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김성주님의 서재 (피아체레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145119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2 Aug 2026 05:33:55 +0900</lastBuildDate><image><title>피아체레</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6145119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피아체레</description></image><item><author>피아체레</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amp;lt;한국문학&amp;gt; - 2026년 하반기호 / 출판사 제공도서 - [한국문학 2026.하반기 - 제52권 2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1451191/17433981</link><pubDate>Wed, 05 Aug 2026 16: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1451191/174339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0590&TPaperId=174339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5/56/coveroff/k05213059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0590&TPaperId=174339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국문학 2026.하반기 - 제52권 2호</a><br/>한국문학사 편집부 지음 / 한국문학사 / 2026년 07월<br/></td></tr></table><br/> - 표지를 넘기면 이번 호가 어디에 무게를 두었는지 목차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소설 특집의 자리에 손홍규, 신작시 특집의 자리에 손택수. 두 사람 다 등단한 지 오래된, 문단의 "중견"이라 불릴 나이의 작가들이다. 그 사이사이에 길란, 장은진, 전아리의 단편이 놓이고, 김종연·김행숙·성유림·이문재·임유영의 시가 이어진다.  - 손택수 작가님의 시는 옛날부터 좋아해서 특히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lt;소설 특집 · 손홍규 — "거주"라는 화두&gt; - 손홍규의 신작소설과 이지연의 작가론이 한 벌로 묶였다. 이지연의 글 제목이 손홍규론에 "거주하는 자의 슬픔"이라는 표현을 앞세운 것을 보면, 이번 특집은 손홍규라는 작가를 "어딘가에 산다는 것"의 문제를 오래 붙들어온 소설가로 다시 읽자는 제안처럼 보인다. 등단 이래 그의 소설이 자주 향해온 자리 — 뿌리내리지 못한 자들, 국경과 마을 사이의 존재들 — 를 떠올리면 이 프레이밍은 낯설지 않다. ​&lt;손택수의 시&gt; 손택수 특집은 신작시 다섯 편과 박상현의 시세계 비평이 함께 실렸다. 시 자체의 구절을 여기서 옮기지는 않겠지만 — 저작권상으로도, 그리고 시는 발췌되는 순간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장르이기도 하니까 — 표제작의 제목이 식물의 이름과 필기구를 나란히 놓은 조합이라는 점만으로도 이번 신작이 자연물과 글쓰기 행위 사이의 관계를 다시 사유하고 있으리라는 정도는 헤아려볼 수 있다.​ 이번 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획은 아마 정과리·박혜진·오경진 세 평론가가 나눈 좌담, "2020년대 '텍스트 힙' 현상과 K-문학 열망의 현주소"일 것이다. 정과리는 1970년대 말 등단한 원로 평론가이고, 박혜진과 오경진은 2010~2020년대에 등단한 상대적으로 젊은 평론가다. * 박혜진 평론가의 글은 이전에 몇 번 읽어보았고, 오경진 평론가의 글은 처음이다. 세 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최근 몇 년간 회자된 "텍스트 힙" — 책을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이자 정체성 표현이 된 현상 — 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균형을 의식한 기획이다.​ 이 현상은 실제로 한국 출판계에서 최근 몇 년 사이 뚜렷해진 흐름과 맞닿아 있다. 책을 소품처럼 들고 다니거나 독서 모임이 취향 공동체로 기능하는 풍경, 그리고 한국문학이 번역을 통해 해외 독자층을 얻으며 "K-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흐름이 같은 시기에 겹쳐 일어났다. 좌담이 이 두 현상 — 국내의 "텍스트 힙"과 해외의 "K-문학 열망" — 을 나란히 놓고 질문하는 것은, 지금 한국문학이 안팎에서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이 잡지 스스로 감지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세 사람의 논의가 이 현상을 축하하는 쪽으로 흐르는지, 경계하는 쪽으로 흐르는지는 본문 전체를 더 읽어야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5/56/cover150/k0521305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55681</link></image></item><item><author>피아체레</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한국문학】 &amp;lt;내가 죽였다&amp;gt; - 정해연 / 출판사 제공 도서 - [내가 죽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1451191/17412599</link><pubDate>Sun, 26 Jul 2026 14: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1451191/174125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130771&TPaperId=174125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7/64/coveroff/k0121307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130771&TPaperId=174125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가 죽였다</a><br/>정해연 지음 / 반타 / 2026년 06월<br/></td></tr></table><br/>1. 정해연의 『내가 죽였다』는 제목부터 역설이다. "내가 죽였다" 는 말은 통상적으로 사건의 종결을 의미한다. 범인이 자백하면 사건은 끝난다. 그러나 정해연은 이 공식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자백은 사건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 되고, 자백한 당사자는 그날 밤 살해당한다. 진실을 말하려 한 자가 죽임을 당하는 이 아이러니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긴장이며, 독자는 첫 장면부터 이 역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br>2. 주인공 김무일은 전형적인 영웅과 거리가 멀다. 그는 저작권 기획 소송으로 돈을 버는 변호사로, 상대가 고등학생이어도 합의금을 뜯어낼 수 있다면 소송을 마다하지 않는다. 동료들에게 '변쓰(변호사 쓰레기)'라 불리는 그는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남의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나쁘다." 이 문장은 무일이라는 인물의 핵심을 압축한다. ​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모르는 척하거나 합리화하지 않는다. 이 냉정한 자기인식이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그에게 묘한 호감을 갖게 만든다.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선인도 아닌 이 회색지대의 인물이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은 소설의 또 다른 서사적 축이 된다. "남의 상처를 끌어내려면, 적어도 그 상처가 나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각오 위에서만 가능하다." 돈만 보던 변호사가 타인의 상처를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에서, 독자는 무일이 단순한 속물이 아님을 직감한다. 정해연은 인물의 변화를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이 소설의 인물 묘사가 끝까지 설득력을 잃지 않는 이유다.​3. 소설의 또 다른 강점은 두 주인공의 관계다. 돈이 최고인 속물 변호사 무일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형사 여주는 가치관부터 충돌한다. 그러나 정해연은 이 충돌을 단순한 갈등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권순향이 옥상에서 투신하는 순간, 무일은 반사적으로 여주를 향해 달리며 소리친다. "신여주!" 이 짧은 외침 하나에 두 사람의 관계가 압축된다. 위기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상대를 걱정하는 이 장면은, 티격태격하는 겉모습 아래 형성된 신뢰의 싹을 설명 없이 드러낸다. <br>4.표면은 미스터리 스릴러지만, 그 심층에는 묵직한 질문이 흐른다. 진실을 말하려 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세계에서, 진실은 누가 지키는가. 권순향은 7년을 침묵하다 자백을 결심했지만 그 순간 살해당한다. 진실은 말해지기도 전에 묻힐 뻔했다. 이 구조는 현실에서 내부고발자와 피해자의 증언이 은폐되는 방식과 자연스럽게 겹쳐 읽힌다. 그리고 그 진실을 끝내 추적하는 것이 완벽한 영웅이 아닌, 결함 많은 속물 변호사와 앞뒤 없는 형사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정해연은 말하는 것 같다. 진실을 지키는 것은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라, 그냥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7/64/cover150/k0121307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976482</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