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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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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란 본래는 서정시의 한 형식으로, 공상적인 황금시대를 동경하고 평화롭고 소박한 전원생활을 미화하는 내용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목가 [pastoral, 牧歌] (두산백과)


책의 대제목은 1부 기억 속의 낙원, 2부 추락, 3부 잃어버린 낙원 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제목은 미국의 목가가 부서지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책은 ‘스위드’가 왜 미국의 목가를 대표하게 되었는지, 그가 미국의 국가 정세에 따라 어떻게 추락하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한 나라의 문제를 한 가족이라는 틀로 가져온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개인의 문제로 끌고 왔다. 그리고 그 시도는, 절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고전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특정한 시기와 사건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것을 고전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책은 한 시기에만 머물지만 전체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여 인간의 본질을 세밀하게 추적했다.  


"그는 역사에 족쇄로 묶여 있었고, 역사의 도구였으며, 그랬기 때문에 열광적인 존경을 받았다. 만일 그가 1943년의 그 슬프기 짝이 없던 날, ‘하늘의 요새’ 쉰여덟 대가 독일 공군 전투기들에게 격추당하고, 두 대가 대공포에 떨어지고, 또 다섯 대가 독일에서 폭격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영국 해안을 지나자마자 추락한 바로 그날이 아닌 다른 날에 위퀘이크의 농구 기록을 갱신했다면 — 배링어와 싸워 27점을 기록했다— 그런 뜨거운 존경은 받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목가 1 (1부 기억 속의 낙원 17p)


그가 영웅이 된 것도, 추락하게 된 것도 미국의 시대상황에 따라 갈라졌다. 그는 시작부터 끝까지 선의를 가지고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의 선의는 상황이 변하면서 일관되게 행동해도 선의가 아니게 된다. 그의 딸이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의 일환으로 선량한 시민 한명을 폭탄테러로 죽인 이후 그는 추락하게 된다. 그가 가진 아버지라는 관념으로는 그의 딸인 메리를 그가 어떤 행동을 하였든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시민으로서의 그는 살인자인 메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메리를 벗어나 다른 것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결국 메리와 자신의 문제로 돌아와 평생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동생 제리에 의하면 그가 잘못한 것은 단지 주어진 규칙 아래서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형이라는 사람은 늘 모든 것을 매끈하게 다듬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형이라는 사람은 늘 온건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남의 감정을 다치게 할 것 같으면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타협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자족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상황의 밝은 면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야.  … 사회가 뭘 하라고 하건,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예절. 하지만 예절이란 건 형이 그 얼굴에 침을 뱉어야 하는 거라고. 하긴 뭐, 형 딸이 형 대신 침을 배고 있네, 안 그래? 네 사람?(여기서 네 사람은 스위드의 딸인 메리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라는 명목으로 폭탄테러를 하여 죽인 네 명의 사람을 가리킨다 - 리뷰 보충설명 ) 형 딸이 예절을 단단히 혼내줬네.”

미국의 목가 2 (2부 추락 69 p)


제리의 말을 보면, 오히려 스위드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추어진다.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면, 그의 삶이 정말 그른 것인가? 책 속의 작가 네이선 주커먼은 스위드의 고뇌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는 대부분이 질서이고 아주 작은 부분만 무질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는 환상을 만들었는데, 메리가 그를 위해 그 환상을 해체해주었다. 그애가 염두에 둔 것은 특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애는 미국에게, 그녀 자신의 집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미국의 목가 2 (잃어버린 낙원 281p)


소설은 스위드 레보브의 입장에서만 서술되고 있다. 다른 인물들이 어떤 삶을 선택할 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나오는 내용은 현실적이나 비중이 얕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 한 사람의 고난에 집중할 수 있다. 이 말은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였기에 다른 이야기를 하려면 새로운 소설의 장을 열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모의 자기희생이라는 거의 법제화된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서 제멋대로 반항하는 태도를 뽑아버리고, 품위 없는 충동을 모두 지하로 밀어냈습니다. 

우리가 완벽해질 수 있다는 그들의 흔들림 없는 열렬한 환상을 부수고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방황하려면 우리 대부분은 엄청난 용기를 내야 했거나, 아니면 무척 어리석어야 했을 것입니다."

미국의 목가 1 (1부 기억 속의 낙원 73p)


한편으로는 미국의 목가를 설명하기에는 그가 내세운 스위드라는 인물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위드는 유대인임에도 철저하게 미국의 미덕과 이상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 스위드는 설로의 방향을 회전하지 못하고 계속 끝까지 산다. 그러나 이런 그를 미련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영웅으로 받들어준 사회에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선량하게 살고자 하는 규칙을 지켰다. 스위드는 ‘평범한’사람이라는 지키기 어려운 개념을 평범하게 지켜온 사람이다. 


"설령 그들이 합리적으로 또는 요령껏 주장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이 조르는 것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기대를 꺾는 것은 자신의 우월한 힘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이 헌신적인 아들. 남편. 아버지라는 자신의 존재에 환멸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모두에게 아주 큰 칭찬을 받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목가 1 (2부 추락 218p)"


이 소설은 현대식 비극이다.  고대의 어떤 비극은 신이 신탁을 내리고 그 신탁을 피해 선량하게 살았으나 결국 신탁대로 비극을 손으로 빚는 내용 등이 서술된다. 이 책이 서술한 비극은 영웅취급을 받던 평범한(?)인물이 국가 자체의 문제점에 봉착하여 과격한 행동을 한 딸에 의해 살인자의 아버지가 된다. 이 역시 운명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이라 판단할 수도 있지만, 이 운명은 미국이라는 국가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구라도 맞을 수 있다. 이 비극은 신탁이 아닌 국가적인 문제 -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하는 문제 처럼 보이는 - 일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에서 과거의 비극과 차이를 보인다. 


이 소설은 인간본연의 딜레마를 스위드라는 인물로 보여준다. 세상은 무질서와 질서로 이루어져 있고, 질서는 안정감을 주지만 그를 배신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한쪽을 선택하는 게 가능한가?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논리적인 내용이, 다른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논리성이 부족한 내용이 될 수 있다.

딸에게는 베트남 전쟁을 막기 위해 폭탄테러를 한 일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논리적인 일이었다. 온건한 태도로는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전쟁을 계속 이어나가려는 무리의 시선을 끌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위드라는 인물은 정 반대해야 한다면 무력적인 시위보다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시위가 낫다고 판단한다. 그 방법은 평화적인 방법이고, 지금 현재 보유하고 있는 틀을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아무도 다치지 않을 방법처럼 보인다. 성공 가능성은 폭탄테러와 마찬가지로 알 수 없다.

딸이 살인자가 된 것이 확실해진 이후, 스위드 레보브에게 질서는 무질서의 우연적인 산물이 되었다. 시각을 달리하니 모든 무질서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실라는 딸이 없어진 이후 네달 동안 스위드의 정부였는데도 폭탄 테러 직후 그의 딸을 숨겨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실라는 스위드와의 관계를 이어온다. 스위드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배신감을 느낀다. 실라는 스위드를 포함한 모두로부터 스위드의 딸을 숨겨주었다. 실라와 스위드의 신뢰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연이었다. 각자는 각자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의 잣대로 평가하는데도 그 잣대를 서로 알지 못하기에 이어진 신뢰였다. 그걸 깨닫고 난 스위드는 누구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질서와 무질서의 딜레마를 스위드라는 ‘평범하고 영웅적인’ 인물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비극은 느리지만 갑작스럽게 온다. 미국 문명이 '전형적인 미국인' 스위드 로부터 메리를 낳은 것은 없을 일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비극이 될 요소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탄생한 것이었다. 비극을 겪는 메리와 스위드에게는 그건 갑작스럽고 대처할 수 없는 재앙이 되었다. 가치대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비극은 빚어졌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존재하지 않고 무질서만이 존재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비극이 내게 올 경우, 나는 어떤 판단으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나는 청소년기를 제외하고 삶과 질서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온전히 순응한 ‘평범한’사람은 되지 못하였지만, 새삼스럽게 내가 질서를 지키려 노력했다는 것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세상이 만든 기준이외의 나만의 기준이 있으면, 괜찮은걸까. 이 딜레마는 살아있는 한 끝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 같다. 결정내린 것은 늘 번복하게 만드는 삶 앞에서 무엇도 결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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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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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그날의 역사로부터 아직 한 세기도 채 지나지 않았다.  매년 “5.18행사때 이 해는 518 몇 주년입니다.”라고 적힌 플랭카드가 도심에 걸렸다. 나는 해마다 달라지는 숫자를 지나쳤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걸 왜 잊었을까. 나의 세대는 그 때의 상처가 아직 아물기 전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차츰 해결되어야 한다. 나는 518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나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일들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이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계속 책 읽는것을 미뤘다. 이 책을 읽지 않으면 그때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남의 일이 되어버린 일에 냉정하다 느꼈다. 그런 나를 보니 이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일을 만든 사람은, 이 일이 직접적으로 피부에 닿지 않는 일이라 손쉽게 결정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권력이 그 사람을 미치게 하였던가. 인간의 본성 안에 폭력이 잠재되어 있어서, 어디든 분출할 구멍을 기다리고 있던가…


“맨 위에 놓인 남자의 몸에다 그들이 가마니를 덮자, 이제 몸들의 탑은 수십개의 다리를 지닌 거대한 짐승의 사채 같은 것이 되었어.”

소년이 온다 (검은 숨 48p)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소년이 온다. (검은 숨 52p)


5.18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 삼일이 걸렸다. 끝까지 읽는 데 몇 번을 쉬면서 읽었다. 띄엄 띄엄 읽었기 때문에 한 호흡에 읽은 것보다 집중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읽으면서 군데군데 울었다. 이 일을 몸으로 겪은 사람은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나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헀을 지도 모른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소년이 온다 (어린새 45p)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비극은 없다. 비극은 난데없이 일어났다. 내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 기꺼이 맞서서 죽음을 선택헀을지, 아니면 살아남은 자에 속했을지 가늠하지 못한다.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은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하물며 내가 학살자로 거기 있었다면, 내 기억을 지우고 살았어야 했을 것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었다면, 떠올려야 할 기억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함께 묻혀 있다면, 그 시간이 나를 가리키는데도 나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면 온전한 인간으로 설 수 있을까.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쉬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소년이 온다 (밤의 눈동자 167p)


내가 모든 일에 연민을 느끼며 살았더라면 삶을 하루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매일같이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비극들이 일어난다. 책에서 언급된 용산참사는 내가 아는 참사중 518과 가장 유사하다. 용산에 투입된 사람의 감정과 지키는 사람의 감정을 교묘하게 조작하는 작전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책은 518의 심리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가 빚어낸 비극에 인간으로서 그들은 각자 어떻게 대처했는지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집안 사정이 나빠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그 앳된 학생들의 스크럼 속으로 걸어들어갔을 것이다. 가능한 한 끝까지 그 속에서 버텼을 것이다. 혼자 살아남을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다.”

- 소년이 온다 (일곱개의 뺨 87 p)


개개의 도덕적 의식이 투철해서 행한 것이 아니다. 폭력에 저항하는 집단 도덕의식이 그들을 행동으로 붙들었다. 인간의 고결함과 저열함이 맞섰지만 누구도 승리하지 않은 채 사상자만 내고 끝이 났다. 인간의 유리같은 빛나는 양심을 지키려고 행동한 사람도 행동하지 않은 사람도 나무랄 수 없는 기점에 소설이 서 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과 싸웁니다.”

소년이 온다(쇠와 피 135p)


삶에는 매일 새로운 과제들이 주어진다. 주저앉아 슬픔을 이어나가서는 안된다. 그 시간에 슬픔에서 빠져나와 해야 할 일을 기획해야 한다. 양심을 위해 죽은 유리같은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슬픔에 잠겨 누군가가 삶을 포기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살아라. 라고 말하면서 보내고서, 그때의 억울함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을 것이다. 

비극이 오는 것은 누군가의 손에 달린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막을 수 있는 비극이 오는 걸 방치할 수는 없다. 그들은 비극적인 상황앞에서 양심이라는 강렬한 무언가에 압도되어 비극을 민주화 운동으로 이끌었다. 삶의 연장선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기억하며 손을 이어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들의 피로 얼룩진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들은 살아있는 생에 감사하고 또 다른 참사를 막으려 노력하는 걸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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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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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의 핀천


리뷰를 쓰는 동안 친구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내밀었다. 친구는 ‘엔트로피’단편이 인상적이고 좋았다고 했다. 엔트로피를 읽으면서도 나는 던져진 사유를 해석하기에 바빴는데, 그 단편을 좋다고 느낄 수 있었던 친구의 시각이 궁금했다.


“오바드가 담배연기 자욱한 방에서 커다란 종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글을 써나갈 때 그녀의 목은 금빛 활처럼 휘어졌다. ‘젊어서 프린스턴 대학에 다닐 때’ 칼리스토는 회색 털이 무성한 그의 가슴에 새를 꼭 껴안고 그녀에게 받아쓰게 했다. ‘칼리스토는 열역학 법칙을 기억하기 위해 연상기억법을 배웠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 상황은 나아지기는 커녕 더 나빠질 것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는 쉰네살에 기브스의 우주 개념에 직면하자 대학생 때 유행어처럼 했던 말이 결국 예언이었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막대기처럼 생긴 미로 같은 방정식은 궁극에 가서 나타날 우주의 열역학적 죽음을 그에게 미리 알려준 것이었다. 오직 이론상의 엔진이나 씨스템만이 백 퍼센트의 효율이 있다는 것을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고립된 시트메의 엔트로피는 항상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한 클라우지우스의 정리(定理)에 관해서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브스와 볼츠만이 통계역학의 방법을 이 원리에 적용하기 전까지는 그것의 무시무시한 의미가 그에게 전혀 분명해지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는 고립된 씨스템이 은하수든 엔진이든 인간이든 문화든 그 무엇이든 간에, 좀더 확률이 높은 상태를 향해 자발적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그는 환원주의의 오류가 안고 있는 위험을 알고 있었고, 무기력한 숙명론의 우아한 퇘폐에 빠지지 않을 만큼 강하기를 바랐다.”

<엔트로피>117-118p


그는 핀천 작품의 주인공들은 전부 삶의 목적을 상실한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우울증이나 불감증같은 증세를 앓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둘러 싼 환경에는 항상 죽음과 일회적인 쾌락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데 거기서 인간 삶의 유한함을 깨닫든지 너무 늦었다는 것을 후회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엔트로피> 저 부분을 시작하는 문장 “오바드가 담배연기 자욱한 방에서 커다란 종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글을 써나갈 때 그녀의 목은 금빛 활처럼 휘어졌다.” 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복잡한 사유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도 탁월했지만, 그것을 이미지로서 드러내는 것도 잘하는 듯 했다. 


작가서문을 읽었다. 핀천이 직접 자신의 초기 작품을 비평하고 있었다. 겸손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개구리 올챙이적 무시하지 않고 펴낸 책이었다. 내 입장에서 그나마 읽을 만한 단편은 <은밀한 통합>뿐이었다. 다른 단편은 조각조각 파편처럼 흩어진 재료들이 아직 소설이 되지 못하고 지면 위에 남아있을 뿐이라 느꼈다. 그래도 그의 초기 단편은 좋은 사유의 가능성이 돋보여서, 그가 쓴 장편을 보고 싶었다.

그가 작가 서문에서 말한 그대로가 모두 단편안에 드러난다. 그는 그의 단편들에 드러난 오류가 부끄러우나, 초보적 수준의 소설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문제점과 글을 쓴지 얼마 안된 작가들이 피했으면 하는 사례들에 관한 주의를 담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이 단편들이 가끔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우며 무분별해 보이더라도 그 모든 결함이 있는 그대로 여전히 쓸모가 있었으면 하는" 이라는 말로 그 말을 대변한다.

인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대화는 대화가 아니었다. 어떤 행동을 하는데, 그 행동이 와 닿지 않았다. 그들이 그냥 행동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소설 한편이 끝난다. 게다가 갑자기 내뱉는 깊은 사유는 사유 자체를 나타내기 위해 인물을 꼭두각시로 세워놨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전혀 그렇지 않아. 내 말은 폐쇄회로 같다는 거야. 모든 사람의 주파수는 다 똑같아. 그래서 잠시 뒤 나머지 스펙트럼에 대해선느 잊게 되고 이것만이 중요하고 실재하는 유일한 주파수라고 믿기 시작해. 반면에 바깥에서는 대지의 위아래로 기가 막힌 색깔과 엑스선, 자외선들이 펼쳐지고 있어.”

“너는 로치도 폐쇄회로라고 생각하는 거야?”

“맥니스 대학이 세계가 아니듯, 로치도 스펙트럼은 아니야.”

<이슬비>61p


인종차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쓴 문구가 인종차별적이었다. (그러나 더건한테는 근사한 점들이 많았다. 가령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는 백인과 흑인간의 백 퍼센트 결혼을 위해 매진하는 공산주의자 조직이라는 것. 이슬비 43p) <이슬비>에서 여자가 옷을 벗더니 뜬금없이 삽입된 개구리들은 섹스장면을 나타내는 것인가?


“사방의 개구리들은 갈수록 야만적인 합창을 주문 외우듯 읊조렸다. 간헐적이기는 했지만, 그 합창은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작은 손가락들의 뒤얽힘, 큰 맥주잔들의 부딪침, (…) 그녀는 완전히 유린당하지 않은 파시파이처럼 보호감정 같은 것을 유발했다. 마침내 마음이 진정된 두 사람은 바보같은 개구리 울음소리에 계속 시달린 끝에 서로 떨어져 누웠다.” <이슬비>72-73p


 그 이후 분위기로 봐서는, 섹스장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가 역시 그 글들을 보고서는 상황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유가 너무 진지하고 중요해서, 단편들의 단점들에도 읽어볼만한 글이 되었다. 중요한 사유들이 작품 곧곧에 등장한다. 그가 발견한 사유들이 단점을 보완해 발전되었기 때문에 이후 그의 장편들이 대작이 된 것이라 여긴다. 


“왜냐하면 그 자신과 진정한 거짓말의 진실은 근처의 기이한 곳으로 이미 오래전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진실의 범위를 알아차릴 수 있지만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순간, 원자보다 작은 입자를 관찰하는 사람이 관찰행위 자체로 인해 작업, 데이터, 확률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처럼, 관습을 완전히 위반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사물에 대한 관점을 엉망으로 만들 수는 있다.”

<로우랜드> 95p


반면 <은밀한 통합>에서는 이미지들이 연결되고 인물들이 살아있었다. 다른작품들에 비해 문장이 연결되어 캐릭터가 하나로 그려졌다. 인종차별이 심한 어른들과, 그런 어른들 사이에서 흑인 친구 ‘칼’과 놀러다니는 아이들의 대비가 이루어졌다. 그 모임의 대장급으로 나오는 그로버 스노드는 실재하는 인물처럼 생생했다. 


“그는 결함이 있는 천재소년이었는데, 가령 그가 만든 발명품들이 늘 성공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숙제 하나당 십 쎈트를 받고서 모든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해주는 부정한 돈벌이를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매우 자주 드러냈다. 성적이 갑자기 90점, 100점으로 오른 모든 아이들 뒤에 그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똑똑함을 보여줄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는 여지없이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은밀한 통합> 192-193p


그로버는 이제 막 성장하는 아이로 등장한다. 그는 이제 세상에 눈을 뜨고 어른들을 비웃는 단계에 있다. 그로버를 중심으로 모인 아이들은 ‘천재소년’과 함께 그들을 기만하는 어른들의 나쁜 행동들(인종차별등 그들이 나쁜 행동이라고 규정하는 것들)을 비웃고 상상의 놀이친구 흑인 ‘칼’과 돌아다니며 논다. 그들의 놀이는  공장이 가동되고 끝난다. 놀이가 끝나고 그들도 어른들과 같은 사람으로 자랄 것이라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런 다음 밤의 빗속으로, 마침내 각자의 집으로, 뜨거운 샤워, 마른 수건, 잠자기 전의 텔레비전, 잘자라는 키스, 그리고 결코 다시는 전적으로 안전할 수 없을 꿈속으로 까불거리며 걸어갔다.”

<은밀한 통합> 260p



나쁜 말에는 늘 허점이 드러난다. 이런 수준밖에 안되는 리뷰를 쓰는 것이 부끄럽다. 그의 장점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리뷰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른 신간평가단 분들의 리뷰를 읽어봐도 내용안에서 무언가를 건지신 분들이 대단해 보였다. 내 견식적 한계때문에 이 작가의 장점을 잘 발견하여 설명하지 못했다. 

내가 그의 장편을 읽고 핀천의 팬이된 이후라면 내게도 읽을 만한 작품이 될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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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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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를 산다는 것. 시를 쓴다는 것.


충성심은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충성하게 돼 있다면 계략이다

(…)

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네 나라이고

네 집을 짓는 곳이 네 조국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454p ‘난 우’의 시 고국 중 일부


이야기를 하나로 모은 시란 생각이 든다. 이 시는 ‘난 우’가 작품 내에서 중국에게 느끼는 분노를 드러내고,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난 우’는 결국 이민에 성공했다. 나는 이 시가 ‘조국’의 의미를 다시금 정의한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태어난 나라보다, 내가 머물 수 있는 곳, 도움을 받는 곳이 국가이다. 국가는 국민의 공공 안녕을 책임져야 한다. 라는 의미처럼 들린다. 중요한 이야기로 들린다. 그에 의하면 공공 안녕을 책임지지 못하는, 집을 짓지 못하고, 내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곳은 내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이런 소설을 쓴 ‘하 진’이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중국은 예로부터 중화사상이 나라 전체를 지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난 우’는 중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 현재성 사이에서 고민한다. 하지만 무엇이 더 옳다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철저히 개인의 선택으로 남긴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이민자로서의 자신과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었다. 소설 전체에 ‘난 우’를 제외한 사람들이 쉽게 국수주의, 애국주의에 빠지는데, 그는 그것을 뒤집는 시를 쓴다. 소설에서 묘사된 중국은, ‘난 우’의 아버지에게는 좋은 국가이나, 국수주의, 관료의 부패, 자본주의의 무분별 수용으로 부패해 가고 있는 흔적이 드러나 있다. 

‘난 우’는 살던 땅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새로운 토대에서 그 나라의 방식에 맞추어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돈 앞에서 평등한 미국에 온 그는 돈이 없었다. 몇년간 돈을 벌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아내와 열심히 일한다.  이민자인 ‘난 우’가 중국으로 돌아갔을 때 미국에서의 삶과 비교할 수 있도록 설명한 장면이 있다. 스모그때문에 알레르기가 일어난다. 관료에게 뇌물을 바치지 못하면 무엇을 시도할 수 없다. 국가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면 쫓겨나거나 잡혀 들어간다. 이민간 사람들은 중국에 환상을 덧씌웠는데, 중국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민자들을 부러워한다. 어느 곳도 이상적인 공간은 아닌 셈이다. 이상을 쫓지 않고 현실의 삶을 살아야 했다.


책은 이민을 간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여 이민을 가지만 이민은 자유로운 삶이 아니었다. 이상적인 자유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떠나온 곳의 부조리함 보다는 다행히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돈이 최고인 미국 땅에서 부지런히 일하여 돈을 약간 모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자유가 완성된 까닭은 이민을 와서도 아니고, 미국이 중국보다 더 좋은 나라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가 시를 쓰기 때문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개념이 10년 동안이나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러한 꿈이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추구할 수만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에머슨의 “별에 수레를 매라”는 격언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임에 틀림없었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길을 가야 했다. 외로움과 고독을 견뎌야 했다. 성공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고 이민자이면서 남의 나라 알파벳을 배우는 자신의 왜소함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삶을 허비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조롱거리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궁극적으로 그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각오를 하고 시를 쓰는 데 전념할 정도로 용감해져야 했다.” 435-436p 

 

시를 쓴다는 것은 그의 존재 이유중 하나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를 쓰려고 하는 ‘난 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난 우’가 시를 쓰지 못할 여러가지 이유가 나오지만, 결국 ‘난 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떤 핑계도 없이 그냥 쓰는 일이었다. 그는 앞으로 걸음을 걷고, 후퇴하고, 다시 앞으로 걷는 것을 매번 시도한다.  ‘난 우’는 단번에 성장하는 걸 꿈꾸는 것도 공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방인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는 토대 자체를 스스로 없애는 사람이다. ‘난 우’의 시는 중국으로부터 이방인이 되고자 노력한다. 상상 안에 있을 때는 유일한 고정된 실체로서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믿지만, 그는 모든 것의 실체를 확인하는 여행을 거치고 비로소 현재를 살게 된다. 지금을 살기 때문에 고정된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부유하는 이방인이 된다. 


“역사가 스스로 해결할거야.”

455p ‘안쓰러움’ 시 일부


그가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안쓰러움' 이라는 시는 그가 자기위안 하는 타인을 보며 쓴 시다. 그는 역사는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한다. 두 다리를 땅에 붙이고 하루하루를 삶을 버텨나가는 것. 흐름을 맹목적으로 쫓지 않고 꿈을 꾸며 산다는 것. 그것이 역사를 만들고, 시는 거기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특별한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그가 삶을 열심히 살았기에 정치적인 인물이 되었다. '난 우'가 살아낸 삶이, 존경스럽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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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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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는 호칭을 보았다. 나는 이효석을 좋아한다. 그의 소설이 그 상을 받았다니 작가의 글이 궁금했다. 읽고 나서 그의 글이 시적이라고 느꼈다. 시적인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흐름이 부드럽게 연결된다. 읽는 내내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하게 만든다. 사건과 사건과의 관계가 긴밀한 편이다. 재미있는 주제를 잡아서 문제를 터트리고 안전하게 착지한다.


소설은 “딜리터”를 내세워서 내용을 전개한다. “딜리터(Deleter)는 고객이 의뢰한 물품을 그가 죽고 난 이후 제거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왕과 관련된 자료는 중요한 자료로 분류되고, ‘사료’로서 따로 기록하는 사람이 있었다. 개인정보는 기억에만 의존하여 보존되었기 때문에 누락되는 부분도 많았다. 요즘같이 자발적으로 개인정보를 공개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시대에 죽고 난 이후 자신의 정보를 지운다는 것은 꽤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다. 요즘은 개개인의 입지가 커졌다. 개인의 정보는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은 드러낼 수 없는 것을 비밀로 만들지만, 마지막까지 그걸 지우지 못할 수 있다. 지운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였던 무언가를 버리는 작업이고, 굳이 버리지 않아도 괜찮은 상황에서 지우기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죽고 난 이후에 남아서 돌아다니는 것은 꺼림직하다. 소설에서 남겨진 정보가 자신을 판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돈을 낼 각오를 하는 사람들은 “딜리터”에게 의뢰한다. 


비밀은 무대의 암막천이다.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꼭 필요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비밀로 가려져야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일들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사소한 일이야 암막천에 가려진다. 암막천으로는 가릴 수 없는 소동이 벌어지지는 건 예정되지 않은 일이다. 관객이 알 필요가 없었던 비밀이 무대에 영향을 끼침으로서 알아야 할 비밀이 되어버린다.

그럴 경우 배우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걸 바라보는 관객은?


소설은 파급효과가 크든 작든 비밀을 감추려는 사람들, 비밀을 파헤치려는 사람들, 비밀을 만들고 지우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이 만든 비밀을 스스로 처분한다. 하지만 아직 질문은 남아있다. 왜 비밀을 만들고 지우려는 걸까?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은 비밀을 지우려는 이유를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328쪽) 라고 말한다. 


삶을 거머쥐려는 욕망 자체가 추하지는 않다. 하지만 내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닌데 나만의 것으로 착각하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할 때 추해진다.


순간만을 숨쉬다가 사라질 건데, 굳이 뭘 지우려고 노력하는 게 하릴없다. 내가 죽은 뒤에 남겨진 내 과오들은 내게는 하등 중요치 않다. 그 과오들이 먹칠하는 것은 완전한 상태로 죽음에 이른 내가 아니라 나의 후손일 뿐이다. 그 과오의 잘잘못을 가려야 물려받을 것과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인간이 저지른 과오가 많은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오만이 아닐까? 게다가 내게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조롱당해야지. 그것을 후손이 물려받는 다는 게 더 끔찍한 일이다. 과오를 우상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과오는 과오로 밝혀질 텐데. 과오를 우상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과오를 과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균형을 찾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균형잡기를 한 사람이 다 해치우려고 하는 게 오만이다. 그 오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꿈’이기는 하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준비해놓고 죽고 싶은 욕망.  살아 있을 때 과오를 저지르지 않고 균형있게 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좋지만. 이미 저지른 것을 죗값을 치르는 것 이상으로 없던 일로 만들려고 시도하며 보내기에는 세월도 돈도 너무 아깝다. 귀찮은 일이다.

만약 내가 큰 일을 저지르고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일을 저지른다는 건 개인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니까.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내가 주역으로 선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과오는 과오 나름대로, 선행은 선행 나름대로 뭔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남길 것이다. 역시 내가 좌지우지 할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 주어진 과제를 해치우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소설로 시를 쓰는 건, 알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중요한 것을 해석 불가능한 상태로 세상에 던져놓는 것은 소설가의 꿈이다. 해석할 단어가 이미 만들어진 문장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아서 설명할 수 없는 소설. 온 몸으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어서 굳이 해석이 필요없는 소설.


그가 잡은 주제는 흥미로우나 더 깊게 팔 여지가 소설 군데 군데 남아있어서 아쉽다. 사람들은 왜 비밀을 만드는가? 비밀을 만드는 것은 필연적인 일인가? 주인공은 남기고 싶지 않은 비밀을 삭제한다. 나는 비밀을 만드는 일반적인 이유밖에 모르고, 그것은 내가 체험한 결론이 아니다.

이야기는 완결되었지만 질문이 완결되지 않았다. 완결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그가 풀어놓은 많은 이야기 들 중 제대로 거둬들이지 못한 질문이 남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가 '비밀'이야기를 하려고 끌어들인 다양한 주제는 주인공 한 명의 한 가지 갈등이 주요 인물의 상실과 함께 마무리되자 끝난다. 주제가 남긴 질문들이 좀 더 숙성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의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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