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각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크게 두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는 제약이고, 둘째는 융합이다.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이 나오고, 서로 다른 생각이 융합되었을 때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창조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변화와 새로움을 거부했던 문화는 발전을 멈췄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열린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완전하다고 느끼는 자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역사 속 대표적인 사례는 이집트 미술이다.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창조물과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찾아낸 비율과 자세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스스로 진화가 완성된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똑같은 조각상을 만들었다. 이집트의 조각상은 너무나 훌륭하다. 5천 년 전에 만들어진 조각이라고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얼굴과 균형 잡힌 몸을 가지고 있다. 두다리는 쓰러지지 않게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서 있고 얼굴은 정면을바라본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사람의 특징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굴은 옆모습을 그리고 몸은 정면을 그린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완전하다고 믿었기에 그들의 미술은 수천 년 동안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 미술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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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쭉정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척이나 분명한 것이어서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대상이기때문이지요. 사물의 고갱이‘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래의 이야기를 살펴봐 주십시오.
한번은 제나라의 군주인 환공이 전당 위에서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수레의 바퀴를 만들던 윤편이라는 이름의장인이 손에 들었던 도구들을 내려놓고 환공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군주께서 읽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환공이 대답했습니다. 성인의 말씀이니라." "성인께서는 아직이 세상에 계십니까?" "세상을 떠나셨지." "그렇다면, 군주께서 읽고 계신 것은 모두 옛사람이 남긴 얼의 쭉정이와 찌꺼기일 뿐이군요!" 환공은 화를 냈습니다. 과인이 책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나 만드는 너같이 하찮은 장인이, 어찌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게냐! 그런 말을 하는 이치가 타당하다면 또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제대로 대지 못하면 죽을죄가 되느니라." 윤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렇다.
면 제가 하는 일을 가지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나무를 베어 수레바퀴를 깎는데, 구멍이 너무 헐거우면 수레가 안정되지 않고, 구멍이 너무 꽉 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주 딱 들어맞아야만 하지요. 손에 익은 그와 같은 감각은 마음으로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말로 설명해 낼 방법이 도무지 없습니다. 이 일을 하는 데도 치수라는 것이 있고 기술이라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만, 제 아들에게도 그 관건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제 아들도 저한테서 그 점을 제대로 배워 갈수가 없지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일흔이 되는 나이에도 여기서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떠났으니, 그분들이 가지고 계셨던 것도 지금 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그러니 군주께서 읽고 계신 건 결국 고인들이 남긴 쭉정이와 찌꺼기일 뿐이라는 겁니다!"

윤편이 오직 수레바퀴에 어쩌고저쩌고 한 것에 불과하다면그 말은 결국 ‘사물의 쭉정이‘에 속할 뿐일 겁니다. 그러나 그가 언급한 것은 수레바퀴를 깎는 기술과 치수 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술과 치수의 핵심적인 내용은 또한 말로는 모두 전해질 수 없는 것이지요. 도리어 손의 실천을 통해서만 서서히 깨달아지고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이야말로 ‘사물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지요. 기술이 제아무리고강하고 절묘하더라도 ‘도‘는 아닙니다. 그것이 대면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사물‘ 그 자체의 세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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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는 이의를 제기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토록 감동하는데, 내가 어째서 짐승인가? 음악은 인간의 정신이 가장 고양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급한 정신 상태죠. 동물이 인간의 여러 행동을 따라 하지만, 음악을 감상할 수는 없어요"

"카프카는 우리가 생각하듯 나약하고 울적하고 어둡기만 한 사람이 절대 아닐 수도 있다.’ 작품과 외모 때문에 그가 중압감을 못 이기고 구석으로 들어가 가만히 생각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카프카의 본질은 엄청난 생의 충동입니다. 한마디로 그에게 삶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동물적이죠. 결코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뚫고 나가는 힘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여기에 문학적 의지를 다 투여한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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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피해 달아나 세상과 인연을 끊는 일은 쉽지만,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고 전혀 종적도 없이 사는 일만큼은 어렵다." 세상에 살면서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껴서 아예 은거하는 선비가 된다면, 눈으로 온갖 투쟁에 몸을 더럽히는 꼴을 보지 않고 어떤 거짓이나 위험도 겪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을 떠나 멀리 숨어 버리는 것은어쨌거나 자신을 보호하는 손쉬운 방법이죠. 그러나 세상에서살면서 나는 새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면서도 공중에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매인 데 없이 자유롭게 모든 장애를 뛰어넘어 버린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면? 앞서 제기한 비행의 방식이 아니라면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세상의 도리에 따라사리에 깊이 통해서 마음으로는 다른 의도가 없고 겉으로는아무것도 억지로 하는 일이 없는 한 어려울 것입니다. 두껍지않은 칼날‘을 원래의 틈‘에 밀어 넣음으로써 소의 뼈를 가르는 데도 칼놀림에 여유가 있어 십구 년 동안 칼날이 전혀 상하지 않았다던 통달한 백정의 경지에 이른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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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우 아끼는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의 저자아툴 가완디 Arul Gawande 의학박사는 최근 의회 증언에서 그 절망적인 현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돌봄에 있어서 무엇을 원하는지‘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가 어떤 돌봄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탁월한 방법은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든 가족이든 묻지 않고 시간을 거의 다 흘려보냅니다. 물어보지 않으면 우리가 제공하는 돌봄과 치료가 환자의 희망 사항과 대개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결과가 따라옵니다. 하지만 환자에게 묻고 돌봄과 희망 사항이 일치하도록 노력하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통 의사가 환자에게 생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목표를 묻는 시점은 환자의 죽음까지 그 단계의 3분의 1도 채 남지 않았을 때입니다. 가족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져서야 환자의 의견을 묻습니다.
많은 연구를 통해 심각한 병에 걸린 환자가 향후 돌봄에 대한 목표와 소망을 의사와 논의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게된다는 사실이 입증됐습니다. 환자는 덜 고통받고, 신체적으로 더 자유롭게 됩니다. 또 비교적 다른 사람들과 오랜 기간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훨씬 낮아졌습니다. 평균적으로 호스피스에 빨리 등록하지만,
일찍 죽지 않으며 오히려 더 오래 삽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ibler-Ross는 "죽음을 부정하면 공허하고 목적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면, 해야만 하는 일을 쉽게 미루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삶을 논하는 것과 다름없다. 죽음은 삶을 비추는 훌륭한 거울이다. 죽음 이야기가 오싹하거나 무서울 필요는 없다.
미국 서북부 출신인 내 친구 마이클 미드MichaelMeade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이렇게 말한다. "완전히 철든 인간이라면, 죽음의 문 앞에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나타난다.
우리가 삶과 그 결과물인 죽음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주위사람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해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고 우리의 죽음을 굳건히 받아들이도록 도울 수 있다. 의사나 간호사에게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명확한 위임장, 의료 결정 대리권 같은 분명한 지침을 제시해 두고, 가족에게 생애 말기에 어떤돌봄을 받고 싶은지,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지, 어떤 의식을 치르고 싶은지 알린다면 감정적, 금전적 부담은 상당히줄어들 것이다.

인디언 추장인 까마귀 발은 말했다.
조금 뒤면 나는 떠난다.
어디로 가는지 나도 모른다.
우리는 모르는 곳에서 와서 모르는 곳으로 간다.
삶은 무엇인가? 밤중에 빛나는 개똥벌레 불빛이다. 겨울에 내쉬는 버펄로의 숨결이다. 풀밭을 가로질러움직이다가 해질녘에 사라지고 마는 작은 그림자다.‘

데이비드 실즈,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나는 죽음에 관한 대화가 정치나 종교보다훨씬 깊은 영역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녁을 먹는 동안 그들과 조금도 다투지 않았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방의 종교를 이야기하거나 평가하는 것과 다르며 교훈적인 대화가 아니다. 죽음 앞에서는 우리 모두 아이와 같다. 문화, 정치,
인종, 성차를 넘어 깊이 마음을 나누려는 순수함과 의지가 있는 것이다. 그날 밤 만찬이 진행된 세 시간 동안 강력한 유대감이 형성됐다. 식탁에 앉은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렸고, 남부 사람과 그들의 감정 표현 능력에 대한 나의 편견이 사라졌다. 빌프리스트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단순한 질문들이 어떻게 억압을 날려 버리는지 봤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이야기해야합니다. 끓는 냄비가 뚜껑을 날려 버리는 것 같은 대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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