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다녀오던 날 벌교 근처 도로에서 전엔 없던 이정표가 자꾸만 눈에 띄었다. 이정표 색깔이 빨간색이라서 특이하다 싶은 생각으로 자세히 보았더니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태백산맥>이라는 글자를 읽는 순간 결혼식이고 순천만이고 당장 저기 먼저 가자고 하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았다.

결혼식 끝나고 순천만에서 자꾸 시간을 보내는 남편과 아이들을 재촉했는데도 5시가 넘어 문학관에 도착했다. 관람 마감 시간이 다 되어 도착한  문학관 주변엔 벌써 어스름이 깔려 있었다. 입구에 개관식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보니 개관한 지 한 달밖에 안 되었지만 앞으로 인기 문학 기행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벌교는 시골 어디서나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작은 읍이다. 그런데 이런 소읍에 안 어울리게 제법 큰 규모의 기차역이 있다. 지금은 그리 많은 사람이 이용할 것 같지 않은 기차역은 벌교의 옛 영화를 잘 보여주는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일제 시대 벌교는 육지(보성, 화순, 고흥)와 바로 연결되는 포구여서 일본인들의 배가 득실거렸고, 시골에 어울리지 않게 주재소가 아닌 경찰서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돈이 돌았고, 인구 또한 많았다는 얘기다.

  벌교 제석산 자락 나즈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문학관 건물이다. 논과 밭,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에 들어선 이 초현대식 건물이 통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태백산맥>의 배경을 생각하면 아주 적절한 장소구나 싶었다. 그동안 벌교 근처를 지날 때마다 벌교 꼬막이나 짱뚱어 먹을 생각만 했지 <태백산맥>이 태어난 동네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결혼 생활 10년의 후유증이다. 


"문학은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문학관 이름 아래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문학의 덕을 아주 많이 본 이들 중 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이 문구를 읽으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직 <태백산맥>을 모르는 딸아이가 불만 섞인 얼굴로 따라 들어왔다가 대형으로 만들어놓은 책 앞에서 웃음보를 터뜨렸다. 만화 <태백산맥>까지 나왔으니 언젠가 딸아이도 읽을 기회가 오겠지 싶다. 

      올해(2008년)로 조정래 선생이 <태백산맥>을 집필한 지 20년이 된다고 한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 <태백산맥>이 나올 때마다 달려가 책을 사고 밤새워 읽으며 토론을 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학교 선배였던 탓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선생의 열기는 더 뜨거웠다. 그런데 지금 선생은 모교의 석좌 교수가 되어 있고, 나는 당시 선생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세월 참!!!

<태백산맥> 1권부터 10권까지 집필한 원고 분량인 1만 6천 5백 매를 쌓아놓았다. 내 키보다 훨씬 더 높았다. 1983년에 시작해서 1989년에 완성되었으니 6년이 걸린 셈이다. 해방 직후부터 분단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태백산맥>. 군사독재 시절이던 당시는 분단 소설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이적성 시비와 협박 전화에 시달렸고, 유서까지 써놓았을 정도로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선생이 <태백산맥> 집필을 위해 취재 다닐 때 입었던 옷과 집필할 때 썼던 일등공신 만연필이다. 처음엔 볼펜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자꾸 볼펜 찌꺼기가 나오는 바람에 이 만연필을 쓰게 되었다고. 너나 할것없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쓰는 요즘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어난다.

 

  
선생의 꼼꼼한 메모들. 이 한 장의 메모가 한 권의 책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식인 출신 염상진과 그를 따르는 하대치, 또다른 지식인 김범우, 이성적인 국군장교 심재모, 우익 청년단장 염상구, 소화, 외서댁... 이들이 엮어내는 민중의 이야기가 이 작은 수첩 속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1984년에 직접 그린 자화상. 30분간 그렸다고 한 걸 보니 선생은 그림 실력도 빼어난 듯하다.   


문학관은 2층까지 있었는데 문 닫을 시간이라고 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1층만 관람하고 나왔다. 2층에는 작가의 방이랑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데 언제 근처를 지나다 한 번 더 들러야 할 모양이다. 문학관을 나와 걷다 보니 위쪽으로 서 있는 관광안내도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태백산맥>과 관련된 벌교 주변 장소들이 나와 있다.


      들녘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제석산 초입에 우뚝 서 있는 이 집의 정체는 바로 현부자네다. 소설 첫 장면에 등장하는 현부자네는 소화와 정하섭이 애틋한 사랑을 나눈 장소로 책을 읽은 이라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현부자네 전속 무당 월녀와 소화가 거처하던 곳이다. 나무 기둥이 아직 뽀얀 걸 보니 소설 내용에 따라 현부자네 맞은편에 새로 지어놓은 듯했다.



버리고 기쁨을 얻는 곳! 어디일까? 정답은 아래 사진에 있다.



화장실 안내판을 보며 두리번거리다 눈길이 머문 곳.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빨치산들의 은신처 비트를 본따서 만든 화장실이다. 나를 비롯해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는 이들 중 누가 겉만 보고 이곳을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네비에 태백산맥 문학관을 쳤더니 문학관 검색은 안 되고 태백산맥 화이트하우스라는 게 나왔다. 이곳에 가서 보니 문학관 맞은편에 있는 식당 겸 찻집의 이름이었다. 배가 고팠다면 들어가서 보리밥 한 그릇쯤 먹었을 텐데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어서 그냥 지나쳤다.   

    80년대 후반 서로 다른 장소에서 <태백산맥>을 읽었던 우리 부부. 20년이 지난 후 <태백산맥>을 추억하는 문학관 앞에 서서 이런 사진을 찍을 줄은 정녕 몰랐었네! 

위치 : 전남 보성군 벌교읍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전화 : 061-858-2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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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12-2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소나무집님 반가워요~
태백산맥을 읽은뒤 보성, 벌교 다녀온적 있습니다. 아련한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문학관 꼭 가보고 싶어요.

소나무집 2008-12-28 16:0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이런 페이퍼 읽고 반갑다 하는 걸 보니 우린 같은 세대가 확실해요, 그죠?

순오기 2008-12-25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5월에 태백산맥 문학기행을 갔을 때 막 짓고 있더군요. 그해 가을에 개관한다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 1년이나 늦어서 개관했어요.ㅜㅜ
바로 그 앞에 현부자집이 있잖아요~ 작년에 찍은 사진이 커서 올리려먼 전부 줄여야 해서 못 올리고 있는데, 소나무집님 덕분에 문학관도 구경했네요.
조정래선생님과 같은 학교 나오셨군요~ ^^

소나무집 2008-12-28 16:09   좋아요 0 | URL
역시, 순오기님이에요. 벌써 다녀오셨군요.
제가 분명 태백산맥을 사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책이 어디로 갔는데 없네요.

무스탕 2008-12-26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백산맥 읽는동안 입에 전라도 사투리가 배서 애먹었었죠 ^^;
소화네집에 저렇게 눈에 보여지니 신기하기도 하고..
일부러 찾아가기엔 참 먼 거리고 ㅠ.ㅠ 시댁 내려가는 길에 어떻게든 시간 내서 가봐야 겠어요 ^^

소나무집 2008-12-28 16: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집을 실제로 보니 저도 감회가 새로웠어요.
꼭 한 번 가보세요.

세실 2008-12-26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책 골라주세용~~
http://blog.aladdin.co.kr/trackback/borim/2478991

소나무집 2008-12-28 16:11   좋아요 0 | URL
네.

전호인 2008-12-26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태백산맥의 유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왔군요. 태백산맥을 통해 보성을 알고 벌교를 알고 그곳의 뻘을 알게 되었지요. 아마도 80년대 시대에 감명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저와 별반다르지 않겠죠? ^*^

소나무집 2008-12-28 16:15   좋아요 0 | URL
유물까지는 아니고 그냥 추억하는 장소로 보면 될 것 같더라구요.
님도 저와 같은 세대임을 확신...

아영엄마 2008-12-27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책이랑 모빌 잘 도착했어요. 감사 포스터는 조만간 올릴께요~.
남편에 이어 둘째가 열감기에 걸렸네요. 가족 모두 건강 유의하시길~~

2008-12-28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흑두루미 이야기

일요일에 여수에서 직원 결혼식이 있었어요. 완도에서 여수까지 세 시간. 정말 가기 싫었어요. 지난 주에 친정 갔다 온 여독도 다 안 풀렸는데... 혼자 가기 싫은 남편이 순천만에 흑두루미가 와 있다고 아이들을 꼬시는 통에 저는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네요.

작년 봄에 가본 초록색 갈대가 있는 순천만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더군요. 그리고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주차장엔 관광 버스가 수십 대였고, 그 넓은 갈대밭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어요. 편의 시설도 많이 생겼구요.

  들어가는 입구에 새로 생긴 찻집입니다. 추울 땐 여기 들어가서 따뜻한 차 한 잔 하면 좋겠다 싶더군요.

  이 기차를 타고 갈대밭을 한 바퀴 돌 수 있대요. 피곤한 참에 편안하게 한 바퀴 돌고 싶었는데... 결혼식장에 갔다가 네 시 넘어 오는 바람에 표가 매진돼서 못 탔어요.


요게 갈대랍니다. 절대 억새랑 헷갈리지 마세요.(갈대는 주로 염분이 있는 물가에서 자라고, 억새는 야산이나 들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갈대꽃(실제로는 민들레 홀씨와 비슷한 상태의 씨앗)이 많이 진 상태라서 좀 허전해 보이는 갈대밭이었어요.








철저한 우리 서방님은 사무실에서 필드스코프(조류 관찰용 망원경)랑 쌍안경까지 빌려왔더군요. 요걸로 보니 점처럼 보이던 흑두루미가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였어요. 털색깔이랑 무늬까지 보이던 걸요. 우리 딸은 요걸로 새를 관찰하고 나서 조류학자가 되고 싶은 꿈이 하나 더 생겼을 정도랍니다. 딸아, 멋지기는 하다만 돈 안 되니까 그 꿈 접어라잉~





아들도 신이 나서 쌍안경으로 뭔가를 보고 있네요. 망원경으로는 주로 새를 보았어요. 오리, 도요새, 갈매기, 왜가리, 흑두루미 등. 망원경으로 보니까 그냥 스쳐 지나갔을 생명들이 다 보이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적금(?) 들어서 망원경 하나 장만해야 할까 봐요.

흑두루미는 세계적으로 2천 마리 정도밖에 없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한 몸인데 올해는 순천만으로 250마리 정도가 날아왔다고 하네요. 나머지는 모두 일본으로 날아가서 겨울을 보낸대요. 흑두루미는 따뜻하고 먹이가 많은 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시베리아로 날아가서 새끼를 낳는대요.

순천만의 갯벌과 주변의 논은 흑두루미에게 풍부한 먹이를 제공하기 때문에 해마다 겨울을 보내러 오는 개체수가 늘어가고 있대요. 좋은 일이지요? 어쩌면 순천만 갯벌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될지도 모른대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요.



아들이 찍은 오리 사진.



도요새랑 갈매기가 보이네요. 망원경으로 보니까 도요새(남편 말에 따르면 마도요)가 구멍 속에 부리를 넣고 먹이 사냥하는 것까지 다 보여서 정말 신기했어요.



요 갯벌에 짱둥어랑 게가 아주 많이 산대요. 작년 봄에 갔을 때는 짱둥어랑 게도 많이 보았는데 추우니까 모두 뻘 속에 들어갔는지 하나도 안 보였어요. 짱둥어는 갯벌 속에서 겨울잠을 잔답니다.



날도 흐리고 썰렁했지만 새를 관찰하는 재미에 즐거운 하루였답니다.


  나무 사이로 넘어가는 해가 아름답지요?

사실 저는 완도를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예요. 너무 시골이다 보니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고 남편에게 투덜대곤 해요. 하지만 이렇게 한두 시간만 투자하면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매력에 그럭저럭 살고 있답니다.

서울 살면 평생 한 번 가볼까 말까 한 곳을 2년 사이에 정말 많이 가 봤어요. 요 대목에선 남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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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향으로 돌아가는 흑두루미 이야기
    from 소나무집에서 2009-02-24 09:15 
    몇 년 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무렵 도서관에서 빌려다 본 적이 있는데 그 후로는 잊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작년 순천만에 갔을 때 불현듯 이 책이 생각났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주문을 했다. 내가 왜 여지껏 이 책의 존재를 떠올리지 못했던가 책망까지 하면서...  내가 순천만에 가기 전에는 별 느낌이 없던 두루미가 갑자기 내 새끼라도 된 양 애정이 가기 시작했다. 책을 한 번 읽었는데도 쉽게
 
 
Forgettable. 2008-12-16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순천만은 정말 가고싶은 곳 중에 하나인데요 ㅠㅠ 부럽습니다! ㅎㅎ 서울에서 가기엔 1박2일도 너무 짧아요 ㅠ

소나무집 2008-12-19 09:34   좋아요 0 | URL
꼭 한 번 가 보세요.
서울에서 오려면 오는 데 가는 데 이틀이죠?
갈대와 갯벌과 짱뚱어와 흑두루미를 다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흑두루미는 겨울에만 오는지라 시간을 잘 맞춰야 할 것 같아요.

miony 2008-12-16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퓨터에 문제가 있는지 사진이 안 보여서 정말 아쉽네요.
순천까지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만6년이 넘도록 살고 있는데 아직도 가보고 싶어하고 있어요.
남편이 은행에 다니러는 순천에 가도 순천만에 데리고 가는 일은 없었네요.
이제 막내가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언제쯤 가보려나,,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소나무집 2008-12-19 09:35   좋아요 0 | URL
잠깐 뭔 문제가 있었나 봐요.
나중에 들어와 보니 다 보이네요.
은행 갈 때 꼭 한 번 가보세요.
내년 봄즘에 아기 유모차에 태워서 가시면 될 것 같은데...

무스탕 2008-12-17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두루미 일본으로 날아가는 하늘에 이정표를 만들어서 우리나라 순천만으로 모두 유인했으면 좋겠네요 ^^;
'흑두루미 환영! 살기 좋고 먹이 많은 순천만으로!!' 요런거. ㅎㅎ
저도 순천만이라고 딱 꼬집기 보다는 철새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에가서 그 애들 먹고 노는것 구경해 봤으면 좋겠어요.. ㅠ.ㅠ

소나무집 2008-12-19 09:36   좋아요 0 | URL
일본으로 가는 흑두루미 유인하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네요.
실제로 유인하기도 하나 봐요. 논에 벼이삭을 일부러 깔아놓고 그런대요.

BRINY 2008-12-18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 3년쯤은 해남 그런데서 일하면서 살아봤음 좋겠어요...
할아버지께서 예전에 해남 어딘가의 고등학교에 근무하셔서 겨울방학때 놀러갔었을 때 참 좋았어요. 무척 추웠지만, 근처 바닷가에서 자연산굴도 주워먹어보고 목화 말리는 것도 보고 밤에 별들이 쏟아질 거 같은 은하수도 보구요.

소나무집 2008-12-19 09:38   좋아요 0 | URL
선생님이시니까 가능하지 않나 싶은데...
아직은 젊은지라 평생을 살라고 하면 답답해서 못 살 것 같은데 딱 몇 년이라고 정해놓고 사니까 즐기면서 살게 되네요.

찌찌 2009-01-1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고향이 순천이랍니다. 지금은 결혼해서 포항에서 산지 10년이 훌쩍 넘어 섰습니다. 신혼에는 금호고속버스만 봐도 고끝이 찡해 지더군요. 내 고향 남도 언제나 포근하고 그리운 곳입니다. 아이 책 살펴보다 들어 와 봤습니다. 정보도 얻고 고향 모습도 보니 2배로 즐겁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하셔요.

소나무집 2009-01-14 17:49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순천만 너무 좋아서 저의 가족은 두 번이나 다녔왔답니다.
 

완도는 따뜻한 날씨 때문에 단풍이 드는 나무보다 난대성 나무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단풍을 구경할 수 없는 아쉬움이 크답니다. 대신 겨울에도 푸른 나무를 볼 수는 있지만요.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단풍 구경을 가기 위해 온식구가 나섰어요.

완도에서 40분이면 갈 수 있는 달마산과 미황사에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가 오르막이었던 산행은 만만치 않았답니다. 제일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 생각했던 저는 오히려 수월하게 올라갔는데 선우가 내내 힘들어했어요.

바위 투성이 산을 정상까지 오르고 나니 언제 힘들었냐는 듯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 뒤에 보이는 산이 우리가 타고 내려갈 능선이에요. 미황사에서 달마봉 정상까지 오르는 데 40분 정도 걸렸어요.


달마봉에서 보이는 미황사가 참 아담해 보이지요? 날씨가 좋은 날은 달마봉 정상에서 완도 앞바다에 있는 섬까지 다 볼 수 있다는데 우리가 간 날은 아쉽게 하나도 안 보였어요. 남편은 다음에 한 번 더 오라는 계시라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네요.



이런 바위문도 통과해야 해요. 이곳을 지나는 잠깐 동안 어찌나 서늘한지 한여름에도 소름이 다 돋을 것 같았어요.



내내 이런 바위산을 오르다가 내려가는 길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장난이 아니었어요. 아차 하면 낭떠러지라서 아슬아슬한데 아이들은 너무 신난다고 그러는 거 있죠.



가을을 느껴 보겠노라고 찾아간 달마산에도 단풍나무는 흔치 않았어요. 그래서 이 나무를 보는 순간 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거 있죠.



에너지가 넘치는 지우는 항상 뒷모습이 안 모일 정도로 앞서간답니다. 점심 먹자고 부르니까 어디까지 갔었는지 다시 올라오고 있어요.



드디어 점심. 납작한 바위에 앉아 먹는 점심이 꿀맛이에요. 볶음밥에 미리 사 간 컵라면. 딸아이 말에 의하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점심이라네요.


점심을 먹고 서서히 내려오다 미황사를 만났어요. 절 뒤쪽으로 능선 보이죠? 저곳이 우리가 따라 내려온 바위산이랍니다.

미황사라는 절이름이 참 예쁘죠? 신라 경덕왕 때 돌배 한 척이 땅끝 마을 사자포구에 와서 닿았는데 불상이랑 불경 외에 특이하게 금으로 만든 사람과 검은 돌이 한 개 있었대요. 그 검은 돌 안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와 지금 미황사 자리까지 오더니 길게 울고 난 후 누워서 일어나지 않았대요. 그래서 그곳에 절을 짓고 소의 아름다운 울음 소리에서 따온 미, 금인의 황금빛에서 황을 따서 미황사라고 지었다고 하네요.



건물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오래된 건 대웅보전뿐이고, 나머지는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서 반짝반짝했어요. 건물 외벽에 탱화가 지워져서 없고 법당 안에 있는 탱화는 신기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특히 탱화 속에 천 분의 부처님이 그려져 있어서 삼배만 해도 삼천배를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 삼배를 한 후 세어보니 한 명당 삼천배니까 아휴, 숫자 커지네...



대웅전에 달려 있는 풍경이 아담하니 예뻤어요. 한낮인데 꼭 저녁 같은 느낌이 드네요.

 
바다를 건너온 부처님 창건 설화가 있는 절이라서 특이하게 대웅보전 주춧돌에 바다거북과 게 그림이 새겨져 있대요. 보이시나요?


엄마 아빠가 절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사라진 아이들, 뭘하고 있나 가 보니 연못 안에 가재가 있다며 고개를 못 드네요.






여름 내내 보랏빛으로 절마당을 지키고  있었을 수국마저 붉게 가을을 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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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11-06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올 여름에 미황사에 다녀왔어요. 뒤의 병풍같은 산을 보면서 멋지다.. 하고 구경만 하다 왔는데 소나무님네 가족분들은 등반을 하셨군요. 부럽..
미황사..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절이었어요 :)

소나무집 2008-11-11 11:00   좋아요 0 | URL
절보다 등산이 더 좋았어요. 땀 흘린 후 절 매점에서 사 먹은 팥빙수도 맛있었구요.

2008-11-11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11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학하기 직전 강진에서 청자 문화 축제가 열렸다. 강진은 전에도 가본 적이 있었지만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유물 전시회가 열린다기에 또 한번 나섰다.

친정이 태안이라서일까? 유독 태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렸다는 청자들이 보고 싶었다. 완도 바로 옆동네에서 만들어진 청자가 내 고향 근처 바다에서 900년 동안 잠자다 발견되었다고 하니 무슨 운명 같기도 해서 강진으로 가는 마음이 설레였다.

이것 저것 행사도 많이 하고 있었지만 너무 더운 탓에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왜 이 더운 철에 축제를 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박물관에 가서 전시된 유물을 본 후 아이들 도자기 만드는 체험 한 가지만 하고는 돌아왔다. 이 전시회는 9월 21일까지 하고 있으니 가까운 곳에 사시는 분들은 한 번 가 보시길.
강진은 고려 시대 왕실과 지배층에게 청자를 공급하던 최고의 청자 생산지였다. 이곳에서 청자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놓고 해상 무역을 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장보고 덕에 우수한 기술과 경제력, 선진 문물이 들어와 있던 강진은 좋은 흙과 운송이 편리한 바닷길을 이용해 최고의 청자를 생산할 수 있었던 것.


전시실 앞에서 폼잡고 서 있는 아들과 딸. 새까맣게 탄 두 아이의 얼굴은 여름 내내 바닷가에 나가 실컷 논 증거. 딸이 이번 여름 방학이 가장 행복한 방학이었다고 했을 정도로 많이 놀았다.



고려 시대 청자가 운반되던 항로. 청자를 실은 배가 탐진(강진의 옛 이름)에서 목포 앞바다를 지나 태안 앞바다를 거쳐 개경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진품 청자로 발견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태안에서 발견된 청자가 3만 점이 라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만하다. 탐진에서 개경 최대경에게 보낸다고 적힌 목간도 보인다.



고려 시대 초기 청자에는 대부분 무늬가 없었다고 한다.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청자에는 파도와 물고기 무늬, 앵무새 무늬, 연꽃 무늬 등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저 중에 혹시 쭈꾸미가 붙어 있던 청자가 있는 건 아닐까?



청자들이 너무나 다양하고 완벽해서 900년 동안 바닷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진품이라서 사진을 많이 안 찍었다.



전시실에서 청자 문양 색칠하기를 하고 있는 아들.

 
  목간에 먹으로 이름을 써 보고 있는 딸아이. 먹물이 담겨 있는 청자는 태안 앞바다에서 출토된 두꺼비 모양의 벼루 복제품이다. 깜찍하니 예쁜 걸 보면 휴대용 벼루였을 것 같다.

  도자기 만들기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체험이다. 그동안 여러 번 해보았는데도 이것만은 꼭 하고 싶어했다.


    선우의 완성된 도자기.


지우의 완성된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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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09-0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물레를 돌려서 만든 자기들이 멋져요!!
저렇게 얇게 오목하게 빼내기가(?) 쉽지 않을텐데 솜씨가 좋군요 :)

두꺼비 휴대용 벼루도 참 깜찍하니 이쁘네요.

소나무집 2008-09-05 13:32   좋아요 0 | URL
도우미가 물레 돌리고 아이들은 손만 올려놓고 있었지요.
감히 저런 작품을 아무나 만드나요!!

하양물감 2008-09-0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멀지만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네요.

소나무집 2008-09-08 14:44   좋아요 0 | URL
너무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하니까 기대는 조금만 하고 가세요.

bookJourney 2008-09-0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아이들도 물레로 작품을 만들 수 있군요~ 멋져요~~ ^^
 

언젠가부터 나비로 유명해진 함평, 서해안 고속도로 지날 때마다 가고 싶었던 곳이다. 지난 주에 지우가 학교에서 체험 학습으로 한 번 다녀와서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런데 딸아이가 자기도 보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엄마랑 아들은 두번째 방문이 되었다.

곤충에 관한 모든 것이 있어서 아이들 데리고 한 번쯤 다녀올 만한 곳인 것 같다. 전시장은 축제 기간에만 개방하고 평소에는 야외만 개방한다고 한다. 너무 넓어서 다 걸어다니려니 웬만한 체력으로도 깨갱이었다.

학교에서 갔을 때는 평일이라 단체 관광객 외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일요일인 어제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래도 가족끼리 가니 더 꼼꼼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은 아빠가 아이들을 다 챙겨주는 것이 더 좋았다.

 

33만평이나 되는 넓은 행사장 곳곳에서 아이들의 시선을 가장 끌었던 대형 곤충 모형들이다. 진짜 저렇게 큰 곤충이 있다면 인간은 벌써 멸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한데 아들 녀석은 곤충이랑 놀 수 있어서 신난단다.

  
 

전시장 가운데 가장 좋았던 곳은 국제 곤충 나비 표본관이었다. 다양하고 고운 곤충의 색깔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떻게 자연에서 저렇게 예쁜 색이 나올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다.

 

 

 

 
나비 날개만으로 만든 작품이란다. 처음엔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딸아이가 이것 좀 보라는 바람에 쳐다보았더니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 작품 하나 만들려고 희생된 곤충이 얼마나 될까? 아이들 말처럼 나도 곤충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멋지긴 하다! 아이들에겐 죽은 곤충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래 사진은 부분을 찍은 것이다. 클릭해서 원본으로 보면 더 생생하게 보인다.


 


  
황금 박쥐 표본과 162킬로그램의 금을 사용해서 만든 황금박쥐 모형이다. 이걸 만들 때보다 금값이 많이 올라서 값이 엄청나다고 한다. 계산은 어려워서 못하겠다.  
숲속마을 곤충관이다. 곤충의 사계절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았다. 곤충들의 예쁜 모습에 우리 딸이 무지무지 좋아했다. 사계절 중 겨울이 가장 근사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곤충도 나비도 아니었다. 바로 미꾸라지잡기 체험. 미리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정말 신나게 놀았다. 옷을 안 버릴려고 조심하던 아이들이 나중엔 진흙탕 속에서 신나게 수영까지 하고 있었다. 집에 가면서 선우가 한 말은 "엄마, 집에 가면 미꾸라지 잡기한 생각만 날 것 같아요." 였다.


 

가로등이 예뻐서 한 컷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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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05-26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꾸라지잡기 체험 정말 즐거웠을듯^*^ 신났겠네요.
그나저나 저 대형곤충모형 으헛 징그러워라.
함평나비축제 가보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네요. 가로등 참 예뻐요.

소나무집 2008-05-27 10:04   좋아요 0 | URL
미꾸라지 잡기 저도 하고 싶었는데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구경만 했답니다.
물만 미꾸라지 반이었거든요.
내년에 한 번 가 보세요.

무스탕 2008-05-2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쁘게 아기자기하게 꾸며놨네요.
나비시계가 참 이쁩니다. 사람보다 큰 곤충들고 이쁘고요 ^^

소나무집 2008-05-27 10:05   좋아요 0 | URL
사진을 다 못 올렸는데 정말 근사한 것들이 많았어요.
악세사리 같은 것도 많이 만들어놓았는데 어찌나 예쁜지 정말 탐이 났어요.

2008-05-28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