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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제국 -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기록한 우리 시대 음식열전!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0년 5월
평점 :
흔히들 식사를 할 때에는 맛있게 먹어야지 배고파서 먹으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 난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게 식사를 많이 해왔다. 맛보다는 당연히 시간이 되면 먹어야하는 욕구충족의 일환으로 식사를 해온 것과 같은 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먹었던 식사들이 맛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맛있게 먹었던 기억보다 배고파 견디지 못해서 먹었던 기억이 더 많을 뿐이다. 식사나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는 것은 그 시간을 즐긴다는 말과 동일한 말일 것이다. 그에 빗대면 나는 많은 시간동안 즐기는 식사를 해온 것 보다 살기위한 식사에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식사를 즐기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식사속에 숨겨져있는 맛의 묘미를 느끼고 아는 것이다.
[미각의 제국]은 이런 식사속에 숨겨진 맛의 묘미를 절묘하게 이끌어내고 있는 책이다. 일반적인 요리책과는 달리 그림도 별로 없고 조리법도 없지만 머리속에 음식의 맛을 이끌어내는 글의 힘을 가졌다. 우리가 흔히 식사에서 즐길 수 있는 일상음식들을 중심으로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 사실이나 저자 자신이 느꼈던 맛과 진정한 음식의 맛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통렬한 비판과 함께 사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딱히 구체적인 분류는 피하고 있으나 어느정도 책을 읽다보면 공통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 크게 양념류, 식재료, 과일, 요리, 차의 다섯가지 부분으로 맛의 중심을 이야기한다.
식사를 맛보다는 배고픔의 도구로 이용하는 나에게 이 책은 맛이 무엇인지를 잘 일깨워주는 선생님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맛을 결정하는 양념류 부분에서는 많이 느껴왔던 맛에 대한 비판이 '오~'라는 놀람보다 '이런'이라는 무지함을 깨우치게 해주는 장미꽃의 가시와 같은 역할을 했다. 가령 참기름에 대한 비판을 보면 참기름을 '단 한방울로 모든 맛을 평정하는 한국음식의 독재자'라는 글로 의문을 가지게 했다가 참기름이 식재료의 맛을 감추는 부분을 읽었을 때는 마치 그 맛이나 향에 익숙해있던 나의 미각이 너무나 당연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게 끔 해주었다.
맛에 대한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에서도 거침없는 글로 표현하는데 맛은 미각에만 있는 것이 아닌 향을 중심으로 한 후각에도 많이 집중되어 있으며 이런 후각을 중심으로 한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음식을 만드는 재료 각각의 향을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것도 말하고 있다. 또한 음식을 세부적으로 분류해서 같은 음식이라고 불리우는 것에 대한 고정된 시각을 변화시켜주고 있다. 음식의 분류에 있어서는 이름의 통일성보다는 맛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 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말하고 있는데 흔히 알고 있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도 냉면이라는 이름에 중점해서 같은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런 분류는 진정 맛을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정말 세밀하고 명확한 분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든 글들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은 음식을 만드는 재료의 맛은 사라진채 편리함만을 추구하여 음식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비슷한 맛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점을 든 것이다. 화학조미료, 강한 짠맛, 단맛, 매운맛(?)등 음식의 재료에 따라 맛의 다양성이 존재해야 함에도 간편함과 단순함 그리고 속도감을 음식의 맛에도 적용시켜서 진정한 맛을 즐겨야하는 시간을 줄이고 생존의 욕구로 음식의 맛이 사라지게 되는 현상을 저자는 너무나 답답하고 아쉬운 글들로 표현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옛맛이 변화하는 것에는 안타까움이 많다. 그러나 그런 옛맛을 지키는 것 또한 음식의 진정한 맛을 되살리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기계화로 음식들이 대량화 되면서 없어지는 맛에 대한 부분은 마치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게 변해 버린 고향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그만큼 지켜야 할 것은 지켜내야하는 것이 바로 맛이다. 책에서는 맛을 지켜야 하고 진정한 맛을 느끼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 지를 진실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냥 읽고 지나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의 진정한 맛을 알기 위해서 많은 지식들을 보여주는 이 책의 힘은 실로 놀랍다. 음식자체에 대한 비판과 맛의 표현뿐만 아니라 그 음식을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재료에도 그 맛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많이 묻어나있다. 그 표현이 지금껏 내가 먹어왔던 음식에 대한 당연한 끄덕임을 멈추게 만들어주고 음식과 그 속에 느껴지는 맛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는 좋은 계기가 된 것 만 같아 너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