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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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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이 잘 재현된 이야기다. 구성도 매끄럽다. 제르미날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실패의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큰 얼개는 뻔할지라도, 세세하게 짚어낸 구체적인 설정과 행동들이 이 이야기를 뻔한 이야기가 아니도록 만들었다. 전체 서사의 방향을 기억하지만 그 서사 안에서 살아 숨쉬는 개별적인 인간을 모두 존중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책에 나오는 인물을 미화하거나 매도하려 하지 않은 시도들이 곳곳에 보이니 인간적이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이상적인 사회를 향해 노력하는 것에도 모순점이 존재한다는 걸 빼놓지 않고 표현하려 했던 것도 그것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여기 등장하는 부르주아 역시 인간은 끝없이 원한다는 모순때문에 고통받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도 얼마 안되는 살림살이들로도 우열을 가리며 서로를 헐뜯기도 한다는 것들이 인간적이었다. 작가는 그런 묘사를 통해 인간은 어떻게 해도 영원히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인간이 인간답게 노동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작품 전체에서 말하고 있지만 어느 인간도 소외시키지 않는 묘사와 희망을 언급하는 마지막 부분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그의 발밑, 깊은 땅속에는 고집스레 리블렌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의 동료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에티엔은 그의 걸음마다 그들이 따라다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탕무밭 아래에서는 위윙거리는 통풍기 소리에 묻힌 채 허리가 부서져나가도록 일하고 있는 라 마외드의 거친 숨결이 들려왔다. 왼쪽, 오른쪽 그리고 더 먼 곳에서도 또 다른 동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에티엔은 밀밭 아래, 산울타리 아래 그리고 어린나무 아래에서까지 도처에서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또다시, 여전히, 땅가 가까워지는 것처럼 동료들이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또렷이 들려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햇살이 비치는 젊은 아침에 전원이 잉태한 것은 바로 그 소리였다.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 " 제르미날 2 369p-370p


책의 뒷면에 에밀졸라가 빚어낸 자연주의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서 자연주의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자연주의는 야비한 일상적 현실을 묘사한 극단적 사실주의의 한 형식이다. 자연을 유일의 현실로 간주하는 입장으로 개인의 운명은 자유 의지가 아니라 유전과 환경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발전시켰던 문학의 학파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 결과 자연주의 작가들은 인물이 어느 정도 야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정하면서 개인을 내적 혹은 외적 힘의 희생자로 그린다.”([네이버 지식백과] 자연주의 [naturalism, 自然主義] (영화사전, 2004.9.30, propaganda)) 에밀졸라는 책에 잠시 등장하는 인물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내면풍경과 외면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애를 썼다. ‘부르주아’의 입장도 ‘광부’의 입장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추악한 부분과 긍정적인 부분 모두를 서술하였다. 게다가 당시 광부들은 이 책을 읽고 에밀 졸라의 장례식 때 제르미날을 외쳤을 정도로 열광했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회주의 혁명 역시 그 당시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광부혁명과 흡사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총 7부로 나뉘어있다. 1부에서는 광부들이 굶주리면서 부당한 임금으로 광산에서 일하는 모습이 나오고, 2부에서는 광부들의 생활이 얼마나 피폐한지 묘사되며, 3부에는 에티엔이 광부일에 적응해가며 사람들과 친해져서 혁명을 도모하려는 내용이 나온다. 4부는 광부들이 피폐한 생활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파업을 알려주고 실행을 계획하는 장이다. 5부에서는 파업을 실재로 이행하고 6부에서는 파업이 경과한 결과 피폐해진 광부들의 삶이 나오며 7부에선 그들의 파업이 실패한 이후 피폐한 생활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극복하려고 사회적으로 노력할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언급하며 마무리된다. 이렇게 큰 얼개로 나누는 것이 조금 억지스럽기도 하다. 장이 나뉘어있고 분위기는 대략적인 얼개에 따라 나뉘나 그것들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사람의 행동은 각 장이 나뉜다고 나뉘어지는 부분이 아니었다. 작은 얼개로 보면 에티엔과 카트린의 사랑이야기 이며, 넓게 보면 더 나은 삶으로의 노력실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얼개가 포함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다. 전에 일어난 일이 다음 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게다가 이 책은 주인공 몇명의 감정과 불합리성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이 될 수도 있는 인물들의 상황과 행동까지 빠짐없이 다루려고 노력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의견을 표면으로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좋은 소설이었다. 작가가 표면에 드러나서 말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인물들이 잘못 알고 있었던, 그 시대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서 소설 안에 녹아있기 보다 작가의 무지로서 드러나서 소설을 읽는 데 약간 방해되었다. 이는 작가가 전지적 작가 시점을 활용한 까닭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소설 특성상 전지적 작가 시점 이외의 시점으로는 전개가 어려웠을 것을 감안할 때, 그런 점들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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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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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얇은 책이다. 짧지만 굵다. 유의미의 무의미, 무의미의 유의미. 단순하게 말하여 삶 안의 어떤 것도 무의미하지 않다는 뜻으로 들린다. 단어나 에피소드가 넘치지도 않는다.  문장 하나에 신경을 쓴 티가 났다. 어렵지는 않은데 허투루 넘어가는 것들이 없었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이외의 설명을 보탠다는 것은 식상하고, 재미없다. 작가가 이미 지나치게 명료한 어떤 주제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풀었다.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설명이 될 터였다. 


그래도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라몽의 나르키소스에 관한 언급부터 시작해보고 싶다.


“ 다르넬로를 만나면 보잘것없는 인물이 아니라 나르키소스를 상대하게 될 거야. 이 말의 정확한 의미에 주의해야 해. 나르키소스라는 건 거만한 사람이라는 게 아니야. 거만한 사람은 다른 이들을 무시하지. 낮게 평가해. 나르키소스는 과대평가하는데, 왜냐하면 다른 사람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관찰하고 더 멋있게 만들고 싶어하거든. 그러니까 그는 자기의 거울들에 친절하게 신경을 쓰는 거지.(25p-26p) ”


다르넬로는 책 안에서 나르키소스로 묘사된다. 이 책 안에서 라몽에게 나르키소스인 다르넬로는 ‘위대한 진리의 엄숙함에 애착을 가진 인물(149p)’이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라몽은 다르넬로가 위대한 진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나르키소스이기 때문이라 여긴 것은 아닐까?


“ 스탈린 자신이 답한다. ‘나는 말이오, 동지들, 인류를 위해 나를 바친 겁니다.’ 

모두들 마음이 놓인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 거창한 단어들을 인정한다. 카가노비치는 박수를 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인류가 뭐죠? 전혀 객체적인 것이 아니고 나의 주관적 표상일 뿐, 말하자면 내 주위에서 내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런데 내가 내 눈으로 노상 봤던 게 뭘까요, 동지들? 당신들, 당신들이라고!’ (118p-119p)


이 책에서 나오는 스탈린 역시도 ‘인류를 위해 나를 바친다’라는 개념을 비웃고 있다. 스탈린 본인이 인류라는 것을 주관적인 표상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위대한 진리의 위대함을 뒤집는 발언이다.


농담의 중요성에 대해, 농담은 무의미한 것으로부터 온다는 것에 대해 명료하게 주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중간에 삽입된 것 중 스탈린이 한 농담에 관한 것이다. 스탈린은 자신이 자고새 24마리가 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12발 남은 총으로 자고새를 다 쏘았다고 했다. 그러고서 1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집에 가서 탄창을 가져와 나머지 12마리가 앉아있는 나무를 향해 쏘아 모두 24마리를 잡았다고 말한다. 현대인은 이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웃지만, 그의 측근인 호루쇼프는 스탈린의 거짓말이 역겹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이 이야기를 말하는 등장인물 샤를은 스탈린 주위의 사람들이 농담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기에,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가 도래하였다고 말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위대한 시기라는 단어로 그 당시를 표현함으로써 ‘위대한 진리’를 좋아하는 다르넬로를 조롱했듯 그 ‘위대한 시기’를 조롱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가 무의미가 귀중하다는 것의 증거로 내놓은 다른 예시를 보자. 알랭의 어머니는 알랭에게 말한다.


“저 사람들 전부 좀 봐라! 한번 봐! 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 적어도 절반이 못생겼지. 못생겼다는 것, 그것도 역시 인간의 권리에 속하나? 그리고 한평생 짐처럼 추함을 짊어지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너는 아니? 한순간도 쉬지 않고? 네 성(性)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133p) ”


이것은 다르넬로의 엄숙함과 나르키소스 적인 면을 한차례 다른 예시로 비웃는 대목이다. 책에서 말하고 다르넬로가 좋아하는 위대한 진리는 ‘인권선언문’같은 것인데, 알랭의 어머니가 중요한 것들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권선언문’은 쓸데없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라몽은 다르넬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하찮고 의미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147p) ”


이 대목으로 무의미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못을 박는다. 


책은 이제까지 의미있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한 것들을 무시하고서 그 위에 선 것이었다고 말한다고 여겼다.

각자는 삶을 사는 데 필사적인 투쟁을 하고 있다. 살면서 삶의 불행을 가지고 농담거리로 삼는 사람은 봤어도, 삶의 불행 자체가 없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마 있다고 해도 극소수라서 내 주변에는 없었는 지도 모른다. 굳이 특정지어 마음에 담아둘 대목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 이외의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투쟁을 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어서 게시한다. 


“나는 우리 거리들에 이름을 장식한 이른바 그 위인이라는 자들은 관심 없어. 그 사람들은 야망, 허영, 거짓말, 잔혹성 덕분에 유명해진 거야. 칼리닌은 모든 인간이 경험한 고통을 기념하여, 자기 자신 외에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필사적인 투쟁을 기념하여 오래 기억될 유일한 이름이지. (44p)”



도가철학자들이 무위자연을 말한 것이 생각난다. 모든 것에 가치가 있기에 모든 것에 가치가 없다. 어떤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고, 무의미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인간이다. 더 이상 가치구분의 의미가 없어지는 지점. 그래서 그것을 가치구분하지 않고, 무의미한 존재 그대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지점. 그것이 삶의 축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참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도가도 비상도에 의하면 진리는 '말'로 풀이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것 역시도 모순이 되어버리는 것이 함정일지라도,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걸!) 이제는 너무 자명한 것으로 자리해서 더는 말이 필요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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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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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은 이야기꾼의 본질에 충실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이야기꾼으로서 자신이 이야기를 하는 자라는 자각을 서술로서 표출한다. 이야기꾼의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을 적절하게 짜는 것이 중요하다. 모파상의 단편들은 시작부분에서 이야기의 구심점을 소개하고 마무리에서 모두 회수해간다.  

인물이 구체적이고 있을법하다. 생동감과 개성이 강하지만 보편적이다. 인물들은 각각의 상황에서 부당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겪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일들은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고 펼쳐진 채 놓여있다. 인물의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딜레마 상황을 정리하지 않는다. 그래도 뒷 내용이 궁금하지 않다. 시작한 부분에서 생겨난 의문이 마지막 글자를 읽으면서 끝나기 때문이다. 

 

“주제를 막론하고, 모파상의 단편소설들은 인생과 인간성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류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의 속물근성과 위선을 놀라울만큼 예리하게 파헤치고,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정서나 본증에서 우러나오는 충동, 쾌활함, 인색함을 살아 숨 쉬는 듯한 유쾌한 필치로 이야기한다.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는 순정한 남녀를 보여 주고,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일어나지만 이성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섬뜩하도록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옮긴이의 말 - 797 p


작가가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시대상을 넘어서도 현대의 인물과 공통점을 남겨두었다. 그가 떠올린 생각들은 이야기로 만들어져서 하나 하나는 균형점이 안맞지만 단편집에 모여 서로의 단점을 퍼즐처럼 맞추어 균형을 잡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단편 소설 하나를 마칠 때 그가 인간의 딜레마를 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이 자칫 그의 편향된 생각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단편을 통해 그는 단지 인간의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딜레마를 겉으로 드러내고 끝내는 방식을 사용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태양이 한 달 전부터 들판에 강렬한 열기를 쏘아 댔다. 쏟아지는 그 열기 밑에서 빛나는 생명이 부화했다. 땅은 초록빛으로 한없이 길게 뻗어 있었고, 하늘은 지평선 가장자리까지 파랬다. 노르망디 지방의 농장들은 작은 숲의 너도밤나무 띠 속에 갇혀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낡아 빠진 울타리를 열자, 마치 드넓은 정원을 보는 것 같았다. 그곳의 농부들처럼 뼈가 드러난 오래된 사과나무들에 전부 꽃이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갈고리 모양으로 굽고 뒤틀린 오래되고 거무스레한 나무줄기들이 흰색과 분홍색으로 이루어진 눈부신 둥근 지붕을 하늘 밑에 펼쳐 놓았다. 꽃들이 피어나는 달콤한 향기가 열린 축사에서 나는 기름냄새 그리고 암탉들이 잔뜩 앉아 있는 두엄 발효하는 냄새와 뒤섞였다.”

밀롱 영감 355 p


그는 이야기의 배경이나 감정을 잘 묘사했다. 그가 묘사한 것들은 작품의 분위기를 잡은 뒤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밀롱 영감이라는 단편에서는 밀롱 영감이 살고 있는 고장의 모습을 묘사하여 분위기를 잡은 뒤, 반전을 이끌어낸다.  


‘…… 그런데 자네는 저 여자의 야수같은 남편이 저토록 아름다운 아내를 옆에 두고도, 더욱이 과거에 일곱 번이나 그녀를 임신시켰을 정도로 그녀에게 열정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에 와서 아내 대신 타락한 여자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지 알겠나?’

그랑댕이 대답했다.

‘이보게! 아마도 그 이유는 뻔하지 않을까! 그 남자는 자기 집에서만 자면 나중에 매우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마침내 끼달은 거겠지. 다시 말해 자네는 철학적 견지에서 아까 이야기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그 남자는 가정 경제라는 관점에서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 거지.’

쓸모없는 아름다움 756p


 모파상의 단편들은 당연한 것들을 뒤집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크리스마스 만찬을 싫어하는 한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포로가 되고 싶어하는 인물이 얼결에 성을 정복하고 포로로 잡히게 되기도 한다. 훈장을 받고 싶어하는 한 인물은 자신이 노력한 댓가로 훈장을 받는 게 아니라 바람피운 아내의 상대가 손을 써서 손쉽게 훈장을 받기도 한다. 


“ 언니,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사랑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 그리고 그날 밤 언니의 진정한 애인은 달빛이었던 것 같아.”

달빛 213 p


인간을 이해하고자 이유를 찾아가는 도중 떠오른 생각들 중 공감할만한 몇가지 사유들은 좋은 이야기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생각 자체에 몰두하면 이야기의 서사력에 신경쓰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이야기는 서사를 잃으면 생각의 설득력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단편들은 단순한 서사구조 인 것 같으면서도 단서를 치밀하게 제공하기에, 읽고 나면 뻔한 이야기인 듯 싶으면서도 읽는 도중에는 다음 내용을 예측하기 어렵다.

세대가 다른 이야기인데도 재미있는 단편들이었다. 나는 전쟁세대가 아니라 군대 관련된 이야기는 이야기로서 읽었음에도 공감이 되었다. 요즘에도 적용되는 경제적인 문제, 사랑문제 같은 경우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시대가 지나도 빛이 바라지 않는 단편들을 쓴 그는 이야기꾼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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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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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란 본래는 서정시의 한 형식으로, 공상적인 황금시대를 동경하고 평화롭고 소박한 전원생활을 미화하는 내용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목가 [pastoral, 牧歌] (두산백과)


책의 대제목은 1부 기억 속의 낙원, 2부 추락, 3부 잃어버린 낙원 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제목은 미국의 목가가 부서지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책은 ‘스위드’가 왜 미국의 목가를 대표하게 되었는지, 그가 미국의 국가 정세에 따라 어떻게 추락하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한 나라의 문제를 한 가족이라는 틀로 가져온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개인의 문제로 끌고 왔다. 그리고 그 시도는, 절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고전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특정한 시기와 사건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것을 고전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책은 한 시기에만 머물지만 전체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여 인간의 본질을 세밀하게 추적했다.  


"그는 역사에 족쇄로 묶여 있었고, 역사의 도구였으며, 그랬기 때문에 열광적인 존경을 받았다. 만일 그가 1943년의 그 슬프기 짝이 없던 날, ‘하늘의 요새’ 쉰여덟 대가 독일 공군 전투기들에게 격추당하고, 두 대가 대공포에 떨어지고, 또 다섯 대가 독일에서 폭격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영국 해안을 지나자마자 추락한 바로 그날이 아닌 다른 날에 위퀘이크의 농구 기록을 갱신했다면 — 배링어와 싸워 27점을 기록했다— 그런 뜨거운 존경은 받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목가 1 (1부 기억 속의 낙원 17p)


그가 영웅이 된 것도, 추락하게 된 것도 미국의 시대상황에 따라 갈라졌다. 그는 시작부터 끝까지 선의를 가지고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의 선의는 상황이 변하면서 일관되게 행동해도 선의가 아니게 된다. 그의 딸이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의 일환으로 선량한 시민 한명을 폭탄테러로 죽인 이후 그는 추락하게 된다. 그가 가진 아버지라는 관념으로는 그의 딸인 메리를 그가 어떤 행동을 하였든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시민으로서의 그는 살인자인 메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메리를 벗어나 다른 것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결국 메리와 자신의 문제로 돌아와 평생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동생 제리에 의하면 그가 잘못한 것은 단지 주어진 규칙 아래서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형이라는 사람은 늘 모든 것을 매끈하게 다듬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형이라는 사람은 늘 온건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남의 감정을 다치게 할 것 같으면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타협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자족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상황의 밝은 면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야.  … 사회가 뭘 하라고 하건,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예절. 하지만 예절이란 건 형이 그 얼굴에 침을 뱉어야 하는 거라고. 하긴 뭐, 형 딸이 형 대신 침을 배고 있네, 안 그래? 네 사람?(여기서 네 사람은 스위드의 딸인 메리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라는 명목으로 폭탄테러를 하여 죽인 네 명의 사람을 가리킨다 - 리뷰 보충설명 ) 형 딸이 예절을 단단히 혼내줬네.”

미국의 목가 2 (2부 추락 69 p)


제리의 말을 보면, 오히려 스위드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추어진다.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면, 그의 삶이 정말 그른 것인가? 책 속의 작가 네이선 주커먼은 스위드의 고뇌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는 대부분이 질서이고 아주 작은 부분만 무질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는 환상을 만들었는데, 메리가 그를 위해 그 환상을 해체해주었다. 그애가 염두에 둔 것은 특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애는 미국에게, 그녀 자신의 집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미국의 목가 2 (잃어버린 낙원 281p)


소설은 스위드 레보브의 입장에서만 서술되고 있다. 다른 인물들이 어떤 삶을 선택할 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나오는 내용은 현실적이나 비중이 얕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 한 사람의 고난에 집중할 수 있다. 이 말은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였기에 다른 이야기를 하려면 새로운 소설의 장을 열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모의 자기희생이라는 거의 법제화된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서 제멋대로 반항하는 태도를 뽑아버리고, 품위 없는 충동을 모두 지하로 밀어냈습니다. 

우리가 완벽해질 수 있다는 그들의 흔들림 없는 열렬한 환상을 부수고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방황하려면 우리 대부분은 엄청난 용기를 내야 했거나, 아니면 무척 어리석어야 했을 것입니다."

미국의 목가 1 (1부 기억 속의 낙원 73p)


한편으로는 미국의 목가를 설명하기에는 그가 내세운 스위드라는 인물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위드는 유대인임에도 철저하게 미국의 미덕과 이상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 스위드는 설로의 방향을 회전하지 못하고 계속 끝까지 산다. 그러나 이런 그를 미련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영웅으로 받들어준 사회에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선량하게 살고자 하는 규칙을 지켰다. 스위드는 ‘평범한’사람이라는 지키기 어려운 개념을 평범하게 지켜온 사람이다. 


"설령 그들이 합리적으로 또는 요령껏 주장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이 조르는 것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기대를 꺾는 것은 자신의 우월한 힘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이 헌신적인 아들. 남편. 아버지라는 자신의 존재에 환멸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모두에게 아주 큰 칭찬을 받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목가 1 (2부 추락 218p)"


이 소설은 현대식 비극이다.  고대의 어떤 비극은 신이 신탁을 내리고 그 신탁을 피해 선량하게 살았으나 결국 신탁대로 비극을 손으로 빚는 내용 등이 서술된다. 이 책이 서술한 비극은 영웅취급을 받던 평범한(?)인물이 국가 자체의 문제점에 봉착하여 과격한 행동을 한 딸에 의해 살인자의 아버지가 된다. 이 역시 운명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이라 판단할 수도 있지만, 이 운명은 미국이라는 국가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구라도 맞을 수 있다. 이 비극은 신탁이 아닌 국가적인 문제 -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하는 문제 처럼 보이는 - 일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에서 과거의 비극과 차이를 보인다. 


이 소설은 인간본연의 딜레마를 스위드라는 인물로 보여준다. 세상은 무질서와 질서로 이루어져 있고, 질서는 안정감을 주지만 그를 배신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한쪽을 선택하는 게 가능한가?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논리적인 내용이, 다른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논리성이 부족한 내용이 될 수 있다.

딸에게는 베트남 전쟁을 막기 위해 폭탄테러를 한 일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논리적인 일이었다. 온건한 태도로는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전쟁을 계속 이어나가려는 무리의 시선을 끌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위드라는 인물은 정 반대해야 한다면 무력적인 시위보다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시위가 낫다고 판단한다. 그 방법은 평화적인 방법이고, 지금 현재 보유하고 있는 틀을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아무도 다치지 않을 방법처럼 보인다. 성공 가능성은 폭탄테러와 마찬가지로 알 수 없다.

딸이 살인자가 된 것이 확실해진 이후, 스위드 레보브에게 질서는 무질서의 우연적인 산물이 되었다. 시각을 달리하니 모든 무질서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실라는 딸이 없어진 이후 네달 동안 스위드의 정부였는데도 폭탄 테러 직후 그의 딸을 숨겨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실라는 스위드와의 관계를 이어온다. 스위드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배신감을 느낀다. 실라는 스위드를 포함한 모두로부터 스위드의 딸을 숨겨주었다. 실라와 스위드의 신뢰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연이었다. 각자는 각자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의 잣대로 평가하는데도 그 잣대를 서로 알지 못하기에 이어진 신뢰였다. 그걸 깨닫고 난 스위드는 누구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질서와 무질서의 딜레마를 스위드라는 ‘평범하고 영웅적인’ 인물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비극은 느리지만 갑작스럽게 온다. 미국 문명이 '전형적인 미국인' 스위드 로부터 메리를 낳은 것은 없을 일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비극이 될 요소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탄생한 것이었다. 비극을 겪는 메리와 스위드에게는 그건 갑작스럽고 대처할 수 없는 재앙이 되었다. 가치대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비극은 빚어졌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존재하지 않고 무질서만이 존재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비극이 내게 올 경우, 나는 어떤 판단으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나는 청소년기를 제외하고 삶과 질서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온전히 순응한 ‘평범한’사람은 되지 못하였지만, 새삼스럽게 내가 질서를 지키려 노력했다는 것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세상이 만든 기준이외의 나만의 기준이 있으면, 괜찮은걸까. 이 딜레마는 살아있는 한 끝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 같다. 결정내린 것은 늘 번복하게 만드는 삶 앞에서 무엇도 결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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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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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의 핀천


리뷰를 쓰는 동안 친구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내밀었다. 친구는 ‘엔트로피’단편이 인상적이고 좋았다고 했다. 엔트로피를 읽으면서도 나는 던져진 사유를 해석하기에 바빴는데, 그 단편을 좋다고 느낄 수 있었던 친구의 시각이 궁금했다.


“오바드가 담배연기 자욱한 방에서 커다란 종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글을 써나갈 때 그녀의 목은 금빛 활처럼 휘어졌다. ‘젊어서 프린스턴 대학에 다닐 때’ 칼리스토는 회색 털이 무성한 그의 가슴에 새를 꼭 껴안고 그녀에게 받아쓰게 했다. ‘칼리스토는 열역학 법칙을 기억하기 위해 연상기억법을 배웠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 상황은 나아지기는 커녕 더 나빠질 것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는 쉰네살에 기브스의 우주 개념에 직면하자 대학생 때 유행어처럼 했던 말이 결국 예언이었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막대기처럼 생긴 미로 같은 방정식은 궁극에 가서 나타날 우주의 열역학적 죽음을 그에게 미리 알려준 것이었다. 오직 이론상의 엔진이나 씨스템만이 백 퍼센트의 효율이 있다는 것을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고립된 시트메의 엔트로피는 항상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한 클라우지우스의 정리(定理)에 관해서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브스와 볼츠만이 통계역학의 방법을 이 원리에 적용하기 전까지는 그것의 무시무시한 의미가 그에게 전혀 분명해지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는 고립된 씨스템이 은하수든 엔진이든 인간이든 문화든 그 무엇이든 간에, 좀더 확률이 높은 상태를 향해 자발적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그는 환원주의의 오류가 안고 있는 위험을 알고 있었고, 무기력한 숙명론의 우아한 퇘폐에 빠지지 않을 만큼 강하기를 바랐다.”

<엔트로피>117-118p


그는 핀천 작품의 주인공들은 전부 삶의 목적을 상실한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우울증이나 불감증같은 증세를 앓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둘러 싼 환경에는 항상 죽음과 일회적인 쾌락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데 거기서 인간 삶의 유한함을 깨닫든지 너무 늦었다는 것을 후회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엔트로피> 저 부분을 시작하는 문장 “오바드가 담배연기 자욱한 방에서 커다란 종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글을 써나갈 때 그녀의 목은 금빛 활처럼 휘어졌다.” 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복잡한 사유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도 탁월했지만, 그것을 이미지로서 드러내는 것도 잘하는 듯 했다. 


작가서문을 읽었다. 핀천이 직접 자신의 초기 작품을 비평하고 있었다. 겸손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개구리 올챙이적 무시하지 않고 펴낸 책이었다. 내 입장에서 그나마 읽을 만한 단편은 <은밀한 통합>뿐이었다. 다른 단편은 조각조각 파편처럼 흩어진 재료들이 아직 소설이 되지 못하고 지면 위에 남아있을 뿐이라 느꼈다. 그래도 그의 초기 단편은 좋은 사유의 가능성이 돋보여서, 그가 쓴 장편을 보고 싶었다.

그가 작가 서문에서 말한 그대로가 모두 단편안에 드러난다. 그는 그의 단편들에 드러난 오류가 부끄러우나, 초보적 수준의 소설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문제점과 글을 쓴지 얼마 안된 작가들이 피했으면 하는 사례들에 관한 주의를 담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이 단편들이 가끔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우며 무분별해 보이더라도 그 모든 결함이 있는 그대로 여전히 쓸모가 있었으면 하는" 이라는 말로 그 말을 대변한다.

인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대화는 대화가 아니었다. 어떤 행동을 하는데, 그 행동이 와 닿지 않았다. 그들이 그냥 행동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소설 한편이 끝난다. 게다가 갑자기 내뱉는 깊은 사유는 사유 자체를 나타내기 위해 인물을 꼭두각시로 세워놨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전혀 그렇지 않아. 내 말은 폐쇄회로 같다는 거야. 모든 사람의 주파수는 다 똑같아. 그래서 잠시 뒤 나머지 스펙트럼에 대해선느 잊게 되고 이것만이 중요하고 실재하는 유일한 주파수라고 믿기 시작해. 반면에 바깥에서는 대지의 위아래로 기가 막힌 색깔과 엑스선, 자외선들이 펼쳐지고 있어.”

“너는 로치도 폐쇄회로라고 생각하는 거야?”

“맥니스 대학이 세계가 아니듯, 로치도 스펙트럼은 아니야.”

<이슬비>61p


인종차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쓴 문구가 인종차별적이었다. (그러나 더건한테는 근사한 점들이 많았다. 가령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는 백인과 흑인간의 백 퍼센트 결혼을 위해 매진하는 공산주의자 조직이라는 것. 이슬비 43p) <이슬비>에서 여자가 옷을 벗더니 뜬금없이 삽입된 개구리들은 섹스장면을 나타내는 것인가?


“사방의 개구리들은 갈수록 야만적인 합창을 주문 외우듯 읊조렸다. 간헐적이기는 했지만, 그 합창은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작은 손가락들의 뒤얽힘, 큰 맥주잔들의 부딪침, (…) 그녀는 완전히 유린당하지 않은 파시파이처럼 보호감정 같은 것을 유발했다. 마침내 마음이 진정된 두 사람은 바보같은 개구리 울음소리에 계속 시달린 끝에 서로 떨어져 누웠다.” <이슬비>72-73p


 그 이후 분위기로 봐서는, 섹스장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가 역시 그 글들을 보고서는 상황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유가 너무 진지하고 중요해서, 단편들의 단점들에도 읽어볼만한 글이 되었다. 중요한 사유들이 작품 곧곧에 등장한다. 그가 발견한 사유들이 단점을 보완해 발전되었기 때문에 이후 그의 장편들이 대작이 된 것이라 여긴다. 


“왜냐하면 그 자신과 진정한 거짓말의 진실은 근처의 기이한 곳으로 이미 오래전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진실의 범위를 알아차릴 수 있지만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순간, 원자보다 작은 입자를 관찰하는 사람이 관찰행위 자체로 인해 작업, 데이터, 확률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처럼, 관습을 완전히 위반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사물에 대한 관점을 엉망으로 만들 수는 있다.”

<로우랜드> 95p


반면 <은밀한 통합>에서는 이미지들이 연결되고 인물들이 살아있었다. 다른작품들에 비해 문장이 연결되어 캐릭터가 하나로 그려졌다. 인종차별이 심한 어른들과, 그런 어른들 사이에서 흑인 친구 ‘칼’과 놀러다니는 아이들의 대비가 이루어졌다. 그 모임의 대장급으로 나오는 그로버 스노드는 실재하는 인물처럼 생생했다. 


“그는 결함이 있는 천재소년이었는데, 가령 그가 만든 발명품들이 늘 성공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숙제 하나당 십 쎈트를 받고서 모든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해주는 부정한 돈벌이를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매우 자주 드러냈다. 성적이 갑자기 90점, 100점으로 오른 모든 아이들 뒤에 그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똑똑함을 보여줄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는 여지없이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은밀한 통합> 192-193p


그로버는 이제 막 성장하는 아이로 등장한다. 그는 이제 세상에 눈을 뜨고 어른들을 비웃는 단계에 있다. 그로버를 중심으로 모인 아이들은 ‘천재소년’과 함께 그들을 기만하는 어른들의 나쁜 행동들(인종차별등 그들이 나쁜 행동이라고 규정하는 것들)을 비웃고 상상의 놀이친구 흑인 ‘칼’과 돌아다니며 논다. 그들의 놀이는  공장이 가동되고 끝난다. 놀이가 끝나고 그들도 어른들과 같은 사람으로 자랄 것이라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런 다음 밤의 빗속으로, 마침내 각자의 집으로, 뜨거운 샤워, 마른 수건, 잠자기 전의 텔레비전, 잘자라는 키스, 그리고 결코 다시는 전적으로 안전할 수 없을 꿈속으로 까불거리며 걸어갔다.”

<은밀한 통합> 260p



나쁜 말에는 늘 허점이 드러난다. 이런 수준밖에 안되는 리뷰를 쓰는 것이 부끄럽다. 그의 장점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리뷰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른 신간평가단 분들의 리뷰를 읽어봐도 내용안에서 무언가를 건지신 분들이 대단해 보였다. 내 견식적 한계때문에 이 작가의 장점을 잘 발견하여 설명하지 못했다. 

내가 그의 장편을 읽고 핀천의 팬이된 이후라면 내게도 읽을 만한 작품이 될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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