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
김지효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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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매일 분열하며 글을 썼다. 어떤 날은 인기가 많아지고 싶었고, 어떤 날은 나보다 인기 없는 사람 옆에 서고 싶었다. 또 어떤 날은 인기 많아지고 싶어하는 사람을 비판하고 싶었고, 어떤 날에는 그 사람들을 비판함으로써 인기를 얻고 싶었다. 나는 어떤 날에는 인스타그램 중독자였고, 어떤 날에는 인스타그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여성학도였으며, 어떤 날에는 인스타그램을 분석하는 책으로 대박 나고 싶은 속물이었다. 이 시기에 만난 사람들은 나를 모두 다른 모습으로 기억할 것이다. - P310

그렇지만 내가 놓인 불안한 위치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기도 했다. 나는 관점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글을 썼다. 마치 페미니스트가 몸이 없는 존재인 듯, 성찰과 윤리만을 요구하는 지식인들에게 여성 청년이 놓인 조건을 구체적으로 읽으라고 말하기.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의 한계를 직시하고 나아져야 한다고 말하기. 스스로를 돌봐야 하지만 나만 중요한 건 아니라고 말하기. 페미니즘에는 정답이 없지만 아무거나 다 페미니즘은 아니라고 말하기. 우리는 차별받았지만 그것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기. 우리는 이 세계에 살며 새로운 세계로 이행할 수 있다고 말하기. - P310

정반대로도 다시 쓰고 싶다. 우리는 나아져야 하지만 각자가 놓인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기. 나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나의 삶을 살아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기. 아무거나 다 페미니즘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하기. 우리는 벗어날 수 있지만 성차별 사회의 피해자이기도 하다고 말하기.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이행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이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하기. - P311

나는 너네랑 놀면서 어떤 사람은 굳이 페미니즘 같은 단어를 입에 담지 않고도 세상을 나아지게 한다는 걸 배웠어. 내가 운동이나 정의, 윤리라는 거창한 이름을 발음해가며 알게 된 걸 너네는 배우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지. - P332

엄마 아빠에게 이 책은 내가 신의 진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증표로 읽힐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어. 이 책은 내 나름의 방식대로 엄마 아빠를 사랑하고자 했던 결과물이라고. 또한 엄마 아빠가 보여준 사랑을 흉내내서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해본 흔적이라고. 나의 출처이나 지향점인 엄마 아빠에게, 나의 전부인 엄마에게. 내가 평생 배워온 모든 지식과 관점을 뛰어넘는 최선의 사랑을 드립니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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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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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정확한 시기에, 그러니까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기에 앞서 찾아온 고마운 책이었다.

이처럼 앞으로 돌진하는 경험에서는 물질적인 것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간다. 뱀이 탈피할 때 벗는 허물처럼 우리에게서 벗겨져 나간다.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물론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감각마저 잃는 것이다. 그런데 상실의 감각이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풍요로움에 대한 기억이자 우리가 현재에 길을 찾도록 도와줄 단서들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익혀야 할 기술은 과거를 잊는 기술이 아니라 손에서 놓아주는 기술이다. 그리고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 상실 속에서 풍요로울 수 있다. - P43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아이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나를 형성했던 힘들이 아직 생생하고 강력했다. 이후 시간과 함께 기억들은 대부분 희미해졌고, 내가 그중 하나를 글로 적을 때마다 그 기억은 버려지는 셈이었다. 그 순간 기억은 그림자처럼 흐릿한 추억으로서의 생을 마감하고 활자로 고정된다.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살아 있는 것 특유의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속성을 잃는다. - P64

저 포로들은 모든 사람이 살면서 겪기 마련인 사건을 극명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셈이었는데, 그 사건이란 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으로 변하는 일이다. (...) 가끔은 오래된 사진 한 장, 오래된 친구 한 명, 오래된 편지 한 통 때문에 내가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들과 함께 살았던 나, 이것을 귀하여 여겼던 나, 그것을 선택했던 나, 저렇게 썼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먼 거리를 건너온 것이다. - P118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유난히 더 멀리 간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알맞은 자아, 혹은 적어도 의문을 제기받지 않는 나아를 생득권처럼 타고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든 만족을 위해서든 자신을 새로 만들어내려고 하고 그래서 멀리 여행한다. 어떤 사람은 가치와 관습을 상속받은 집처럼 물려받지만, 어떤 사람은 그 집을 불태워야 하고, 자기만의 땅을 찾아야 하고, 맨땅에서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 - P118

그러나 글쓰기는 그러잖아도 충분히 외로운 작업이다. 글쓰기는 즉각적인 대답이나 상응하는 대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먼저 고백하는 일이다. 상대가 영원히 묵묵부답일 수 있는 대화, 아니면 긴 시간이 흘러서 글쓴이가 사라진 뒤에야 진행될 수도 있는 대화를 먼저 시작하는 일이다. 하지만 최고의 글은 꼭 저 동물들처럼 나타난다. 갑작스럽게, 태연자약하게, 모든 것을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 없음에 가까운 말로. 글쓰기는 자기 자신의 사막, 자기 자신의 야생일지도 모른다. - P186

그리고 내가 이제 그 집 밖으로 나와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내가 과연 다른 집에서 살 수 있을지, 이 작은 집보다 큰 집에서, 이 큰 집보다 작은 집에서 살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이 집 계단의 굴곡을 자면서도 걸을 수 있을 만큼 몸으로 외운 터이니까, 맨땅에 손수 지어 올려서 내 집이라고 부른 터이니까. 집을 다시 짓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불을 댕겨 이 집을 태운 사람은 나였다. - P191

이야기는 아리아드네의 실 같은 선물이 될 수 있고, 미로가 될 수도 있고, 미로 속의 게걸스러운 야수 미노타우로스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야기를 길잡이 삼아 방향을 찾지만, 가끔은 이야기를 버려야만 탈출할 수 있다. - P252

그 집은 큰 장소 속에 든 작은 장소, 혹은 큰 이야기 속에 든 작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들은 러시아 인형처럼 첩첩이 담겨 있었다. 그 집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그 일들은 더 큰 카운티에서 벌어지던 구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구원은 또 온 나라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던 폭력적인 삭제에 대한 반응이었다. 나는 사반세기 전에 그 집을 영영 떠났고 꿈에서는 지난 일 년 안에야 비로소 벗어났지만, 그 카운티만큼은 내가 몇 번이고 다시 돌아가기로 선택한 곳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돌아갔을 때야 비로소 몇몇 동물들이 다시 돌아온 것뿐 아니라 저 이야기들이 첩첩이 담긴 것을 보았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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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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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이런 감정들이 있지, 하고 읽을 때는 담담했는데 막상 옮겨적으려고 다시 펼쳐봤다가 아주 많이 울고 말았다. 228쪽의 문장들을 보면서는 좀 당황했는데, 먹는 행위에 대한 내 불편한 감정이 저렇게까지 정확한 언어로 표현된 것을 이제껏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오고, 어른이 나오고, 또 어른이 아이였던 시절이 나오니 읽으면서 나는 또다시 아이일 때로 돌아갔고, 그때의 내 마음을, 그때 내가 짐작했던 엄마의 마음을 떠올렸는데, 언제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그때를 소환하지 않고 온전히 지금 이곳에 있는 나로 있을 수 있을까. 스스로 부모가 되지 않는 한 정말 그런 식의 도약은 오지 않는 것일까.


척주 해변도, 예방의약과 송인화 과장님도 아주 반가웠다.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아홉번째 파도>에 나왔던 누군가가 또 어딘가를 지나쳤을까. 시간이 있을 때 다시 한번 찬찬히 찾아보고 싶다.

나는 감각을 죽이고 사는 여자들을 알고 있었다. 살다 보니 죽었지만 다시 살릴 엄두를 못 내는 것들. 다시 살릴 의욕도 기력도 없는 것들. 언젠가부터 접어두고 사는 것들. 잊고 사는 것들. ‘생기‘라고 말해지는 것들.
수미는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죽이고 사는 감각 하나가 깨어나 무언가가 열리면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듯 견뎌온 것들을 더는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이 깨어나 삶에서 다시 무언가를 바라게 된다면 겨우 살아내고 있던 하루가 뒤집힐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만 해도 두렵고 피곤해서, ‘그냥 산다‘ ‘이렇게 살다 죽겠지‘ 생각하면서. ‘사는 낙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서. 나는 그런 여자들을 알고 있었다. 기진맥진한 채 아이한테 이런 말을 하는 여자들.
‘니가 아니면 이게 다, 무슨 의미니?‘ - P86

수미는 술을 마실 때 자신이 감각하게 되는 것들을 좋아했고, 그것들을 오직 술을 마실 때만 감각할 수 있는 자신을 싫어했다. - P160

기정이 아닌 곳에 와서야 근래 자신과 나 사이에 오간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사람처럼 수미는 내가 보냈던 경멸과 분노를, 불안과 실소를, 명명할 수 없는 숱한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실어올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수미한테 더 정확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 휴게소에서 했던 것보다 더 깊이 찌를 수 있었다.
수미가 내게로 시선을 고정한 채 숨을 참는 게 보였다.
알 것 같았다.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저 여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 P204

눈앞에 아무리 맛없는 것이 있어도 사람들과 있을 때는 무조건 복스럽게 먹는다. 깨작대면 안 된다. 눈을 번득이게 하는 허기나 욕구 따위, 이 세상에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얼굴로 복스럽게. 없던 복도 굴러들어올 것 같은 얼굴로.
몰래 맛있는 걸 먹고 나면 엄마한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맛없는 걸 복스럽게 먹고 나면 나한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나는 설사를 자주 했다. 나에게 먹는 행위는 늘 죄책감과 연결되어 있었다. - P228

엄마가 방학 때마다 일주일에 한번 나를 만조 아줌마한테 맡긴 건 엄마의 부탁이 아니라 만조 아줌마의 제안이었다.
숨 좀 쉬라고 그랬지. 나리도 나리 엄마도.
만조 아줌마는 말했다. 이나리와 이나리 엄마한테 동시에 가지고 있던 어떤 연민에 대해서,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을 담고 있던 이나리라는 여자아이의 눈빛에 대해서, 쓰이고 또 쓰이던 마음에 대해서.
수미는 만조 아줌마한테 물었다.
이웃집 아이한테 어떻게 그런 마음일 수 있었는지.
그런 친절은 어떨 때에 가능한지. - P281

수미가 공방에 찾아와 그런 일화들을 하나씩 쏟아놓으면 어떤 날에는 어떤 날에는 화가 났다. 그만 좀 하라고, 자책 말고 이젠 좀 다른 걸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자기혐오의 연장선에서 니 딸을 혐오해왔던 시간에서 이제 벗어나라고, 너의 혐오와 자책에서 이제 니 아이를 보내주라고, 다른 아이를 구한 것처럼 너의 아이도 구하라고. - P303

하지만 나는 수미의 그 토로들이 수미가 겪고 넘어가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지난봄처럼 그 시간을 부서뜨리기만 하진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마음이 수없이 헤집어지더라도 나는 수미와 서하가 겨우내 서로를 충분히 겪길 바랐다.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바라보길 바랐다. 수미가 실감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내 공방 문을 열어놓을 수 있었다. 서하를 보고 있는 어른이 너뿐이 아니라고, 너만이 아니라고, 가족이어서 해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라고, 가족이 아니어서 할 수 있다는 게 있다는 걸 믿어보라고, 가족 아닌 그이들이 저기 있다고, 수미가 체감할 때까지 나는 언제까지고 말해줄 수 있었다.
보라고. 서하는 해변에 가려 한다고. 마음을 접어버리지 않았다고. 너한테 계속 자기 자신을 얘기하고 있다고. 너한테 순응하지 않았다고.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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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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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쪽의 문장은, 정말 그럴까? 하는 마음으로 골라두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자기 방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던" 내 마음 안에도 어딘가에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욕망이 실은 있을까? 하는 물음표를 갖고.


128쪽과 133쪽은, 들키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정확히 표현되어 있어 골라두었다. 들키고 싶지 않다? 무엇을? 저 문장에 무방비상태로 찔린 것처럼 잠깐, 그보다는 좀더 오래 멍해져 있을 만큼, 며칠 후 다시 곱씹으면서도 어김없이 목구멍이 아프게 조여오고 울음이 나올 만큼 아직도 마음속 크고 중요한 자리를 저런 생각들에 내주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애틋하게 남을 작품은 아마 <이모에게>일 텐데, 정작 거기서는 어떤 문장도 골라두지 못했다. 아마 내가 어릴 때 가장 마음놓고 어린아이일 수 있던 상대를 "이모"라고 불렀다는 사실, 그리고 작품 속 이모가 내가 되고 싶은 미래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제야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자기 방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던 마음 안에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 P102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 P115

서운하다,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나, 상처받았다, 예전의 다희라면 그렇게 말했으리라는 걸 그녀는 알았다. 애정이 상처로 돌아올 때 사람은 상대에게 따져 묻곤 하니까. 그러나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 잠근다. 다희에게 그녀는 더는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 P119

다희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할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는 말도.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태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그녀는 깊은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지만 다희가 그녀로 하여금 말하게 했고, 그 사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녀는 그중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 P120

그때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엄마에게 돌리는 게 내 인생을 가장 합리적으로 감당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 나는 내게 벌어진 많은 일들을 모두 그 이유로 쉽게 설명할 수 있었어. - P128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썼지. 어린 시절부터 오래도록 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느끼며 자라서인지 나에게는 내가 결코 타인에게 호감을 살 수 없는 사람, 멸시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거든. 그럴수록 나는 남들에게 더 맞춰줬고 남들이 나를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번 고민했어. 그렇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고 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나의 욕구를 무시했지. 그때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는 거였어.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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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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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 선수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은퇴를 결정한 이유를 물었더니 "이제 내 몸이 다른 것을 원한다"고 답했다. 그때 유독 그 말이 귀에 꽂혔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감각인지는 몰랐고 내게는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내게도 그 시간이 찾아왔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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