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동안, 여닫이가 나쁜 문짝 같던 내 행동거지가 조금씩 덜컹거림이 줄어들면서 레일 위를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같이 느껴졌다. (47)
가사이 씨와 유키코는 조용히 혼자 충족되어 있는 듯한 점이 어딘가 닮았다. (134)
신경이 구석구석 미친다는 것과 신경질적인 것이 어떻게 다른가, 선생님이 덧붙인 선에 그 대답이 보이는 것 같았다. (146)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180)
눈앞의 과제를 하나하나 현실적으로 조립해나가는 가사이 씨 솜씨는 정말 훌륭했다. 쓸데없이 각을 세우지 않고, 밀면 들어가고, 잡아당기면 늘어나는 탄력성이 있었다. 때문에 상대방도 가까이 다가온다. (229)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타이밍을 놓칠 것 같아서 말이야. 불만이 있는 건 아니야. 이렇게 있기 좋은 설계사무소는 없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선생님 밑에서 십 년 더 있다가는 여기에서 나갈 수 없게 될 거야." (238)
"본인이 삼가서 잠자코 있는 것하고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한테는 똑같아요." (267)
조용하게 틀어박혀서 쉬기에 적당한 공간이었다. 큰 집이라고 해도 모든 것이 밝고 넓으며 공적인 공간으로 하지 않은 것도 선생님이 만드시는 주택답다. 열린 곳은 마음껏 열고, 닫을 곳은 닫는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주절주절 말할 때와, 멍하니 혼자 있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거릴 때,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이는 것이 인간이니까, 방도 거기에 맞춰 역할을 분담하는 게 좋다, 고. (271)
이무것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많은 시간과 엄청나게 많은 재력으로 사람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박물학과 생물학이 발달했다고 대학 강의에서 들은 것이 생각난다. 사람을 고용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꽃을 키우는 것도 후지사와 씨 혼자만의 안에서 완결되는 생물학일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후지사와 씨는 사람과 떨어진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나날을 보낼 수 있는 강인함을 어떻게 익혔을까. (275)
"한 점의 틈도 그늘도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런 것은 아무도 못 만들어. 언제까지나 주물럭대면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만한 것이 자신한테 있는지, 그렇게 자문하면서 설계해야 한다네." (286)
"불합리한 것이나 억지 등 여러 가지 일에 정면으로 부딪쳐야만 할 때가 있지. 그것이 건축가의 일이야." 엔진 소리만이 차 안에 울리고 있었다. "우치다 군은 셔터를 내려버리니까 말이야.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무감각하게 해놓고 불합리하거나 억지를 잠자코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있어. 자기가 다치지 않고, 잘 흘려보내기 위한 방위책일지도 몰라. 그러나 그래서는 오히려 상처를 입는 결과가 되거든." 선생님은 나한테가 아니라 이 자리에 없는 우치다 씨한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동안에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하고 싶지 않은지, 점차 모르게 돼. 알겠나." "네." "말도 안 되는 것에 밀릴 때도 있겠지. 상대방이 있는 일이니까. 다만 마지막에는 밀린다 해도 자기 생각은 말로 최선을 다해 전달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생각하는 건축이 아무 데에도 없게 돼. 자기 생각을 자기 자신조차 더듬어갈 수 없게 된다고." (352-353)
"정말 죽기 살기로 억지 부리는 사람은 얼마 없어. 대단한 탁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남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세상이 이런 것이니까, 그런 정도의 생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야. 그런 사람들은 이쪽이 각오만 섰으면 밀어붙일 수가 있지. 물론 어디까지나 자기 아집을 관통시키려는 사람도 있어. 그런 때 건축가로서의 신념이 문제가 되는 거야.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는 평상시 어떻게 해왔느냐의 연장선상에 있어. 여차하면 저력을 발휘할 생각으로 있어도 평상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으면 갑자기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354)
앞에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요소를 자기 자신을 위한 확장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몸에 익혔으면 좋겠다. 나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이기를 바라고 있다. (393)
이렇게 정밀하고 견고한 모형은 전에도 후에도 본 일이 없다. 우치다 씨하고 나와 유키코가 별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이 모형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팔과 손목, 손바닥과 손가락의 연계가 이상적으로 안정되고(어떠한 세밀한 작업에서도 손가락은 1밀리미터도 떨지 않았다), 시력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 (0.1밀리미터의 틈새도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본인들은 그 사실에 아무런 자각이 없던, 틀림없는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쉽게 선생님의 머릿속에만 있는 이상적인 손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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