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교열 중 - <뉴요커> 교열자 콤마퀸의 고백
메리 노리스 지음, 김영준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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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전인적全人的이라서 좋다. 문법, 구두법, 어법, 외국어와 문학에 관한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갖가지 경험도 소용된다. 여행, 원예, 운송, 노래, 배관 수리, 가톨릭, 미국 중서부, 모차렐라, 뉴욕 지하철, 뉴저지 등등. 동시에 나의 경험은 더욱 풍부해진다. 산문의 여신들이 서열대로 줄을 서면 나는 저 뒤로 가야 한다. 그래도 내가 터득한 것을 전하고 싶다. (22)

나는 일하는 동안 글 전체에 대해 간간이 맞춤법 검사 기능을 실행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그러면서 오자를 잡아낸다. 하지만 이런 기능은 문맥을 고려하지 않아서, 발음은 같은데 철자와 의미가 다른 단어, 즉 동음이의어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코 교열자를 대신할 수 없다. (31)

우리 교열자들은 한 편의 글을 마치 미사일의 경로를 변경시키듯 자신의 방식으로 흘러가게 만들려고 한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교열자에 대한 이미지는 엄격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사람, 남들의 오류를 지적하길 즐기는 심술쟁이, 출판업에 들여놓고 주목받길 원하는 보잘것없는 사람, 또는 더 심하게 말하면 작가가 되려고 했으나 쓰라린 좌절을 겪고 i의 점과 t의 교차선에 신경을 쓰는 사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작가들의 경력에 이바지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모든 사람이었던 것 같다. (51)

하지만 좋은 작가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누군가 그들의 글을 떠안고 만지작거리면서 좀 이색적인 표현을 평범하게 바꾼다거나 콤마를 없앤다거나 작가로 고의로 모호하게 적은 것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정말로 위대한 작가들은 편집 과정을 즐긴다. 그들은 제안을 받으면 숙고하고, 충분히 근거 있는 이유로 그것을 수락하거나 거절한다. 방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52)

루는 거의 모든 면에서 엘리너와 반대였다. 그녀는 스스로 말했듯 글이 ‘무표정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엘리너는 문장을 자신의 논리에 부합시키려 했고, 루는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했다. (64)

여태껏 내가 전혀 보지 못했고 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단어들을 자주 만났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단어는 아니었다.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나는 회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있어서 심지어 내가 본 적이 없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66)

이와 달리 매우 세련된 산문을 구사하는 작가를 만나면 내가 그 글을 읽으면서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존 업다이크, 폴린 케일, 마크 싱어, 이언 프레이저! 어찌 보면 이런 글이 가장 어려웠다. 읽으면서 내가 만족감에 도취됐기 때문이다. 그들의 글은 교열자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흠잡을 데 없는 원고에서 내가 끼어들 기회를 찾기 위해 계속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다 뭔가를 놓친다면 그것을 변명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67)

산문의 마법사가 쓴 소설 네 편이 실린 680쪽 분량의 책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수만 문장 중 하나에서 흠을 찾아내는 것이 심술궂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한다. (72)

나는 이 문장을 개선할 방법을 모르겠다. 만약 이 문제를 작가에게 얘기하면 그는 고쳐 쓰거나, 잘못된 점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세 번째 방안이 생긴다. 그냥 두면 된다. (73)

화자의 딸 릴리Lilly의 이름 철자에 대해 질의하고 싶진 않았다. 나라면 l을 한 번만 썼겠지만, 그녀는 내 딸이 아니다. 조지 손더스에 의해 말하는 화자의 딸이다. (75)

사실 나는 교열자로서 보수주의자의 편이다. 나의 임무는 손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작가와 독자로서 나의 입장은 여러 가지다. 자연스럽게 들리는 다른 복수 대명사를 찾는 너스바움과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는 싱어를 나는 존경한다. (92)

I는 me의 공식 버전이 아니다. me가 왠지 더 친근하게 들리는 건 사실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사람은 이런 친밀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을 것이다. I, he, she, we, they는 각각의 목적격 단어보다 더 딱딱한 어감이 있다. me, him, her, us, them이 더 부드럽고 유순하다. 그래서 더 손쉽게 쓰인다.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떠안는 담대한 주어와 달리, 거기에 따라붙는 목적어가 되는 것이라 그럴 듯싶다. (114)

당시에 나는 사전이 보배로운 물건이지만 특히 복합어에 관한 한 내가 사전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하던 중이었다. 하이픈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그 시기에 깨달았다. (152)

연속 콤마의 경우와 같이 우리가 매번 곰곰이 생각하는 것보다 마음을 딱 정하고 하이픈을 일관성 있게 사용하는 편이 더 편하다. 좀 번거로우면 어떤가? 그게 우리가 월급 받고 하는 일이다. 하기야 매번 곰곰이 생각하면 또 어떤가? (153)

언젠가 나는 엘리너 굴드에게 McDonald‘s의 복수 소유격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주 현명하게, 그런 것엔 신경 쓰지 말라고 내게 조언했다. ˝사람이 멈출 줄도 알아야지˝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McDonald‘ses‘에서 멈췄다. (188)

그때는 아침나절에 한 사람이 뾰족하게 깎인 나무 연필을 쟁반에 수북이 담아서 돌아다녔다. 몽당연필이 아닌, 길찍길찍한 좋은 것들이었다. 사환이 연필 쟁반을 들고 있으면 우리는 한 움큼씩 집었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나는 당시에도, 그 사환과 연필 쟁반이 언젠가 상아부리 딱따구리처럼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217)

진중한 어조의 편지글을 읽으니 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딕슨 타이콘데로가에 대한 나의 입장은 콤마와 하이픈 때문에 내게 항의의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의 입장과 같았을까? 이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나는 일단 ‘할 일 없는 사람이네‘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앞으로 그들의 말에 더 공감하려고 노력해야겠다. (230)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나처럼 연필 애호가라 할지라도 고개를 절절 흔든다. 그들도 몰래 한번 해보고 싶을 듯한데. 나는 완벽하게 뽑아낸 나선형 연필밥을 선반 위에 올려둔다. 그것은 한동안 그대로 있다. 청소부 아줌마가 긴가민가하다가 버릴 때까지. (239)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나의 작업을 기쁘게 만드는 글을 쓰는 모든 <뉴요커> 작가들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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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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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는 가장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언어다. 옛날 같으면 그냥 ‘재미없음‘으로 분류되었을 특징들이건만, 독일과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느꼈던 단정함, 정갈함 같은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광객 주제에 너무 관광지 같지 않았던 그 분위기가 좋아서, 듣다 보면 은근히 매력 있는 그 발음이—폭스바겐 광고의 그 ‘das Auto‘ 같은—좋아서 독학을 시도했다. (44)

재미없는 재미를 아는 사람들의 언어를 본격적으로 좀 알아볼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지나서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독일어는 프랑스어만큼이나 쓸 일이 없었다. 과연 라이벌들답다. 업무적으로 외국어를 쓸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긴요하게 쓰이는 말들은 굳이 알 필요도 알아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런데도 독일어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쓸모없는 진중함, 효용을 바라보지 않는 진실함 같은 것, 1+1=2처럼 딱 떨어지는 에누리 없는 말들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었다. (51)

당대를 살아가던 보통 사람들이 막상 합스부르크의 황혼기를 실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여전히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고, 그 중심에 빈이 있고, 세계의 교양과 예술과 지성의 모든 유행을 선도한다는 자존심이 얼마나 각별했을 것인가. 그 왕조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영광의 시절 자체와 결별해야 예술이, 정신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해낸 어떤 정신적, 예술적 공감대라는 것이, 그야말로 영롱한 시대정신이 그렇게 극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이 어쩐지 뭉클했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격동하여 피어오르던 뜨거운 가능성들이 그로부터 불과 20년도 안 되어서 깡그리 무너진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유럽의 역사, 1차 세계 대전의 발발은 곧 합스부르크, 그리고 빈의 몰락이었다. (68)

이 박물관에는 심지어 영어로 된 설명도 없다. 그저 독일어가 빼곡하게 쓰여 있다. 독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역사라는 뜻이겠다. 혹시나 독일 사람들이 이 불행한 역사를 모르게 될까봐 큰 염려를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허무맹랑하게 어리석고 나쁜 짓을 해왔다고, 밝은 빛의 햇살 아래에서도, 태연히 고백한다. 다시는 이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한다. 지금 베를린은 새벽 서너 시에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유럽 최고의 클럽 도시이기도 하지만, 참혹한 ‘어제의 세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70-71)

독일어는 예외가 많지 않다고 한다. 대신 규칙이 너무 많다고 알려져 있다. 무리해서라도 많은 규칙 속에, 가능한 한 모호함을 남겨두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언어다. 단어들, 문장들 속에서 결코 길을 잃지 않겠다는 결기가, 언어에서도 전해지는 것 같다. (72)

하지만 그 10여 년 동안의 일본 드라마와 기무라 타쿠야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드물게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도 있었고, 무표정하게 사람을 희생시키는 냉혈한 배역도 있었지만, 팬들은 기무라 타쿠야를 백 퍼센트 응원하고 싶어 했다. 좋은 직업인, 동료이자 좋은 선후배, 좋은 상사이면서 또 좋은 연인이며 좋은 남편이었던, 매 순간 극도로 최선을 다하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의 현현 같았던 기무라 타쿠야를 TV에서 보는 것은, 지지 않을 싸움을 기대하는, 불가능한 꿈 같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105)

체념이라는 정당화, 순응이라는 편리함, 대의 혹은 대세라는 이데올로기에 일본 사람들이 쉽게 투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오래된 확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루키는 그래서 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유일한 단독자 같은 사람이 결국 세계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고 마는 이야기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 같다. 세상에 개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선언, 하나하나의 개인이 우주이며 알파고 오메가라는 다짐이 더욱 강력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돌파력을 응원한다. (122)

하지만 아무튼, 계속 쓰고, 계속 뛰며, 계속 싸워나가는 그 ‘계속해보겠습니다‘ 정신을 사랑한다. 체념하지 말고, 순응하지 말고, 투항하지 말고, 다른 그 어떤 존재에게라도 나를 방치하지 말라는, 어찌 보면 잔소리 같은 메시지가 아직은 질리지 않는다. 그렇게 ‘언제 적‘ 하루키는 ‘그래도‘ 하루키가 된다.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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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 / 사이행성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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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하고 묵직한 응어리에 울컥 목이 메었다. ˝왜 저 남자야?˝
˝정말로 좋은 남자한테는 내가 좋은 짝이 될 수 없고 대럴은 정말로 나쁜 남자가 아니니까.˝
난 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18-19)

한번은 남자 친구에게 이런 걱정거리들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그가 말했다. ˝자기 완전히 미쳤구나.˝ 직장에서 새로 사귄 친구에게 똑같은 말을 했더니 그녀가 말했다. ˝자기는 마친 게 아니야. 여자일 뿐이야.˝ (65)

내가 말한다. ˝내가 별로 착한 여자가 아니라는 거 알잖아.˝ 그는 내 뺨에 키스를 한다. ˝그건 진실이 아니야.˝ 또 말한다. ˝나한테 뭐든 진실을 말해줘.˝ 나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말한다. 내가 얼마나 어밀리아의 생각에 매달리는지, 사실은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건 오로지 그 애뿐이라는 얘기, 지금쯤 걸음마를 배우고 첫 번째 단어를 말하겠지, 그런 생각만 하고 있다고 그에게 털어놓는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그토록 나를 좋아해주는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내 차가운 손가락을 자신의 따뜻한 입술에 갖다 댄다. 그가 그토록 휑하던 텅 빈 공간들을 채운다. (149)

돌 던지는 사람의 아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은 옷을 훨훨 벗어버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로 사라지는 것이다. 일이 끝나고 아이와 남편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 사이의 몇 시간은 신성한 시간이다. 그녀는 이 순간들을 자기 자신을 위해 쓴다. 그녀는 삶이 너무나 투명해서 뭔가 사적인 것, 뭔가 소중한 것에 한없이 굶주려 있다. 이 순간들을 빚어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고 결코 말하지 않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비밀을 만든다. (179)

아내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없었다. 오로지 피로감만 배어 있었고, 파커는 그게 아내의 분노보다 더 무서웠다. (319)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실감이 나니까 무서워졌어. (348-349)

‘사슴 고기‘라는 뜻의 ‘vension‘은 라틴어 ‘venari‘가 어원이야. 사냥한다는 뜻이지. 나는 그게 잔인하다고 생각해. 어떤 존재에 그가 반드시 맞고야 말 종말을 따서 이름을 지어주다니.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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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다이닝 바통 2
최은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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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요리라는 행위는 ‘계속 살아가겠다‘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일 때가 많다.
바쁘고 지쳤지만 굳이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주방에 설 때. 재료를 손질하고, 냄비와 프라이팬에 쓸어 넣고, 불을 켜고, 중간중간 레시피를 확인하고, 시간을 재가면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마음과 시간을 들여 그 일련의 과정을 해내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아직 완전히 주저앉아버리지는 않았다고 느낀다. 죽음에 맞서고 있다고 느낀다. 온갖 맥 빠지는 일들, 좌절, 실패, 낮아진 자존감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일을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6. 윤이형, 기획의 말)

수영아.
난 그날 이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일을 겪은 많은 동료들이 우리를 떠났고, 떠나고 있어. 네가 나보고 그냥 떠나버리라고 말했을 때 내가 너에게 했던 말 기억해?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말.
아니야,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돼. 떠나도 돼. 피해도 돼.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폭언을 듣고 조롱을 당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지 않아도 돼. 너에게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우리 투쟁이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어. 몸은 고되고 피곤할지 몰라도 정신만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어. 나는 겨우겨우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아. (29, 최은영, <선택>)

승혜는 상상 속에서 몇 번이나 이 음식을 만들었다. 그건 혼자서, 혹은 두 사람이 먹을 음식은 아닌 듯했다. 최소한 세 사람용이었다. 그래야 쓸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쓸쓸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만 만들어 먹는 음식 같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두 사람만의 골방에 너무 오래 머물러 변색되지 건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고, 이리 와서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 가져달라고 자랑스레 선언할 수 있는 사람들만. 그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알지도 못할 만큼 너무 당연하게 그럴 수 있는 사람들만. (72-73, 운이형, <승혜와 미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승혜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얼마나 잔인하고도 감미롭게 허공을 울렸는지를 기억했다. 미오 때문에 전 연인을 떠나면서, 길 한복판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날 이후 왜곡된 소문이 퍼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을 잃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이상한 말이었다. 더 이상 정직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몹시 편리하게 책임을 방기해버리는 말이기도 했다. 너무도 불공평한 말이었다. 그러나 승혜에게는 한 사람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 이전에,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꼭 해야 하는 칼질 같은 말이기도 했다. (74, 윤이형, <승혜와 미오>)

‘나는 상처가 났어, 너한테 그걸 보여주고 싶어, 그런데 낫기는 싫어, 다만 네가 죄책감을 느끼길 바랄 뿐이야‘ (79, 윤이형, <승혜와 미오>)

다 사장, 이 노란 등 밑에서 이릏게 커피 맹그는 게 바다에서도 보이는디 그게 글케 따땃하게 보일 수가 없었으. 물질 허다 보믄 여기 불빛이 꼭 오징어 배 같아 보이는디 사람들이 막 오징어 떼만치로 몰려오고 가는 게 보일 정도였으. 내가 눈은 좋아서 누가 오가는지도 다 봤당께는. 아덜 감옥소 간 뒤로 이 존 눈으로 눈치만 보고 살았어야. 긍께 자꾸자꾸 눈이 더 조아져부렀어. 여그 다 사장을 내가 많이 훔쳐봤당께. (122, 이은선, <커피 다비드>)

고마웠소. 노란 불빛만으로도 내 마음 다잡고 물질하러 들어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오. 사람이 홀로 고독허믄 이런 불로도 마음을 뎁히고 그러고 사는 거시제라. 내 그리 살았소. 꼭 우리 아덜 같어서 볼 때마다 맘이 그렇게나 조트라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소. 거시기 전복 이빨은 꼭 짤라내야 해. 안 그럼 속 긁어. 안다고라? 오메, 똑똑한 그. (122, 이은선, <커피 다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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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고 다녀와 - 켄 로치에게 활자에 잠긴 시
김현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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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아니겠는가. 부모의 삶을 생각하지 않는 다 큰 자식이 낼모레면 마흔. 결혼도 않고, 자식도 없고, 번듯한 집도, 근사한 차도 없으니. 허나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단 한 번도 직접 말한 적이 없지만.
엄마의 삶은 실패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 삶도요. (16)

집단 퇴사 후 동료들은 ‘그땐 그랬지‘라는 시간이 아니라 모두 현재를 살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모두 일하며 산다. 많은 이에게 노동은 향수가 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사측의 부당 해고 통지에 대항해 울먹이며 ˝이곳이 제 삶의 터˝라고 말하던 동료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장난스럽게 그 울먹임을 놀리곤 하지만, 아직도 그때 동료에게서 들었던 그 육성이 나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목소리 중 하나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26-27)

나는 사랑이 끝끝내 이기는 영화에 더는 끌리지 않는다. 지금은 사랑이 끝끝내 이긴다고 해주는 영화에 더 혹한다. 비록 지더라도. 비록 지고 있는 동안에 중단될지라도. 마찬가지로 나는 선의가 이기는 영화보다는 선의가 이긴다고 해주는 영화가 더 좋다. (35)

우리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언제나 생활이 앞장선다. 문학-하는 자라고 해서 뭐 특별히 다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다른 생활을 해야만 문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인간의 됨됨이란 생활 속에서 성장하거나 퇴화한다는 것. (45)

언제나 독서하는 생활에 관해 쓰고 싶다.
시집 몇 권 읽는 일조차 쉽지 않은 때다. 그러나 여전히 쓰는 사람이 있고, 그러니 계속해서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읽는 사람만이 결국 문학의 증인이 될 수 있다. 모든 문학은 각자의 생활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 남녀노소에게 읽히기를 바라면서. 생활의 신파 속에 함몰되어서는 안 될 인간의 성장에 관하여. 인간의 성장 속에 함구되어서는 안 될 생활의 퇴화에 관하여. 우리가 다시 발견해야 할 것과 우리가 새로이 발명해야 할 문학이란 무엇인가 다시 질문하면서. 문학은 결국 읽은 사람에게만 물음을 남긴다. 문학은 생활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문학은 그 패배에서 승리를 맛본다. (48-49)

연대란 나만큼 너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네가 못하는 만큼 내가 한다는 것이리라. (80-81)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 망가져갈 것이다. 부모들은 대개 자식과 상관없는 삶을 전혀 예상하지 않지만, 자식들은 종종 부모와 상관없는 삶을 예상하기도 한다. 이 두 삶의 틈새가 클수록 부모들은 위협감을 느끼지만, 자식들은 안전해질 수 있다. (98)

나도 잘 배워서 일하고 싶었고 배우지 않은 걸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사무원이 되고 싶었다. 직장동료의 힘이란 역시 그런 사람이 되도록 마음먹게 해준다는 것. 수습사원이란 사무를 배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곁에 있는 동료를 배우는 사람이다. 이제는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출퇴근을 글로 배운 시절에도 역시나 가장 동료의 출퇴근을 걱정했었던 것 같다. 하루쯤 동료를 대신해 야간을 해줄 수도 있으리라 마음먹기도 하는. 수습의 기간이란 역시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음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나보다 먼저 수습사원이었을 이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초보 사무원 딱지를 떼게 되는 건 아닐까. (106)

아마 하루 두 끼를 먹지 못했더라면 나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 두 번 밥상머리에 앉지 않았다면 나는 연대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 한 번 잠을 청하지 않았다면 나는 예술에 침을 뱉었을 것이다.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시는 무슨,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시 한 편으로 단돈 3만원을 버는 사람으로서 자랑스럽다. 글로 전세금을 모아보겠다는 사람을 존중하고 싶다. (108-109)

사과는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하고 나서 되어야 하는 거다. 사과하면 장땡이냐는 말은 사과를 받는 사람의 소갈머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나 사과하는 사람의 소갈머리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115)

그때 친하게 어울려 지내던 다른 친구들과는 모두 소원해졌다. 내 탓이다. 우정은 늘 단단한 것이라고 믿었다. 누군가와 관계 맺으려는 이기적인 열망이 때로는 다른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는 애써 생각하지 않았다. 어렸다고 밖에. 아쉬운 일이다. 지금까지 그 친구들과 어울렸다면 나는 한결 더 풍요롭고 어진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145)

가끔은 누나들이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하루를 지냈으면 하고 바랐다. 세상을 구하려고도 하지 말고, 미래를 짊어지고 갈 사람들을 키우지도 말고, 어떨 때 어떤 마음을 써야 하는지 동생들에게 알려주려 하지도 말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난분분히 꽃잎은 흩날리고 고양이와 옥상과 잠뿐인 평온함 속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어 인생이라는 회전목마를 타고 즐거워하길. 때론 기쁜 우수에 젖으면서. (156)

아마도 나는 이번 생에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부모가 되지 못하는 삶은 불행하지 않다. 부모가 되지 못하는 삶은 다만, 자식이 없는 삶에 지나지 않으며 그건 자식 때문에 기쁘거나 슬플 일이 없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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