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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그동안 장영희 교수의 책을 거의 다 읽어왔다. 맨처음에는 제목이 너무 좋아서 읽다가 나중에는 내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계속적으로 읽어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장영희 교수가 작년에 병으로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 그분의 새로운 글을 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잊고 지내오다가 1년이 지나고 그분의 1주기를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나온 이 책이 그분의 1주기 기념 작품이다. 그동안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글들을 모아 그분의 마지막 향기를 옅볼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그분은 비록 세상에 없지만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글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동안 여러 책에서 소개해온 영미시산책, 문학의 해석, 자신만의 에세이를 이번 1주기 책에서 모두 느낄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분의 글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의 고통과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숨김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거기에다 문학의 지식을 보태어 그냥 흘려보낼 글들이라기보다는 생각과 지혜를 남겨둔다. 또한 영문학자라는 자신의 위치에서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스승이라는 위치에서, 오랜 삶을 살아온 인생 선배로서, 조카를 사랑하는 이모의 입장에서 풀어나가는 글들이 편안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세가지 질문]이라는 것을 보면 일상에서 느낀 것에 문학적 내용을 보태어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느껴야 하는 지를 알려주려고 한다. 47p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행하는 선으로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의문점으로 남기며 독자에게 던져주는 마지막 글귀는 '뭐 한번 속는 셈치고 해보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설득력을 내포하고 있는 느낌이다.
또한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글의 내용은 조카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고 마음으로 응원하는 이모의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이 단순히 조카에게 속하는 내용이기 보다는 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는 세상의 젊은이들에게 보여주는 응원의 메시지라서 비록 상황이 똑같지 않을 지라도 많은 위로와 응원이 되는 듯하다.
선생님이라는 진로를 망설이고 있는 제자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무엇이 진정 옳은 길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71p -뭐니뭐니해도 핏줄 나누지 않은 관계 중에서 제일 가깝고 좋은 것은 스승과 제자 관계인 것 같아-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선생이라는 느낌보다는 타인으로 부터 느낄 수 있는 선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 말은 교육적 현실에서 무엇이 중요한 지를 마음으로 내비치고 있는 듯 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에서의 일들 또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불편한 몸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을 자신만이 겪었던 주관적인 경험으로 지나치기보다 공통의 객관적인 경험이 되고 있음을 공감시키는 부분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한 것 같다. 85p -정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고, 너무 극적인 비약인지 모르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목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에 대해서 삶을 더 고귀하게 느끼고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한 요소인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해준다. 그런 과정 속에서 미국으로부터 장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 지도 함께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의 문제를 던져주기도 한다.
에세이부분을 지나면 영미시산책이 나오는데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여러 영미시를 소개하면서 그 속에 담겨진 작은 교훈들을 산뜻하게 풀어나가는 것도 매우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분이 마치 영미시가 된 것과 같이 함께 호흡하고 느끼는 부분이 글속에 많이 묻어나 보인다.특히 191p -불가에서는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들판에 콩알을 넓게 깔아놓고 하늘에서 바늘 하나가 떨어져 그중 콩 한 알에 꽂히는 확률이라고 합니다. 그토록 귀한 생명 받아 태어나서, 나는 이렇게 헛되이 살다 갈 것인가- 라고 말하는 부분은 현시대 속에 담겨있는 목숨의 사소함을 반성해야함을 보여주는 멋진 글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가 하는 작은 일들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힘이 되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큰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스스로를 버리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가슴 깊이 생각해봐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영미 시에서 밝히는 5월에 대한 그분만의 생각은 이 책의 제목을 짓는데 결정적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피천득 선생의 [오월]을 보여주며 스스로도 5월 속에 남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는 그분은 영원히 5월 속에 잠들었기 때문이다. 5월에 잠드신 아름다운 그분을 영원히 기억하면서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