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보들레르의 절규는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는 종종 여기가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이곳이 아닌 저곳이라면 진정한 삶을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어떤 가면도 쓰지 않은 얼굴로 지낼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 평생을 방황하기도 한다. 때로 장소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삶의결이 달라진다. 그러니 장소에 대한 동경을 품은 사람들은 어쩌면 자기 삶을
변화시킬 가장 강력한 가능성을 지닌 이들인지도 모른다.
내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무례함에 질릴때면 이 도시가 강제하는 소비의 규모에 허리가 휠 때면, 휴식 없이 달려만 가는 속도에 어지러울 때면 떠올리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라면 조금 더 예의를 지키면서, 가난에도 더 아무렇지 않게, 느릿느릿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여행과 일상의 사이에서 약간의 긴장과 적당한 느슨함으로, 한 계절이 시작되고 저무는
모습을 온전히 지켜보고 싶은 곳.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와 같은 고전의 세계에 둘러싸여 평생을 살아온 남자 그레고리우스. 매일 아침 8시 15분 전이면 학교로 향하는 시계추 같은 삶을 살아왔던 그가 우연히 마주친 포르투갈 여성과 어쩌다 손에 들어온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포르투갈어 책으로 인해 평생 살아온 도시를 벗어날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라는 책 속 문장에 꽂힌 그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싣는다.
30년이 넘도록 자신이 헌신한 학교의 교장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구절을 남긴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없다.˝ 그렇게 영혼의 떨림을 따라온 리스본에서 그는 《언어의 연금술사》를 쓴 의사 아마데우 프라두의 흔적을 좇는다.

삶이 논리와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것만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우리 삶의 결정적인 일들은 우연에 기대어 혹은 운명적으로 일어나고는 한다. 아마데우가 ˝우리 인생의 진정한감독은 우연이다˝라고 했듯이. 시공간을 축으로 진행되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시간은 죽음이라는 일방통행로를 따라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이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데 비해 공간은 유동적이며 탄력적이다. 선택의 가능성이 있기에. 우연적으로 일어난 일, 찰나의 스치는 만남, 이런 것들이 어떤 공간에서는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결과로 변할 수도 있다. 삶에서 예외성을 기대할 수 있는 시은 결국 ‘상상을 열어주는 공간이다.

어떤 장소는 우리의 상상을 현실화시키고, 더 나아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 삶을 열어주기도 한다.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삶의 예외성과 우연성 속으로 뛰어들어 삶 자체를 바꾸어내려는 의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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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는 내내 나는 겉도는 느낌 때문에 힘들었다. 나는 본래 캘리포니아사람이다. 그래, 시애틀 사람이 캘리포니아 사람으로 바뀐 거긴 하지만 어쨌든 캘리포니아 사람으로서 이런 절약하고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물질 만능주의자에 겉으로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으로 평가할것 같았다. 나는 이런 생활방식에 적응하도록 자신을 바꿔야 할까 봐 가장겁이 났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머스태시 캠프에 가서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파이어 생활방식에 끌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직접 자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명품 가방을 멘 영향력있는 직업을 가진 여성도 있었다. 이 운동의 목적은 다른 생활방식을 비판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결과적으로 나는 스스로 변했다.
특히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후 명품 옷을 입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것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편안한 집을 사는 데 예산을 더 쓸지라도 옷과 화장품에 쓸 돈은 아끼고 있다.

경제적 자유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 이후 생 긴 변화 중 예전에는 무턱대고 동의했을 행동이나 의사결정에적극적으로 의문을 갖게 된 것은 전형적인 좋은 결과였다.
정말 산에서 등산을 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함께 햇살을 즐기며 평화롭게 앉아서 쉬고 싶었을까? 신형 유모차가 정말 필요했을까, 아니면 지금 쓰던 걸로 1년을 더 쓸 수 있을까? 완벽한 집이 필요할까, 아니면 좀 더 적당한 곳에 정착할 수 있을까? 처음 여정을시작했을 때 우리는 단지 돈을 좀 더 계획적으로 쓰고 싶었을뿐이었지만 지금은 이를 계속 넘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과거보다 더 의식적으로 시간을 쓰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우리의 인생에대해서 대화했다. 이것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변화었다. 우리는 우리가 되고 싶었던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어떤 집이나 차, 가전제품도 완벽한 인생을 사는 것보다 가치 있는 ‘완벽한 소유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 이사한 집은 분주한 도로변에 있으며 뒷마당이 없는 침실 세 개짜리 아담한42평짜리 집이지만 예산 범위 내였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상점이나 카페가 있고 자전거와 야외 활동 장비를 보관할 수 있는 차고도 있다.
파이어는 타협하면서도 최종 목표를 잊지 않는 것이다.
이 구매가 내 자유만큼 중요한가?‘라고 파이어는 묻는다.
그렇지 않다면 집었던 물건을 다시 선반에 되돌려놓는다.

매일 아침 아이를 학교 버스에 태워주고 돌아오면서 오후에 아이가 버스에서 내릴 때도 데리러 갈 수 있는 자유가 있어서 운이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매일 저녁 아이들과 함께 앉아 숙제를 봐줄 수 있고, 언제든 학교자원봉사를 지원할 수 있어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깨닫는다. 교외에 사는 대부분의 중산층 가정 아빠들은 일주일에 40~50시간 이상 일한다. 게다가 출퇴근 시간은 별도다.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출퇴근한다.
매일 아침 집을 나와 길을 따라 100걸음을 걷는다. 아이와 서로 꼭 안아주는 것은 매일 아침 일어나는 완벽하게 경이로운 순간이다.
비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새롭게 발견한 경이적인 대비책 덕분에 스트레스가 줄어서 테일러와 내가 아이와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생긴 걸 벌써 확인할 수 있다.

....우리보다 다른 사람이 훨씬 검소했다. 사실 내 목표는 정반대였다. 누구나 느끼는 불안감, 의견 불일치, 타협, 다른 사람들이 예측하거나 심지어 두려워하는 실수를 포함한 꽤나 전형적인 파이어 여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구글에서 일하는 수석 부사장이든 조그만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는바리스타든 간에 자기 재정 규모에 맞게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당신도 깨닫길 바란다.
생활비가 비싼 도시에 살든 생활비가 저렴한 외곽에 살든 마찬가지다. 파이어를 이루려고 먼 거리를 이사하거나 직장을 그만둘필요는 없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저 원하는 것을 자신이 소비하는 방법에 맞춰 조정하면된다. 쉽지는 않아도 단순하다.

언론에서 파이어족은 지독하게 알뜰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30대에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면 모질게 아끼고 저축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파이어족의 본질은 절약에 있는 건 아닙니다.
파이어족은 과거 유행했던 ‘짠돌이‘와 다릅니다. 이들은 왜 아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단지 꿈으로만 남기지 않고 누리겠다는 의지에 불타오릅니다. 돈 때문에 직장에 매어 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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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점점 더 일을 많이 하면서 마음의 평화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소중한 인간관계를 희생했다. 멋진 자동차와 근사한 저녁 식사가 행복의 필수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멈출수 없었다.
그러다가 서른세 살이 되었을 때 ‘경제적인 자유Financial Inde-pendence‘와 ‘조기 은퇴Retire Early‘의 앞 글자에서 딴 합성어이자 파이어FIRE 운동으로 알려진 대단히 흥미로운 현상에 대해 알게 됐다. 파이어는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되찾기 위해 매우 극단적인 절약과 낮은 비용의 투자로 경제 상황을 통제하며 생활하는, 다양한 소득수준을 가진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모인 성장하는 공동체이다. 파이어족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생활비를벌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수동적 소득passive income(이자나 배당소득처럼 일하지 않고 생기는 소득 옮긴이)을 충분히 확보하는 상태다. 이미 파이어의 최종 목표를 달성한 많은 사람이 각자의 분야에서 열정을 갖고 계속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계여행을 하거나, 비영리 단체 활동을 시작하거나, 창의적인 일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단지 단순하게 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사람도 많다. 사실 이런 움직임에는 ‘조기 은퇴‘라는 용어도 포함되지만 파이어족 중에는 은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를 거부하는 사람도 종종 볼 수 있다. 경제적 자유는 돈을 벌든 안 벌든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융통성을 갖는 것이다.

파이어는 부자들만 할 수 있을까?

지난 몇년 동안 나는 ‘파이어는 부자들을 위한 방식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했다.
조금은 유도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지금까지의 내 경험을 공유하는 것뿐이다. 나는 파이어를 실천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다. 내가 본 파이어를 실천하는 사람 중에서 기술 직종에 일하는 사람들의 소득은 대부분 20만 달러(2억 2,000만 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총 소득이 7만 달러(7,700만 원)인 가족을 만난 적도 있다. 독신자도 만났고 아이가 네다섯인 가족과도 얘기를 나눴다. 연봉이 3만 5,000달러(3,850만 원)인 바리스타와 40만 달러(4억 4,000만원)를 버는 주식 중개인도 만나봤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도 만났고 박사학위를 소지한 사람도 만나봤다.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에 사는사람, 켄터키나 아이오와 같은 시골에 사는 사람, 인도네시아, 프랑스, 스웨덴, 아일랜드, 멕시코 등 해외에 사는 사람도 만나봤다.

.... 파이어의 원칙은 소득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적용할수 있다. 파이어를 달성하는 데 5년, 10년, 30년이 걸리더라도 더 적게 쓰고많이 저축하면서 물질 만능주의를 초월한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모두가 자기만의 시간을 되찾는 혜택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가졌도, 어떤 사람이든, 얼마를 벌든 간에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하는 것이 바로 파이어가 가는 길이다.

1. 내 아이가 웃는 소리 듣기2. 남편과 커피 마시기3. 아이를 꼭 안아주기 4.산책하기5. 자전거 타기6. 와인 한 잔 즐기기
7. 질 좋은 초콜릿8.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과 대화하기9. 가족끼리 저녁 식사하기10.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

목록을 들으면서 내가 처음에 테일러와 사랑에 빠졌던 이유가생각났다. 아내는 가족과의 경험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다만, 잠시 길을 잘못 들어서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내가 읽어준 목록을 들어보니 우리 둘다 여전히 같은 가치관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안심이 됐다. 목록에 있는 모든 것은 절약하는 생활방식으로도할 수 있다.

목록을 적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이 얼마나 쉽고 돈이 들지않는 일인지 깨달았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목록을 적으면서 무슨 생각했어?˝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바닷가 근처 집에서 사는 건 목록에 없었어.˝ 아내의 대답을
들으면서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비싼 바닷가 근처에 살고 있는 걸까?
˝내 목록에서 돈 드는 건 와인하고 초콜릿뿐이야.˝ 테일러의 말에 나도 공감했다.

나는 경제 관념에 대해 잘 몰라서 행복한 경우였다. 즐겁게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믿었기에 종종 술집 계산서에 엄청난 금액이 찍히기도 했고, 비행기표 영수증이나 자동차 할부금 고지서, 백화점 청구서가 늘 날아왔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친구들을 만날 때 대신 계산하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레스토랑이 생기면 가보고 싶다. 즉흥적으로 떠나는 주말여행을 대단히 좋아한다. 우리가 빚만 지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언제나 믿었다.
그래서 파이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내 멋진 차를 끌고 다니며 좋은 것을 즐기기도 했지만, ‘생각 없는 소비자가 얼마나 ‘돈을 낭비하는가‘라고 빈정거리는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기도 했다.
‘파이어족Financially independent‘이 누구든간에 나 같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스콧이 추즈 FI 이라는 팟캐스트를 소개해줬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진행자인 브래드 배럿과 조나단 멘돈사Jonathan Mendonsa는 사람마다 경제적사유를 성취하는 방법이 각기 얼마나 다른지 설명했다. 내 방식이 더 좋거나 당신 방식이 더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게 무엇이든 단지 당신에게만 효과적일 뿐이라고 말했다. 내가 샀던 물건과 살고 있는 장소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 지금 살던 방식대로 계속 산다면 나는 남은 평생 일해야 할 것이고 스콧과 조비와 함께 보낼 시간을 가질 기회를 영원히 놓칠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단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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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필수품 두 개를 고른다면 여행과 책이다. 근사한 집이 없어도, 든든한 통장이 없어도, 다정한 연인이 없어도, 독서와 여행이 가능한 삶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에게 여행과 독서는 다르지 않다.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기에. 책도, 여행도 더 넓은 세계를 열어주는 문이다. 문 너머에 어떤 만남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어 책을 펼 때도, 여행을 떠날 때도 매번 심장이 쫄깃해진다. 책과 여행을 통해 나는 타인의 마음에 가 닿고, 지구라는 행성의 신비 속으로 뛰어들고, 인류가 건설하거나 파괴한 것들에 경탄하고 분노한다. 그럼으로써 나라는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고양이는 본디 넘쳐나는 인간의 생활 냄새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동네 바보 같은 동물이며, 고양이가 많다는 것은 동네바보를 거둘 만큼 마을에 활기가 넘쳐난다는 얘기이자 주민들의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라는 후지와라 신야의 글이이해가 되었다. 나는 그 넉넉한 인심과 묘심이 어우러진 풍경을 즐기기 위해 아침마다 포구로 나가곤 했다. 날마다 빛이찬연하게 쏟아지고, 그늘에서는 고양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섬에서 보낸 한철은 ‘인생의 낮잠‘ 같았다.

“민주주의가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곳이 민주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고, 시스템이나 체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한 의지를 잃지 않은 채 자신의 주변 풍경을 사소한 것에서부터 바꿔가는개인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여행의 아흐레 동안 우리 차량을 운전한 기사 쿤은 이런말을 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욕망을 버리라고, 아름다운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반만 받아들였다. 욕망으로 인해우리는 불행해지기도 하지만 욕망으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기에. 욕망은 삶을 향한 엔진이다. 욕망이 없는 삶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단지 어떤 욕망을 버리고, 어떤 욕망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버는 돈의 몇 퍼센트 정도는 기꺼이나누겠지만 내 행복을 중심에 놓고 싶다는 욕망, 무엇이든 감사히 먹으려 애쓰지만 가끔은 괜찮은 식당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망, 불안정한 재정 상태를 받아들이는 대신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며 살겠다는 욕망, 혼자일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걸어서 갈 수있는 거리에 다정한 벗을 두고 싶다는 욕망. 이 모순적인 욕망을 끌어안으며 더 절실한 욕망에 충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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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타당한 이유로 믿는 것과 황당한 이유로 믿는 것 사이에 차 이가 있을까? 그 차이를 인정하는 정도에 있어서 과학과 종교가 다른가? 이런 쪽으로 가면 우리의 토론은 시작하기도 전에끝난다.
우리의 관심사는 비록 제각각이지만, 종교의 독단이 정직한
지식의 성장을 방해하고 인류를 쓸데없이 갈라놓는다는 것을 각자의 자리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후자는 위험할 뿐 아니라 아이러니한 결과인데, 종교의 가장 칭찬받는 능력 가운데 하나가 통합이기 때문이다.

데닛: 자기가 겪은 신비한 경험에 대한 스스로의 가치 평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으로부터온 것이 아니면, 어떤 종교적 체험이 아니면, 사람들은 그러한 경험을 보이는 그대로 좋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하지만그러한 경험은 그 자체로 경이롭고 중요합니다. 그건 인생의 최고 순간이고, 자신을 잊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는 순간입니다. 겸손함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이죠. 그것으로 된 겁니다. 정말!멋지죠. 거기에는 사족이 필요 없습니다. ˝나보다 훨씬 더경이로운 누군가가 내게 그런 경험을 주었을 거야!˝라는 말은 필요 없습니다.

해리스 : 지금이 과학은 오만하다‘는 관념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인 것 같군요. 과학보다 더 엄격하게 겸손을 강요하는 담론은 없으니까요. 제 경험상 과학자들은 누구보다 먼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과학자들에게 전공 분야 외의이야기를 시키면, 그들은 즉시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는 분명 그것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분이 있다. 게다가 모든 데이터가 나온 것은 아니다.˝ 과학은 우리가 어느 정도로 모르는지에 대한 가장 솔직한 남론 형태예요.

한편 이 대담의 맥락을 제공했던 분위기는 바뀌었다. 현재성전聖戰이 문명을 위협하는 ˝현존하는 단 하나의 재앙˝인 것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들의 대화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지금을 흔히 ‘포스트 팩트post-fact˝,
‘탈진실’ 시대라고 부른다.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 사회를
˝대중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객관적 사실이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적은 환경˝이라고 정의했다. 우리 사회도 급속하게 확산되는 소셜 미디어가 가짜뉴스와 양극화된 정치적 신념을 부추기는 가운데 합리적 의심과 이성적 판단은 힘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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