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틈-
시간의 틈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지넷 윈터슨 지음, 허진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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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일은 우연히 일어난다. 미리 계획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일들밖에 없다. 나는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한 블록을 빙 돌았지만 내 발걸음이 집을 향했다. 때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마음이 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p37


이 소설을 만나고 마음에서 떠나보낼때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긴 시간도 아니다. 생각하고 싶은만큼 생각했고, 쉬고 싶은 만큼 쉬었다. 그러면서 살았던 시간동안 쌓은 감정의 더미들을 꺼내보았다. 감정을 내려놓을때는 바른 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어떤 길이든 바른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렇게 생각했다니 스스로도 모순적이라 여겼다. 


그때 이 문구가 들어왔다.

" 쉰 살이 넘으면 우리는 놀라옴 속에서,

또 자살과도 같은 죄의 사함 속에서,

우리가 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것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으며---

더 잘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로버트 로웰 \<셰리든을 위하여\>에서


나는 어떤 한 사람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생각은 너무 많았고, 행동은 자주 성급했다. 돌이켜보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잘 모르겠다. 많은 생각들과 성급한 행동을, 받아들이기 벅찼을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거부했어도, 너의 마음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고백했다. 종종 나는 튕겨져 나갔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친절했고, 경직되어 있을 때도 있었지만, 때때로 홀로 들떠보였다.  나는 그게 무엇때문에 생긴 차이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자주, 그 사람의 행동이 모순이라 느꼈다. 그 사람은 날더러 모순적인 인간이라고 말했다. 함께 즐거운 시간도 많았지만, 고통스러웠던 시간도 길었다. 둘 다 서로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내 온도는 너무 높았고, 그 사람의  온도는 너무 낮았다. 그 자신에 대한 자존감, 기대감이 낮고, 사랑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나는 그의 불신에 종종 휘둘렸다. 결국 그는 바뀌었지만 나는 그를 바꿀 수 없었다. 존중받는다고 느끼지 않았고, 그가 나를 존중하도록 바꿀 수 없었다. 나는 어느새 그가 존중하지 않는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 그를 바꾸는 걸 포기하는 것 말고 답이 없었다.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그 사람을 계속 사랑하지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사람만을 원했던 순간이 내게 주어진 것만을, 감사해야 한다는게 너무나도 비참했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감사해야 했다. 


레온테스

속삭임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뺨을 맞대는 것이? 코를 맞대는 것이? 

입술을 벌려 입을 맞추는 것이? 마구 웃다가

한숨을 쉬는 것이?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발에 발을 얹고 있는 것이?

구석으로 살금살금 다니는 것이? 시간이 빨리 가기를,

한 시간이 1분 같기를 정오가 자정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두 사람만 빼고 모든 이들이 눈병에 걸리기를, 부정함을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다면 이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 역시 아무것도 아니고,

머리 위를 덮은 하늘 역시 아무것도 아니고, 보헤미아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내 아내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p398-p399


LEONTES

Is whispering nothing?

Is leaning cheek to cheek? is meeting noses?

Kissing with inside lip? stopping the career

Of laughing with a sigh?--a note infallible

Of breaking honesty--horsing foot on foot?

Skulking in corners? wishing clocks more swift?

Hours, minutes? noon, midnight? and all eyes

Blind with the pin and web but theirs, theirs only,

That would unseen be wicked? is this nothing?

Why, then the world and all that's in't is nothing;

The covering sky is nothing; Bohemia nothing;

My wife is nothing; nor nothing have these nothings,

If this be nothing.
[http://shakespeare.mit.edu/winters\_tale/full.html]


이 구절을 작가는, 화자가 말 내부에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의미를 심어두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도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부인이 부정하다고 의심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것에 마음이 휘둘렸다. 이 사람이 친구와 부인이 서로 좋아한다고 의심하면서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니, 그리고 이것이 인생이라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어떤 것도 결국은 의미없음이 되어가는 세계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노력일 뿐이라고. 그리고 의미를 찾는 과정중에 있는 동안만 내 생을 살아있는 상태로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나의 사랑을 돌아보았다. 

사랑을 포기하기 전에는 사랑 이외의 모든 것이 의미없었다. 사랑을 내가 못하는 것이었고 노력해서 극복하면 될 것으로 여겼다. 사랑을 포기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해도 안될 일은 안될 일이었다. 남은 건 그를 기다리듯 남은 마음을 정리하는 나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해온 일이었다. 그 일만 내가 할 수 있었다.


인간은 대부분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생각했던 대로 정확히 행동하거든. p245


남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 선택이 잘한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나는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상전벽해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상대가 나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더 품이 넓어져야. 그를 만나든 누군가를 만나든, 새로운 관계가,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 않을까. 어쩌면 이것을 지금 꿈꾸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함께 아침을 맞는 기적이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규정짓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어쩌면 지금 이대로 그날을 맞을지도 모른다. 


퍼디타

곧 우리는 삶을 함께할 것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일을 하러 가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저녁을 만들고, 사랑을 나누어야 하고, 요즘 세상은 순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꿈을 갖겠지만, 과연 이루어질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바로 기적이 일어난 장소임을 잊을지도 모른다. 사용하지 않게 되고, 잡초가 웃자라고, 황폐하고 방치된 순례지. 어쩌면 우리는 함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이 어쨌든 너무 힘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은 영화에나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어서 이미 일어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까지 부인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곳에 절대로 없었음을 증명하는 알리바이를 찾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어쩌면 날씨가 좋지 않은 어느 날 밤, 당신이 내 손목을 지나치게 꽉 잡고, 나는 손전등을 들고 빗속으로 산책을 하러 가고, 바람을 막기 위해서 옷깃을 세우고, 어둠 속에는 별이 없고, 새 한마리가 깜짝 놀라 산울타리에서 튀어나오고,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물웅덩이들이 번들거리고, 저 멀리 큰 도로의 소리가 들리고, 하지만 여기에는 밤의 소리와 내 발소리와 내 숨소리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때 나는 기억할 것이다, 역사는 스스로 반복되고 우리는 항상 추락하지만, 내 안에는 역사가 담겨 있고 내가 잠시 과거에 다녀와도 아무 흔적도 남지 않지만, 나는 알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알았었음을. 거칠고, 존재할 것 같지 않고, 판에 박힌 모든 것을 거스르는 어떤 것을 알았었음을.

뒤집힌 배에 남아 있는 공기처럼.

사랑. 그 크기. 그 규모. 상상할 수 없는. 광대한.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 서로를 향한 우리의 사랑. 진정한. 그래. 나는 비록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들고 길을 찾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 바로 이 사랑의 목격자이자 증거다. 

내 삶의 작디작은 원자. p400-401\<시간의 틈\>


나는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내 인생의 시간 일부를 점유한 그 사랑을 기억한다. 어느 순간에는 그 사랑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했던 기억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고, 이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할 방법도 배웠다. 나는 이 일을 내 몸에서 새로 생긴 습관에서 찾을 수 있지만, 어쩌면 내 몸이 땅에 묻혀 썩는 순간에는 이 모든 일들이 다 사라질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고, 그것들도 오랫동안 전해져내려오는 순간 희석될 것이다. 내가 나였던 증거도 이젠 내가 없으므로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지만. 그래도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그럴 미래와 그랬던 과거를 추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내게는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는 기적이 남아있고, 그 기적에 흠뻑 젖어 만끽하고 싶다. 때때로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는 것마저도 쉬고 싶을 때는 쉬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 기적이 본디 어떤 맛이었는지도 모르고, 어떤 맛이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기적을 기적으로 맞아들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것도, 삶이 어떻게 추락하냐에 따라서 자꾸 빛깔을 달리할 것을 ,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나는 어렴풋이 안다. 그 앎이 뒤집힐 날도 고대한다. 


>이 책은, 추상적으로 쓰여진 시를, 작가의 시선에서 연출한 하나의 극이라는 역자의 표현에 공감한다. 빠른 서사와, 전체를 아우르는 시선이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다만 쓰여진 인물이 다각적인 인물이 아니라서, 인물 자체에서 풍겨나오는 사실성이라든가, 그것들이 부딪치면서 생기는 깊이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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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08-17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형철 평론가가 영화 <박쥐>를 평하던 문장이 떠오르네요. ˝참으로 사랑이라는 것은 눈빛을 섞고 몸을 섞고 심지어 피마저 섞어도 뜻대로 안 되는 사업인 것이군요.˝

위 문장에서 ˝마음˝이 빠져 제가 덧붙이자면, 사람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라 우리는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운명인 것인지도요.

우끼 2016-08-24 01:20   좋아요 1 | URL
애달프게 그리워하고 좋아하던 마음은 어디 갔는지,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치고 있는 제게 남은 것은 사람을 만나도 기대하지 않게 되는 공허함 뿐입니다. 저는 이 상태를 바라왔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사랑이 지속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아무리 그 순간엔 어떤 인생이든 좋으니 그 사랑에 빠져있을 수만 있다면 좋다고 여겼을 지라도... 환각처럼 깨어나는 순간이 올테죠. 제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만 ㅜㅜ
영원히 살 수 있었다면, 그토록 간절하게 사랑을 도피처마냥 활용하려고 했을까 싶기도 하구요. 단지 죽음을 핑계삼아 영원함을 쫓을 수는 없는 거니까요.. 불가능을 쫓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무리 발버둥쳐도 뒤바꿀 수 없는 세상의 온갖 결과들을 한순간에 경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움직여야 하고, 그래도 다른 생각을 해야하고, ... 그 순간에 읽어서인지 달몰이가 피로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자꾸만 생각하게 하고, 불가능에서 또다른 가능을 찾게 하고,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이렇게 피를 다해 쓰여진 글이 아니라면,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요즘 부쩍 제 글들이 가리키는 지점이 얄팍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전엔 그렇게 생각했어도 시간에 쫓겨서 글을 썼지만. 지금은 그렇게는 쓰지 않고 싶다 하는 생각으로 계속 무한정 글쓰기를 미루고 있습니다... ㅜㅜ 이 단계도 다시 넘어서야겠지요 ..

AgalmA 2016-08-24 0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키님 글을 한 번도 얄팍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한계란 건 누구나 느끼며 누구에게서도 보이죠. 자신의 한계가 느껴질 때 누구는 더 나쁜, 누군가는 더 성숙해지는, 선택의 문제는 남겠죠.
영원히 산다면 사랑에 대한 기대는 더 없을 걸요? 더많은 걸 겪고자 하고 생각하고 해결하려 들거나, 모든 걸 놓거나 그러지 않을까요.
요즘은 그래요. 쫓아가기 때문에 불가능이 느껴지기보다 거대한 벽처럼 언제나 거기 있어 그것을 어쩌지 못하는 걸 절감하기에 불가능을 느끼게 돼요.

달몰이는 온통 잠언이라 잠수해서 들어가는 기분. 스스로의 생각과 글을 고민하게 되는 책이긴 하죠. 하지만 우린 조에 부스케가 아니잖아요. 그만의 특별한 고통을 가질 수 없으니 그런 특별한 글을 쓰긴 힘들죠. 비교하며 절망하는 건 욕심일지 몰라요. 이미 자기 자신으로 살기도 벅차지 않습니까.

공허는 소리없이 오는 마취제 같죠. 살아가기 위해 사람이든 글이든 욕망이든 부여잡는 걸 테죠. 그런 과정을 통해 평생 우리는 담담해지는 걸 배우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저 있음으로. 있었음으로. 마침내 없음으로.

우끼 2016-08-24 03:1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힘이 됩니다. 징징거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징징거린거군요... ㅠㅠ 어쩔 수 없이, 이런 제 자신을 보면 `불가능`의 벽을 마주합니다. 지금으로선, 그 벽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벽이 제게 벽으로서 존재할 때 저는 또 좌절하겠지요.. 도스토예프스키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건, 제게는 불가능이 아닌 친구인 것이 그에게는 불가능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토록 집요해질 수밖에 없었나. 그렇게 질문해야만 살 수 있는 일이었던 까닭이 무엇일까 아직 궁금합니다. 제가 그의 자의식처럼 생각하며 세상을 살아간다면, 금새 제정신을 잃을 듯 한데.
그의 책 `악령`을 처음 접했을때, 그건 분명 번역본이라서, 문장이 비문투성이었는데도 그걸 읽고 온통 부끄러웠습니다. 책을 덮고도 1년간을 다시 책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마치 책에 독이 발라진 것처럼 느껴져서요..
`불가능`을 실현한 누군가를 모델삼아, 계속 욕망의 길을 달릴 동력을 제공한 건 그라고 생각합니다.. ㅜㅜ 그의 덕이 크죠. ... 이렇게 말하고서 아침이 되면 또 돌이켜 후회할까요 ㅠㅠ 순수한 마음은 표현되기 이전에만 순수하니..

2016-08-24 0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25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