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제가 보기에는 이것이야말로 삶의 가장 놀라운 측면인것 같습니다. 무언가가 끼어드는 바로 그 순간에 으레 생겨나게 마련인 저 거칠고 조악한 면모들이, 혹은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방해물처럼 여겨지던 것들이, 어느 순간 우리 안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계기들로 작용하게 된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그 반대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삶이 지니고 있는 가장 뛰어난 능력일것입니다. 만약 이런 마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악에 물든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악은 어디에서나 찾아오고, 또 어디로든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런 마법이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매 순간 서로를 보며 경악해야만 했을지도모릅니다. 그랬다면 모두가 이미 "악한 상태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오로지 하나의 사실, 즉 우리 모두가 한곳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는 사실만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비밀입니다. 악함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종잡을 수 없는 법이며, 따라서 누구도 무언가를 가리켜 악에 물든 "상태에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그렇게 부르려는 순간, 거기에는 이미 더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가 거쳐 왔던 경험들을또 저는 삶의 진정한 진일보는 결코 급작스럽게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다시 말해 삶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진일보의 순간이란 늘 소리 없이 나타나는 법이며, 저 자신이 고요하면서도 절실하게, 지난날 제가 가장 내밀한 의미에서 스스로의 과제로 삼았던 여러 사물들에 천착할 때 비로소 다가오는 셈입니다.
"만약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우리로서는 끝내 붙잡을 수없는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면, 산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만약 우리가 결코 사랑에 이를 수 없고, 확신을 가지고 결정을 내릴 수 없으며, 죽음 앞에 무력하다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릴케의 모든 작품은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시도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그의 답변은 언제나 명료합니다. 모든 삶은 (릴케의 초기작에 제시된 표현을 빌자면) "살아지는 것이며, 따라서 삶은 숙고와 성찰의 대상이 아니고, 이해되거나 측량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릴케가1915년 11월 8일에 로테 헤프너Lotte Hepner에게 보낸 편지에 썼던, 인류가 지난 수천 년 동안 몰두해 왔던 질문에 대한 간결한 답변입니다. 그러나 릴케는 한편으로, 그토록 간단한 답변에조차 다다르지 못하도록 우리를 가로막는 여러 어려움들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며, 의식과 성찰 없이는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데에 관심을 쏟고, 개개의 상황이나 감정에 굴복하며, 무언가가 일어나게끔 놓아두기 보다는 우리가 마주하는 사물과 사람들에 일일이 반응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바로 삶이 아닐까요? 여러 보잘것없는, 불안한, 작디작은, 그리고 부끄러운 하나하나가 마지막에가서는 하나의 커다란 전체로 거듭나는 것 말입니다. 삶이란 아마 우리가 이해하거나 의도할 수 있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가능성과 실패가 한데 뒤섞여 만들어 내는무언가일 것입니다."
릴케는 1913년 12월 9일 시도니 나드헤르니 폰 보루틴Sidonie Nádhermy von Borutin에게 보낸 편지에서, 삶이 드러내는 저 이해 불가능성을 그것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거리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삶이란 언제나 계속해서 우리로부터 멀어지게 마련이고, 또한 이따금 우리가 삶을 이해했다고 착각할 때마다, 삶은 오히려 그 거리를 더욱 벌리는 것입니다. 저마다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던 모든 것이 별안간 멈추고 틀어지는 바로 그때, 우리는 삶 속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섰다는 것을, 이질적인 무언가가 일어났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됩니다. 릴케가 이해하고자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삶의 이중성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삶은우리 앞에 완전히 열린 채 주어져 있으며, 그저 그것을 살아가는것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완전한 열림 속에서, 삶은 도리어 매 순간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각각의 순간속에서 삶이 제공하는 완전히 새롭고 생경한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때에 따라서는 우리가 이제까지 붙들고 있었던 허망한 이해를 과감히 던져 버릴 수 있게 됨을 의미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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