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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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제대로 쓰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 시기를 쓰는 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어갈 수 있다는 행복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당신은 돌아갈 수 없었다. (51)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영영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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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괜찮습니다 - 네거티브 퀸을 위한 대인관계 상담실 자기만의 방
호소카와 텐텐.미즈시마 히로코 지음, 황국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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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리의 문제를 다룰 때는 그런 침묵을 ‘파괴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불러요. 한숨이라도 쉬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지만 침묵만 하고 있으면 뭐가 뭔지 알 길이 없잖아요. 입을 다무는 건 커뮤니케이션을 포기하는 일이에요. 역할기대를 전달한다는 면에서는 생산성 제로. ‘침묵‘은 괴리를 더 커지게 하는 가장 좋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이에요. (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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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는 간소하게
노석미 지음 / 사이행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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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색이라는 것은 이른 봄을 대변하는 연두색과는 다른 깊은 뽀송함의 촉감을 지닌 색이다. (46)

쑥은 봄을 지나 더워지는 여름이 오면 이른바 쑥대밭으로 변하여 정원에서는 미안하지만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되고 만다. (46)

바질잎은 이파리를 그리라고 했을 때 전형적인 관념 속의 단순한 잎 모양이다. (82)

나의 떡볶이는 고추장을 넣지 않고 고춧가루와 간장을 맛을 낸다. 텁텁하지 않고 감칠맛이 나서 더욱 많이 먹을 수 있다. 이런. (189)

가을의 대표적 양식 중 하나가 바로 이 고구마 줄기다. 고구마를 수확하기 전 통통한 고구마 줄기를 자르면서 느끼는 점은 ‘흠, 이게 먹거리라니, 대단한데.’라는 생각.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고구마 줄기를 자르고 껍질을 벗기고 삶고 무치고 하는 수고로움에 비해 후루룩 먹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 그리고 나물로 만들어놓으면 그 양이 팍 줄기 때문에 내가 너무 뭔가를 한 번에 많이 먹고 있다는 죄책감 같은 것도 든다. 하지만 곧 ‘흠, 내가 이렇게 수고롭게 일했는데 이 정도는 먹어야지.’ 하며 곧바로 자신을 위로하기로 한다. 자책과 위로가 반복되는 분주함이 지나면 조용하고 쓸쓸한 계절이 온다. (200)

심고 난 뒤 고구마 순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뜨거운 햇볕을 못 이겨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살기로 결심한 고구마 순은 여름을 지나면서 밭을 점령하려고 작정한다. (208)

세상의 모든 것이 갈색으로 바뀌고 싱싱함이 사라진 추워지는 날들이 오면 곳곳에서 시래기를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산한 계절의 시골 풍경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래기가 널려 있는 농가들의 모습은 사실 초라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말라가고 있는 시래기의 모습은 정말 쓰레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것이 과연 음식이 될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뭐든 말라가는 식물이 예쁘기는 어렵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다른 그 어떤 채소보다 시래기가 오래도록 겨울 양식이 되어준 것은 맛이 좋아서일 것이다. 시래기를 말리는 귀찮음과 그 보기 흉함을 지나서 시래기가 시래기밥이나 나물, 된장국 등의 음식으로 바뀔 때 ‘아, 어찌 이런 음식이?’ 하는 감동이 몰려온다.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시래기만의 맛과 식감이 있다. (220)

먹을 게 별로 없는 추운 아침. 일어나자마자 먹을거리를 챙기는 나는 냉동고의 유물을 탐사해본다. 냉동고를 뒤져 발견된 돌처럼 딱딱한 가래떡을 꺼내 해동한 뒤 잘라 굽는다. 따스한 커피와 함께 먹는다.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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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배고픈 사람들의 식탁 - 여성과 이방인의 정체성으로 본 프랑스
곽미성 지음 / 어떤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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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이 점수는 매길지 모르지만 우리를 이끌지는 못한다” (90)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요리에서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태국식 양배추 소스, 망고 소스, 우리나라의 참깨 소스와 카레 마요네즈처럼 직접 만든 개성 넘치는 소스들에서는 나만의 맛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의지와 도발을,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새로운 식당을 선보이는 에너지에서는 이방인의 불안과 생의 열정을 느낄 수 있으니, 평론가들 또한 윤선 씨의 행로를 계속 따라가보고 싶은 마음이리라. (108-109)

고독한 사람은 고독한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니까. 누군가에게 고독은 양지에서 온 다른 이의 손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은 늪과 같으니까. 너무 지긋지긋해서, 자신의 고독을 비추는 비슷한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더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 것 같았다. (116)

가난한 도시를 여행하는 일은 담장도 아닌 창문 너머로 집집마다 얄궂은 사연들을 목격하게 되는 일이다. 한껏 나온 배를 드러내고 대낮부터 텔레비전을 보는 아버지와 그 앞에 앉아 숙제를 하는 삐쩍 마른 여자아이를 스쳐 지나가야 하는 일이다. 왜인지 침대 매트리스가 한가운데 놓여 있는 부엌에 모여 앉은 네댓 명의 가족들과 눈을 마주치게 되는 일이다. 동네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며 기념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올렸다가 베란다에서 웃통을 벗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청년과 눈이 마주쳐 민망함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고, 보풀이 올라오고 고무줄이 늘어난 팬티와 브래지어를 걸어 놓은 빨랫줄과 그 주인으로 여겨지는 여인들을 수없이 맞닥뜨리면서 미안함으로 카메라를 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마치 스스로가 누군가의 숨기고 싶은 치부를 구경하러 온 사람처럼 느껴져 자책하게 되는 일이다. (119-120)

감독은 사회의 얼굴을 그려 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굴을 먹고 샴페인을 마시는 일이 누구에게나 허락된 일인 양 이야기하는 동시에 너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동성이든 이성이든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하며 살지 그러니, 하며 위선의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을. 누구나 알고 있는 냉혹하고 야만적인 논리는 모른 척 감추고 아름답게 웃고 있는 그 얄미운 얼굴을 들추고 싶었던 게 아닐까. (141)

미미 토리송의 삶이 부럽지는 않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10분도 안 돼 우울해진다. 다만 나는 바람에 부응하는 그녀의 순응성이 부럽다.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표준에 자연스럽게 몸을 맞추는 일, 이미 수백만의 여성들과 무엇보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수백만의 모델들이 표지판이 잘 세워 놓은 지대에 들어가는 일은 (중략) 따뜻한 반신욕처럼 기분 좋고 편안한 일이다. (161)

나에게 누군가를 집에 초대함은 기본적으로 나의 세계를 보여 주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세계를. 그런데 이 노트의 주인에게는 ‘당신을 위해 준비한’ 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결국 시어머니에게 식사 초대란 초대받는 사람을 향한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었다. 센스 있는 선물을 고르는 일처럼 상대방의 취향을 가늠하고 상상하는 일이었다. (177)

글렌 굴드를 들어도 듣지 않아도 살 수 있고, 사랑을 해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내 삶의 중요했던 순간은 모두 그런 부차적인 일들에서 탄생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음악을 듣고, 잘 쓰인 글을 읽고, 사람에 매료되며 마음이 움직인 경험들이 내 인생을 만들었다.
욕망을 꾹 참고 넘기는 습관은 삶을 재미없게 만든다. (185)

나는 요리와 집안일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몫이라는 생각이 상식으로 통하던, “여자애가 집안일을 못해서 큰일”이라는 핀잔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자라는 내내 이에 불만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요리는 굳이 잘하고 싶지 않은, 열심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러니 가정적인 남자, 요리하는 남자가 마음에 들어오는 일은 너무 쉽지 않았겠는가. (245-246)

말이 통하지 않아 자기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방인에게 이국의 음식은 가장 쉽고 친절한 외국어였다. (251)

그리고 언젠가는 이 책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는 나의 사랑하는 R에게, 마지막 문장을 선물하겠다. 당신이 있었으므로, 이 책도 존재할 수 있었다.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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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잡지 - 좀 더 제대로 살고 싶습니다 아무튼 시리즈 6
황효진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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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지 정하려면 실제로 글을 시작하기 전까지 상당히 긴 예열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무조건 책상에 앉아 고민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잡지를 보고, 서점에 들렀다 오고, 커피를 마시고, 수요일 저녁 퇴근 후에도 밤 열두 시가 될 때까지 침대에 누워 머릿속으로 개요를 짜며 하기 싫다고 징징대는 게 나의 버릇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는 차라리 그 시간에 노트북 앞에 앉아 한 글자라도 쓰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그럴 수는 없다. 충분한 예열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마감도 불가능하다. 그러다 마침내 목요일 아침 일곱 시 정도가 돼서야 벌떡 일어나 꼼짝도 하지 않고 마감을 이어나갔다. 어찌 됐건 마감은 주어진 시간 안에 끝냈지만, 스트레스와 잘못된 자세로 어깨는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나면 뿌듯한 성취감이 아니라 이번 주도 무사히 지냈다는 생각만 들었다. (116-117)

이랑의 공론화 이후, 타인의 시간과 노력을 빌리는 일에 무감해지면서까지 이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몇 년이 지나도 오르지 않는 원고료, 나의 아이디어나 관점을 공짜로 빌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종종 맞닥뜨려야 하는 회사 바깥의 환경도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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