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인디언이다 - 미국 남서부 인디언 유적 탐방
강영길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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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2년 전 다녀온 한 달간의 미국 여행이다. 당시 우리 가족의 여행 컨셉은 서부에 있는 국립공원 탐방이었다. 남편은 여행을 하는 동안 늘 이야기했다. 우리는 정말 행운 가족이라고. 미국 사람들도 평생 가볼까 말까 한 미국의 국립공원을 아홉 군데나 다녔다면서. 당시에는 장시간 이동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불평만 했는데 돌아오고 나니 참 좋은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미국은 대부분의 국립공원이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다. 도시에서 가까운 국립공원이 라스베가스에서 두 시간 이상 떨어진 그랜드 캐년 정도다. 그래서 미국의 국립공원 여행은 오지 여행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그 오지를 여행하면서 씁쓸한 순간을 만나곤 했는데 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 유적을 만날 때였다.  

아메리카의 주인이었다가 주인이라는 말 한마디 못한 채 무력 앞에 삶의 터전과 종족의 뿌리까지 강탈당한 사람들, 그들의 슬픈 역사가 미국 국립공원과 그 주변 곳곳에 숨어 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인디언 관련 유적지가 나오면 꼭 들르곤 했는데(자유 여행의 장점~ ) 오랫동안 아메리카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이 한낱 관광 상품이 되어 미국 정부의 보호와 관리를 받고 있어 안타깝기도,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는 순간 참 반가웠다. 내가 다녀온 곳도 나오고, 인디언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 여행의 진수를 대도시가 아닌 자연에서 찾으라고 권한다. 이 책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유적을 찾아다니며 느낀 감회를 솔직하게 쓰고 있다. 미 서부의 수많은 평원, 협곡, 계곡 등에 남은 암각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미국 국립공원 여행팁도 많아 여행을 가기 전에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사진이 좀 어둡게 나왔다는 것.

책을 읽다 보면 미국의 인디언(이 책에서 인디언이라고 표현함) 말살 역사는 물론 인디언들의 자연 친화적인 삶의 자세와 지혜를 배울 수가 있다. 또 학살과 강탈로 시작된 미국의 역사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의 것 빼앗으면서도 하나님이 자신들을 위해 내려주신 축복의 땅이라고 했다니...  

적게 가져야 평화롭고 행복해진다는 인디언들의 삶 앞에 물질과 욕망과 경쟁과 시간에 쫓겨 사는 현재 우리들의 삶이 부끄러워진다. 그랜드 캐년, 모뉴먼트 밸리, 캐니언랜즈, 뉴스페이퍼록, 캐피톨 리프, 모아브, 아치스국립공원...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8천 년의 다양한 역사가 담긴 뉴스페이퍼록.  300여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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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심리학 - 아들을 기르는 부모, 남자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교육 지침서
댄 킨들론.마이클 톰슨 지음, 문용린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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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키우다 아들을 키워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유난히 아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아들만 둘 키우는 엄마들은 설렁설렁 잘도 키우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나와 성향이 비슷한 딸처럼 아들도 그렇게 키우려 하다 보니 더 힘들게 느껴진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들과 맨날 티태격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고민하다 이렇게 살면 아들과 관계가 점점 나빠지겠다 싶어 선택한 책이다. 적(아들)을 알자는 비장한 각오로... ㅋㅋ   

500쪽이 넘는 이 책을 깊이 반성하면서 하지만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읽었다. 마약이나 성에 관한 부분은 우리나라 사정과는 좀 거리가 멀어 책장을 대충 넘겼고, 앞부분부터 읽는 것에도 연연해하지 않고 내 상황에 맞는 단원을 먼저 골라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건 나름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전형적인 나쁜 엄마, 아들을 문제 상황으로 몰고 가는 나쁜 엄마에 더 가까웠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제나마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동안 "넌 도대체 왜 그러니?"라고 물을 때마다 아들의 마음속에서는 "엄마야말로 도대체 왜 그러는데요?"라고 되묻고 있었을 것 같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냐"고 아들의 마음을 물어주는 대신 모든 게 느려터진 아들을 위해서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게 지름길이라는 생각에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면 좋겠다"며 무의식중에 통제와 명령만 해대면서도 난 참 좋은 엄마라고 자처하고 있었다니 아이고, 부끄러워라!   

특히 남자 아이들은 문제가 있을 때 여자 아이들에 비해 겉으로 드러내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생길 수 있단다.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할 기회를 많이 주고 잘 들어주는 환경에서 자란 남자 아이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나 친구에게 털어놓고 해결하려고 하지만 대부분은 성장하면서 남자가 수다를 떠는 건 남자답지 못하다는 통념을 갖게 되고 스스로를 통제하고 억압하면서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딸과 수다를 떨듯 아들에게도 수다 떨 기회를 주자!

학교에서 오랫동안 상담 교사로 일한 저자들이 상황별 수많은 사례를 제시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학교 문제, 친구 문제, 성적 문제 등 문제가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양육을 하는 사람들이나 환경에서 문제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곤 했다.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즉시 나 자신을 돌아보자! 그리고 약간 충격적인 건 부모의 학력이 높고,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부모의 관심을 듬뿍 받은 아이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상담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한대 욕심이 화를 키울 수 있다.

비록 학창 시절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모범생으로 살면서 내면에 꽁꽁 문제를 숨겨두었던 아이라도 성인이 되어서 사회 부적응자가 될 수도 있고, 대인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심지어는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을 때 "내 아이만은 이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하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문제를 고스란히 아이에게 대물림시키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 그때 그때 풀면서 살자!

내가 늘 여자 혹은 엄마의 입장에서 아들을 바라보면서 " 애는 왜 그럴까?" "왜 내 말대로 따라주지 않을까?" 고민했던 것들, 아들의 특성을 알고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드니 요즘은 아들과 싸울 일이 줄어들고 화를 내지 않는 좀 덜 나쁜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ㅎㅎ  예를 들면 조용히 앉아 하는 일을 좋아하는 엄마는 계속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아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잔소리를 해댄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요즘은 작전을 바꿨다. 일단 "밖에 나가서 실컷 놀다 들어와!"로. 

아들을 키우는 부모나 학교에서 남자 아이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선생님이라면 꼭 곁에 두고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교실에 여자 아이들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자아이를 가진 엄마 앞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하는 잔인한 선생님은 안 생길 것 같다. 세상 아이들의 반인 아들 혹은 남학생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다. 아들을 키우며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선물했더니 모두 고맙다는 답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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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1-03-2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고1이 된 큰애 담임선생님이 남자선생님이세요. 게다가 올해 처음으로 선생님을 하신다더라구요. (또)게다가 음악선생님이세요. (하하하~ 저 이부분은 참 좋아요)
그동안 다른 일을 하시다 (기업에도 계시고 예술의 전당에도 계시고.. 등등) 올해 처음 발령받으셨다는데 이 책 그 선생님께 선물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네요.
물론 저라고 아들 맘을 다 아는게 아니니 저도 읽어야 하구요 ^^

소나무집 2011-03-23 10:31   좋아요 0 | URL
초임이라 열정은 대단하실 것 같은데 아이들 다루는 데는 좀 서툴 것 같네요. 그래도 여자 담임보다는 남자 담임이 남학생 마음을 좀더 알아주겠죠? 음악샘이니 화나는 일이 있으면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하진 않을까요? 샘들도 연차별로 꼭 읽어야 할 필독서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없나?

순오기 2011-03-2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금욜 아들 학교에 가면서, 엄마들 모두 아들은 엄마 맘대로 안된다는 고민을 호소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과, 아들 중1때 심각한 관계에서 읽었던 연세대 이훈구 교수가 쓴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를 소개했어요. 정말이지 딸 키우다 아들을 키우는 엄마라면 다 같은 고민을 하게 되더라는... 아들을 이해하기 위한 엄마들과 선생님들께 강추한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좋은 엄마였다는 착각을 나도 하고 살았는데, 책을 읽으면 결고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인정하면 그때부터 길이 보이더라고요.ㅋㅋ

소나무집 2011-03-23 10:32   좋아요 0 | URL
엄마와 아들의 전쟁은 죽을 때까지 끊이질 않는 것 같아요. 저희집은 70가까운 친정엄마랑 오빠가 지금도 여전히 삐걱거리거든요.ㅋㅋ
"엄마 나쁜 엄마지?" 하고 물으면 울 아들은 솔직하게 "가끔은.." 이렇게 대답해요. 이 한마디에서 얼마나 눈치마저 꽝인 아들인지 알겠죠?ㅎㅎ

양철나무꾼 2011-03-23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전 외동이인 아들이랑 지지고 볶고 하는데...솔직히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떠넘길 때가 많거든요.^^

소나무집 2011-03-23 09:23   좋아요 0 | URL
닉넴 바꾸셨군요. 첨에 누구신가 했어요. 더 정이 가요.
저도 남편에게 떠넘길 때도 많아요.^^ 저 아들 누구 닮았냐고 물으면 남편은 절대 자기는 안 닮았대요. 심증은 있는데 남편 어린 시절에 대한 물증이 없으니...^^

BRINY 2011-03-2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야겠네요. 장바구니로~

소나무집 2011-03-23 11:42   좋아요 0 | URL
네, 읽으시면 남학생들을 바라보는 데 좀 도움이 될 거예요.^^
 
얘들아! 들꽃 피는 학교에서 놀자 - 안순억 교사와 남한산학교 이야기 희망을 여는 사람들 7
강벼리. 조선혜 지음. 희망제작소 기획 / 푸른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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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8년 동안 남한산 초등학교에 있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낸 안순억 선생님에 관한 인터뷰 형식의 글이다. 읽는 내내 정말 감동스러웠다. 안순억 선생님의 험난했던 성장기, 학교와 아이들에 대한 애정, 교육열을 읽으며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세상에 이런 선생님도 계셨구나, 내 아이들이 단 한 번만이라도 이런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남한산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26명밖에 되지 않아 폐교 위기에 처한 작은 시골 학교였지만 10년 만에 많은 학부모들이 선망하는 학교로 변신했다. 나도 언론을 통해 남한산 초등학교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속으로 우리 아이들도 저런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이사갈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맹모가 되는 부모가 많았는지 지금은 더이상 아이들을 받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지금의 남한산 초등학교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학부모와 선생님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다. 성남 동화읽는어른모임에서 '남한산성 역사 이야기'라는 주제로 캠프를 하면서 남한산 초등학교의 폐교 위기가 학부모들에게 알려졌고, 첫 교장으로 부임한 정연탁 교장샘의 애정으로 인해 학교 살리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때 잡은 교육 방향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인격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작고 친밀한 학교를 만들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전교조에서 일한 안순억 선생님 모셔왔다. 안순억 선생님은 아이들과 교사가 학교의 중심이 되고 존중받는 교육 문화를 만들기 위해 몸과 행동으로 실천해 오신 분인데, 남한산 초등학교를 그동안 꿈꿔왔던 학교로 만들려고 애썼다. 일반 초등학교랑 똑같은 교육 과정 안에서 종일제 체험 학습, 계절학교, 숲속학교, 양질의 특기 적성 교육 등을 함으로써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학교로 변신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언론의 집중을 받으며 공교육의 희망이자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남한산 초등학교는 진보 교육감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혁신 학교의 모델이기도 하다. 지금 안순억 선생님은 경기도 교육청에서 김상곤 교육감과 함께 더 많은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공교육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고 한다.  

"도시의 학부모들 대다수가 맞벌이를 하고, 다들 먹고사는 문제에 지치고 힘들겠지만, 정말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한다면 좋은 학교로 전학시키려고 애쓰는 것의 10분의 1만큼씩만 지금 있는 자리에서 노력하면 좋겠어요. 학교 운영에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한다면 좋은 학교들이 많이 생길 것이고, 그런 물줄기들이 모여 교육의 변화도 한층 빨리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존립 기반이나 존재 가치가 나만 잘 살겠다.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걸 많은 분들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 본문 174~175쪽 안순억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 

얼마 전 6학년 딸아이의 교실에 공부 기계가 되자는 문구를 붙여놓았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내가 써놓자고 한 것도 아닌데 딸아이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한참 놀아야 할 아이들에게 공부 기계가 되라니 얼마나 끔찍한가? 이게 다 학교간의 경쟁, 아이들간의 경쟁 때문에 생긴 말이니 학교도 변하고 교육도 변했으면 좋겠다. 나 같은 보통의 학부모도 원할 정도라면 이젠 정말 학교가 변할 때가 된 것이다. 

세상도 변하고 학부모들의 의식도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공교육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대안학교가 생겨나고 교육 여건이 좋은 나라로 유학을 보내고 그러는 게 아닐까 싶다. 대안 교육이 공교육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남한산 초등학교 이야기... 아이들의 올바른 교육을 생각하는 선생님과 학부모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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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엄마 다른 별아이
별이 엄마 지음 / 시아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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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 우리 아들이 혹시 adhd가 아닐까 의심하곤 했다. 책읽기와 레고, 로봇을 조립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줄을 모르고,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벌려놓고, 따발총처럼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하기 싫은 일은 끝까지 안 하려 들고, 억지로 뭔가를 시키면 바로 엄마에게 대들고, 주변 정리가 안 되는 아들. 그렇다 보니 나의 잔소리 강도는 점점 심해지고 아들 또한 반항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요즘 들어 내가 아들을 좀더 다그치는 이유는 공부에 있다. 집을 나서면 바다와 산만 보이는 시골에 살다가 이사 와서 온통 학원 간판이 눈을 자극하는 동네에 몇 달 살아보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앞서 아이를 키운 친구들에게 걱정을 늘어놓으면 좀더 놀려도 된다는 쪽과  아니 아직까지?.... 라는 쪽으로 나뉘곤 했다. 좀더 놀려도 된다는 쪽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지만 "아니 아직까지..."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고, 결국 아들 녀석을 닥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울 아들은 이제 4학년이나 되었지만 한 자리에 진득하니 앉아서 공부할 줄을 모른다.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습관을 안 잡아준 나의 잘못을 탓해 보기도 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어렸을 때는 노는 게 남는 거지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와 보니 엄마인 나에게 걱정과 불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고 책을 읽는 건 좋아하나, 공부하자고 하면 도망가기 바쁘고, 간신히 책상 앞에 앉혀놓아도 10분을 못 앉아  있고, 수학 문제 하나하나 풀 때마다 엄마가 옆에 붙어 앉아 공감을 해줘야 하니 엄마로서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늘 이런저런 아들의 행동에 대해서, 혹은 나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행복한 엄마 다른 별 아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는 내가 얼마나 나쁜 엄마인지 깨달았다. 은연중에 괜찮은 엄마라고 자뻑하며 살아온 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우리 아들은 별이처럼 자폐도 아니고 좀 덜 고분고분할 뿐인데 그것마저 힘들다고 아이에게 시시때때로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포장으로 언어 폭력을 써댄 게 너무나 부끄러웠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을 고르고 아들을 바라보곤 했다. 우리 아들은 별이처럼 다른 별에서 온 아이도 아니고 adhd도 아닌데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안 한다고, 행동이 굼뜨다고, 말대꾸 좀 했다고 별에서 온 아이 취급을 한 건 아닌가 싶었다. 아이 마음에 상처를 주는 잔소리를 해대니 아이는 더 반항을 하면서 엄마 마음에 상처를 주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을...  "아들아, 미안하구나!"

주로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이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자꾸 눈물을 훔치는 바람에 옆사람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별이를 키우다가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 속상해하기도 하고, 소수이긴 하지만 별이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안도하기도 했던 별이엄마. 자폐 아들을 키우지만 아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별이엄마. 이 책은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지만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들이 읽으면서 부모의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마음은 장애아를 키우든 정상아를 키우든 똑같기 때문이다.   

별이야, 그리고 별이엄마,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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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14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셨군요. 나고 공감하고 반성하고 그랬는데...
나는 작년 6월에 ADHD 아이가 들어와서 처음엔 힘들었어요.
덕분에 공부도 했고 지금은 서로 죽이 잘 맞아서 힘들지 않아요.
새로 만난 담임샘한테 걸려서 벌 받고 늦게 오는 날은 내가 엄마처럼 속상해요.ㅜㅜ

소나무집 2010-03-15 08:34   좋아요 0 | URL
아이가 장애 없이 태어나는 것만도 참 고맙구나 싶은 마음이 들게 해준 책이에요. 아이가 엄마 성향으로 자라는 건 원치 않으면서 고분고분 말 잘 듣길 바라는 건 뭔지 모르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3-1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동네에는 자식에게 언어폭력과 구타를 동시에 휘두르는 엄마가 있습니다.온동네에 다 들리는 소리...살벌합니다.

소나무집 2010-03-15 08:35   좋아요 0 | URL
늘 생각하는 거지만 부모로서의 길은 끝없는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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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 내려와 산 지 3년여가 되어간다. 원래 성격이 한없이 바라보고 주저하고 머뭇대기를 좋아하다 보니 이사 와서 사람 사귐이 쉽지 않았다. 그야말로 물도 설고 말도 설어 외로움에 목놓아 울게 만든 땅이었다. 아, 또 쏟아지려는 눈물... 나의 남도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작은 그러했지만 1년, 2년 살다 보니 남도 생활의 재미가 느껴졌고, 이사를 앞두고 있는 요즘은 아쉬움에 저무는 하루가 아깝기만 하다.  

도시에 살면서 열망은 했지만 누리지 못했던 것, 시골로 내려오자 느리게 천천히 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눈을 들면 바다가 보이고 산이 보이니 굳이 몇 날 며칠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자연을 곁에 둘 수 었었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급하게 서둘러 갈 곳도 없었다. 극장이나 미술관이나 백화점이 없어서, 문화 센터나 줄서서 가야 하는 학원이 없어서 우리 가족은...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거창한 여행이 아니라 늦은 아침을 먹고 게으르게 나서서 한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가벼운 나들이.   

이웃 동네로 떠나는 그 가벼운 나들이에서 목적하지 않아도 종종 만나지는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이순신이었다. 충청도가 고향인 덕에 어린 시절 현충사로 수학여행을 가면서 그를 알았고, 서울에 살면서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을 보며 나도 남들처럼 그를 영웅이려니 여기며 살아왔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며 그에 대한 관심이 반짝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남편이 극찬을 하며 읽기를 권한 <칼의 노래>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이순신은 내겐 관심 밖의 인물이었다.  

<칼의 노래>에 대한 관심이 생긴 건 완도에 와 살면서부터였다. 목포 해남 진도 고금도 여수... 우리 가족의 발길이 머문 곳마다 이순신이 있었다. 뒤늦게 이순신이 머물렀던 땅을 밟아본 후에야 <칼의 노래>를 읽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이순신이 지켜낸 땅과 바다라는 사실을 새로이 인식했다. <칼의 노래>를 읽기 전에 만난 이순신은 단지 역사 유적지에서 만난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일 뿐 나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서 이순신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순신의 헐벗은 백성이 되고, 불화살을 날리는 이순신의 군사가 되고, 노를 젓는 노두꾼이 되어 그를 우러르고 있었다. 

명량해전에서 노량해전까지의 기록을 담은 <칼의 노래>. 나는 책을 읽으면서 당시 현장에 이순신과 함께 있는 느낌을 받았다. 명량해전이 있었던 전라우수영, 울돌목, 벽파진과 마지막 삼도수군통제사령을 설치하고 노량해전에 임했던 고금도는 두 번씩 다녀온 곳이다. 그렇다 보니 이순신이 물길을 보고 군사를 움직이는 항로를 머릿속으로 일일이 그리며 따라다닐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너무 흥분해서 서울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 동네가 모두 이순신이 머물렀던 곳이라며 떠들어대곤 했다. 남편은 그걸 이제야 알았냐며 어이없어 했지만 나는 <칼의 노래> 덕분에 이순신을 새롭게 발견했고, 이순신의 흔적이 묻어 있는 남녘 바다에 살고 있는 내가 마냥 뿌듯해서 누구에게라도 자랑을 하고 싶었다.  


울돌목을 앞에 두고 있는 전라우수영 유적지(해남).


진도대교 아래 유유히 흐르는 울돌목. 밀물과 썰물이 동시에 흐르고 있다.


진도 고군면에 있는 벽파진 전첩비. 비문을 쓴 사람은 이은상이다.

이순신의 시선을 따라 벽파진 앞 울돌목에서 12척의 배로 130척의 왜선을 맞이했고, 노량해전을 함께 치루었다. 울돌목에서 동시에 오르고 내리는 신기한 물길을 직접 보고 왔기에 소설 속 거센 물결 사이를 돌아치며 외치는 이순신의 외침과 적선이 깨어지는 소리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고금도에서 마지막 전쟁을 치르러 떠나는 이순신의 비장함에 가슴이 저렸고, 관음포로 가던 중 총탄에 쓰러지며 내뱉은 마지막 한마디,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너무나 오랫동안 들어와서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그 마지막 말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래도 이순신의 부하나 백성처럼 나도 이순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영웅이 아닌 가까이 하고 싶은 어버이로서 말이다.

백성과 군사들의 신임은 있었지만 임금의 의심을 받으며 외로워했던 이순신, 왜와 청이 모두 이순신의 능력을 인정했지만 자신이 떠받드는 임금에게만은 인정을 못 받았던 이순신. 임금을 구하고 백성을 구했지만 단지 죽음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말 이외에는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던 속좁은 임금, 노량해전에서 끝내 죽음을 맞이한 이순신마저 두려워 나라를 말아먹을 뻔한 원균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싶어했던 임금. 분명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랑을 했으되, 팽팽한 긴장감으로 맞서야 했던 이순신과 선조가 한편으로는 참으로 가련하다 싶다. 

김훈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책은 사지만 그리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다. 왠지 책을 읽을 때마다 그의 문장들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했다.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섬세하고 친절한 문장을 좋아하는데 김훈의 문장은 친절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단문의 연속... 김훈의 단문은 감정 이입을 방해하곤 했다. 몰입하려는 순간 마침표와 함께 시작되는 새로운 문장은 나를 확 깨게 만들었다. 한 문장에 빠져 작가와 함께 한없이 허우적대고 싶은데 그의 단문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더 많은 시간을 생각하는 데 보내야 했다. 그래서 김훈의 책은 도저히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불편하고 냉정한 문장들이 고뇌하는 이순신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냉정한 문장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김훈만이 가진 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울돌목에 서 있는 고뇌하는 모습의 이순신 동상. 그동안 본 이순신 동상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나라를 구해야 하는 부담감도 없는 내가 <칼의 노래>를 읽으며 이순신의 깊은 외로움과 더 깊은 사랑을 공감했다면 웃을려나? 어디다 이순신의 외로움과 사랑을 비교하느냐고. 하지만 400여 년 전 선조의 버림을 받은 조선의 백성처럼... 요즘 한 나라의 국민 된 자로서 느끼는 감정이 400여 년 전과 똑같다면......   요즘의 나, mb가 아닌 이순신의 백성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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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1-29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제독의 동상이 참 멋지네요. 광화문의 동상에선 가끔 위화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고뇌하는 모습이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지네요. 글도 좋고 사진들 구도도 참 좋습니다.

소나무집 2009-12-01 06:43   좋아요 0 | URL
칭찬 고마워요.
저도 저 작은 동상이 넘 마음에 들어서 새로운 이순신의 이미지로...

초록이좋아 2009-11-30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런 서평 참 좋아요..히히

소나무집 2009-12-01 07:10   좋아요 0 | URL
주절주절 사는 얘기지 뭐.

miony 2009-11-30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인간적인 동상이네요.
광화문의 세종대왕이 갑자기 불쌍해집니다.

칼의 노래를 읽고도 감동을 글로 옮길 재주는 없었던 제 마음을 울리는 서평,멋있습니다.^^

소나무집 2009-12-01 09:12   좋아요 0 | URL
그죠? 참 인간적이죠?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느껴지는 느낌 그대로의 이순신이었어요.
실제 사람 크기보다 약간 큰 정도의 작은 동상이었는데
그게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더라구요.
저도 광화문 세종대왕은 영 아니라고 봐요.

순오기 2009-12-01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운 리뷰네요~~ 목포에 고하도는 안 가보셨나요?
김훈의 풍경과 상처를 읽고 그도 예전에는 단문이 아닌 장문을 썼다는데 놀랐어요.
나는 그런 글이 어려웠는데 님은 좋아할 것 같네요.^^

소나무집 2009-12-02 09:59   좋아요 0 | URL
고하도는 못 가봤는데 <칼의 노래> 읽으면서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비틀고 꼬아서 늘려놓은 장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기회가 되면 <풍경과 상처>는 읽어볼게요.

2009-12-02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3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tigermsk 2011-08-07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훈의 글은 대단히 남성적이지요. 한국어로 만들어진 문학작품들이 상당히 여성적인 감성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 가운데 그 <문체>만으로도 특별히 남성적인 힘을 가지지요.

<적들이 사라진 겨울바다의 그 적막을 나는 견딜 수 없다.>

정말 소름이 돋는 한 문장이지요. 뒤로는 겨우 죽음을 면해준다는 옹졸한 주군뿐이고, 앞에는 천하포무를 외치는 당당한 시대의 영웅 풍신수길의 수십만 대군 사이에서 충무공의 내면을 지극히 남성적인 문체로 압축한건 정말 대단하지요.