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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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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이 잘 재현된 이야기다. 구성도 매끄럽다. 제르미날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실패의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큰 얼개는 뻔할지라도, 세세하게 짚어낸 구체적인 설정과 행동들이 이 이야기를 뻔한 이야기가 아니도록 만들었다. 전체 서사의 방향을 기억하지만 그 서사 안에서 살아 숨쉬는 개별적인 인간을 모두 존중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책에 나오는 인물을 미화하거나 매도하려 하지 않은 시도들이 곳곳에 보이니 인간적이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이상적인 사회를 향해 노력하는 것에도 모순점이 존재한다는 걸 빼놓지 않고 표현하려 했던 것도 그것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여기 등장하는 부르주아 역시 인간은 끝없이 원한다는 모순때문에 고통받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도 얼마 안되는 살림살이들로도 우열을 가리며 서로를 헐뜯기도 한다는 것들이 인간적이었다. 작가는 그런 묘사를 통해 인간은 어떻게 해도 영원히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인간이 인간답게 노동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작품 전체에서 말하고 있지만 어느 인간도 소외시키지 않는 묘사와 희망을 언급하는 마지막 부분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그의 발밑, 깊은 땅속에는 고집스레 리블렌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의 동료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에티엔은 그의 걸음마다 그들이 따라다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탕무밭 아래에서는 위윙거리는 통풍기 소리에 묻힌 채 허리가 부서져나가도록 일하고 있는 라 마외드의 거친 숨결이 들려왔다. 왼쪽, 오른쪽 그리고 더 먼 곳에서도 또 다른 동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에티엔은 밀밭 아래, 산울타리 아래 그리고 어린나무 아래에서까지 도처에서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또다시, 여전히, 땅가 가까워지는 것처럼 동료들이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또렷이 들려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햇살이 비치는 젊은 아침에 전원이 잉태한 것은 바로 그 소리였다.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 " 제르미날 2 369p-370p


책의 뒷면에 에밀졸라가 빚어낸 자연주의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서 자연주의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자연주의는 야비한 일상적 현실을 묘사한 극단적 사실주의의 한 형식이다. 자연을 유일의 현실로 간주하는 입장으로 개인의 운명은 자유 의지가 아니라 유전과 환경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발전시켰던 문학의 학파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 결과 자연주의 작가들은 인물이 어느 정도 야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정하면서 개인을 내적 혹은 외적 힘의 희생자로 그린다.”([네이버 지식백과] 자연주의 [naturalism, 自然主義] (영화사전, 2004.9.30, propaganda)) 에밀졸라는 책에 잠시 등장하는 인물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내면풍경과 외면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애를 썼다. ‘부르주아’의 입장도 ‘광부’의 입장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추악한 부분과 긍정적인 부분 모두를 서술하였다. 게다가 당시 광부들은 이 책을 읽고 에밀 졸라의 장례식 때 제르미날을 외쳤을 정도로 열광했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회주의 혁명 역시 그 당시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광부혁명과 흡사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총 7부로 나뉘어있다. 1부에서는 광부들이 굶주리면서 부당한 임금으로 광산에서 일하는 모습이 나오고, 2부에서는 광부들의 생활이 얼마나 피폐한지 묘사되며, 3부에는 에티엔이 광부일에 적응해가며 사람들과 친해져서 혁명을 도모하려는 내용이 나온다. 4부는 광부들이 피폐한 생활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파업을 알려주고 실행을 계획하는 장이다. 5부에서는 파업을 실재로 이행하고 6부에서는 파업이 경과한 결과 피폐해진 광부들의 삶이 나오며 7부에선 그들의 파업이 실패한 이후 피폐한 생활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극복하려고 사회적으로 노력할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언급하며 마무리된다. 이렇게 큰 얼개로 나누는 것이 조금 억지스럽기도 하다. 장이 나뉘어있고 분위기는 대략적인 얼개에 따라 나뉘나 그것들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사람의 행동은 각 장이 나뉜다고 나뉘어지는 부분이 아니었다. 작은 얼개로 보면 에티엔과 카트린의 사랑이야기 이며, 넓게 보면 더 나은 삶으로의 노력실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얼개가 포함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다. 전에 일어난 일이 다음 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게다가 이 책은 주인공 몇명의 감정과 불합리성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이 될 수도 있는 인물들의 상황과 행동까지 빠짐없이 다루려고 노력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의견을 표면으로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좋은 소설이었다. 작가가 표면에 드러나서 말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인물들이 잘못 알고 있었던, 그 시대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서 소설 안에 녹아있기 보다 작가의 무지로서 드러나서 소설을 읽는 데 약간 방해되었다. 이는 작가가 전지적 작가 시점을 활용한 까닭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소설 특성상 전지적 작가 시점 이외의 시점으로는 전개가 어려웠을 것을 감안할 때, 그런 점들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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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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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얇은 책이다. 짧지만 굵다. 유의미의 무의미, 무의미의 유의미. 단순하게 말하여 삶 안의 어떤 것도 무의미하지 않다는 뜻으로 들린다. 단어나 에피소드가 넘치지도 않는다.  문장 하나에 신경을 쓴 티가 났다. 어렵지는 않은데 허투루 넘어가는 것들이 없었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이외의 설명을 보탠다는 것은 식상하고, 재미없다. 작가가 이미 지나치게 명료한 어떤 주제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풀었다.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설명이 될 터였다. 


그래도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라몽의 나르키소스에 관한 언급부터 시작해보고 싶다.


“ 다르넬로를 만나면 보잘것없는 인물이 아니라 나르키소스를 상대하게 될 거야. 이 말의 정확한 의미에 주의해야 해. 나르키소스라는 건 거만한 사람이라는 게 아니야. 거만한 사람은 다른 이들을 무시하지. 낮게 평가해. 나르키소스는 과대평가하는데, 왜냐하면 다른 사람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관찰하고 더 멋있게 만들고 싶어하거든. 그러니까 그는 자기의 거울들에 친절하게 신경을 쓰는 거지.(25p-26p) ”


다르넬로는 책 안에서 나르키소스로 묘사된다. 이 책 안에서 라몽에게 나르키소스인 다르넬로는 ‘위대한 진리의 엄숙함에 애착을 가진 인물(149p)’이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라몽은 다르넬로가 위대한 진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나르키소스이기 때문이라 여긴 것은 아닐까?


“ 스탈린 자신이 답한다. ‘나는 말이오, 동지들, 인류를 위해 나를 바친 겁니다.’ 

모두들 마음이 놓인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 거창한 단어들을 인정한다. 카가노비치는 박수를 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인류가 뭐죠? 전혀 객체적인 것이 아니고 나의 주관적 표상일 뿐, 말하자면 내 주위에서 내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런데 내가 내 눈으로 노상 봤던 게 뭘까요, 동지들? 당신들, 당신들이라고!’ (118p-119p)


이 책에서 나오는 스탈린 역시도 ‘인류를 위해 나를 바친다’라는 개념을 비웃고 있다. 스탈린 본인이 인류라는 것을 주관적인 표상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위대한 진리의 위대함을 뒤집는 발언이다.


농담의 중요성에 대해, 농담은 무의미한 것으로부터 온다는 것에 대해 명료하게 주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중간에 삽입된 것 중 스탈린이 한 농담에 관한 것이다. 스탈린은 자신이 자고새 24마리가 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12발 남은 총으로 자고새를 다 쏘았다고 했다. 그러고서 1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집에 가서 탄창을 가져와 나머지 12마리가 앉아있는 나무를 향해 쏘아 모두 24마리를 잡았다고 말한다. 현대인은 이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웃지만, 그의 측근인 호루쇼프는 스탈린의 거짓말이 역겹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이 이야기를 말하는 등장인물 샤를은 스탈린 주위의 사람들이 농담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기에,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가 도래하였다고 말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위대한 시기라는 단어로 그 당시를 표현함으로써 ‘위대한 진리’를 좋아하는 다르넬로를 조롱했듯 그 ‘위대한 시기’를 조롱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가 무의미가 귀중하다는 것의 증거로 내놓은 다른 예시를 보자. 알랭의 어머니는 알랭에게 말한다.


“저 사람들 전부 좀 봐라! 한번 봐! 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 적어도 절반이 못생겼지. 못생겼다는 것, 그것도 역시 인간의 권리에 속하나? 그리고 한평생 짐처럼 추함을 짊어지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너는 아니? 한순간도 쉬지 않고? 네 성(性)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133p) ”


이것은 다르넬로의 엄숙함과 나르키소스 적인 면을 한차례 다른 예시로 비웃는 대목이다. 책에서 말하고 다르넬로가 좋아하는 위대한 진리는 ‘인권선언문’같은 것인데, 알랭의 어머니가 중요한 것들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권선언문’은 쓸데없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라몽은 다르넬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하찮고 의미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147p) ”


이 대목으로 무의미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못을 박는다. 


책은 이제까지 의미있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한 것들을 무시하고서 그 위에 선 것이었다고 말한다고 여겼다.

각자는 삶을 사는 데 필사적인 투쟁을 하고 있다. 살면서 삶의 불행을 가지고 농담거리로 삼는 사람은 봤어도, 삶의 불행 자체가 없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마 있다고 해도 극소수라서 내 주변에는 없었는 지도 모른다. 굳이 특정지어 마음에 담아둘 대목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 이외의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투쟁을 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어서 게시한다. 


“나는 우리 거리들에 이름을 장식한 이른바 그 위인이라는 자들은 관심 없어. 그 사람들은 야망, 허영, 거짓말, 잔혹성 덕분에 유명해진 거야. 칼리닌은 모든 인간이 경험한 고통을 기념하여, 자기 자신 외에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필사적인 투쟁을 기념하여 오래 기억될 유일한 이름이지. (44p)”



도가철학자들이 무위자연을 말한 것이 생각난다. 모든 것에 가치가 있기에 모든 것에 가치가 없다. 어떤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고, 무의미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인간이다. 더 이상 가치구분의 의미가 없어지는 지점. 그래서 그것을 가치구분하지 않고, 무의미한 존재 그대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지점. 그것이 삶의 축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참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도가도 비상도에 의하면 진리는 '말'로 풀이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것 역시도 모순이 되어버리는 것이 함정일지라도,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걸!) 이제는 너무 자명한 것으로 자리해서 더는 말이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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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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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이 매력적이라 판명되고 그들이 사랑을 받을 때, 그들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주장을 필요할 때 명료하게 할 줄 안다는 점일 것이다. 그들은 특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지만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지를 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편리하게 얻어낸다.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이용할 줄 안다. 세상엔 매력적인 사람들이 많다. 매력적인 사람들은 곧잘 주목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신중한 사람>이라는 단편집에 작가가 자리를 마련한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사랑받기는 어려운 사람들이다. 현실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기에 현실상황에서의 매력적인 사람들과도 대치된다. 자신에게도 답답한 사람이지만, 타인에게도 답답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은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그 이외의 사람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매력적인 사람들은 소설의 주제가 되지 않아도 그들을 분석하는 책들은 시중에 많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이 언급될 때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때 뿐이다. 그렇기에 현실 상황에서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책으로부터도 소외된다. 그들은 소외되기 이전에도 소외되었지만 책으로부터도 소외되었기 때문에 더욱이 소외된 자로서의 자신에 대해 성찰하거나 소외된 자 그대로 있을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소외된 자의 권리가 무시당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소외된 자가 권리에 집중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발돋움 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소외된 사람이 아니다. 

소설이 지목하고 있는 점은 소외된 자들이 소외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식들이 어떻게 그들을 소외시키는 지에 관한 것들이다. 권리를 주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어떤 것을 주장한 만큼 성취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늘상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신중한 사람>단편집에 실린 이야기들이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단지 적극성으로부터 소외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적극성을 가지고 행동을 하지만, 그들의 적극성은 세상과 타협하지도 않고, 세상에 와 닿지 않는다. 그 행동들은 각기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이유들은 <<하지 않은 일>>에 나오는 것처럼 ‘하지 않은 일’이기에 아무리 적극적으로 해명하려 해도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중한 사람>>에 나오는 인물처럼 트러블을 원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마음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병적으로 침해받기도 한다. <<이미, 어디>> 에 나오는 사람은 자신이 존재하던 곳에서 떠난 사람이 되어서 온전하게 있을 공간을 찾고자 하지만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옮겨온 곳에서도 점차 없는 사람이 된다. <<어디에도 없는>> 에 나오는 사람은 자신이 존재하는 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고, 스스로를 여기에 없는 사람이라고 지칭하지만 몸이 있는 곳을 여러가지 조건들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행동할 자유를 잃는다.

이 책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심지어 자신의 권리를 잘 주장하는 사람들도 겪을 수 있는 소외들에 관해 집중하여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매력적이지 않든, 매력적이든 많은 사람들이 소외되는 상황과 비슷하다. 다소 극단적으로 치닫는 면들은, 치우친 것으로부터 더 나아가서 인간의 본연의 모순을 부각시키고 세밀하게 파고든다. 소외된 모습을 거울의 단면처럼 비춘다. 그렇기에 도리어 매력적인 인물들로서 소설을 이어나간다.

‘신중한 사람’에 실린 이야기들은 읽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함은 불편함으로 발전한다. 그가 그린 인물들이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각각의 내용이 삶의 진실을 닮아서 두 번 읽고 싶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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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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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은 이야기꾼의 본질에 충실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이야기꾼으로서 자신이 이야기를 하는 자라는 자각을 서술로서 표출한다. 이야기꾼의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을 적절하게 짜는 것이 중요하다. 모파상의 단편들은 시작부분에서 이야기의 구심점을 소개하고 마무리에서 모두 회수해간다.  

인물이 구체적이고 있을법하다. 생동감과 개성이 강하지만 보편적이다. 인물들은 각각의 상황에서 부당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겪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일들은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고 펼쳐진 채 놓여있다. 인물의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딜레마 상황을 정리하지 않는다. 그래도 뒷 내용이 궁금하지 않다. 시작한 부분에서 생겨난 의문이 마지막 글자를 읽으면서 끝나기 때문이다. 

 

“주제를 막론하고, 모파상의 단편소설들은 인생과 인간성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류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의 속물근성과 위선을 놀라울만큼 예리하게 파헤치고,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정서나 본증에서 우러나오는 충동, 쾌활함, 인색함을 살아 숨 쉬는 듯한 유쾌한 필치로 이야기한다.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는 순정한 남녀를 보여 주고,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일어나지만 이성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섬뜩하도록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옮긴이의 말 - 797 p


작가가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시대상을 넘어서도 현대의 인물과 공통점을 남겨두었다. 그가 떠올린 생각들은 이야기로 만들어져서 하나 하나는 균형점이 안맞지만 단편집에 모여 서로의 단점을 퍼즐처럼 맞추어 균형을 잡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단편 소설 하나를 마칠 때 그가 인간의 딜레마를 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이 자칫 그의 편향된 생각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단편을 통해 그는 단지 인간의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딜레마를 겉으로 드러내고 끝내는 방식을 사용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태양이 한 달 전부터 들판에 강렬한 열기를 쏘아 댔다. 쏟아지는 그 열기 밑에서 빛나는 생명이 부화했다. 땅은 초록빛으로 한없이 길게 뻗어 있었고, 하늘은 지평선 가장자리까지 파랬다. 노르망디 지방의 농장들은 작은 숲의 너도밤나무 띠 속에 갇혀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낡아 빠진 울타리를 열자, 마치 드넓은 정원을 보는 것 같았다. 그곳의 농부들처럼 뼈가 드러난 오래된 사과나무들에 전부 꽃이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갈고리 모양으로 굽고 뒤틀린 오래되고 거무스레한 나무줄기들이 흰색과 분홍색으로 이루어진 눈부신 둥근 지붕을 하늘 밑에 펼쳐 놓았다. 꽃들이 피어나는 달콤한 향기가 열린 축사에서 나는 기름냄새 그리고 암탉들이 잔뜩 앉아 있는 두엄 발효하는 냄새와 뒤섞였다.”

밀롱 영감 355 p


그는 이야기의 배경이나 감정을 잘 묘사했다. 그가 묘사한 것들은 작품의 분위기를 잡은 뒤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밀롱 영감이라는 단편에서는 밀롱 영감이 살고 있는 고장의 모습을 묘사하여 분위기를 잡은 뒤, 반전을 이끌어낸다.  


‘…… 그런데 자네는 저 여자의 야수같은 남편이 저토록 아름다운 아내를 옆에 두고도, 더욱이 과거에 일곱 번이나 그녀를 임신시켰을 정도로 그녀에게 열정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에 와서 아내 대신 타락한 여자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지 알겠나?’

그랑댕이 대답했다.

‘이보게! 아마도 그 이유는 뻔하지 않을까! 그 남자는 자기 집에서만 자면 나중에 매우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마침내 끼달은 거겠지. 다시 말해 자네는 철학적 견지에서 아까 이야기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그 남자는 가정 경제라는 관점에서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 거지.’

쓸모없는 아름다움 756p


 모파상의 단편들은 당연한 것들을 뒤집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크리스마스 만찬을 싫어하는 한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포로가 되고 싶어하는 인물이 얼결에 성을 정복하고 포로로 잡히게 되기도 한다. 훈장을 받고 싶어하는 한 인물은 자신이 노력한 댓가로 훈장을 받는 게 아니라 바람피운 아내의 상대가 손을 써서 손쉽게 훈장을 받기도 한다. 


“ 언니,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사랑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 그리고 그날 밤 언니의 진정한 애인은 달빛이었던 것 같아.”

달빛 213 p


인간을 이해하고자 이유를 찾아가는 도중 떠오른 생각들 중 공감할만한 몇가지 사유들은 좋은 이야기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생각 자체에 몰두하면 이야기의 서사력에 신경쓰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이야기는 서사를 잃으면 생각의 설득력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단편들은 단순한 서사구조 인 것 같으면서도 단서를 치밀하게 제공하기에, 읽고 나면 뻔한 이야기인 듯 싶으면서도 읽는 도중에는 다음 내용을 예측하기 어렵다.

세대가 다른 이야기인데도 재미있는 단편들이었다. 나는 전쟁세대가 아니라 군대 관련된 이야기는 이야기로서 읽었음에도 공감이 되었다. 요즘에도 적용되는 경제적인 문제, 사랑문제 같은 경우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시대가 지나도 빛이 바라지 않는 단편들을 쓴 그는 이야기꾼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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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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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만수라는 인물을 관통하는 한국 근현대사를 보여준다. 이 책은 만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드러낸 만수의 이야기이다. 만수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남이 그를 다층적으로 서술하는 것도 필요하다. 책의 처음 부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면 보여주기 방식을 택하고 있다. 소설은 만수라는 인물의 어깨에 책 속 인물들의 삶이 얹어지는 과정과 결과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공백이 자주 나온다. 문단과 문단 사이 공백이 자주 나오면 내용도 자주 나뉜다는 뜻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문단들은 만수와 관련된 서술들이라 공백으로 나뉘어도 내용이 하나로 모아진다. 공백이 나오고 새로운 서술이 시작될 때마다 만수나 등장인물들에게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인물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들이 압축적으로 제시되는 형식이라, 쉽게 읽히는 한편 흡입력 있는 소설이 되었다. 주변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이 만수의 행동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보여주기에 설명하지 않아도 만수라는 인물에 관한 이해도는 높아진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가지 불행한 사건들이 만수가족이라는 무형적인 마당에 펼쳐진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다가 재산을 모두 말아먹은 만수 할아버지는 살던 지역을 떠나 산골마을로 숨어든다. 수제로 마을에서 칭송받고 집안의 소를 팔아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 입학한 뒤 새로운 문물을 만나서 방황하던 백수는 학비를 벌려고 베트남 파병가서 고엽제때문에 죽는다. 집안의 기둥을 잃은 만수가족은 어느날 유신 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교육을 시키는 것을 보고 분노한 할아버지에 의해 집안의 모든 것들을 팔아 서울로 상경한다. 서울에서 금희는 가족의 삶을 지탱하고 만수의 둘째누나는 연탄가스로 평생 불구로 산다. 금희의 결혼 이후 만수가 가족을 먹여살린다. 만수 동생 석수는 만수의 도움을 받아 대학에 가지만 억지로 군대에 가고 어느 순간 가족으로부터 자취를 감춘다. 만수의 동생 애인이 남긴 아들 태석이는 만수에게 떠넘겨진다. 만수는 공부하고 노력끝에 회사에 취직한다. 만수는 회사와 직원들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그 노력의 댓가는 수억의 빚이었다. 옥희는 자신을 강간한 운동권 남자와 결혼하지만 소련의 해체 이후 목표를 잃고 도박에 빠진 남편과 연을 끊는다. 태석이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여러 인물의 삶으로 그려냈다. 만수가 삶을 살아낼 수 있던 원동력은 그가 살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대하며, 정직하게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지려고 했다. 그런 노력에도 만수는 투명인간이 되고 만다. 


책을 읽으며 투명인간이라는 비유가 너무 직접적이라 생각했다. 제목은 의미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므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서술적으로 ‘투명인간’을 나타내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투명인간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어서 인물의 삶이 억지로 투명인간이라는 개념에 접목되고 있는 듯해보였다. 투명인간이라는 개념은 초반과 후반에만 나왔다. 그의 인생 내내 투명인간이 아니었다. 작가가 현대시대만 투명인간이 새로이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던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은 만수가 투명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삶을 말한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투명인간이라는 개념을 억지로 접목시키지 않아도 이미 만수의 삶은 투명인간인데, 이 텍스트가 특수성을 갖기 위해 투명인간이라는 개념을 이어붙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요즘 세대에 투명인간이라는 서술이 비유어가 아닌 고유어처럼 쓰이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비유의 신선함은 느끼지 못했다. 나는 사실상 지금을 투명인간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남겨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프레임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이름이 남겨지지 않아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건,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 무한경쟁 체제를 거부하는 공동체가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공동체가 살아남지 않았으면 나는 진즉 도태되고 말았을 것이다. 만수는 가족을 그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버티고 살아남았지만 투명인간이 되었다. 책은 사회 현실을 마주보고 바꾸려 하지 않고 개인만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시한다.

책이 가진 의문에 대한 답은 제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작가는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 이후 소설이 위안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나는 작가의 말을 소설이 답을 제시할 수 없는 문제를 던지는 장르라고 여긴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좋은 문제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감동헀다. 관념적이지 않고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소설 장르를 잘 활용했다고 여겼다.

책을 읽으면서 간절히 생각했던 것은.. 그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자신의 일인양 책임지며 살아가려고 한 만수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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