반기는 사람. 나는 온종일 감탄했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남자의 개방적인 태도에 더 탄복한다. 남자는 나에게 감사를 표한 후 떠났고 그때부터 나는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습관이 생겼다.그는 듣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은 말하는 사람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